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1. 개요[편집]
1972년 11월 21일, 김두한은 오랜 지병이었던 고혈압으로 쓰러졌다.[1] 향년 55세였고, 박정희 정권의 독재가 또 한 번의 정권 연장을 위해 유신 헌법을 통과한 지 한 달 만이었다. 많은 인파가 몰린 그의 장례 행렬에는 한 무리의 어린아이들도 그 뒤를 잇고 있었다. 백야 김좌진 장군의 국가유공자 연금 전액을 매달 '삼애고아원'[2]이라는 곳에 기탁한 이유였다. 김두한. 그는 일제 말 우리가 주권을 잃었던 식민지 시절부터 해방 이후 좌우익의 대립에 이어서, 자유당 부패 정치와 5.16 박정희 정권에 이르기까지 그의 전생에 온 몸을 다 던져 불의와 싸웠다.
(최동열: 난 오랫동안 자네를 지켜봐온 사람일세. 자네는 자네답게 살았어. 조선의 주먹 황제답게 말이야. 늘 야인이었지만 용감하고 멋있게 살았어. 나름대로 자네의 역사를 가지고, 자네의 시대를 치열하고 열심히 살았다는 얘기야. 뭐랄까… 야인시대라고나 할까?)
야인시대! 그렇다. 그것은 바로 그가 몸바쳐 살아왔던 이 나라 격동기의 또 다른 역사의 한 장이었다.엔딩 나레이션
[1] 몬더그린으로 인해 '오렌지병'으로 들리기도 한다.[2] 1964년부터 서울시 부암동 빈민촌에서 삼애교회를 운영하던 종교인인 차남진(1915~1979) 목사의 부인인 유앵손(1922~2003) 사모가 1966년에 설립한 고아원으로, 설립 당시에는 시온고아원이었으나 1968년에 교회의 이름과 같은 삼애고아원으로 명칭을 변경하였고 이 해부터 김두한이 후원을 시작했다고 한다. 여담으로 차남진 목사는 호남 쪽 보수 신앙의 대표적 인물로 호남에 뿌리를 둔 대한예수교장로회 개혁에 지대한 공헌을 하기도 했으며 하나님·자연·이웃을 세 번 사랑하라는 의미에서 교회명을 '삼애'라고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