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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서는 암묵의 룰 에 따라 만연체로 작성되었으며 이에 따라 가독성이 저하 될 수 있지만 기본규칙에 따라 해당 서술은 문제되지 않습니다.
1. 하나의 문장을 단숨에 끝내지 않고, 그 문장이 품을 수 있는 생각과 감정, 그리고 묘사의 여지를 가능한 한 길게 끌어가며, 끊어내기보다는 이어붙이기를 선호하게 되는 글의 첫 소개
1.1. 해석
1.1.1. 개요

1. 하나의 문장을 단숨에 끝내지 않고, 그 문장이 품을 수 있는 생각과 감정, 그리고 묘사의 여지를 가능한 한 길게 끌어가며, 끊어내기보다는 이어붙이기를 선호하게 되는 글의 첫 소개[편집]

만연체란 무엇인가, 하고 묻게 된다면, 그것은 단순히 문장을 길게 쓰는 일이라고 답하기 보다는 그 다른 것이라 설명하는 것이 좋고 그 이유는, 어떤 화자 혹은 어떤 사유의 흐름이, 혹은 말로 다 할 수 없을 것만 같은 감정과 감상을 통하여 머리가슴 사이 어딘가에서 엉켜 흘러넘치는 듯한 느낌을 주는 그 때, 그것을 다듬지 않고, 끊지 않고, 자르지 않고, 굽이치는 강물처럼, 뒤엉킨 머리카락처럼, 모서리 하나 없는 고요한 연기의 띠처럼 그대로 내보내고자 할 때, 그 말들이 줄줄이 끌려 나오며 형성되는 하나의 형태, 하나의 기세, 하나의 몸짓이 바로 만연체라고 말해야 옳을 것이며, 그것은 문장이 가지는 구조적 완결성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문장이라는 틀 안에 더 많은 것들을 담기 위해 구조를 확장하고, 절제보다 포용을 택하며, 단절보다 연장을 택하고, 단문의 선명함 대신 다문의 풍성함을 기꺼이 끌어안는 방식일 뿐이 아니라, 한 문장 안에 한 장면을 넘어서 한 계절을 담아 내었으며, 한 호흡 안에 한 생애와 한 삶을 밀어넣고자 하는 욕망의 표현일 뿐만 아니라, 의미란 본디 한 번에 도달되지 않고 수차례의 우회와 반복과 맴돌기를 통해 다가서는 것임을 인정하고 또 인정하기 위한 문체이며, 그로 인해 이 문체를 접한 독자는 단순히 의미를 추출하는 기계처럼 글을 해독하는 것이 아니라, 화자의 내면을 따라 고개를 기울이고 그의 숨결을 따르며, 그 말이 반복되는 동안 반복되는 이유를 생각하게 되며, 마침표를 기다리기보다 마침표 없는 서술 속에서 끝나지 않는 생각을 받아들이는 훈련을 하게 되고, 이 모든 경험이 말 그대로 하나의 문장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만연체는 길이가 아닌 밀도이며, 복잡성이 아닌 충실함이며, 서술의 지연이 아닌 감정의 확장, 그리고 의식 세계의 확장이라는 점에서, ‘글’이라는 개념이 단지 정보를 전달하는 통로로만 인식되지 않던 시기, 이를테면 작가가 문장을 사랑했고, 독자가 한 단어에 머물기를 주저하지 않던 시절의 문학이 만연체와 가장 잘 어울렸다는 사실은 결단코 우연이 아니며, 그것은 우리에게 선언된 운명이며 그것이 곧 고전 소설이나 기행문, 또는 한 사람의 내면이 풍경처럼 펼쳐지는 수필에서 이 문체가 유독 빛을 발하였던 이유이며, 그렇기에 만연체는 한 시대의 말투이자, 동시에 한 세계의 느린 호흡이며, 사유의 꼬리와 감정의 파장을 고스란히 문장 안에 안착시키는 언어의 풍경이기도 하며, 그래서 우리는 이 문체를 설명할 때조차 그것을 문장의 형태로 설명하기보다는 한 편의 문장이 길게 늘어져 있는 그 한글자 한글자를 통해 작가가 독자에게 말해주고 싶은 것을 아주 상세히 상상할 수 있게 되거나, 손에 잡히지 않지만 분명히 몸에 닿는 안개 같은 것을 떠올리는 것이 더 정확하다고 느끼게 되며, 실제로 이 문체는 논리적으로는 설명이 되지 않지만, 감각적으로는 수긍되며, 독자는 이해하지 않아도 느낄 수 있고, 뜻을 알지 못해도 울림을 겪게 되며, 한 줄의 끝에서 다시 위를 바라보고, 하나의 단어가 왜 저기 위치했는지를 고민하는 동안, 이미 자신도 모르게 이 문체의 리듬과 호흡 안으로 들어가게 되며, 그것이 곧 만연체의 마법이며, 숙명이기도 하며, 그렇기에 이 문체는 교과서에 설명될 수 없고, 규칙으로 정리될 수도 없으며, 오직 느리게 걷는 자만이, 그리고 말에 머무는 자만이 이해하게 되는 방식이며, 단지 단어를 모으는 것이 아니라, 말로 감정을 감싸고, 생각의 길이를 허용하며, 시간을 늘이고, 문장의 고리를 늘이고 또 늘려서, 결국 그 말의 집을 하나 짓고, 그 집 안을 함께 걷게 만드는 방식이라는 점에서, 만연체는 글을 읽는 것이 아니라, 글 안을 걷는 일이 되며, 독자는 문장을 통과하는 것이 아니라 문장을 거주하게 되며, 그래서 이 문체는 때로 피로하지만, 때로 고요하고, 때로 장엄하며, 때로는 무엇보다도 깊은 공명을 남기게 되며, 그러므로 우리는 만연체를 두고 단순히 ‘길다’고만 말해서는 안 되며, ‘길게 말하고 싶은 마음’이라는 문장의 감정을 읽어야 하고, ‘끝맺음을 유예하고 싶은 간절함’이라는 문장의 표정을 살펴야 하며, 그럴 때에만 비로소 이 문체의 진정한 본모습, 즉 서사와 시, 내면과 외면, 고백과 정념이 한 줄기 문장으로 얽혀 있는 살아 있는 구조물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것이며, 그리하여 마지막 한 마디가 끝났을 때 독자는 깊은 숨을 들이쉬며, 그 모든 들의 파편이 자신 안에 남아 있음을, 비로소 느끼게 되는 것이며, 그러므로 만연체는 말이 아니라 체험이며, 문장이 아니라 공간이며, 구조가 아니라 흐름이며, 결국은 문장이 아니라 삶 그 자체에 닿아 있는, 그런 언어의 긴 호흡인 것이다.

