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 이탈리아 왕국 초대 국왕 | |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 Vittorio Emanuele II | |
출생 | |
사망 | |
재위 | 사르데냐 국왕 1849년 3월 23일 ~ 1861년 3월 17일 |
이탈리아 국왕 1861년 3월 17일 ~ 1878년 1월 9일 | |
가문 | |
아버지 | |
자녀 | |
1. 개요[편집]
2. 생애[편집]
2.1. 즉위 이전[편집]
1820년 3월 14일 사르데냐-피에몬테 왕국의 수도 토리노의 카리냐노 궁전에서 사르데냐 왕실인 사보이아 왕조의 방계 왕족 사보이아-카리냐노 공작 카를로 알베르토의 아들로 태어났다.
당시 사르데냐 국왕이던 카를로 펠리체에게 자녀가 없었기에 카를로 알베르토는 국왕과 부계 혈통상 13촌이나 되는 먼 방계였음에도 불구하고[1] 후계자로 지명되어 수도에 거주하고 있었고, 그 아들인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역시 자연스럽게 태어나면서부터 왕위 계승 서열 2위가 되었는데, 1831년에 카를로 펠리체가 사망하자 실제로 카를로 알베르토가 왕위를 계승했고 비토리오 에마누엘레는 왕세자에 해당되는 작위인 피에몬테 공작에 책봉되었다.
당시 사르데냐 국왕이던 카를로 펠리체에게 자녀가 없었기에 카를로 알베르토는 국왕과 부계 혈통상 13촌이나 되는 먼 방계였음에도 불구하고[1] 후계자로 지명되어 수도에 거주하고 있었고, 그 아들인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역시 자연스럽게 태어나면서부터 왕위 계승 서열 2위가 되었는데, 1831년에 카를로 펠리체가 사망하자 실제로 카를로 알베르토가 왕위를 계승했고 비토리오 에마누엘레는 왕세자에 해당되는 작위인 피에몬테 공작에 책봉되었다.
2.2. 사르데냐 국왕 재위[편집]
2.3. 이탈리아 국왕 재위[편집]
1865년에 이탈리아 왕국의 수도를 북쪽에 치우친 위치에 있는 토리노에서 중부 토스카나 지방의 피렌체로 옮기면서, 국토 균형 발전을 꾀하는 동시에 중부 라치오 지방을 아직 지배하고 있던 교황령을 압박했다.
1866년에 프로이센-오스트리아 전쟁(보오전쟁)이 발발하자 아직 이탈리아 북부에서 오스트리아령으로 남아있던 베네토를 해방시키기 위해 제3차 이탈리아 독립전쟁을 일으켰는데, 해당 전쟁에서 이탈리아군은 오스트리아 제국군을 상대로 고전을 면치 못했으나 프로이센이 오스트리아를 이겨준 덕분에(...) 베네토를 할양받는데 성공했다.
1870년 프로이센-프랑스 전쟁(보불전쟁)이 발발하여 교황령에 주둔하던 프랑스군이 철수하자 이탈리아군이 로마를 비롯한 라치오 지방 전체를 점령하여 완전한 통일을 이루었고[2], 1871년에는 피렌체에서 로마로의 천도를 단행하여 이탈리아 왕국이 로마 제국을 계승하는 이탈리아의 통일국가임을 과시했다.
1878년 1월 9일 로마에서 서거하여 판테온에 안치되었다.
1866년에 프로이센-오스트리아 전쟁(보오전쟁)이 발발하자 아직 이탈리아 북부에서 오스트리아령으로 남아있던 베네토를 해방시키기 위해 제3차 이탈리아 독립전쟁을 일으켰는데, 해당 전쟁에서 이탈리아군은 오스트리아 제국군을 상대로 고전을 면치 못했으나 프로이센이 오스트리아를 이겨준 덕분에(...) 베네토를 할양받는데 성공했다.
1870년 프로이센-프랑스 전쟁(보불전쟁)이 발발하여 교황령에 주둔하던 프랑스군이 철수하자 이탈리아군이 로마를 비롯한 라치오 지방 전체를 점령하여 완전한 통일을 이루었고[2], 1871년에는 피렌체에서 로마로의 천도를 단행하여 이탈리아 왕국이 로마 제국을 계승하는 이탈리아의 통일국가임을 과시했다.
1878년 1월 9일 로마에서 서거하여 판테온에 안치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