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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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열린우리당 (2004.5.20.~2007.2.28.) | |||||||||
창당 당시 로고 | |
열린우리당 | |
영문 명칭 | Open Our Party (Uri Party)[1] |
등록 약칭 | 우리당 |
창당일 | |
해산일 | |
선행 조직 | |
주소 | |
의장[3] | 정세균 / 3선 (15-17대) |
원내대표 | 장영달 / 4선 (14-17대) |
사무총장 | 김영춘 / 재선 (16-17대) |
정책위의장 | 김진표 / 초선 (17대) |
의석 수 | 46석 / 299석 |
당 색 | 노란색 (#FFD918) |
초록색 (#06B21C) | |
정치적 스펙트럼 | |
정책 연구소 | 열린정책연구원 |
사이트 | |
2007년 8월 20일 기준 | |
1. 개요[편집]
2. 역사[편집]
2.1. 2003년: 새천년민주당 분당과 창당[편집]
2.2. 2004년: 탄핵 역풍과 17대 총선 승리[편집]
창당 직후의 열린우리당은 아직 노무현 대통령이 정식으로 입당하지만 않았을 뿐 실질적인 여당이었으나, 의석수는 기존 양당인 한나라당과 새천년민주당(민주당)보다 한참 적은 미니여당이었다.
2004년 17대 총선을 앞두고 노무현 대통령이 열린우리당 지지를 호소하는 발언을 하자, 안 그래도 분당 사태로 갈등의 골이 깊었던 민주당은 한나라당과 손잡고 대통령 탄핵 소추를 가결시켰는데, 이는 당시 여론에 대대적인 역풍을 불러와 열린우리당에 압도적으로 유리한 구도가 만들어졌다.
당시 열린우리당은 개헌선을 넘는 초압승을 거둘 것으로 점쳐지기도 했으나, 제1야당이던 한나라당이 박근혜를 대표로 선출하여 지지층을 결집시키고, 선거전 막판에 정동영 열린우리당 의장이 노인 비하 발언이 노년층과 중장년층 유권자를 자극하면서, 결과적으로 열린우리당은 승리하긴 했으나 턱걸이 과반인 152석 확보에 그쳤다.
2004년 17대 총선을 앞두고 노무현 대통령이 열린우리당 지지를 호소하는 발언을 하자, 안 그래도 분당 사태로 갈등의 골이 깊었던 민주당은 한나라당과 손잡고 대통령 탄핵 소추를 가결시켰는데, 이는 당시 여론에 대대적인 역풍을 불러와 열린우리당에 압도적으로 유리한 구도가 만들어졌다.
당시 열린우리당은 개헌선을 넘는 초압승을 거둘 것으로 점쳐지기도 했으나, 제1야당이던 한나라당이 박근혜를 대표로 선출하여 지지층을 결집시키고, 선거전 막판에 정동영 열린우리당 의장이 노인 비하 발언이 노년층과 중장년층 유권자를 자극하면서, 결과적으로 열린우리당은 승리하긴 했으나 턱걸이 과반인 152석 확보에 그쳤다.
2.3. 2005년: 재보선 패배와 과반 붕괴[편집]
열린우리당은 총선에서 승리하고 오래 지나지 않아 내분으로 혼란에 빠졌고, 이는 2005년 재보궐선거에서의 패배와 과반 의석 붕괴로 이어졌다.
2.4. 2006년: 지방선거 참패와 몰락[편집]
2.5. 2007년: 분당 사태와 해산[편집]
[1] 정식 명칭은 Open Our Party이나, 영미권에서는 혼동 방지를 위해 Uri Party라는 표기를 자주 사용하였다.[2] 열린우리당의 후신격인 더불어민주당 서울특별시 당사가 여기에 있었으나 현재는 이 건물이 철거되어 없어졌으며, 이 자리에 2023년에 영등포반도아이비밸리가 들어설 예정이다.[3] 국회의장을 일컫는 그 '의장'이 아니라 정당 대표로서의 '의장'을 의미한다. 다만 열린우리당 의장을 지냈던 김원기는 제17대 국회 전반기 때, 그리고 정세균과 문희상도 훗날 제20대 국회에 각각 전·후반기 때 진짜 국회의장이 되긴 했다. 비대위원장(임시 의장) 시절까지 넓혀보면 제17대 국회 후반기 때 역시 국회의장을 역임한 임채정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