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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멕시코의 역사에 대해 다루는 문서.
2. 원주민 시대[편집]
2.1. 멕시코 중남부: 메소아메리카 문명[편집]
멕시코 중남부와 중앙아메리카에 걸친 지역에서 발달한 아메리카 원주민 문명.
인류의 멕시코 이주가 북쪽에서 남쪽으로 진행된 것과 달리, 문명의 발전은 남부의 올멕과 마야 문명에서 먼저 이루어진 후 테오티우아칸, 톨텍, 아즈텍 등 멕시코 중부 문명의 발전이 진행되었다.
인류의 멕시코 이주가 북쪽에서 남쪽으로 진행된 것과 달리, 문명의 발전은 남부의 올멕과 마야 문명에서 먼저 이루어진 후 테오티우아칸, 톨텍, 아즈텍 등 멕시코 중부 문명의 발전이 진행되었다.
2.1.1. 남부[편집]
2.1.1.1. 올멕[편집]
2.1.1.2. 마야 문명[편집]
2.1.2. 중부[편집]
2.1.2.1. 테오티우아칸[편집]
현재 멕시코 중부의 테오티우아칸 유적을 중심으로 하여 발달한 고대 문명이다.
2.1.2.2. 나우아틀 문명[편집]
나우아틀어를 사용하던 민족들은 멕시코 중동부 일대에서 알테페틀이라 불리는 도시국가를 형성했다.
2.1.2.2.1. 톨텍 문명[편집]
아즈텍 이전에 나우아틀어권의 패권을 장악했던 문명.
2.1.2.2.2. 아즈텍 제국[편집]
테노치티틀란을 비롯한 여러 알테페틀(도시국가)들이 연합하여 형성된 원주민 제국.
2.1.2.2.3. 틀락스칼텍[편집]
아즈텍의 간섭을 받으면서도 국체를 유지해온 알테페틀(도시국가) 연합체로, 스페인의 콩키스타도르들과 협력하여 아즈텍을 멸망시켰다.
2.1.2.3. 타라스칸(푸레페차)[편집]
멕시코 중서부 일대에 거주하던 푸레페차인들이 건설한 제국으로, 동부의 아즈텍과 라이벌 관계였다.
2.2. 멕시코 북부[편집]
중남부와 달리 북부는 스페인 콩키스타도르들이 들어오기 이전까지 부족 사회가 유지되었다.
3. 스페인 제국의 지배: 누에바에스파냐[편집]
4. 근현대[편집]
4.1. 멕시코 제1제국[편집]
4.2. 멕시코 임시정부[편집]
1823년 쿠데타를 일으켜 아구스틴 1세를 축출한 군벌 및 정치인들이 세운 임시정부.
4.3. 멕시코 제1연방공화국[편집]
4.4. 멕시코 공화국[편집]
4.5. 멕시코 제2연방공화국[편집]
4.6. 멕시코 제2제국[편집]
4.7. 멕시코 합중국[편집]
4.7.1. 재건 공화국(멕시코)[편집]
4.7.2. 포르피리아토[편집]
Porfiriato.
포르피리오 디아스가 장기집권한 1876년부터 1911년까지의 시대.
디아스는 1876년부터 1880년까지 대통령으로서 집권했고, 1880년부터 1884년까지는 바지사장(...)을 대통령으로 앉혀서 통치하다가, 1884년부터는 대통령 선거에 계속 출마해서 당선되며 1911년 멕시코 혁명으로 축출될 때까지 독재정권을 유지했다.
포르피리오 디아스가 장기집권한 1876년부터 1911년까지의 시대.
디아스는 1876년부터 1880년까지 대통령으로서 집권했고, 1880년부터 1884년까지는 바지사장(...)을 대통령으로 앉혀서 통치하다가, 1884년부터는 대통령 선거에 계속 출마해서 당선되며 1911년 멕시코 혁명으로 축출될 때까지 독재정권을 유지했다.
4.7.3. 멕시코 혁명[편집]
포르피리아토에 반대하는 혁명이 일어난 1911년부터 1920년까지 지속된 혁명과 내전의 시대.
1911년 디아스 축출 이후 혁명군의 지지를 받은 프란시스코 마데로가 대통령에 당선되었으나, 그는 1913년 국방장관 빅토리아노 우에르타의 쿠데타로 인해 피살당했다.
그렇게 우에르타가 대통령에 취임하자 혁명군이 다시 봉기했고 1914년에 우에르타는 축출되었다.
