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  
  •  
  •  
  •  
  •  
분류
서울특별시자치구
파일:강동구 CI.svg
강동구
江東區
Gangdong-gu
구청 소재지
광역자치단체
하위 행정구역
면적
24.59㎢
인구
497,190명[2]
인구 밀도
20,184.38명/㎢[3]
파일:국민의힘 흰색 로고타입.svg
파일:더불어민주당 로고 화이트.svg
9석[4]
파일:국민의힘 흰색 로고타입.svg
8석[5]
1석[6]
파일:국민의힘 흰색 로고타입.svg
5석[7]
국회
의원
파일:더불어민주당 로고 화이트.svg
파일:더불어민주당 로고 화이트.svg
상징
구화
구목
구조
02
홈페이지
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
SNS
파일:네이버 블로그 아이콘.svg |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 파일:네이버TV 아이콘.svg | 파일:카카오TV 아이콘.svg
파일:페이스북 아이콘.svg |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 파일:X(SNS)아이콘.svg | 파일:카카오스토리 아이콘.svg

1. 개요2. 하위 행정구역3. 상징4. 정치
4.1. 강동구청4.2. 강동구의회4.3. 강동구 갑4.4. 강동구 을
5. 역사6. 자연환경7. 지리8. 관광9. 자매결연 도시10. 관련 사이트

1. 개요[편집]

서울특별시의 동부에 위치한 자치구. 9개의 동으로 나뉜다.

2. 하위 행정구역[편집]

3. 상징[편집]

  • 강동이
파일:external/www.gangdong.go.kr/character_main.gif
현재 사용중인 강동구의 캐릭터이다.
  • 휘장
파일:강동구 CI.svg
현재 사용중인 강동구의 휘장이다.
  • 슬로건
파일:강동구 BI.svg
2022년 7월 1일부터 현재까지 사용중인 슬로건이다.

4. 정치[편집]

  • 대선별 결과
    • 14대 대선 - 김영삼 106,799(37.28%) vs 김대중 99,645(34.79%)
    • 15대 대선 - 김대중 113,429(42.15%) vs 이회창 112,880(41.95%)
    • 16대 대선 - 노무현 124,771(49.82%) vs 이회창 116,278(46.43%)
    • 17대 대선 - 이명박 128,981(55.96%) vs 정동영 51,510(22.35%)
    • 18대 대선 - 박근혜 150,764(50.42%) vs 문재인 147,131(49.20%)
    • 19대 대선 - 문재인 122,511(41.31%) vs 홍준표 65,893(22.22%)
    • 20대 대선 - 윤석열 160,593(51.70%) vs 이재명 139,172(44.80%)
    • 21대 대선 - 이재명 160,645(46.18%) vs 김문수 149,529(42.99%)

4.1. 강동구청[편집]

강동구청 문서 참고.

4.2. 강동구의회[편집]

강동구의회 문서 참고.

4.3. 강동구 갑[편집]

강동구 갑 문서 참고.

4.4. 강동구 을[편집]

강동구 을 문서 참고.

5. 역사[편집]


강동구 지역은 서울 역사의 시작을 알리는 곳이었다. 즉 암사동 유적이 있어, 인근의 미사리 유적과 더불어 우리나라 4대 신석기시대 생활유적의 하나로 손꼽히고 있다. 암사동 유적은 빗살무늬토기 문화층을 형성하고 있는 서기전 3000~4000년 경의 문화유적이다. 이곳에서는 식생활을 엿볼 수 있는 탄화(炭火) 도토리가 출토되어 채집경제를 살필 수 있으며, 새뼈 · 어골문 등으로 수렵과 어로생활이 경제생활의 중심이었음을 알 수 있다.

강동구를 포함한 한강 유역을 무대로 최초의 정치세력이 등장한 것은 진국(辰國)과 삼한사회의 마한(馬韓), 그리고 초기 백제였다. 서기전 1세기 말 백제국이 마한을 정복하고 초기 고대국가인 백제(百濟)로 발전하게 되었다. 이들은 한강 유역의 경제성을 이용하여 보다 많은 생산 활동과 인구 증가를 이루었고, 보다 큰 정치집단을 형성하여 4세기 중엽 근초고왕 때에 전성기를 이루었다. 475년 한강 유역은 고구려의 통치 하에 들어갔다. 553년 신라가 한강 유역을 차지한 이래 신라는 삼국통일의 전진기지가 되었다. 신라는 전국에 9주를 설치했고 강남구를 포함한 서울 지방은 한산주(漢山州)에 편입되었다. 한산주는 757년(경덕왕 16) 지금의 서울 지방에 한양군(漢陽郡)을 설치하면서 한주(漢州)로 개칭되었다. 후삼국시대에는 태봉의 영토로 편입되었다. 강동구 일대는 암사동 유적에서 백제문화층이 나타나고 있으며, 백제의 도성인 하남위례성으로 추정되는 풍납동 토성을 길 건너에 두고 있어 이곳이 백제도읍지의 중심지 역할을 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암사동 일대에는 백제 때의 사찰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구암사 가운데 백중사(고려시대 절로 추정)의 존재가 대두되기도 했다.

