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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유럽(r10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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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역사
2.1. 고대 로마2.2. 중세
2.2.1. 제위 계승의 제1요건: 로마 제국의 정통성2.2.2. 서방 세계의 부가적 요건: 교회의 인정
2.3. 근세
2.3.1. 신성 로마 제국의 선출 황제2.3.2. 오스만 제국의 카이세리 룸2.3.3. 전러시아의 황제
2.4. 근대
2.4.1. 나폴레옹의 등장과 변화2.4.2. 19세기의 칭제 릴레이2.4.3. 제정의 종말: 1차 대전
3. 황제국 및 칭호 목록

1. 개요[편집]

유럽식 황제 칭호는 로마 황제에서 비롯되었으며, 관례상 황제라는 이름으로 번역되지만 그 구체적인 정의와 존재 양상을 보면 한자문화권의 황제 칭호와 무작정 일대일 대응시키긴 힘들다.

2. 역사[편집]

2.1. 고대 로마[편집]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로마 황제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유럽의 황제 칭호는 천명을 받은 천자라는 명분으로 시작된 한자문화권 황제 칭호와 달리 로마 공화정의 여러 칭호와 관직을 결합하여 공화정 체제 내에서 합법적인 독재를 구축하려는 일종의 꼼수에서 비롯되었다.

그래서 로마 제국의 초기 정치 체제는 겉으로는 시민의 대표인 프린켑스(Princeps)가 다스리는 공화정이지만 실질적으로는 군주나 다름없는 권력을 갖고 세습까지 가능한 제정이라는 모순을 내포한 이른바 원수정(Principatus) 체제였다.

이러한 체제는 황제의 제위를 물려받을 자식이 없을 때 전임 황제의 혈통과 무관하지만 유능한 자가 제위를 합법적으로 계승하여 안정적으로 통치하는 오현제 시대의 전성기를 가능하게 했지만, 역으로 누구나 힘만 있으면 제위에 도전하여 국가를 내전에 빠뜨릴 위험성 역시 내포하고 있었고 그게 극대화되어 제국의 쇠퇴를 불러온 시기가 바로 3세기의 위기라 불리는 군인 황제 시대였다.

3세기 말에 집권한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가 이를 타개하기 위해 내세운 대책은 바로 동방식 전제군주제의 요소를 도입하고 공화정 시대의 잔재를 대폭 약화시킨 도미나투스(Domintus) 체제였고, 거기에 제국을 네 구역으로 나누고 선임 황제인 디오클레티아누스 본인의 3명의 공동 황제와 함께 통치하는 사두정(Tetrarchia)을 가미했다.

디오클레티아누스의 사두정은 그가 자진 퇴위한 후 혈연 관계가 없는 공동 황제들 간의 내전으로 인해 붕괴되었으나, 내전의 승자인 콘스탄티누스 1세 역시 도미나투스 체제를 통한 황제권 강화의 필요성은 인정했고, 그 과정에서 디오클레티아누스를 비롯한 전임 황제들이 박해했던 기독교를 공인하고 황제에게 기독교의 수호자라는 권위를 부여함으로써 교회를 황권 강화의 수단으로 삼았다.

2.2. 중세[편집]

2.2.1. 제위 계승의 제1요건: 로마 제국의 정통성[편집]

로마 제국이 동서로 분할되었다가 서로마 제국이 멸망한 이후에도 제국의 남은 반쪽인 동로마 제국은 굳건하게 유일한 황제국으로서 존재했고, 서방 국가들도 그 권위를 부정하지 못했기에 좋든 싫든 유럽에서 황제는 곧 로마 황제요, 로마 황제가 아닌 황제는 존재할 수 없었다.

따라서 동로마에 맞서 황제를 칭하려는 이민족 국가들도 좋든 싫든 로마의 정통성을 가져다가 황제를 칭해야만 했고, 처음으로 이를 실행에 옮긴 프랑크 왕국의 카롤루스가 800년에 로마인의 황제를 칭한 것을 시작으로, 유럽에서 황제를 칭한 이민족 국가들은 국호에 로마를 집어넣거나[1], 로마와 관련된 명칭이 들어간 황제 칭호[2]를 사용했다.

2.2.2. 서방 세계의 부가적 요건: 교회의 인정[편집]

서방 가톨릭 세계에서는 이와 별도로 교회의 인정, 정확히는 교황의 인정이라는 조건이 있었다.

고대 로마에서 직접 이어지는 제국이라 굳이 교회의 지지를 확보하지 않아도 로마 제국으로 인정받을 수 있었던 동로마 제국과 달리, 서방 가톨릭 세계의 제국인 신성 로마 제국은 태생부터 교황이 프랑크 왕국의 카롤루스에게 관을 씌워주며 시작되었기에 교회의 인정이 곧 제국의 존립 그 자체를 보증해주는 필수요소였으며, 실제로 신성 로마 제국이 여러 영방국가의 집합에 불과한 유명무실한 제국으로 전락하는 계기가 된 건 개신교가 제국 북부를 휩쓴 16~17세기 종교 개혁이었다.

2.3. 근세[편집]

2.3.1. 신성 로마 제국의 선출 황제[편집]

2.3.2. 오스만 제국의 카이세리 룸[편집]

2.3.3. 전러시아의 황제[편집]

2.4. 근대[편집]

2.4.1. 나폴레옹의 등장과 변화[편집]

2.4.2. 19세기의 칭제 릴레이[편집]

2.4.3. 제정의 종말: 1차 대전[편집]

3. 황제국 및 칭호 목록[편집]

[1] 신성 로마 제국, 로마니아 제국(라틴 제국).[2] 불가리아인과 로마인의 차르, 세르비아인과 로마인의 차르 등[3] 모두 로마계 국가였음에도 불구하고 로마 제국이 아닌 독자적인 제국을 선포했다가 진압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