이후에는 베누스티아노 카란사, 알바로 오브레곤 등의 혁명군 온건파와 판초 비야, 에밀리아노 사파타 등 혁명군 급진파 간의 내전이 일어났는데, 1917년에 이르러 사실상 내전에서 승기를 잡은 카란사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1919년에 카란사 정부군은 사파타를 사살하는데 성공했으나, 다른 급진파 수장인 비야를 상대로는 고전했는데, 그 과정에서 카란사는 동맹이었던 오브레곤과 관계가 틀어져 결국 1920년 쿠데타를 일으킨 오브레곤에게 살해당했다.
오브레곤은 바로 대통령에 취임하지 않고 외교관 출신 아돌포 데 라 우에르타[1]를 대통령으로 옹립하여 비야와의 협상을 맡겼고, 비야가 대농장을 받고 정계에서 은퇴하면서 비로소 혁명 시대는 종식되었다.
1911년 디아스 축출 이후 혁명군의 지지를 받은 프란시스코 마데로가 대통령에 당선되었으나, 그는 1913년 국방장관 빅토리아노 우에르타의 쿠데타로 인해 피살당했다.
그렇게 우에르타가 대통령에 취임하자 혁명군이 다시 봉기했고 1914년에 우에르타는 축출되었다.
이후에는 베누스티아노 카란사, 알바로 오브레곤 등의 혁명군 온건파와 판초 비야, 에밀리아노 사파타 등 혁명군 급진파 간의 내전이 일어났는데, 1917년에 이르러 사실상 내전에서 승기를 잡은 카란사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1919년에 카란사 정부군은 사파타를 사살하는데 성공했으나, 다른 급진파 수장인 비야를 상대로는 고전했는데, 그 과정에서 카란사는 동맹이었던 오브레곤과 관계가 틀어져 결국 1920년 쿠데타를 일으킨 오브레곤에게 살해당했다.
오브레곤은 바로 대통령에 취임하지 않고 외교관 출신 아돌포 데 라 우에르타[1]를 대통령으로 옹립하여 비야와의 협상을 맡겼고, 비야가 대농장을 받고 정계에서 은퇴하면서 비로소 혁명 시대는 종식되었다.
4.7.4. 오브레곤-카예스 행정부[편집]
혁명 시대의 혼린을 종식시킨 알바로 오브레곤은 1920년 대선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17년에 제정된 멕시코 합중국 헌법에서는 4년 단임제를 명시하고 있었기에 오브레곤은 1924년 대선 출마를 시도하지 않고 후계자인 플루타르코 엘리아스 카예스를 대타로 출마시켜 당선시켰다.
카예스는 혁명 온건파 오브레곤의 후계자였지만 정교분리 문제에 있어서는 급진적인 입장을 취해 가톨릭 교회 재산을 국유화하는 등의 정책을 추진했고, 이는 1926년에 크리스테로 전쟁이라는 새로운 내전을 야기했다.
크리스테로 전쟁 도중에 치러진 1928년 대선에는 여전히 막후 실세로 군림하고 있던 오브레곤이 다시 출마했는데, 그는 1917년 헌법이 연임을 금지했지 대선을 한 번 거르고 그 다음 대선에서 당선되는 징검다리 중임까지 막는 건 아니라고 주장하며 재선 출마를 관철시켰고 압도적인 득표율로 당선되었다.
그렇게 오브레곤 행정부 2기 출범이 가시화되었으나, 그는 임기를 시작하기도 전에 크리스테로 반군 지지자에게 암살당해서 실제 재선 임기를 시작하지는 못했다.
1917년에 제정된 멕시코 합중국 헌법에서는 4년 단임제를 명시하고 있었기에 오브레곤은 1924년 대선 출마를 시도하지 않고 후계자인 플루타르코 엘리아스 카예스를 대타로 출마시켜 당선시켰다.
카예스는 혁명 온건파 오브레곤의 후계자였지만 정교분리 문제에 있어서는 급진적인 입장을 취해 가톨릭 교회 재산을 국유화하는 등의 정책을 추진했고, 이는 1926년에 크리스테로 전쟁이라는 새로운 내전을 야기했다.
크리스테로 전쟁 도중에 치러진 1928년 대선에는 여전히 막후 실세로 군림하고 있던 오브레곤이 다시 출마했는데, 그는 1917년 헌법이 연임을 금지했지 대선을 한 번 거르고 그 다음 대선에서 당선되는 징검다리 중임까지 막는 건 아니라고 주장하며 재선 출마를 관철시켰고 압도적인 득표율로 당선되었다.
