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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지질3. 칼라우파파 – 잊혀진 이들의 땅
3.1. 희망과 희생의 땅3.2. 고립된 세계 – 물을 찾아 헤매다3.3. 세상과의 연결
4.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파일:1280px-Kalaupapa_penninsula.jpg
칼라우파파 반도의 전경
칼라우파파(Kalaupapa)는 미국 하와이 주몰로카이 섬에 위치한 작은 비법인 지역이자 하와이 원주민 보호구역이다. 행정적으로는 칼라와오 군에 속해 있으며, 이곳은 하와이 역사에서 특별한 의미를 지닌 장소로 기록된다.

1866년, 카메하메하 5세가 통치하던 시기, 하와이 입법부는 한 가지 중요한 법안을 통과시켰다. 그것은 바로 몰로카이 섬을 나병 환자들의 격리 수용지로 지정하는 법안이었다. 이 법에 따라 한센병(Hansen's disease, 나병)에 심각하게 감염된 환자들은 감염 확산을 막기 위해 강제 격리되었다. 당시에는 이 질병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으며, 매우 전염성이 강하다고 여겨졌고, 항생제가 등장하기 전까지는 치료법이 전무했다.

칼라우파파를 비롯한 나병 환자들의 거주지는 하와이 보건국(Board of Health)의 관할 하에 놓였으며, 보건국에서 임명한 관리인들이 섬의 운영을 감독하였다. 이처럼 칼라우파파는 단순한 지리적 장소를 넘어, 한센병 환자들이 강제 격리되며 겪어야 했던 역사적 고통과, 이후 공동체적 연대와 생존의 역사가 서린 장소로 남아 있다.

2. 지질[편집]

칼라우파파 반도는 하와이에서 가장 고립된 장소 중 하나이다. 세상의 끝처럼 보이는 이곳에는 몰로카이 해안 절벽이 위용을 뽐내며 우뚝 서 있다. 900m 높이의 절벽은 바다를 향해 수직으로 떨어지고, 그 아래로는 수백만 년의 세월을 담은 검은 바위들이 파도에 부딪히며 부서진다.

한때, 지질학자들은 이 절벽이 바람과 물의 침식으로 형성되었다고 믿었다. 그러나 지금은 또 다른 이야기가 전해진다. 한때 이 섬의 북쪽 3분의 1이 바다로 붕괴하며, 거대한 해저 산사태를 일으켰다고 한다. 이제 바다 위로 남겨진 작은 섬들, 오칼라, 모카푸, 후엘로는 오래전 몰로카이에서 자라던 희귀한 식물들을 품고 있다. 그중에서도 로울루 야자는 이곳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존재로 남아 있다.

23만~30만 년 전, 또 다른 화산이 해저에서 깨어났다. 푸우우아오 화산이 바닷속에서 폭발하며, 뜨거운 파호에호에 용암이 흘러내렸다. 바다는 그 불길한 흐름을 막을 수 없었고, 용암은 점차 식으며 새로운 대지를 만들었다. 그렇게 칼라우파파 반도는 탄생했다.

3. 칼라우파파 – 잊혀진 이들의 땅[편집]

몰로카이 섬의 거친 북부 해안에 자리한 칼라우파파 반도에 태평양의 파도가 끊임없이 몰아치고, 하늘을 찌를 듯한 절벽이 장벽처럼 솟아오른 이곳은 한때 희망과 절망이 교차하는 땅이었다.

과거 이곳은 단순한 어촌에 불과했으나, 1866년 카메하메하 5세의 칙령에 의해 운명이 바뀌었다. 몰로카이 섬은 나병 환자들의 최후의 안식처이자, 그들에게 내려진 냉혹한 형벌의 섬이 되었다. 나병은 당시 미지의 공포였다. 원인은 알 수 없었고, 치료법은 존재하지 않았다. 공포에 질린 사람들은 환자들을 격리해야 한다고 믿었고, 그렇게 1,200명이 넘는 남녀와 아이들이 이곳으로 추방되었다. 그리고 1969년, 강제 격리법이 폐지될 때까지, 그들은 잊힌 채 살아야 했다.