918년 왕건이 국왕에 추대되어 고려왕조를 개창함에 따라 한양군(漢陽郡)은 고려에 편입되었으며, 940년(태조 23) 전국의 행정구역을 재편성하고 주군현(州郡縣)를 개칭함에 따라 한양군은 양주(楊州)로, 한주는 광주(廣州)로 편제되었다. 983년(성종 2) 12목에 지방관이 처음 파견될 때 광주도 이에 포함되었으며, 성종 14년에는 절도사를 파견하면서 이 지역의 주둔군대를 봉국군(奉國軍)이라 불렀다. 1310년(충선왕 2) 8월에는 광주목(廣州牧)이 지주사(知州事)로 격하되었다가, 1356년(공민왕 5)에 다시 목으로 승격되었다.

1231년과 1232년의 몽골군 1·2차 침입을 광주부사 이세화(李世華)를 중심으로 군민이 단결해 막아냈다. 한편 고려 초기 광주지역의 가장 강력한 호족은 왕규(王規)가 있었으며, 그는 두 딸을 태조의 제15·16비로 들였다. 또한 혜종의 장인이기도 했다. 그리고 고려 말기 광주이씨의 중시조격인 둔촌 이집(李集)이 머물던 곳은 오늘날 둔촌동이라는 지명으로 전하고 있다. 또한 이집의 구암서원 터가 한강변에 정비되어, 그 후손의 묘역이 전하고 있으며, 광주 안씨와 김씨 등의 토성이 있었다.

강동구 지역을 관할하고 있던 광주는 조선 중기까지는 23개 면, 113개 리를 포함하는 경기도 내의 가장 큰 고을이었다. 이곳은 조선시대 말까지 군사기지로 주목을 받았으며, 남한산성(南漢山城)은 전란 때마다 격전지 방어성이 되었다.

현재의 강동구는 광주부의 구천면 일대에 해당되었다. 구천면에 대한 구체적인 기록이 남아 있지 않은데, 1759년(영조 35)의「호구장부」에 보면, 구천면에는 일동 · 고다지동 · 명일원리 · 암사동 · 곡교리 · 기리동 · 둔촌동 · 성내동 등 8개 리가 있었다. 30년 후인 1789년(정조 13)에 간행된 『호구총수(戶口總數)』에는 구천면에 곡교동 · 성내동 · 기리동 · 둔촌동 · 일동내 · 고다지동 · 암사동 · 명일원리 등 8개 마을로 되어 있어 변화가 거의 없는 것을 알 수 있다.

한편 암사수원지 취수장 일대는 사액서원 구암서원이 있던 곳으로 ‘둔촌이선생휘집조두구기’라 새겨진 비석이 있으며 복원된 정자가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곳에 있는 서원에는 여말선초의 이양중을 비롯하여 조선시대 정성근 · 정엽 · 오윤겸 · 임숙영 등의 인물을 배향하였다. 또 앞 구릉인 응봉 또는 고덕산에는 이극배의 신도비를 비롯한 광주 이씨 후손의 묘역이 있어 이곳이 조선시대부터 많은 인사들이 왕래하던 곳임을 알 수 있다. 또한 서거정은 광나루를 왕래하며 그 풍광을 읊은 시를 남기고 있어 당시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또한 강동 지역에는 광나루가 있어 충주 지역으로 가는 길목이 되었으며, 강원도에서 내려온 뗏목들이 하룻밤 묵고 마포로 내려가는 목재집산지 구실을 하였다.

1914년 지방제도 개편에 따라 광주군은 16개 면, 183개 리로 개편되었는데, 구천면은 암사리 · 고덕리 · 상일리 · 하일리 · 명일리 · 길리 · 둔촌리 · 풍납리 · 성내리 · 곡교리 등 10개 리로 형성되었다.

