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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 [[분류:동아시아의 황제]][[분류:한자문화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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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 [include(틀:상위 문서, top1=황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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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 [include(틀:관련 문서, top1=한자문화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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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 ||<tablealign=center><tablewidth=60%><nopad> [[파일:진시황.jpg|width=10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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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 ||<bgcolor=#dcdcdc,#333> '''[[한자문화권]] 최초의 [[황제]][br]초대 [[진(영성)|진(秦)나라]] 황제[br][[시황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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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 [목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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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 == 개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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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 [[한자문화권]]의 [[황제]](皇帝) 칭호는 [[춘추전국시대]]의 [[중국]]을 통일한 [[진시황]]에서 시작되어 다른 [[동아시아]] [[국가]]로 확산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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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 == 역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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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 | === [[중화제국|중국 황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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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 | BC 221년 [[춘추전국시대]]의 혼란을 종식시키며 중국을 통일한 [[진(영성)|진(秦)]][[왕]] 정은 본래 [[천자]]의 칭호였으나 여러 나라 군주들이 자칭하며 가치가 떨어진 [[왕]]을 대체할 새로운 칭호를 필요로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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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 | 그는 삼황오제에서 '''황(皇)'''과 '''제(帝)'''를 따와 '''황제(皇帝)'''라는 새로운 칭호를 만들어냈고, 최초의 황제라는 의미로 스스로를 '''[[시황제]]'''라 칭했으니 이것이 [[한자문화권]] 황제 칭호의 시작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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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 | [[진시황]]의 제국은 그의 아들 이세황제의 치세를 거치며 붕괴되어 불과 20년을 채 못 버티고 다시 왕을 칭해야 하는 소국으로 쪼그라들었다가 멸망했으나, 농민 출신의 한고제 유방이 세운 [[한나라|한(漢)나라]]([[전한]])은 200여년간 안정적으로 유지되며 '통일중국의 지배자=황제'라는 공식을 굳혀나갔고, 일시적으로 왕망의 신나라에 찬탈당한 시기도 있었으나, 다시 [[광무제]] 유수가 세운 [[후한]]이 200여년의 통일제국을 유지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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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 | 그러나 후한이 멸망한 이후에는 [[조위(국가)|조위]], 촉한(계한), 동오(손오)라는 3개의 황제국이 공존하는 [[삼국시대(중국)|삼국시대]]가 열렸고, 이러한 혼란을 종식시킨 서진이 팔왕의 난이라는 내분과 영가의 난이라는 대규모 외침을 겪으며 붕괴되며 다시 도래한 분열기(오호십육국시대)에는 삼국시대보다도 더 많은 황제가 공존하며 황제의 위상이 전국시대의 왕이나 다름없는 처지로 내려가기도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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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 | 오호십육국시대 유목민들이 세운 침투왕조의 [[군주]]들은 황제를 칭하기도 했으나 일부 침투왕조 군주들은 황제가 아닌 천왕(天王)을 칭했는데, 이는 황제와 같은 권위를 확보하면서도 황제를 칭한 한족 왕조들과는 다른 독자적인 정체성을 추구하기 위함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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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2 | 이후 오호십육국시대 후기에 들어서는 이민족 왕조들도 황제 칭호를 사용하는 것이 정착되었고, 1912년 [[청나라]]가 멸망할 때까지 황제는 중원 왕조의 대표적인 칭호로 사용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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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4 | [[청조]] 멸망 이후에는 [[중화민국 대총통]] [[위안스카이]]가 일시적으로 중화제국을 선포하고 황제로 즉위하기도 했고, [[일제]]가 [[청조]]의 마지막 황제였던 [[푸이]]를 황제로 옹립한 [[만주국]]을 세우기도 했으나, 전자는 1년[* 1915 ~ 1916.] 만에 멸망한 자칭 제국이었고 후자는 괴뢰국이었기에, 일반적으로 [[중국사]]의 마지막 황제국은 청나라로 간주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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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5 | === [[한국사]]에서의 황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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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6 | ==== [[고려 시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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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7 | [[고려]]는 자국 군주들에게 [[묘호]]를 올리고, 폐하라는 경칭을 사용했으며, [[중화제국]]의 [[3성 6부제]]를 모방한 [[2성 6부제]]를 사용하는 등 [[황제국]]의 제도를 도입하고 광종 시대에는 아예 공식적으로 황제를 칭하기도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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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9 | 그러나 대부분의 고려 군주들은 대놓고 황제를 칭하기 보다는 [[대왕]], 제왕 등의 유사 칭호를 사용했으며, 군주에게 올리는 시호 역시 황제가 아닌 대왕이었고, 광종 역시 중원 왕조와의 외교에 있어서는 황제가 아닌 왕을 칭했기에, 완전한 황제국이라기보다는 황제국과 [[왕국]]의 제도를 혼용하는 것에 가까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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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1 | 고려가 [[원나라]]에 항복하여 본격적인 내정간섭에 시달린 원간섭기에는 관제 격하가 이루어지면서 고려는 대외적으로는 물론이고 내부적으로도 황제국 제도의 사용을 포기하게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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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2 | ==== [[대한제국 황제]]([[한국 