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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주영(r1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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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그룹 초대 회장
정주영
鄭周永|Chung Ju-yung
출생
강원도 통천군 답전면 아산리
(現 강원도 통천군 송전면 아산리[2])
사망
2001년 3월 21일 (향년 85세)
국적
본관
하동 정씨 (河東 鄭氏)
아산(峨山)
직업
학력
송전공립보통학교 (졸업)[4]
서명
[ 펼치기 · 접기 ]
부모
아버지 정봉식, 어머니 한성실[5]
형제자매
남동생 정인영, 정순영, 정세영, 정신영, 정상영
여동생 정희영
배우자
변중석(1921~2007)[6]
자녀
장남 정몽필(1934~1982)
차남 정몽구(1938~ )
삼남 정몽근(1942~ )
장녀 정경희(1944~ )
사남 정몽우(1945~1990)
오남 정몽헌(1948~2003)
육남 정몽준(1951~ )
칠남 정몽윤(1955~ )
팔남 정몽일(1959~ )
차녀 정정인(1979~ )
삼녀 정정임(1981~ )
신체
175cm[7], 72kg, O형
의원 선수
1
의원 대수
종교
병역
해당 사항 없음

1. 개요

1. 개요[편집]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10]

정주영 어록 중 유명한 말.

대한민국기업인, 정치가. 별칭은 '왕회장'[11]. 현대그룹의 창업주이자 초대 회장으로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1세대 기업인이다. 파란만장한 근현대사에서 소학교 졸업이라는 학력을 딛고 일어서서 현대그룹이라는 거대 기업을 일군 자수성가형의 신화적인 인물이기도 하다.

1930년대 배달부터 시작해 자동차 정비업, 건설업 등을 거치며, 20세기 한국의 경제 성장을 이끈 대표적인 기업인이었으며, 1990년대에는 정계에도 진출했지만, 낙선한 후 1998년에는 떼를 이끌고 방북한 것을 계기로 금강산 관광 등을 유치한 대북 사업의 선구자로 활동하다 2001년 사망했다.

호는 '아산(峨山)'이다. 북한 강원도 지역에 있는 고향 마을 이름에서 유래한 것이다.[12] 오늘날 울산광역시에는 그의 호를 딴 아산로가 있다.
[1] 음력 10월 19일.[2] 북한 행정구역 기준으로는 강원도 통천군 노상리.[3] 사후 2002년 고인의 뜻에 따라 현재 명칭인 서울아산병원으로 변경했다.[4] 현재의 초졸에 해당하나 당시에는 무학도가 많았다. 이후 고려대, 서강대를 비롯한 여러 대학에서 명예 박사 학위를 받았다.[5] 1886년~1953년 1월, 향년 69세.[6] 1930년대 정주영과 결혼했다. 변 여사 동네에 살던 정주영의 숙부가 후덕한 변 여사를 맘에 들어해 을 연결해 서울에서 정주영이 통천군으로 왔다 얼굴 한 번 보고 한 달 보름 후 빠른 결혼으로 이어졌다고 한다. 이후 정주영과 서울로 가 같이 고생하며 식구들 챙기고 남편을 내조한 것으로 알려져있다. 다만, 결혼 이후 본인은 서울에서 바쁘게 살고, 친정은 함경북도 청진으로 이사가 좀처럼 만나지 못하다, 분단이 되면서 진짜 평생 보지 못하게 됐다고 한다. 이 점을 정주영도 미안해했고, 변중석도 남편 역시 마찬가지 신세라며 이해했다. 다만, 정주영의 바람기 때문에 알게 모르게 속앓이를 했다고 한다.[7] 일제강점기 평균 신장이 163cm이었음을 고려하면, 단순 계산으로는 지금의 185.7cm와 대응된다고 보면 된다. 상당한 장신이었던 셈이다. 1992년 78세의 나이에 한 신체 검사에서는 신장이 조금 줄어서 173cm이었다. 모친이 신장이 큰 편이었다고 한다. 부인 변중석 여사는 신혼 첫날밤 정주영 체구가 커서 무서웠다고 한다.[8] 임종 직전, 아들 정몽준의 권유로 온누리교회(서울특별시 용산구 서빙고동 본당) 담임목사였던 하용조 목사로부터 세례를 받았다. # 정몽준의 부인이자 여섯째 며느리인 김영명의 인터뷰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9] 이론적으로 어려운 일이라고 섣불리 포기하려 들지 말고 적어도 시행착오는 겪어보고 결정하라는 얘기다. 물론 후술하고 있듯, 이 말 듣고 진짜 무리하게 하다가 사업 실패한 사람을 일컬어 기업가에서 정주영 병이란 말도 나돌 정도니, 사전에 철저히 조사하고 시도를 해 보든지 하자.[10] 2001년에 나온 회고록 제목이기도 하다.[11] 재계 서열 1위였고 재벌 중에 왕이라는 뜻으로 불렸다.[12] 통천군의 아산리 지역으로 북한 행정 구역상 로상리(노상리)로 개칭했다. 즉, 충청남도 아산시와는 상관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