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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천년민주당
(2003.2.25.~2003.9.29.)
열린우리당
(2004.5.20.~2007.2.28.)
한나라당
(2008.2.25.~2012.2.13.)
파일:열린우리당 로고.svg
창당 당시 로고
열린우리당
영문 명칭
Open Our Party (Uri Party)[1]
등록 약칭
우리당
창당일
해산일
선행 조직
새천년민주당

(새천년민주당 내의 친노계들이 탈당)
파일:한나라당글씨.png

(한나라당 내의 개혁성향 의원들이 탈당)
주소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영신로 162 (여의도동)[2]
의장[3]
정세균 / 3선 (15-17대)
원내대표
장영달 / 4선 (14-17대)
사무총장
김영춘 / 재선 (16-17대)
정책위의장
김진표 / 초선 (17대)
의석 수
46석 / 299석
당 색
노란색 (#FFD918)
초록색 (#06B21C)
정치적 스펙트럼
정책 연구소
열린정책연구원
사이트
2007년 8월 20일 기준

1. 개요2. 역사
2.1. 2003년: 새천년민주당 분당과 창당2.2. 2004년: 탄핵 역풍과 17대 총선 승리2.3. 2005년: 재보선 패배와 과반 붕괴2.4. 2006년: 지방선거 참패와 몰락2.5. 2007년: 분당 사태와 해산

1. 개요[편집]

열린우리당은 대한민국에서 2003년 11월 11일부터 2007년 8월 20일까지 존재했었던 민주당계 정당이다.

'열린'이란 명칭에서 보이듯 당시엔 지역주의를 타파하자며 출발해 '100년 정당'을 자임했으나, 결국 3년 9개월 만에 간판을 내린 짧은 역사의 여당으로 남게 되었다.

2. 역사[편집]

2.1. 2003년: 새천년민주당 분당과 창당[편집]

2002년 16대 대선 당시 집권여당이던 새천년민주당(약칭: 민주당)에선 당내 비주류였던 노무현 전 의원이 이른바 '노풍'이라 불리는 돌풍을 일으키며 최종 후보로 선출되었고, 본선에서도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를 꺾고 당선되며 민주당은 정권 재창출에 성공했다.

그러나 2003년 노무현 대통령 취임 이후 친노계와 기존 주류 세력인 동교동계의 갈등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고, 당 쇄신을 위한 재창당을 놓고 내분을 겪다가 노 대통령과 친노계가 집단 탈당을 하면서 기존 여당을 대체할 새로운 여당인 열린우리당이 창당되었다.

2.2. 2004년: 탄핵 역풍과 17대 총선 승리[편집]

창당 직후의 열린우리당은 아직 노무현 대통령이 정식으로 입당하지만 않았을 뿐 실질적인 여당이었으나, 의석수는 기존 양당인 한나라당새천년민주당(민주당)보다 한참 적은 미니여당이었다.

2004년 17대 총선을 앞두고 노무현 대통령이 열린우리당 지지를 호소하는 발언을 하자, 안 그래도 분당 사태로 갈등의 골이 깊었던 민주당은 한나라당과 손잡고 대통령 탄핵 소추를 가결시켰는데, 이는 당시 여론에 대대적인 역풍을 불러와 열린우리당에 압도적으로 유리한 구도가 만들어졌다.

당시 열린우리당은 개헌선을 넘는 초압승을 거둘 것으로 점쳐지기도 했으나, 제1야당이던 한나라당박근혜를 대표로 선출하여 지지층을 결집시키고, 선거전 막판에 정동영 열린우리당 의장이 노인 비하 발언이 노년층과 중장년층 유권자를 자극하면서, 결과적으로 열린우리당은 승리하긴 했으나 턱걸이 과반인 152석 확보에 그쳤다.

2.3. 2005년: 재보선 패배와 과반 붕괴[편집]

열린우리당은 총선에서 승리하고 오래 지나지 않아 내분으로 혼란에 빠졌고, 이는 2005년 재보궐선거에서의 패배와 과반 의석 붕괴로 이어졌다.

2.4. 2006년: 지방선거 참패와 몰락[편집]

2006년 4회 지선에서 열린우리당은 호남을 제외한 지역에선 한나라당에 전패하고, 호남에서도 새천년민주당의 후신인 민주당에게 광주광역시전라남도를 내주면서 전라북도만 간신히 수성하는 대참패를 당했고, 이로써 간신히 간판 유지하고 있을 뿐 실질적으로는 이미 몰락한 상황에 내몰렸다.

2.5. 2007년: 분당 사태와 해산[편집]

2007년에 일부 열린우리당 의원들이 탈당하여 중도개혁통합신당을 창당하는 분당 사태가 터졌는데, 중도개혁통합신당은 민주당과 합당하여 중도통합민주당을 창당했다.

이후 중도통합민주당과 열린우리당이 재통합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양쪽에서 각각 탈당한 의원들이 대통합민주신당을 창당했고, 열린우리당이 대통합민주신당에 흡수합당되는 방식의 통합에 합의하면서 열린우리당은 3년의 9개월의 역사를 마감하고 해산되었다.
[1] 정식 명칭은 Open Our Party이나, 영미권에서는 혼동 방지를 위해 Uri Party라는 표기를 자주 사용하였다.[2] 열린우리당의 후신격인 더불어민주당 서울특별시 당사가 여기에 있었으나 현재는 이 건물이 철거되어 없어졌으며, 이 자리에 2023년에 영등포반도아이비밸리가 들어설 예정이다.[3] 국회의장을 일컫는 그 '의장'이 아니라 정당 대표로서의 '의장'을 의미한다. 다만 열린우리당 의장을 지냈던 김원기제17대 국회 전반기 때, 그리고 정세균문희상도 훗날 제20대 국회에 각각 전·후반기 때 진짜 국회의장이 되긴 했다. 비대위원장(임시 의장) 시절까지 넓혀보면 제17대 국회 후반기 때 역시 국회의장을 역임한 임채정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