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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2. 역사[편집]
2.1. 독립 이전[편집]
스페인의 식민지 누에바에스파냐였던 멕시코에서는 1810년대부터 독립전쟁이 일어났는데, 초기 독립군의 구심점이었던 미겔 이달고 신부와 그 뒤를 이은 호세 마리아 모렐로스 신부는 모두 스페인군에 의해 진압되어 이후에는 과달루페 빅토리아, 비센테 게레로 등 여러 독립군 지도자들이 산발적인 교전을 벌이며 간신히 명맥만 유지하는 상태였다.
이때 스페인군 장교로서 활약하며 누에바에스파냐 부왕령의 군권을 장악한 인물은 기존 지배층이던 본토 출생 백인(페닌술라르)가 아니라 멕시코 출생 백인(크리오요)였던 아구스틴 데 이투르비데였는데, 그는 1820년까지만 해도 스페인 국왕의 신하라는 역할에 충실했다.
그러나 스페인 본토에서 자유주의자들이 쿠데타를 일으켜 집권하자 이는 이투르비데를 비롯한 친스페인 크리오요 계급에게 위협으로 다가왔고, 이투르비데는 1821년에 독립군 지도자 비센테 게레로와 협상하여 스페인 국왕을 명목상의 멕시코 황제로 하되 실질적인 독립을 획득하는 이괄라 강령이라는 독립 강령을 채택하며 독립군으로 전향했다.
당시 스페인 국왕이었던 페르난도 7세는 당연히 이를 거부했지만, 이미 멕시코 현지의 군권을 장악한 이투르비데가 독립군으로 전향한 상황에서는 막을 방법이 없었고, 마침내 1821년 8월 24일 멕시코는 300여년에 걸친 스페인 식민지배를 종식시키고 독립을 쟁취할 수 있었다.
이때 스페인군 장교로서 활약하며 누에바에스파냐 부왕령의 군권을 장악한 인물은 기존 지배층이던 본토 출생 백인(페닌술라르)가 아니라 멕시코 출생 백인(크리오요)였던 아구스틴 데 이투르비데였는데, 그는 1820년까지만 해도 스페인 국왕의 신하라는 역할에 충실했다.
그러나 스페인 본토에서 자유주의자들이 쿠데타를 일으켜 집권하자 이는 이투르비데를 비롯한 친스페인 크리오요 계급에게 위협으로 다가왔고, 이투르비데는 1821년에 독립군 지도자 비센테 게레로와 협상하여 스페인 국왕을 명목상의 멕시코 황제로 하되 실질적인 독립을 획득하는 이괄라 강령이라는 독립 강령을 채택하며 독립군으로 전향했다.
당시 스페인 국왕이었던 페르난도 7세는 당연히 이를 거부했지만, 이미 멕시코 현지의 군권을 장악한 이투르비데가 독립군으로 전향한 상황에서는 막을 방법이 없었고, 마침내 1821년 8월 24일 멕시코는 300여년에 걸친 스페인 식민지배를 종식시키고 독립을 쟁취할 수 있었다.
2.2. 섭정 아구스틴 데 이투르비데[편집]
아구스틴 이투르비데는 1821년 8월 24일 독립 선포와 함께 이괄라 강령에 따라 스페인 국왕 페르난도 7세를 명목상의 멕시코 황제로 추대한 후, 다른 멕시코 독립운동가들과 함께 행정부에 해당되는 섭정평의회와 헌법 제정을 위한 의회를 구성했는데, 섭정평의회 의장을 맡은 인물은 당연히 아구스틴 데 이투르비데였다.
그러나 페르난도 7세는 허울좋은 황제위를 받고 멕시코를 독립국으로 인정할 생각이 전혀 없었기에, 멕시코 황제위는 1년 가까이 공석으로 남게 되었다.
그러나 페르난도 7세는 허울좋은 황제위를 받고 멕시코를 독립국으로 인정할 생각이 전혀 없었기에, 멕시코 황제위는 1년 가까이 공석으로 남게 되었다.
2.3. 황제 아구스틴 1세[편집]
페르난도 7세가 황제위를 거부하는 상황이 길어지자 섭정평의회 의장 아구스틴 데 이투르비데는 1822년에 스스로 황제 아구스틴 1세로 즉위했다.
아구스틴 1세는 독립군 및 섭정 시절에 약속한 헌법 제정을 계속 뒤로 미루면서 전제군주로 통치했는데, 이는 그와 함께 독립전쟁을 지휘했던 독립군 지도자들이 지지를 철회하게 만들었다.
아구스틴 1세는 독립군 및 섭정 시절에 약속한 헌법 제정을 계속 뒤로 미루면서 전제군주로 통치했는데, 이는 그와 함께 독립전쟁을 지휘했던 독립군 지도자들이 지지를 철회하게 만들었다.
2.4. 카사 마타 계획과 멸망[편집]
2.5. 멸망 이후[편집]
망명 생활을 하던 아구스틴 1세는 불과 1년만인 1824년에 몰래 귀국하여 제국을 재건하고자 했으나, 멕시코 임시정부에 발각되어 체포된 후 반역죄로 처형되었다.
이후 그의 장남인 아구스틴 헤로니모 데 이투르비데가 망명지에서 황제 아구스틴 2세를 자칭했으나, 그 역시 뜻을 이루지 못하고 1866년에 사망했다.
이후 그의 장남인 아구스틴 헤로니모 데 이투르비데가 망명지에서 황제 아구스틴 2세를 자칭했으나, 그 역시 뜻을 이루지 못하고 1866년에 사망했다.
3. 정치[편집]
멕시코 제1제국은 의회를 소집하고 헌법을 제정하여 입헌군주국이 될 것이라 약속했지만, 실제로는 건국 직후부터 멸망할 때까지 헌법 제정이 이루어지지 않아서 전제군주국으로 남았다.
3.1. 황제[편집]
- 아구스틴 1세[2] (1822 ~ 1823)
3.2. 섭정평의회 의장[편집]
- 아구스틴 데 이투르비데 (1821 ~ 18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