3·1운동 당시 강동 지역에는 5일장이 없었기 때문에 만세를 부르기 위해 사발통문으로 날짜를 정해 사람들을 모았다. 그 당시 강동 지역의 유일한 상업지역은 상일리였다. 따라서 일제는 순사주재소를 상일리에 두고 구천면, 동부면, 서부면 3개 면을 관할했다. 상일리는 이 3개 면이 접해 있는 중심지로, 모든 주민들이 모여 만세를 불렀다. 구천면 내의 만세시위는 3월 27일 면의 서남단인 길리에서 발단이 되어 면의 동북단인 상일리로 발전되었다. 명일리와 암사리 등지를 거치면서 시위 군중의 수는 500여 명으로 증가되었다. 이후 1,000명 이상의 군중이 태극기를 앞세우고 헌병주재소에까지 이르렀다. 이에 헌병은 무차별로 총을 쏘아, 1명이 죽고 2명이 부상당하였으며, 시위군중도 해산하게 되었다.

한편 1925년 을축년 대홍수 때 일부 지역은 전 마을이 유실되는 등의 막대한 피해를 입었으며 암사동 유적의 흔적이 노출되기도 하였다.

1963년 서울시의 행정구역 확장에 따라 성동구에 편입되어 천호출장소 관할 하에 있게 되었다. 1975년 성동구에서 강남구가 분구되자 이에 속했으며, 1979년 강동구로 분리, 신설되었고 1988년에는 송파구가 분구했다.

6·25전쟁 때 한강인도교와 철교가 폭파된 지 1시간 반 뒤에 광진교가 폭파되었다. 서울이 수복된 뒤 광진교에 부교가 설치되어 한강을 건널 수 있게 되었다. 한편 광복 후 이곳은 전형적인 서울 외곽의 농촌 지대였다. 한강에 합류되는 성내천(城內川) · 고덕천(高德川) 등의 연안은 넓은 충적지를 이루어, 일찍부터 근교농업이 발달하여 채소류와 과일이 많이 재배되었다.

근래 천호동 일대에는 방적 · 식품 · 금속 · 기계 공업이 발달하였다. 특히 암사동은 점촌(店村)으로 백제시대에 궁궐에서 쓰는 그릇을 구워 내던 곳이었고, 도자기 생산지로 유명했다. 이 지역은 1925년 홍수 때 옹기를 굽는 이 일대가 모두 물속에 잠겼던 일도 있었다. 예로부터 옹기나 벽돌 제조에 좋은 점토가 많은 것이 특징이어서, 광복을 전후해서는 성내동을 중심으로 벽돌 · 옹기 · 기와 · 토관 · 화분 등을 만드는 대규모의 연와공장이 자리 잡았다.

1970년대 중반부터 본격적으로 개발되기 시작해 천호 지구와 고덕 지구 등의 택지개발사업으로 크게 변모했다. 특히 최근 천호신사거리를 중심으로 대형 백화점이 들어서고 교차로와 지하철 환승역이 설치되면서 새로운 상권으로 부상하고 있다.

6. 자연환경[편집]


한강의 침식 및 퇴적작용을 받았으며, 한강으로 유입되는 성내천과 고덕천 일대에 충적층이 발달하였고 중부와 남부는 일자산 줄기의 구릉성 산지로 되어 있다. 기반암의 지질은 대부분이 선캄브리아기의 경기편마암복합체와 한강 연안의 범람으로 형성된 고기하성층(古期河成層)인 홍적층(洪積層)과 지금의 하천 유로와 곡간(谷間)에 퇴적된 신기하성층(新期河成層)의 넓은 충적층으로 이루어져 있다.

남쪽에서 중앙부로 한남정맥의 끝줄기인 청량산에서 뻗은 일자산 줄기가 흘러 성삼봉 · 응봉을 이루며, 그 기슭으로 성내천과 고덕천이 흘러 한강으로 유입된다. 한강 연안과 성내천 · 고덕천 연안에는 범람원 외에 단구 지형도 형성되어 있다. 단구지역은 주변 충적지보다 고도가 높아 침수 피해가 적어 밭보다 논으로 이용되었으며, 현재는 거의 시가지로 변하였다. 특히 성내천은 송파구와 경계를 이루며, 건천으로 있다가 지하철 5호선 개발로 지하수를 이용하여 친환경 자연하천으로 조성되면서 시민들의 휴게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기후는 대륙성 기후의 특징을 바탕으로 한강의 영향을 많이 받고 있는 도시기후를 나타내고 있으며, 연평균 기온은 13.3℃, 1월 평균기온은 0.4℃, 8월 평균기온은 26.5℃, 연 강수량은 1,212.3㎜이다.