그렇게 오브레곤 행정부 2기 출범이 가시화되었으나, 그는 임기를 시작하기도 전에 크리스테로 반군 지지자에게 암살당해서 실제 재선 임기를 시작하지는 못했다.
4.7.5. 막시마토[편집]
오브레곤 사후에는 부통령 당선인인 에밀리오 힐이 대통령 당선인을 승계했으나, 아직 현직 대통령 신분이었던 카예스는 순순히 권력을 넘겨줄 생각이 없었고, 결국 전직 대통령 카예스가 정식 대통령으로 취임한 에밀리오 힐을 배후에서 조종하는 비선실세막시마토(Maximato) 체제가 형성되었다.
카예스는 1929년에 협상을 통해 크리스테로 전쟁을 종결시켰고, 같은 해에 국민혁명당[2]을 창당한 후 조기대선을 실시하여 파스쿠알 오르티스 루비오라는 새로운 허수아비 대통령을 당선시켰다.
루비오는 1930년에 대통령에 정식 취임했으나 암살 위기를 겪은 후 1932년에 사임하여, 아벨라도르 로드리게스가 대통령직을 승계했다.
한편 이 기간 동안 카예스는 갈수록 우경화되어 베니토 무솔리니 치하의 파시스트 이탈리아를 모방하기까지 했는데, 이 때문에 세속주의 좌파 정권이었던 카예스 행정부와 달리 그가 대통령 위에 군림하는 실세로서 집권한 막시마토 정권은 유사 파시즘 정권으로 평가되는 경우가 많다.
카예스는 1929년에 협상을 통해 크리스테로 전쟁을 종결시켰고, 같은 해에 국민혁명당[2]을 창당한 후 조기대선을 실시하여 파스쿠알 오르티스 루비오라는 새로운 허수아비 대통령을 당선시켰다.
루비오는 1930년에 대통령에 정식 취임했으나 암살 위기를 겪은 후 1932년에 사임하여, 아벨라도르 로드리게스가 대통령직을 승계했다.
한편 이 기간 동안 카예스는 갈수록 우경화되어 베니토 무솔리니 치하의 파시스트 이탈리아를 모방하기까지 했는데, 이 때문에 세속주의 좌파 정권이었던 카예스 행정부와 달리 그가 대통령 위에 군림하는 실세로서 집권한 막시마토 정권은 유사 파시즘 정권으로 평가되는 경우가 많다.
4.7.6. 제도혁명당의 장기집권[편집]
막시마토 시대의 여당인 국민혁명당은 멕시코 혁명당, 제도혁명당 등으로 당명을 변경한 후에도 장기집권을 이어갔는데, 이는 1929년부터 2000년까지 지속되어 소련 공산당과 맞먹는 71년에 달했다.
1934년 대선에서 당선된 라사로 카르데나스는 카예스와의 당권 투쟁에서 승리하여 막시마토 시대를 종식시키고 토지 개혁 등을 추진하며 국민혁명당의 노선을 다시 좌파 정당으로 되돌렸으며, 1938년에는 당명도 멕시코 혁명당으로 변경했다.
카르데나스는 1940년에 6년 단임 임기를 마치고 퇴임하면서 정계에서 은퇴했기에, 이로써 멕시코는 6년 단임 대통령제가 정착되었다.
2차 대전 시기 멕시코는 연합국에 가담했으며, 전쟁 이후인 1946년에는 집권여당인 멕시코 혁명당이 당명을 제도혁명당으로 변경했다.
제도혁명당은 6년에 한 번 있는 대선에서 지속적으로 압승을 거두었으나, 카르데나스가 만든 선례를 따라 특정 대통령의 연임을 시도하지 않고 대통령 단임제 헌법을 준수하여 독재 의혹을 불식시켰다.
제도혁명당은 라사로 카르데나스 퇴임 이후에도 공식적으로는 좌파 노선을 유지했으나 냉전이 장기화되자 미국과 유착하며 점차 우경화되었는데, 이에 불만을 품은 라사로 카르데나스의 아들 콰우테목 카르데나스가 좌파 당원들을 이끌고 탈당하여 1988년 대선에 독자 출마를 감행했다.
대선 개표에서 콰우테목 카르데나스 후보가 제도혁명당 후보 카를로스 살리나스를 앞서는 파란을 일으키자, 제도혁명당은 정전을 일으켜 개표를 일시중단시키는 부정선거를 통해 살리나스 후보를 당선시키는 꼼수를 써서 정권을 연장했다.
