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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 제2대 황제 건문제 | 建文帝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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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
즉위 | |
실종 | |
능묘 | 없음[1] |
재위기간 | 명 황태손 |
제2대 황제 | |
1. 개요
1. 개요[편집]
[1] 실종된 이후 언제 사망했는지도 미상이고, 시신이 발견되지 않아서 능을 조성할 수 없었으므로 능호도 없다.[2] 명나라 황태자 주표의 후궁이다. 원래 황태자비가 상우춘의 여식인 효강황후 상씨인데 태자비 시절에 죽었기 때문에 태자비 자리가 비었다. 그러나 여씨가 황태자비가 된 적은 없다. 1399년에 황태후로 올랐으나 1402년 정난의 변으로 인해 황태자비 신분으로 격하되었으며, 이후 황수의문황태자비(皇嫂懿文皇太子妃)의 호를 받았다.[3] 남명의 안종 홍광제가 추증한 묘호로 남명 이전의 명나라와 청나라 기준으로는 묘호가 없다.[4] 영락제는 정난의 변 이후 건문제를 황제로 인정하지 않았다. 남명 이전 명나라에서는 대개 당시의 연호인 건문을 따서 건문군(建文君)이라고 불렀다.[5] 남명의 안종 홍광제가 추증한 시호로, 약칭은 양황제 또는 양제이다.[6] 청나라의 고종 건륭제가 추증한 시호로, 약칭은 혜황제 또는 혜제이다.[7] 단, 《명사》(明史)에는 공민제(恭閔帝)로 서술되어 있다.[8] 영락제 즉위 이후 이 연호를 사용했던 것 자체가 취소되었다가 신종 만력제 때 복구되었다. 자세한 설명은 본문을 참고할 것.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