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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2 | 22 | [[청조]] 멸망 이후에는 [[중화민국]] 대총통 위안스카이가 일시적으로 중화제국을 선포하고 황제로 즉위하기도 했고, [[일제]]가 청조의 마지막 황제였던 푸이를 황제로 옹립한 만주국을 세우기도 했으나, 전자는 1년[* 1915 ~ 1916.] 만에 멸망한 자칭 제국이었고 후자는 괴뢰국이었기에, 일반적으로 [[중국사]]의 마지막 황제국은 청나라로 간주되고 있다. |
| 23 | 23 | === [[한국]] === |
| 24 | 24 | ==== [[고려시대]] ==== |
| 25 | [[고려]]는 자국 군주들에게 [[묘호]]를 올리고 [[중화제국]]의 [[3성 6부제]]를 모방한 [[2성 6부제]]를 사용하는 등 [[황제국]]의 제도를 도입하고 광종 시대에는 아예 공식적으로 황제를 칭하기도 했다. | |
| 25 | [[고려]]는 자국 군주들에게 [[묘호]]를 올리고, 폐하라는 경칭을 사용했으며, [[중화제국]]의 [[3성 6부제]]를 모방한 [[2성 6부제]]를 사용하는 등 [[황제국]]의 제도를 도입하고 광종 시대에는 아예 공식적으로 황제를 칭하기도 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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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7 | 27 | 그러나 대부분의 고려 군주들은 대놓고 황제를 칭하기 보다는 [[대왕]], 제왕 등의 유사 칭호를 사용했으며, 군주에게 올리는 시호 역시 황제가 아닌 대왕이었고, 광종 역시 중원 왕조와의 외교에 있어서는 황제가 아닌 왕을 칭했기에, 완전한 황제국이라기보다는 황제국과 [[왕국]]의 제도를 혼용하는 것에 가까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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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9 | 29 | 고려가 [[원나라]]에 항복하여 본격적인 내정간섭에 시달린 원간섭기에는 관제 격하가 이루어지면서 고려는 대외적으로는 물론이고 내부적으로도 황제국 제도의 사용을 포기하게 되었다. |
| 30 | 30 | ==== [[대한제국]]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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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1 | [[조선]]은 건국 이래 [[묘호]]는 꾸준히 사용했지만 [[황제]]가 아닌 [[대왕]]을 칭하며 [[명나라]]와 [[청나라]]에 칭신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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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3 | 1894년 조선 고종은 갑오개혁을 실시하면서 황제와 왕 사이의 칭호인 대군주 칭호를 만들고, 경칭 역시 전하에서 폐하로 격상하면서 황제국에 준하는 제도를 갖추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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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5 | 1897년 고종은 공식적으로 황제를 칭하고 광무 연호를 채택하며 국호 역시 조선에서 [[대한제국]]으로 개칭했는데, 이후 청나라와도 대한제국이라는 국호를 내세워 수교하면서 한국 역사상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중국의 통일왕조와 대등한 외교 관계를 맺게 되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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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7 | 그러나 대한제국은 1905년 을사조약을 통해 외교권을 강탈당하며 [[일제]]의 보호국으로 전락했고, 1907년에는 고종 광무황제가 강제 퇴위당하고 순종 융희황제가 즉위했다가 1910년 경술국치를 통해 [[일제강점기|식민지]]로 13년만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말았다. | |
| 32 | 38 | === [[일본]] === |
| 33 | 39 | [include(틀:상세 내용, 문서명=천황)] |
| 34 | 40 | === [[베트남]]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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