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1. 개요[편집]
2. 원주민 시대[편집]
2.1. 구석기 시대[편집]
2.2. 안데스 문명[편집]
페루를 비롯한 안데스 산맥 일대에서 농경 문화가 발달하면서 형성된 원주민 문명.
금속은 청동기만을 제한적으로 사용하고 대부분 석기를 사용했으며, 문자 기록마저 남기지 못해서 고고학적 발굴과 구전 전승에 의존해서 역사를 파악해야 하지만, 수준 높은 토목, 건축 기술로 험준한 산맥에 도시와 도로를 건설했던 문명이었다.
금속은 청동기만을 제한적으로 사용하고 대부분 석기를 사용했으며, 문자 기록마저 남기지 못해서 고고학적 발굴과 구전 전승에 의존해서 역사를 파악해야 하지만, 수준 높은 토목, 건축 기술로 험준한 산맥에 도시와 도로를 건설했던 문명이었다.
2.2.1. 잉카 이전 문명[편집]
2.2.2. 잉카 문명[편집]
2.2.2.1. 쿠스코 왕국[편집]
초기 잉카는 수도 쿠스코를 중심으로 한 소국에 불과했으나, 제9대 군주(사파 잉카) 파차쿠티가 즉위한 이후부터 급속도로 영토를 확장하여 제국으로 거듭나게 되었다.
2.2.2.2. 잉카 제국(타완틴수유)[편집]
3. 식민지 시대[편집]
3.1. 누에바카스티야와 신잉카국[편집]
3.2. 페루 부왕령[편집]
4. 페루 공화국[편집]
4.1. 19세기[편집]
페루는 호세 데 산 마르틴과 시몬 볼리바르 등에 의해 해방된 후 공화국이 되었다.
1828년부터 1829년까지 북쪽의 그란 콜롬비아[2]와 전쟁을 벌였으나 무승부로 끝났다.
1836년부터 1839년까지는 볼리비아와 함께 페루-볼리비아 연합을 구성하기도 했으나 브라질 제국, 아르헨티나, 칠레 등과 벌인 '연합 전쟁'에서 패배하여 해체되었다.
1864년부터 1866년까지는 남아메리카를 다시 식민지화하려는 스페인에 맞서 칠레, 에콰도르, 볼리비아와 연합군을 구성하고 친차 제도 전쟁을 벌여 승리했다.
1879년부터 1883년까지는 다시 볼리비아와 동맹을 맺은 후 칠레에 맞서 태평양 전쟁[3]을 벌였다가 패배하여 남부 영토를 칠레에 할양했는데, 그때 할양한 영토 중 일부는 이후 반환받았다.
1828년부터 1829년까지 북쪽의 그란 콜롬비아[2]와 전쟁을 벌였으나 무승부로 끝났다.
1836년부터 1839년까지는 볼리비아와 함께 페루-볼리비아 연합을 구성하기도 했으나 브라질 제국, 아르헨티나, 칠레 등과 벌인 '연합 전쟁'에서 패배하여 해체되었다.
1864년부터 1866년까지는 남아메리카를 다시 식민지화하려는 스페인에 맞서 칠레, 에콰도르, 볼리비아와 연합군을 구성하고 친차 제도 전쟁을 벌여 승리했다.
1879년부터 1883년까지는 다시 볼리비아와 동맹을 맺은 후 칠레에 맞서 태평양 전쟁[3]을 벌였다가 패배하여 남부 영토를 칠레에 할양했는데, 그때 할양한 영토 중 일부는 이후 반환받았다.
4.2. 20세기[편집]
1932년부터 1933년까지 에콰도르와 레티시아 전쟁을 벌였다가 패배했으나, 1941년의 페루-에콰도르 전쟁에서는 승리했다.
냉전 시대 페루는 친미 진영에 가담했으나, 이에 반대하는 빛나는 길[4], 투팍 아마루 혁명운동[5] 등 공산주의 반군의 준동으로 인해 내전을 겪어야 했다.
냉전 말기인 1990년 대선에서는 일본계 페루인 출신 정치인 알베르토 후지모리가 대통령에 당선되었는데, 그는 공산 반군의 테러에 단호하게 대처하며 인기를 끌기도 했으나, 친위 쿠데타로 권력을 강화하고 독재를 일삼다가 2000년 의회에서 야당 의원을 매수하려 시도한 것이 발각되어 탄핵당한[6] 후 일본으로 도주했다.
냉전 시대 페루는 친미 진영에 가담했으나, 이에 반대하는 빛나는 길[4], 투팍 아마루 혁명운동[5] 등 공산주의 반군의 준동으로 인해 내전을 겪어야 했다.
냉전 말기인 1990년 대선에서는 일본계 페루인 출신 정치인 알베르토 후지모리가 대통령에 당선되었는데, 그는 공산 반군의 테러에 단호하게 대처하며 인기를 끌기도 했으나, 친위 쿠데타로 권력을 강화하고 독재를 일삼다가 2000년 의회에서 야당 의원을 매수하려 시도한 것이 발각되어 탄핵당한[6] 후 일본으로 도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