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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관련 지명

1. 개요[편집]

러시아 여제 예카테리나 2세는 동로마 제국의 부활을 목표로 하는 대규모 전략을 구상하였다. 그녀는 오스만 제국의 영토를 분할하고 콘스탄티노폴리스를 중심으로 새로운 동로마 제국을 건설하려 했으며, 이를 위해 합스부르크 제국과 협력하였다. 이러한 계획은 러시아 제국정교회의 수호자로서 역할을 강화하고, 흑해에서 지중해로의 진출을 확보하려는 목표와 맞물려 추진되었다.

예카테리나 2세는 정교회 신자들의 보호를 중요한 과제로 삼았다. 그녀는 오스만 제국의 지배를 받던 그리스인들에게 지원을 아끼지 않았으며, 1768년부터 1774년까지 벌어진 러시아-투르크 전쟁 중 모레아 지역에서 반란을 지원하였다. 또한 러시아로 망명한 그리스인들이 크림 반도와 신러시아 지역에 정착할 수 있도록 장려하였다. 특히 그녀는 1779년 태어난 손자에게 콘스탄틴이라는 이름을 붙이며, 동로마 제국이 부활할 경우 그를 황제로 즉위시키려는 구상을 드러냈다.

이 계획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유럽 열강의 협력이 필요했다. 이에 따라 예카테리나 2세는 1780년 신성 로마 황제 요제프 2세와 비밀 회담을 열어 오스만 제국의 분할과 동로마 제국의 부활에 대한 논의를 진행하였다. 이후 1781년 오스트리아-러시아 동맹이 체결되면서 두 국가는 오스만 제국을 상대로 협력하기로 합의하였다. 이 과정에서 러시아의 군사 지도자인 그리고리 포템킨은 신러시아 지역의 도시들에 그리스적인 색채를 강조한 이름을 붙이며, 동로마 계승의 상징성을 강화하였다.

1787년 예카테리나 2세가 크림 지역을 방문하며 요제프 2세와 다시 만났고, 이후 러시아와 오스트리아는 오스만 제국과의 전쟁을 선포하였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오스트리아는 큰 성과를 거두지 못하였고, 1790년 요제프 2세가 사망하면서 오스트리아의 정책이 변화하였다. 1791년 체결된 시스토바 조약에서 오스트리아는 거의 아무런 이득도 얻지 못하였으며, 러시아와 오스만 제국 간의 1792년 야시 조약 역시 동로마 부활의 가능성을 무산시켰다.

1789년 프랑스 혁명의 발발로 인해 유럽 열강들의 관심은 발칸 반도에서 벗어나 서유럽으로 이동하였다. 이후 나폴레옹 전쟁이 벌어지면서 유럽의 국제 질서는 급변하였고, 1815년 나폴레옹이 몰락한 후 형성된 유럽 협조 체제는 발칸 반도의 영토적 안정을 우선시하면서 동로마 부활과 같은 대규모 영토 재편성 시도를 배제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예카테리나 2세의 동로마 부활 계획은 실현되지 않았으나, 이는 러시아 제국의 대외 정책에 깊은 영향을 미쳤다. 러시아는 이 계획을 통해 발칸 반도와 오스만 제국 내 정교회 신자들에 대한 보호권을 강화할 수 있었으며, 이후 지속적인 남하 정책을 펼칠 명분을 확보하였다. 또한 러시아 내부적으로는 동로마 계승국으로서의 정체성을 더욱 공고히 하였으며, 이후 오스만 제국과의 지속적인 충돌을 통해 발칸 지역에서 영향력을 확대하는 발판을 마련하였다.

2. 관련 지명[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