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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궐 제16대 가한
당 제5대 황제
예종 | 睿宗
출생
662년 6월 22일
장안 대명궁 함량전
(現 산시성 시안시)
즉위
684년 2월 27일
장안 황궁
(現 산시성 시안시)
사망
716년 7월 13일 (향년 54세)
장안 장안궁 백복전
(現 허난성 뤄양시)
능묘
교릉(橋陵)
재위기간
제5대 황제
제16대 가한
684년 2월 27일 ~ 690년 10월 16일
무주 황태자
690년 10월 19일 ~ 698년 12월 8일
제5대 황제 (복위)
제16대 가한
710년 7월 25일 ~ 712년 9월 8일
당의 태상황
712년 9월 8일 ~ 716년 7월 13일
1. 개요

1. 개요[편집]

성은 이(李), 휘는 단(誕)이며, 초기 시호는 대성진황제(大聖眞皇帝)이다. 이후 당 현종 시기, 시호는 현진대성대흥효황제(玄眞大聖大興孝皇帝)로 추가 및 개칭되었다. 묘호는 예종(睿宗)이며, 능호는 교릉(橋陵)이다. 그는 당나라의 제5대 황제로, 두 차례에 걸쳐 황위에 오르며 왕조의 전환기에 중대한 역할을 한 인물이다.

이단은 당 고종 이치와 측비 무씨 사이에서 태어나 황실의 측계로 성장하였다. 684년 형인 중종 이현이 폐위되자, 모후 무씨는 정권 장악을 위해 이단을 황제로 옹립하였다. 이단은 형식적으로는 황제였지만, 실제로는 무씨가 국정을 독점하며 권한 없는 군주로 존재하였다. 결국 690년 무씨가 자신이 황제로 즉위하고 국호를 변경하면서, 이단은 폐위되고 황실의 일원으로 물러났다.

705년 무씨 정권이 무너진 뒤, 이단은 다시 황태자로 책봉되었고, 710년 중종이 붕어하자 다시 제위에 올랐다. 그러나 이단의 두 번째 재위 또한 오래가지 않았으며, 곧바로 스스로 퇴위하고 아들 이융기에게 제위를 넘겼다. 이융기가 당 현종으로 즉위함으로써 당 왕조는 새로운 전성기로 나아가게 되었다.

이단의 통치는 정치적 주도권보다는 왕조의 명맥을 이어가는 상징적 역할에 중심을 두었다. 실제로 국정을 주도한 사례는 드물며, 정치 개혁이나 행정 운영보다도 정통성 회복과 황실의 권위 유지가 그의 주요 과업이었다. 그는 재위 기간 동안 조정의 안정을 도모하고, 다음 세대의 통치가 원활하게 이어질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하였다.

문화나 제도 면에서 뚜렷한 업적을 남기지는 않았지만, 유교적 예제의 회복과 종교 의례의 정비를 통해 황제 권위의 회복에 기여하였다. 특히 도교의 신비주의적 요소와 불교 의식을 아우르며, 조정의 정신적 기반을 강화하고자 하였다.

이단은 두 번의 즉위를 거쳐 당 제국의 정통을 잇고 혼란기에서 전성기로의 과도기를 이끈 군주로 평가된다. 통치력보다는 역사적 상징성과 조정 안정화에 기여한 점에서 그 의의가 크며, 교릉에 묻혀 후세에 존숭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