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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 제7대 황제
경태제 | 景泰帝
파일:Jingtai.jpg
출생
사망
1457년 3월 14일 (향년 30세)
능묘
경태릉(景泰陵)[1]
재위기간
명 성왕
제7대 황제
명 성왕 (폐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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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씨
기옥(祁鈺)
부황
묘호
없음[2] / 대종(代宗)[3]
시호
성여왕(郕戾王)[4]
공인강정경황제(恭仁康定景皇帝)[5]
부천건도공인강정융문포무현덕숭효경황제
(符天建道恭仁康定隆文布武顯德崇孝景皇帝)[6]
연호
경태(景泰)[7]

1. 개요

1. 개요[편집]

중국 명나라의 제7대 황제.
[1] 황제로 복권된 뒤에 황제의 능으로서 꾸며지긴 했으나 정식 능호를 따로 받은 것도 아니라서 연호에서 따온 경태릉이라는 명칭을 쓰고 있다.[2] 명나라(남명 정권 제외)와 청나라 기준.[3] 남명홍광제가 올린 묘호.[4] 영종이 복위한 뒤 성국(郕國)의 왕으로 강등당하고, '려'(戾)의 악시를 받아 '성여왕'이라고 하며, '성려왕'으로 쓰기도 한다.[5] 제8대 헌종 성화제때 황제로 복권시켜 주면서 올린 시호이며, 성화제 이후의 명나라(남명 정권 제외)와 그 뒤를 이은 청나라가 사용한 시호이기도 하다. 약칭 '경황제' 또는 '경제'이다.[6] 남명의 초대 황제인 안종 홍광제가 올린 시호이다. 이 시호 역시 약칭 '경황제' 또는 '경제'이다.[7] 사망 직전에 폐위된 황제이고, 한때 왕으로 강등당했음에도 연호는 취소되지 않았다. 때문에 정통제 및 경태제의 재위기간을 다룬 실록인 《영종실록》에서도 정통제의 첫 번째와 두 번째 재위기간의 연도를 각각 정통, 천순 연호로 표기한 것과 더불어 경태제 재위기간의 연도를 경태 연호로 표기했다. 건문제의 경우 연호를 쓰지 못하는건 물론이고 황제는 물론 왕의 작위도 받지 못하고 건문군(建文君)으로 불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