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1. 개요[편집]
통일신라 말기에 등장하여 고려 초기까지[1] 존재했던 지방 유력자 계급.
본래 호족이라는 단어는 중국 한나라의 지배층을 일컫는 단어였고, 나말여초 지방 세력을 당대에 일컫는 명칭은 성주 또는 장군이었으나, 오늘날 한국사 학계에서는 나말여초 지방 세력을 가리키는 명칭으로 호족이라는 표현이 정착한 상태다.
한국의 호족은 통일신라의 지방 통제력이 약화되자 각지의 유력자들이 중앙정부의 통제에서 벗어나 자립하면서 형성되었다가 고려가 후삼국을 통일하고 중앙집권을 확립하면서 사라졌는데, 호족 가운데 중앙정계에 진출한 이들이 문벌귀족이 되고 향촌 사회에서 머무른 이들이 향리가 되었기에 명칭이 바뀌었을 뿐 실질적으로는 대부분의 호족 가문들이 중앙집권화 이후에도 영향력을 지속적으로 유지하였다.
또한 한국의 성씨 문화의 중요한 특징인 본관 제도는 고려시대 호족들의 근거지를 가지고 '~지역의 0씨 성주/장군'으로 지칭하던 것에서 비롯되었기에, 호족 사회에서 비롯된 전통의 영향력은 지금까지도 남아있다.
본래 호족이라는 단어는 중국 한나라의 지배층을 일컫는 단어였고, 나말여초 지방 세력을 당대에 일컫는 명칭은 성주 또는 장군이었으나, 오늘날 한국사 학계에서는 나말여초 지방 세력을 가리키는 명칭으로 호족이라는 표현이 정착한 상태다.
한국의 호족은 통일신라의 지방 통제력이 약화되자 각지의 유력자들이 중앙정부의 통제에서 벗어나 자립하면서 형성되었다가 고려가 후삼국을 통일하고 중앙집권을 확립하면서 사라졌는데, 호족 가운데 중앙정계에 진출한 이들이 문벌귀족이 되고 향촌 사회에서 머무른 이들이 향리가 되었기에 명칭이 바뀌었을 뿐 실질적으로는 대부분의 호족 가문들이 중앙집권화 이후에도 영향력을 지속적으로 유지하였다.
또한 한국의 성씨 문화의 중요한 특징인 본관 제도는 고려시대 호족들의 근거지를 가지고 '~지역의 0씨 성주/장군'으로 지칭하던 것에서 비롯되었기에, 호족 사회에서 비롯된 전통의 영향력은 지금까지도 남아있다.
[1] 나말여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