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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궐 제14대 가한
당 제3대 황제
고종 | 高宗
파일:당건릉.jpg
건릉 전경.
1. 개요

1. 개요[편집]

성은 이(李), 휘는 치(治)이며, 초기 시호는 천황대제(天皇大帝)였으며, 이후 당 현종 때 개칭과 추가가 이루어져 정식 시호는 천황대성대홍효황제(天皇大聖大弘孝皇帝)이며, 묘호는 고종(高宗)이며, 능호는 건릉(乾陵)이다. 그는 당나라의 제3대 황제로, 제국의 판도를 사방으로 넓히고 무후의 정치 참여를 허용하며 당 제국 정치의 전환기를 이끈 군주였다.

이치는 당 태종 이세민의 아들이며, 문덕순성황후 장손씨(文德順聖皇后 長孫氏) 사이에서 태어났다. 형인 이태가 폐위된 뒤 황태자로 책봉되었고, 649년 부친의 뒤를 이어 즉위하였다. 즉위 초반에는 신중하고 온건한 정치를 펼치며 제국의 안정을 유지하였다.

그의 재위 중 당나라는 동북아시아와 서역 방면에서 모두 강력한 군사 활동을 전개하였다. 백제를 660년에 멸망시키고 이어 668년에 고구려를 무너뜨림으로써, 당나라의 영향력은 한반도만주까지 확대되었다. 서역에서는 안서도호부와 북정도호부를 설치하여 실질적인 지배를 강화하였다.

국내적으로는 율령 체제와 과거제 기반의 행정 운영이 지속되었으며, 불교 신앙을 보호하는 정책도 펼쳤다. 그러나 점차 건강이 악화되면서 황후였던 무씨가 정무에 깊숙이 개입하였고, 후반기에는 실질적인 권력을 장악하게 되었다. 이는 무후의 직접적인 집권으로 이어지는 정치적 기반을 마련한 계기가 되었다.

683년에 이치는 붕어하였으며, 이후 무후가 직접 정권을 잡고 황제에 오름으로써, 당 제국은 일시적으로 여황제의 시대를 맞이하게 되었다. 이치는 재위 중 당나라의 최대 판도를 실현하였으며, 대외 정복과 내치 안정이라는 두 가지 성과를 동시에 이루어낸 군주로 평가되지만, 정치 실권이 점차 무씨에게 이전되었다는 점에서 중대한 시대적 전환점에 위치한 인물로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