이러한 제도혁명당의 장기집권은 냉전이 끝난 1990년대에도 지속되었으나, 1990년대 말에는 좌파 야당 민주혁명당과 우파 야당 국민행동당이 제도혁명당 창당 이후 최초로 제도혁명당의 연방의회 단독 과반 확보를 저지하며 정권교체 가능성을 끌어올렸고, 2000년 대선에서 국민행동당 후보 비센테 폭스가 당선되며 제도혁명당의 71년 장기집권은 막을 내렸다.
1934년 대선에서 당선된 라사로 카르데나스는 카예스와의 당권 투쟁에서 승리하여 막시마토 시대를 종식시키고 토지 개혁 등을 추진하며 국민혁명당의 노선을 다시 좌파 정당으로 되돌렸으며, 1938년에는 당명도 멕시코 혁명당으로 변경했다.
카르데나스는 1940년에 6년 단임 임기를 마치고 퇴임하면서 정계에서 은퇴했기에, 이로써 멕시코는 6년 단임 대통령제가 정착되었다.
2차 대전 시기 멕시코는 연합국에 가담했으며, 전쟁 이후인 1946년에는 집권여당인 멕시코 혁명당이 당명을 제도혁명당으로 변경했다.
제도혁명당은 6년에 한 번 있는 대선에서 지속적으로 압승을 거두었으나, 카르데나스가 만든 선례를 따라 특정 대통령의 연임을 시도하지 않고 대통령 단임제 헌법을 준수하여 독재 의혹을 불식시켰다.
제도혁명당은 라사로 카르데나스 퇴임 이후에도 공식적으로는 좌파 노선을 유지했으나 냉전이 장기화되자 미국과 유착하며 점차 우경화되었는데, 이에 불만을 품은 라사로 카르데나스의 아들 콰우테목 카르데나스가 좌파 당원들을 이끌고 탈당하여 1988년 대선에 독자 출마를 감행했다.
대선 개표에서 콰우테목 카르데나스 후보가 제도혁명당 후보 카를로스 살리나스를 앞서는 파란을 일으키자, 제도혁명당은 정전을 일으켜 개표를 일시중단시키는 부정선거를 통해 살리나스 후보를 당선시키는 꼼수를 써서 정권을 연장했다.
이러한 제도혁명당의 장기집권은 냉전이 끝난 1990년대에도 지속되었으나, 1990년대 말에는 좌파 야당 민주혁명당과 우파 야당 국민행동당이 제도혁명당 창당 이후 최초로 제도혁명당의 연방의회 단독 과반 확보를 저지하며 정권교체 가능성을 끌어올렸고, 2000년 대선에서 국민행동당 후보 비센테 폭스가 당선되며 제도혁명당의 71년 장기집권은 막을 내렸다.
4.7.7. 3당 체제[편집]
2000년부터 2018년까지는 우파 국민행동당과 중도 제도혁명당, 그리고 좌파 민주혁명당의 3당 체제가 이어졌다.
다만 국민행동당이 2000년부터 2012년까지 12년간 집권하고, 제도혁명당이 2012년부터 2018년까지 재집권에 성공한 것과 달리, 민주혁명당은 18년에 걸친 3당 체제 기간 동안 대선 2위를 달성한 적은 있어도 집권은 한 번도 이루지 못했다.
다만 국민행동당이 2000년부터 2012년까지 12년간 집권하고, 제도혁명당이 2012년부터 2018년까지 재집권에 성공한 것과 달리, 민주혁명당은 18년에 걸친 3당 체제 기간 동안 대선 2위를 달성한 적은 있어도 집권은 한 번도 이루지 못했다.
4.7.8. 국가재건운동(모레나) 정권[편집]
2018년 대선에서는 민주혁명당에서 탈당하여 더욱 급진적인 좌파 정당인 국가재건운동(MORENA, 모레나)를 창당한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스 오브라도르(AMRO, 암로) 후보가 당선되었다.
오브라도르(암로) 집권 시기 모레나는 기존 3대 정당을 단독으로 상대하면서도 각종 선거에서 연승행진을 이어갔고, 2024년 대선에서는 모레나의 클라우디아 셰인바움 후보가 3당 단일후보 소치틀 갈베스를 상대로 승리하며 정권재창출에 성공했다.
오브라도르(암로) 집권 시기 모레나는 기존 3대 정당을 단독으로 상대하면서도 각종 선거에서 연승행진을 이어갔고, 2024년 대선에서는 모레나의 클라우디아 셰인바움 후보가 3당 단일후보 소치틀 갈베스를 상대로 승리하며 정권재창출에 성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