지금도 과거의 기억을 안고 몇몇 이들이 이곳에서 살아가고 있다. 칼라우파파는 더 이상 강제 격리의 장소가 아니지만, 그 땅 위에는 아직도 수천 명의 발자취와 한숨이 서려 있다. 이제 이곳은 칼라우파파 국립역사공원으로 지정되어, 그들의 이야기를 조용히 들려주고 있다.

3.1. 희망과 희생의 땅[편집]

최초의 나병 정착지는 칼라우파파 반도의 동쪽, 칼라와오에 자리했다. 1873년, 벨기에 출신의 성 다미안 신부가 이곳에 도착했다. 그는 신을 믿고 이 땅을 떠나지 않았다. 나병 환자들과 함께 살며,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환자들에게 약을 건네고, 공동체를 만들며, 한때 버려졌던 이들에게 인간다운 삶을 선물했다.

그의 뒤를 이어 마리안 코프 수녀와 의사 아서 알버트 세인트 무리츠가 도착했다. 그들은 환자들의 고통을 어루만지며, 나병이 단순한 저주가 아니라 극복할 수 있는 병임을 세상에 알렸다. 그러나 운명은 잔인했다. 1893년, 하와이 보건국은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원주민 어촌마저 폐쇄하고, 칼라우파파 전체를 나병 환자들의 유배지로 삼았다. 그들은 세상으로부터 완전히 단절되었다.

1969년, 강제 격리법이 폐지되기 직전, 하와이 주의회는 이곳을 완전히 폐쇄하려 했다. 하지만 외부에서 들려오는 작은 목소리들이 있었다. 돈 호, 돈 피컨 같은 이들이 나서서 말했다.
이곳은 단순한 병원의 폐쇄 문제가 아니다. 여기에 남은 사람들은 평생을 이곳에서 살아왔다. 그들에게 다른 세상은 낯설고, 그곳에서 그들은 더욱 외로울 것이다."

그렇게, 몇몇 주민들은 남기로 했다. 그들은 세상이 버린 땅에서, 스스로가 만들어낸 작은 세상을 지켜내고 있었다. 이 섬에서 격리된 사람들의 숫자는 총 8,500명. 그들은 법적으로 사망한 자로 간주되었다. 그러나 그들의 영혼과 기억은 바람 속에 남아 있다.

3.2. 고립된 세계 – 물을 찾아 헤매다[편집]

칼라우파파의 가장 큰 생존 문제는 물이었다. 바닷바람이 몰아치는 이곳에서 담수를 찾는 것은 하늘에서 별을 따는 것과 같았다. 반도의 중심에는 카우하코 분화구 호수가 자리하고 있다. 1878년, 원주민 탐험가 나쿠이노는 이곳의 물이 민물이라고 기록했다. 그러나 1893년, 프랑스의 탐험가 쥘 레미는 그것이 바닷물과 섞여 있다고 주장했다.

칼라우파파 주민들은 이 호수를 신의 선물이라 믿었다. 가뭄이 닥쳐도, 갈라진 대지 사이로 바닷물이 스며들어도, 그 물속에는 항상 생명이 숨 쉬고 있었다. 그러나 바다와 연결된 지하의 흐름은 이 호수에 때때로 염분을 섞어 넣었고, 주민들은 마실 수 있는 깨끗한 물을 얻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했다.

3.3. 세상과의 연결[편집]

칼라우파파는 세상과 단절된 곳이었고, 1935년 칼라우파파 공항이 건설되기 전까지 배와 가파른 절벽길만이 이곳을 오가는 유일한 통로였다.

그 길은 칼라우파파 팔리 산길이었다. 수백 미터의 절벽을 따라 이어진 좁은 오솔길은 거친 바람과 함께 험난한 길을 예고했다. 바닷길조차 허락되지 않았다. 현재도 특별 허가 없이는 배로 접근할 수 없으며, 선박이 반도 해안선에서 400m 이내로 접근하는 것은 금지되어 있다.

칼라우파파. 세상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곳, 그러나 그 누구보다 강하게 삶을 지켜낸 이들이 남긴 이름. 그 바람과 파도 속에서, 그들의 이야기는 여전히 들려오고 있다.

4. 관련 문서[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