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 269/A I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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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 | ||
장소 | ||
북해 남단 | ||
원인 | ||
협상 테이블에서 좀 더 나은 위치를 점하기 위한 독일의 영국 공격 시도 | ||
교전국 | ||
지휘관 | ||
결과 | ||
1. 개요[편집]
1918년 10월 24일 독일 제국 해군 대양함대에게 출항 준비 명령이 내려왔다. 당시 독일 제국의 패전은 가정사실화된 후였고 따라서 대양함대사령관 프란츠 폰 히퍼와 해군참모총장 라인하르트 셰어 제독은 이미 연합군과의 전투에서 승리하기보다는 아직 세력이 남아 있는 대양함대를 총동원하여 영국 해군에게 손실을 강요해 협상 테이블에서 좀 더 나은 위치를 차지하려고 시도하기 위해 최후의 전투를 준비했다.[1] 셰어와 히퍼는 10월 30일 일단 구축함과 경순양함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함대를 플란데런과 템즈 강 인근으로 파견시켜 10월 31일 새벽녘에 전투를 치르도록 할 계획이었으며 이 과정에서 다섯 척의 순양전함들은 템즈 강 공격을, 그리고 드레드노트급 전함들은 전부 플란데런 공격을 지원할 예정이었다.
이후 공격이 종료되면 독일 해군은 전부 네덜란드 해안으로 이동해 이곳에서 총 집결한 다음 10월 31일 밤 스코틀랜드에서 출발한 영국 함대와 만나 일전을 치를 계획이었다. 또한 이 과정에서 추가적으로 이동 중인 영국 함대를 중간중간 독일 U보트들이 공격하여 손실을 유도한다는 내용의 작전도 세워졌다. 그렇게 독일 해군은 결전을 치르기 위해 빌헬름스하펜으로 집결하기 시작했다.
이후 공격이 종료되면 독일 해군은 전부 네덜란드 해안으로 이동해 이곳에서 총 집결한 다음 10월 31일 밤 스코틀랜드에서 출발한 영국 함대와 만나 일전을 치를 계획이었다. 또한 이 과정에서 추가적으로 이동 중인 영국 함대를 중간중간 독일 U보트들이 공격하여 손실을 유도한다는 내용의 작전도 세워졌다. 그렇게 독일 해군은 결전을 치르기 위해 빌헬름스하펜으로 집결하기 시작했다.
2. 전력[편집]
2.1. 영국[편집]
2.1.1. 대함대[편집]
2.1.1.1. 지휘부[편집]
직책 | 지휘관 |
사령관 | |
부사령관[2] | 찰스 매든(Charles Madden) 중장 |
참모장 | 오스몬드 브록(Osmond Brock) 소장 |
제2전투전대장 | 존 드 로벡(John de Robeck) 중장 |
제4전투전대장 | 몬태규 브라우닝(Montague Browning) 중장 |
제5전투전대장 | 아서 레베슨(Arthur Leveson) 중장 |
제6전투전대장[3] | 휴 로드맨(Hugh Rodman) 소장 |
제2순양함전대장 | 에드워드 브루엔(Edward Bruen) 소장 |
제4경순양함전대장 | 앨런 에버렛(Allan Everett) 소장 |
제7경순양함전대장 | 조지 보렛(George Borrett) 소장 |
항공전대장 | 리처드 필리모어(Richard Phillimore) 소장 |
구축함부대 지휘관 | 휴 트위디(Hugh Tweedie) 준장 |
제3구축함전단장 | 해롤드 설리번(Harold Sulivan) 대령 |
제11구축함전단장 | 브리엔 머니(Brien Money) 대령 |
제12구축함전단장 | 롤랜드 배더(Rowland Bather) 대령 |
제13구축함전단장 | 아서 더튼(Arthur Dutton) 대령 |
제14구축함전단장 | 해리 고드프리(Harry Godfrey) 대령 |
제15구축함전단장 | 레이프 롤리-콘위(Rafe Rowley-Conwy) 대령 |
2.1.1.2. 편성[편집]
영국 대함대 | |||||||||||||||||||||||||||||||||||||||||||||||||||||||||||||||||||||||||
1918년 10월 24일 당시 기준 기함은 F로 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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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2. 순양전함부대[편집]
2.1.2.1. 지휘부[편집]
2.1.2.2. 편성[편집]
영국 순양전함부대 | ||||||||||||||||||||||||
1918년 10월 24일 당시 기준 기함은 F로 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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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독일[편집]
2.2.1. 대양함대[편집]
2.2.1.1. 지휘부[편집]
2.2.1.2. 편성[편집]
독일 대양함대 | |||||||||||||||||||||||||||||||
1918년 10월 24일 당시 기준 기함은 F로 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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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2. 정찰부대[편집]
2.2.2.1. 지휘부[편집]
직책 | 지휘관 |
부대장[7] | 루트비히 폰 로이터(Ludwig von Reuter) 소장 |
제2정찰단장 | 빅토르 하르더(Viktor Harder) 준장 |
어뢰정부대 부지휘관 | 한스 콰에트파슬렘(Hans Quaet-Faslem) 중령 |
2.2.2.2. 편성[편집]
독일 정찰부대 | |||||||||||||||||||||||
1918년 10월 24일 당시 기준 기함은 F로 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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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결말[편집]
자살특공이나 다름없는 상황에 반발한 독일 수병들이 빌헬름스하펜에서 킬 군항의 반란을 일으켰고, 이는 독일 11월 혁명으로 이어지며 결국 독일 제국의 붕괴로 이어졌다.
[1] 독일 육군은 이 시점에 사실상 붕괴 상태였으나 해군은 유틀란트 해전 이후에도 어느 정도 전력이 남아 있었다. 단지 영국 해군이 넘사벽이었을 뿐이다.[2] 제1전투전대장 겸임[3] 미국 대서양함대 예하의 제9전함분대가 대함대로 배속됨.[4] 이후 2대 SIS 국장을 역임했다.[5] 경순양함 부대 지휘[6] 이후 바로 이 전대에서 반란이 벌어진다.[7] 제1정찰단장 겸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