그리고 결국 만연체라는 것은 문장의 시작이 끝맺음을 미루고 그 미루는 사이마다 생각이 생각을 불러내게 하며 작가가 진정으로 독자에게 말하고자 하는 것들, 즉 감정이 감정을 잉태하고, 단어가 단어 위에 쌓이고, 그러다 어느 순간 독자조차 처음 무슨 이야기를 하려 했는지를 어렴풋이 잊어버린 채 오직 말의 리듬, 구절의 반복, 정서의 흐름에만 자신을 맡기게 되는 그 긴 숨결의 문체라는 것은, 본디 우리가 시장에서 물건 값을 흥정하거나, 친구와 문자 메시지를 주고받거나, 누군가에게 길을 물을 때, 혹은 상사의 질문에 답하거나 일상 속에서 시간을 절약하고자 말을 아끼는 대부분의 상황에서는 전혀 쓰이지 않으며, 오히려 그러한 곳에서 이 문체를 사용한다면 듣는 이는 말하는 이의 의도를 헤아리기보다는 그 숨막힘과 복잡함에 먼저 짜증을 느끼거나 의심을 품게 될 터이니, 실생활 속 대화라는 공간, 즉 빠르게 요점을 말해야 하고, 결론을 먼저 말해야 하며, 문장 사이에 숨이 끼어들 틈조차 없어야 하는 그 바쁜 삶의 장면 속에서는 이 만연체라는 방식이 거의 기능하지 않으며, 그런 점에서 만연체는 결코 실용적인 문장이 될 수 없고, 효율적인 의사소통의 도구로 환영받을 수도 없으며, 도리어 그것은 말이라는 수단이 목적을 떠나 자족적으로 흘러가게 되었을 때, 즉 말이 말 자체를 위한 예술이 되었을 때 비로소 태어날 수 있는 문체이자, 그 특성상 오직 문학이라는 장르 안에서만,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감정이 효율을 이기고, 서술이 목적보다 더 우선시되며, 독자가 정보가 아니라 체험을 기대할 때에만 제 빛을 발할 수 있는 문체이므로, 결과적으로 만연체는 대화 속에서 사라지고, 방송 자막에서 배제되고, 뉴스 기사에서 축출되며, 논문에서 부정되며, 요약 보고서에서는 금기되며, 결국 그 행선지를 오직 문학 안에서, 소설과 수필, 편지와 기행문, 때로는 시의 산문적 흐름 안에서만 겨우 허락받은 채 살아가는 존재이며, 이것은 비단 그 문장의 길이 때문만은 아니고, 단어의 무게 때문만도 아니며, 결국 그것이 요구하는 시간, 그 느림, 그 돌고 돌아 한 자리에 돌아오는 서술의 반복과 여백, 그리고 그것을 따라올 수 있는 독자의 집중력과 감정의 여유가 실생활의 순간들에는 너무나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며, 결국 우리는 이 문체를 선택하지 않게 되고, 또 듣게 되지도 않으며, 오직 ‘읽을 때’, 그것도 아주 천천히 읽고 싶을 때, 의미를 덜어내기보다 껴안고 싶을 때, 문장을 통과하는 것이 아니라 문장에 머무르고 싶을 때에야 비로소 이 만연체라는 생명체와 조우하게 되며, 그러한 이유로 만연체는 일상의 말이 되지 못하고, 문학이라는 따로 마련된 방 안에서만 간신히 숨을 쉬고 있다는 사실은 어쩌면 당연하면서도 안타깝고, 또 아름다운 일인지도 모르겠다.

1.1. 해석[편집]

1.1.1. 개요[편집]

만연체는 문장을 길게 늘여 쓰며 내용을 자세히 설명하는 문체로, 주로 문학 작품에서 사용된다.

정보 전달보다 표현과 정서를 중시하며, 일상 대화에서는 거의 쓰이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