황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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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3 | [[조선]]은 건국 이래 [[묘호]]는 꾸준히 사용했지만 [[황제]]가 아닌 [[대왕]]을 칭하고, 대외적으로는 [[조선 국왕|왕]]을 칭하며 [[명나라]]와 [[청나라]]에 칭신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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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5 | 1894년 [[조선 고종]]은 갑오개혁을 실시하면서 황제와 왕 사이의 칭호인 대군주 칭호를 만들고, 경칭 역시 전하에서 폐하로 격상하면서 황제국에 준하는 제도를 갖추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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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7 | 1897년 [[고종(대한제국)|고종]]은 공식적으로 [[대한제국 황제|황제]]를 칭하고 광무 연호를 채택하며 국호 역시 조선에서 [[대한제국]]으로 개칭했는데, 이후 청나라와도 대한제국이라는 국호를 내세워 수교하면서 한국 역사상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중국의 통일왕조와 대등한 외교 관계를 맺게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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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9 | 그러나 대한제국은 1905년 [[을사조약]]을 통해 외교권을 강탈당하며 [[일제]]의 보호국으로 전락했고, 1907년에는 [[광무황제(대한제국)|고종 광무황제]]가 강제 퇴위당하고 [[순종(대한제국)|순종 융희황제]]가 즉위했다가 1910년 경술국치를 통해 [[일제강점기|식민지]]로 전락하여 13년만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말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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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0 | === [[천황|일본 천황]]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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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6
| 41 | [include(틀:상세 내용, 문서명=천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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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28
| 42 | === [[베트남]] 황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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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35
| 43 | [[진시황]]의 명을 받들어 월족이라 불리는 여러 남방 민족들[* 지금의 [[베트남인]]의 조상 이외에도 여러 남방 민족들이 월족이라 총칭되었다.]을 정벌하던 조타(찌에우다)가 [[진(영성)|진]] 멸망 이후 '''남월(남비엣) 황제'''를 칭한 것이 베트남 황제 칭호의 시초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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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5 | 조타는 한 태조 고제 유방이 중국을 재통일한 이후에는 [[한나라]]에 칭신하며 대외적으로는 [[황제]]가 아닌 [[왕]]을 칭했고, 조타 사후의 남월 군주들은 내부적으로도 황제가 아닌 왕을 칭했기에 남월 황제 칭호는 1대로 그쳤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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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7 | 남월이 한 무제에 의해 멸망하고 베트남이 중국 왕조들의 지배가 장기간 지속된 시대(북속기)에는 전 리 왕조(전이가)를 비롯한 일부 독립 세력 지도자들 황제를 칭하기도 했으나 오래 가지 못하고 진압되었고, 오대십국시대에 중국의 지배를 완전히 종식시킨 응오 왕조(오가)는 황제가 아닌 안남 국왕을 칭했기에 베트남의 황제 칭호는 복원되지 못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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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9 | 베트남이 본격적으로 황제 칭호를 사용한 것은 응오 왕조를 [[역성혁명]]으로 전복시킨 딘 왕조(정가)의 딘보린(정부령)이 '''대구월(다이꼬비엣) 황제'''를 칭하면서부터였고, 딘 왕조 이후에는 전 레 왕조(전여가)를 거쳐 들어선 리 왕조(이가)가 '''대월(다이비엣) 황제'''를 칭하면서, 대내적으로는 대월 황제, 대외적으로는 안남 국왕을 칭하는 체제가 18세기 말 떠이선 왕조(서산가)까지 이어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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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1 | 떠이선 왕조를 멸하고 1802년에 [[응우옌 왕조]](완가)를 세운 세조 자롱 황제(가륭제) 응우옌푹아인(완복영)[* 후 레 왕조(후여가)의 제후왕이었던 [[응우옌씨 정권]](완주)의 초대 국왕 응우옌호앙(완황)을 [[태조]]로 추존했기에, 초대 황제였음에도 불구하고 태조가 아닌 [[세조]]라는 [[묘호]]를 받았다.]은 천년 가까이 사용한 대월이라는 국호 대신 [[고대]] 국호인 남월을 부활시켜 [[청나라]]의 책봉을 받으려 했는데, 청조에서는 남월이 한나라에 저항한 역사를 떠올린다 하여 거절당하자 국호를 거꾸로 뒤집은 [[월남]]을 칭하면서 [[베트남]]이라는 국호가 등장하게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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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3 | 응우옌 왕조는 1839년에 [[대남국]]으로 국호를 격상시켜 베트남 황제의 공식 칭호는 '''대남국 황제'''가 되었으나, 청나라와의 외교에서는 계속 월남(베트남)을 칭하고 월남 국왕으로서 책봉을 받았는데, 청나라와 대남(베트남)의 조공 책봉 관계는 청불전쟁(1884~1885)에서 [[프랑스 제3공화국|프랑스]]가 승리하고 대남이 청나라의 조공국이 아닌 프랑스의 식민지가 되면서 막을 내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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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5 | [[프랑스 식민제국|프랑스의 식민지배]] 하에서도 응우옌 왕조는 명목상으로나마 존속하며 황제 칭호를 계속 사용하는 것이 허용되었고, 일부 황제들[* 함응이 황제(함의제), 타인타이 황제(성태제), 주이떤 황제(유신제).]은 독립운동에 참여하기도 했으나 대부분의 황제들은 무기력한 허수아비에 불과했고, [[일본군]]의 베트남 점령과 베트남 제국 선포를 거쳐 1945년 일본의 항복 이후 호찌민(호지명)이 이끄는 [[베트남 독립동맹회]]([[베트민]])이 봉기하여 마지막 황제인 바오다이 황제(보대제)를 강제 퇴위시키면서(베트남 8월 혁명) 베트남의 황제국 체제는 완전히 막을 내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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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6 | == 한자문화권의 황제와 유사한 칭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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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5
| 57 | * [[천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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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1
| 58 | * 천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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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9 | * 태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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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19
| 60 | * [[대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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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7
| 61 | * [[천황]]([[덴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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