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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두수리(r8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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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역사
2.1. 고대2.2. 중세 이후
2.2.1. 유럽
2.2.1.1. 로마 제국그리스
2.2.1.1.1. 로마 제국(동로마 제국)2.2.1.1.2. 근현대 그리스
2.2.1.2. 독일어권2.2.1.3. 슬라브권
2.2.1.3.1. 남슬라브권2.2.1.3.2. 러시아
2.2.1.4. 알바니아2.2.1.5. 아르메니아
2.2.2. 대중동 문화권 2.2.3. 인도 문화권
3. 사용 국가, 가문, 단체 목록
3.1. 국가
3.1.1. 현존 국가3.1.2. 역사적 국가
3.1.2.1. 고대3.1.2.2. 중세 이후
3.1.2.2.1. 유럽3.1.2.2.2. 대중동 문화권3.1.2.2.3. 인도 문화권
3.2. 가문
3.2.1. 현존 가문3.2.2. 단절된 가문
3.3. 기타

1. 개요[편집]

쌍두수리 또는 쌍두독수리는 유라시아 각국에서 국가 또는 군주의 상징으로 사용해온 상상의 동물이다.

쌍두독수리라는 표기가 흔히 쓰이지만 일반적인 독수리가 아닌 검수리(검독수리)에서 모티브를 따왔다.

고대 히타이트와 아시리아에서 사용된 것을 시작으로, 유럽에서는 로마 제국[1]의 상징으로서, 이슬람권에서는 셀주크 제국의 상징으로서 사용되면서 본격적으로 확산되었다.

상상의 동물이지만 주로 국가 내지는 군주의 상징으로만 쓰였기에 신화나 전설, 설화에서의 등장은 거의 없다시피 하다.

2. 역사[편집]

2.1. 고대[편집]

쌍두 독수리의 상징은 고대 세계에서 이미 독립적인 도상으로 자리 잡았으며, 초기부터 권위와 통치의 개념을 시각화하는 데 사용되었다. 이 도상이 최초로 명확히 나타나는 지역은 메소포타미아와 아나톨리아로, 특히 히타이트 문명에서 그 중요성이 두드러진다.

히타이트는 기원전 2천년기 중반부터 기원전 12세기까지 아나톨리아를 중심으로 강력한 국가를 형성하였으며, 이 시기 그들의 문서, 부조, 봉인에서 쌍두 독수리가 반복적으로 출현한다. 쌍두 독수리는 이들 문명에서 신성과 왕권의 보호자 역할을 맡은 존재로 여겨졌으며, 동시에 두 개의 세계를 지배하는 능력을 상징하였다. 이 두 세계는 대개 동서 혹은 하늘과 땅으로 해석되며, 왕권의 초월성과 절대성을 부각시키는 데에 활용되었다.

쌍두 독수리 도상은 히타이트 이후에도 아시리아와 바빌로니아 등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후기 문화에서도 변형된 형태로 나타났지만, 그 상징성은 일관되게 통치와 신성의 결합이라는 성격을 유지하였다. 특히, 독수리 자체가 고대 근동 지역에서 하늘의 지배자 또는 태양신과 연결된 존재로 여겨졌기 때문에, 그 두 머리를 가진 형태는 이러한 신성한 속성에 더욱 강한 권능을 부여하는 효과를 갖고 있었다.

또한 고대 이란 고원의 문명들, 특히 미탄니나 우라르투 문화에서도 쌍두 혹은 다두 형상의 조류 도상이 나타나며, 이는 서로 다른 문화권 간의 상징 도상의 교류와 변용을 시사한다. 이와 같은 도상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통치자의 권위가 인간 세계를 넘어선 신적인 차원에서 기원한다는 인식을 뒷받침하는 시각적 장치로 기능하였다.

고대 세계에서 쌍두 독수리는 이렇게 각 문명이 자신의 정치 체계와 신념 체계를 표현하고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사용되었으며, 이후 시대에 이어지는 제국적 상징 체계의 토대를 형성하였다.

