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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고대3. 중근세4. 근현대

1. 개요[편집]

네팔역사에 대해 다루는 문서.

2. 고대[편집]

인도아리아인이 히말라야 산맥 일대로 이주하여 원주민과 혼혈되면서 네팔인의 기원이 되었다.

네팔과 인도의 접경지대에서는 샤카족(석가족)이라는 부족이 카필라국이라는 나라를 세웠는데, 카필라국의 왕자였던 고타마 싯다르타는 샤카족(석가족) 출신의 성자를 뜻하는 샤카무니(석가모니)라는 이름으로 명성을 떨쳤고, 그가 창시한 종교가 바로 훗날 네팔은 물론이고 인도 아대륙을 넘어 세계종교로 성장하게 되는 불교였다.

다만 석가모니의 위상과 별개로 카필라국은 석가모니가 살아있던 당대에 코살라국에 의해 멸망했고[1], 이후 마가다국[2]이 코살라국을 멸망시키면서 네팔은 마가다의 지배를 받았고, 난다 왕조를 거쳐 인도의 통일왕조인 마우리아 왕조가 네팔을 지배했으며, 마우리아 이후 북인도를 제패한 굽타 왕조 역시 네팔에 영향력을 행사했다.

3. 중근세[편집]

중세 초기 네팔은 인도의 마지막 불교 왕조인 팔라 왕조의 지배를 받기도 했으나, 팔라 왕조가 몰락하면서 불교 역시 쇠퇴하여 인도와 마찬가지로 힌두교가 지배적인 종교가 되었다.

이후 네팔은 오랫동안 통일을 이루지 못하고 여러 소왕국이 난립했는데, 16세기경 고르카(Gorkha) 지방에서 일어난 샤 왕조가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하여 1768년에 네팔을 통일하고 네팔 왕국을 세웠다.

4. 근현대[편집]

4.1. 네팔 왕국[편집]

1768년 네팔 통일에 성공한 프리트비 나라얀 샤는 네팔 왕국의 초대 국왕이 되었다.

그러나 프리트비 나라얀은 불과 6년만인 1775년에 후계자를 두지 않은 상태에서 갑작스레 사망했고, 이는 왕위 계승을 둘러싼 혼란을 불러와 타파 가문이 샤 왕조의 왕들 대신 권력을 장악하는 세도정치를 불러왔다.

그나마 타파 가문 세도는 제5대 국왕인 라젠드라 샤가 실권을 회복하면서 종식되었으나, 라젠드라가 후계자 선정을 둘러싼 내분 끝에 1847년 쿠데타로 폐위되면서 라나 가문이 장장 150여년에 달하는 기간 동안 국왕 대신 실권을 장악하게 되었다.

라나 가문은 내부적으로는 가문의 최연장자가 자동으로 총리직에 취임하도록 하여 샤 왕조의 왕들이 실권을 회복하거나 다른 가문이 도전하는 것을 차단했고, 대외적으로는 인도를 식민지화한 영국에게 이권을 나눠주고 구르카 용병[3]을 제공하는 등 친영외교를 통해 정권을 유지했다.

1947년 영국이 인도의 독립을 인정하고 물러가자 네팔 회의를 비롯한 민주화 세력이 샤 왕조에 충성하는 왕당파와 함께 라나 가문의 독재에 반대하는 운동을 전개했고, 1950년에 인도 공화국의 지원을 받은 트리부반 샤 국왕이 마침내 라나 가문을 타도하는데 성공했으며, 트리부반 샤가 사망하고 마헨드라 샤가 즉위한 이후인 1959년에는 네팔 최초의 총선이 치러졌다.

다만 왕당파와 민주화 세력은 라나 가문 타도까지는 힘을 합쳤지만, 전자는 왕권 회복, 후자는 민주화가 목표였기에 결국 갈라설 수 밖에 없었고 이는 총선으로부터 불과 1년 뒤인 1960년에 마헨드라 샤 국왕이 의회를 해산하고 전제군주제로 회귀하면서 실현되었다.

이후 네팔은 30년 가까이 절대왕정이 이어지다가 1990년에 이르러서야 비렌드라 샤 국왕이 의회 제도의 복원과 총선을 승인하면서 민주주의와 입헌군주제가 실현되었다.

4.2. 네팔 연방민주공화국[편집]

[1] 석가모니는 물론이고 그의 아들인 라훌라까지 이미 출가하여 왕위 계승권을 포기했으므로 당시 카필라의 왕은 석가모니의 사촌인 마하나마였다.[2] 지금의 인도 비하르 주.[3] 샤 왕조의 발상지인 고르카 지방에서 이름을 따온 병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