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편집]
Leku Shqiptar |
2. 환전[편집]
국내 시중은행, 환전소에서는 취급하지 않으며 KEB하나은행 역시 비고시 추심 대상이 아니다.
알바니아로 여행, 사업 목적으로 간다면 아래의 외국 통화로 환전이 가능하다.
목록에 있더라도 일부 사설환전소이나 은행에서만 가능하다.
일리리아 환율창
알바니아로 여행, 사업 목적으로 간다면 아래의 외국 통화로 환전이 가능하다.
목록에 있더라도 일부 사설환전소이나 은행에서만 가능하다.
일리리아 환율창
- 오세아니아: 호주 달러
3. 알바니아 인민 공화국(1기)[편집]
3.1. 1945 발행[편집]
이전의 은행은 알바니아 "국립"은행 이었지만 점령 후에는 국립을 빼서 알바니아 은행 으로 불렀다. 작은 차이지만 무언가 굉장히 허전함을 느낄 수 있게 해준다.
- 이때까지는 프란카 표기를 사용했었다.
- 참고로 지폐 속 인물은 스컨데르베우로, 봉건 귀족이었던지라 공산주의와는 어울리지 않지만 워낙에 인물이 인물인지라 선정된 듯.
3.2. 1947 발행[편집]
레케화가 공식적으로 국가 통화로 지정된 이후 발행된 첫 번째 시리즈.
여느 유럽국가와 마찬가지로 춘추전국시대 뺨치는 방대한 시리즈를 통합해 주었다.
여느 유럽국가와 마찬가지로 춘추전국시대 뺨치는 방대한 시리즈를 통합해 주었다.
앞면 | 뒷면 | ||
10L | 파르티잔 | 액면 | |
50L | |||
![]() | 100L | ||
500L | |||
![]() | 1,000L | ||
3.3. 1949 발행[편집]
조금 더 노동자를 집어 넣었는데, 이것이 다 구국의 영웅이자 불세출의 전략가이신 위대하신 령도자 덕분이다!
앞면 | 뒷면 | ||
10L | 국장 | 액면 | |
50L | 스컨데르베우 | 파르티잔 | |
100L | 총을 든 군인 | 액면 | |
500L | 뜨락또르 / 스컨데르베우 | 볏단을 든 농민 | |
![]() | 1,000L | 스컨데르베우 / 송전탑 | 광산 노동자 |
4. 알바니아 사회주의 인민공화국(2기)[편집]
4.1. 1953~76 발행[편집]
5. 알바니아 공화국(3기)[편집]
5.1. 1991 발행[편집]
앞면 | 뒷면 | ||
100L | 정유소 | 제철소 인부 / 시추공 / 제분소 | |
![]() | 500L | 해바라기를 든 소녀 | 산 |
5.2. 1992 긴급조치 발행[편집]
마트에 들어갈때 가격과 나올때 가격기 천지차이일 정도로 인플레이션이 심해지자, 현행 화폐를 50:1의 비율로 개혁하여 '레크발류트' 라는 새로운 단위를 만들어 잠깐이나마 발행했다.그리고 그해 10월부로 폐지되었다..
5.3. 1992 발행[편집]
5.4. 1996(2019) 발행[편집]
초판은 1997년 7월 11일 발행되었다.
이후 2019년 가을부터 도안은 동일하지만 디자인을 수정한 개정판이 발행되었으며 200레크권이 폴리머 재질로 바뀌었다.[4] 또 함께 계획했던 새 고액권 1만레크권도 이 시리즈에 편입되어 2021년 발행되었다.
이후 2019년 가을부터 도안은 동일하지만 디자인을 수정한 개정판이 발행되었으며 200레크권이 폴리머 재질로 바뀌었다.[4] 또 함께 계획했던 새 고액권 1만레크권도 이 시리즈에 편입되어 2021년 발행되었다.
현행권 | 앞면 | 뒷면 | |
잡지 / 알바니아 최초의 의회건물 | |||
200L | 그의 생가 / 시 | ||
500L | 독립기념관 | ||
1,000L | 바비 뎨예스 교회 | ||
2,000L | 부트린트 유적의 원형극장 | ||
5,000L | 크루여 성[5] | ||
10,000L | 알바니아 국기와 깃발의 찬가 | ||
5.5. 동전[편집]
현재 5, 10, 20, 50, 100레크 5종. 1레크도 존재는 하나 대개 5레크 단위로 거래가 이루어져서 잘 쓰이지 않는다.
[1] 잉글랜드 발행권만 가능[2] 알바니아에서도 체코/헝가리 환전 사기가 워낙 알려진 탓에 현지인들이 자국에서 환전한다고.[3] 지폐 우측 하단에 년도가 달라졌고, 일렬번호의 글씨가 조금 얇아졌지만, 이전의 화폐라고 받아주지 않는다는건 없었다.[4] 본래는 전량 폴리머로 교체할 계획이었으나 최종적으로 200레크만 교체하고 나머지는 기존의 면소재를 유지하기로 했다.[5] 스컨데르베우가 반(反)오스만 항쟁의 기치를 처음으로 든 곳이자, 이후 그의 본거지가 된 곳.오늘날 크루여에는 스컨데르베우 박물관이 위치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