7. 지리[편집]

강동구는 지리적으로 동쪽과 남쪽은 경기도 하남시, 서쪽은 송파구, 광진구, 북쪽은 한강 건너 경기도 구리시와 접해 있다.

8. 관광[편집]


강동구의 관광자원은 한강이 에둘러 흐르는 풍광과 멀리 보이는 아차산 · 불암산 · 도봉산 · 삼각산 줄기와 검단산 · 예봉산 · 용문산 줄기를 바라보는 시원함이 제일이다. 아울러 선사시대 이래 고대 · 고려 · 조선시대를 거쳐 오늘날에 보전되고 있는 각종 문화유적이 있어 많은 관광객이 찾고 있다. 그 중 암사동 유적은 강동구의 상징적인 관광자원이다. 이곳에는 발굴 주거지 26기를 복원하여 당시의 모습을 재현해 놓았으며, 특히 제1·2전시관을 통하여 그 실제 생활상을 확인하고 체험할 수 있다. 제1전시관은 지금으로부터 약 6천 년 전 신석기시대 움집터 8기와 저장구덩이 1기의 발굴모습을 그대로 보존처리하여 그 위에 전시관을 세우고 출토유물을 전시하였다. 제2전시관 입구에는 영상실이 있으며 한국의 구석기문화부터 초기 청동기문화까지 모형과 패널을 통해 이해할 수 있도록 구성하였으며, 그 밖에 동아시아의 선사문화를 비교하는 공간도 마련하였다. 특히 전시실 중앙부분에는 움집을 절개하여 신석기인의 모습과 생활상을 알 수 있도록 하였다. 또한 관광 상품으로 관련 기념품을 전시하고 있다.

또한 일자산 해맞이 광장은 둔촌 이집이 즐겨 산책하면서 학문에 정진하던 곳으로 둔촌선생과 관련된 옛 지명인 굴바위, 둔굴, 둔촌약수, 삿갓바위, 새우고개, 온수굴, 응봉 등 역사의 뿌리가 산재해 있다. 둔촌 선생의 시비가 세워져 있다. 또한 천호동 한강변에는 서거정의 시비인 강동예찬시비가 있어 한강을 통한 강동의 오랜 역사와 풍광을 살필 수 있는 명소가 되고 있다. 천호대로와 방아다리길 교차점 녹지대에 빗살무늬토기형 조명탑이 설치되어 선사시대 이래 문화중심지로서의 강동구를 표시하고 있다.

한편 강동구에는 1999년에 개원한 길동생태공원이 있어 환경생태교육의 현장이 되고 있다. 길동생태공원은 호수와 관련된 생물들의 생태적 안정과 활동을 위한 공간인 저보수지구, 습지와 관련된 생물들의 생태적 안정과 활동을 위한 공간인 습지지구, 나지에서 초기 천이단계의 선구수종이 이루어내는 공간인 초지지구, 자연 삼림으로의 천이과정에 있는 기존 삼림공간인 삼림지구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또 천호동에 1998년에 개원한 천호동(해공)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이곳에는 연못 등 조경시설, 운동시설, 교양시설로서의 야외무대와 전시관, 편익시설, 관리시설이 잘 갖춰져 있어 많은 구민이 찾고 있다. 또한 제헌국회 부의장을 지낸 해공 신익희선생의 동상이 있으며, 도미부인상, 바위절터, 구암서원터 등의 관광자원이 있다. 아울러 관광시설로 성내동에 LA관광호텔이 있으며, 역사탐방코스와 자연생태탐방코스가 개발되어 있다.

연혁에서 알 수 있듯이 강동구는 도시화가 급속히 전개되면서 전통적인 농촌의 모습이 거의 사라졌기 때문에 민속시장인 전통 먹거리촌은 찾아볼 수 없다. 단지 새로운 상권형성과 관련하여 길동사거리 일대에 유흥음식업소와 음식점이 밀집되면서 많은 주민들의 외식문화를 선도하고 있으며, 대단위 아파트 단지 입구에 형성된 상가 인근에 먹거리촌이 형성되었다. 또 암사동 선사주거지라든가 다른 축제행사장에서 각종 풍물시장이 개설되어 전통알뜰먹거리 · 김치맛자랑 등으로 축제분위기를 고조시키고 있다.

