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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코트 선정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1. 개요2. 역사
2.1. 창당2.2. 3대 대선/4대 부선(1956년)2.3. 1960년
2.3.1. 3.15 부정선거부터 4.19 혁명까지2.3.2. 5대 총선
2.4. 장면 내각(1960~1961)2.5. 5.16 군사정변과 해산

1. 개요[편집]

1955년부터 1961년까지 존재했던 대한민국정당.

더불어민주당을 비롯한 현존 민주당계 정당들이 자신들의 원류로 꼽는 정당인데, 계보상으로는 더 이전의 전신 정당인 한국민주당(한민당)과 민주국민당도 있지만, 전자는 친일 정당이라는 부정적 이미지가 강하고[1], 후자는 한민당에서 1955년 민주당으로 넘어가는 징검다리 정도로 여겨져서, 현존하는 민주당계 정당들은 1955년 민주당부터 역사를 계산하고 있다.

2. 역사[편집]

2.1. 창당[편집]

2.2. 3대 대선/4대 부선(1956년)[편집]

신익희가 제3대 대통령 후보로, 장면이 제4대 부통령 후보로 출마했는데 전자는 투표일 이전에 사망했지만 후자는 자유당 이기붕 후보를 꺾고 부통령에 당선되었다.

2.3. 1960년[편집]

2.3.1. 3.15 부정선거부터 4.19 혁명까지[편집]

1960년에는 제4대 대통령 후보로 조병옥이 출마하고, 현직 부통령이던 장면이 제5대 부통령 후보로 출마했는데, 전자는 투표일 이전에 사망하여 자유당 이승만 대통령의 당선이 사실상 확정되었다.[2]

따라서 이번에도 자유당 정권이 연장되고 민주당은 야당으로 남는 것이 기정사실화 되었지만, 자유당이 이기붕을 부통령으로 당선시키기 위해 투표일인 3월 15일에 부정선거를 자행하자, 그에 대한 역풍으로 4.19 혁명이 일어났고, 결국 이기붕은 부통령 당선인에서 사퇴하고 이승만은 대통령직을 사퇴함으로써 자유당 정권이 붕괴되었다.

당시에도 현직 부통령은 민주당 소속인 장면이었기에, 이승만 대통령이 사퇴할 경우 자동으로 대통령직을 승계할 수도 있었지만, 이승만의 사퇴를 압박하기 위해 먼저 사퇴하여 대통령직 승계가 발생하진 않았고, 이에 따라 외무부장관 허정이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게 되었다.

2.3.2. 5대 총선[편집]

5대 총선에서 자유당은 한자릿수 의석 확보에 그치면서 몰락하고 민주당은 절대다수 의석을 확보하여 거대여당이 되었다.

2.4. 장면 내각(1960~1961)[편집]

대한민국 제2공화국은 의원내각제였기에 윤보선 대통령이 아닌 장면 총리가 정부수반으로서 내각을 이끌었다.

그러나 윤보선 대통령 계열의 구파와 장면 총리 계열의 신파가 계파 갈등을 벌이다가 전자가 집단탈당하여 신민당을 칭당하면서 민주당 일당우위제는 무너지고 민주당-신민당 양당제로 전환되었고, 정치적 혼란이 지속되었다.

2.5. 5.16 군사정변과 해산[편집]

1961년 5.16 군사정변 직후 박정희 군부에 의해 해산됨으로써 민주당은 6년의 역사를 마감하고 사라졌다.
[1] 독립운동가들도 상당수 참여했지만, 농지개혁법 반대, 반민특위 해산에 앞장선 행보 등으로 친일 정당 인식을 키웠다.[2] 무투표 당선이 아니라 사실상 확정인 이유는 후보가 1명만 남았어도 투표는 예정대로 진행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