매년 개최되는 선사문화축제는 암사동 유적을 중심으로 선사시대 우리 조상들의 생활상을 체험할 수 있다. 또한 과거와 미래를 잇는 지역축제로 전통문화예술과 현대문화예술이 어우러진 프로그램을 통해 온 가족이 함께 즐길 수 있는 종합축제가 되었다. 그리고 구립예술단, 지역예술인, 연극, 무용 등 전통과 현대가 어우러진 종합예술공연이 이루어지고 있다. 한편 강동구립예술단은 여성합창단, 남성합창단, 교향악단, 청소년교향악단, 극단 등으로 구성되어 구내 순회공연을 하고 있다. 또 목요예술무대를 통하여 오페라, 뮤지컬, 연극 등 다양한 문화행사가 이루어져 구민과 함께 하는 지역문화를 창출하고 있다. 또한 성덕여상풍물패가 구내 각종 행사와 서울특별시 행사에 참여하고 있으며, 상일여고합창단은 강동의 밤, 선사문화축제, 금요예술마당 등을 통하여 강동구민을 위한 정기연주회 활동을 하고 있다. 그 외 강동문인협회의 문학의 밤, 청소년휘호대회, 송년음악회 등이 행해지고 있다.

강동구의 대표적인 전시관 겸 박물관 기능을 하는 곳은 암사동 선사주거지 제1·2전시관이다. 우리나라 신석기문화의 전형을 살필 수 있으며, 체험교육을 통하여 교육효과를 더욱 높이고 있다.

9. 자매결연 도시[편집]

  • 국내
    • 경기도 이천시
    • 강원특별자치도 홍천군
    • 충청남도 부여군
    • 충청남도 청양군
    • 충청북도 진천군
    • 충청북도 음성군
    • 경상남도 거창군
    • 경상북도 경산시
    • 경상북도 봉화군
    • 경상북도 영양군
    • 전라남도 완도군
    • 전라남도 곡성군
    •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 전북특별자치도 진안군
  • 해외
    • 중국 베이징시 펑타이구
    • 중국 허베이성 친황다오시
    • 중국 허베이성 탕산시
    • 중국 저장성 항저우시
    • 호주 뉴사우스웨일스주 시드니 월로이시
    • 스페인 세고비아
    • 일본 도쿄도 무사시노시
    • 몽골 울란바토르 송기노하이르한구

10. 관련 사이트[편집]

[1] 9개 법정동, 19개 행정동[2] 2025년 5월 기준 행정안전부 주민등록인구 통계[3] 2025년 4월 기준[4] 강동구 가선거구 (강일동, 상일1동, 상일2동, 고덕2동): 박원서, 원창희
강동구 나선거구 (명일1동, 명일2동, 길동): 김남현, 이원국
강동구 다선거구 (고덕1동, 암사1동, 암사2동, 암사3동): 이희동
강동구 라선거구 (천호1동, 천호3동): 양평호
강동구 마선거구 (천호2동): 심우열
강동구 바선거구 (성내1동, 성내2동, 성내3동, 둔촌1동, 둔촌2동): 권혁주
강동구 비례대표: 이동매
[5] 강동구 가선거구 (강일동, 상일1동, 상일2동, 고덕2동): 문현섭
강동구 나선거구 (명일1동, 명일2동, 길동): 서회원
강동구 다선거구 (고덕1동, 암사1동, 암사2동, 암사3동): 남효선, 한진수
강동구 라선거구 (천호1동, 천호3동): 제갑섭
강동구 마선거구 (천호2동): 조동탁
강동구 바선거구 (성내1동, 성내2동, 성내3동, 둔촌1동, 둔촌2동): 김기상
강동구 비례대표: 강유진
[6] 강동구 바선거구 (성내1동, 성내2동, 성내3동, 둔촌1동, 둔촌2동) 정미옥 의원 사직으로 인한 공석[7] 강동구 제1선거구 (고덕1동, 암사1동, 암사2동, 암사3동): 김혜지 (초선)
강동구 제2선거구 (명일1동, 명일2동, 길동): 이종태 (초선)
강동구 제3선거구 (강일동, 상일1동, 상일2동, 고덕2동): 박춘선 (초선)
강동구 제4선거구 (천호1동, 천호2동, 천호3동): 장태용 (초선)
강동구 제5선거구 (성내1동, 성내2동, 성내3동, 둔촌1동, 둔촌2동): 김영철 (초선)
파일:ccl logo.sv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나무위키 강동구 문서의 r1669에서 가져왔습니다. 이전 역사 보러 가기
파일:ccl logo.sv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나무위키의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
[ 펼치기 · 접기 ]
문서의 r1669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