2.2. 중세 이후[편집]

2.2.1. 유럽[편집]

아르메니아나 알바니아를 제외하면 대부분 로마 제국의 계승을 표방한 나라들이 사용했다.
2.2.1.1. 로마 제국그리스[편집]
2.2.1.1.1. 로마 제국(동로마 제국)[편집]
로마 제국(동로마 제국)에서는 11세기 이후 콤니노스 왕조, 팔레올로고스 왕조 시기에 쓰였고, 동로마 잔존국 중 하나인 트라페준타 제국과 그 제후국인 테오도로 공국 등에서도 쓰였다.

검수리(검독수리)에서 모티브를 따왔다는 점에서 고대 로마아퀼라 문장에서 따온 것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만, 아퀼라는 8세기 초 필리피코스 황제의 치세를 끝으로 사용이 중단되었기에 직접적인 전신이라 보긴 어렵다.
2.2.1.1.2. 근현대 그리스[편집]
오스만 제국에서 독립한 이후에는 국가의 공식 상징으로 쓰인 적은 없지만 법적 국교인 그리스 교회(Church of Greece)[2]의 상징으로서 사용되고 있다.
2.2.1.2. 독일어권[편집]
독일어권에서는 합스부르크 왕조 시기 신성 로마 제국의 상징인 이른바 국가수리(Reichsadler)로 쓰였고, 이후의 오스트리아 제국,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에서도 사용되었다.

그러나 독일 제국은 신성 로마 제국의 계승을 표방하면서도 쌍두수리가 아닌 단두수리를 사용했고 이후의 바이마르 공화국, 나치 독일, 독일 민주 공화국(동독)[3], 독일 연방 공화국[4] 등에서도 쌍두수리가 부활하지 못했다.

오스트리아에서는 제정 폐지와 함께 쌍두수리 역시 폐지되어 파시스트 정권인 오스트리아 연방국(1934년~1938년)[5] 시기를 제외하면 쌍두수리가 더이상 쓰이지 않았다.
2.2.1.3. 슬라브권[편집]
2.2.1.3.1. 남슬라브권[편집]
남슬라브권에서는 로마 제국의 계승을 표방한 스테판 우로시 4세 두샨의 세르비아 제국을 시작으로, 중세 시대부터 세르비아계, 몬테네그로계 국가의 상징으로 사용되었다.[6]

2차 대전 이후 유고슬라비아가 공산화된 시기에 사용이 중단되었다가, 탈공산화 이후 다시 유고슬라비아 연방 공화국(신유고 연방)[7]과 세르비아, 몬테네그로의 상징이 되었다.
2.2.1.3.2. 러시아[편집]
러시아는 모스크바 대공국 시절부터 제3의 로마를 선포하고 러시아 제국 시대까지 지속적으로 쌍두수리를 사용했다.

러시아 혁명으로 제국이 멸망하고 공산주의 국가 소련이 들어선 이후에는
2.2.1.4. 알바니아[편집]
알바니아에서는 15세기 오스만 제국에 맞서 싸운 독립영웅 스컨데르베우(제르지 카스트리오티)의 가문 상징에서 쓰인 붉은 바탕에 검은 검독수리가 민족 자체의 상징이 되었고, 공산주의 정권 시절에도 사용이 중단되지 않았으며, 현재 알바니아 국기에도 사용되고 있다.
2.2.1.5. 아르메니아[편집]

2.2.2. 대중동 문화권 [편집]

중근동에서는 셀주크 제국과 룸 술탄국의 상징으로 쓰였고, 이후의 오스만 제국 등에서는 딱히 국가의 상징으로 쓴 사례가 없지만, 오늘날 튀르키예에서 튀르키예 경찰 등의 국가기관이나 및 콘야스포르[8] 등 단체의 상징으로 쓰이고 있다.

2.2.3. 인도 문화권[편집]

인도 문화권에서는 남인도의 힌두 또는 이슬람 왕국이었던 마이소르 왕국[9]의 상징으로 사용되었다.

3. 사용 국가, 가문, 단체 목록[편집]

3.1. 국가[편집]

3.1.1. 현존 국가[편집]

  • 러시아
  • 몬테네그로
  • 세르비아
  • 아르메니아
  • 알바니아

3.1.2. 역사적 국가[편집]

3.1.2.1. 고대[편집]
  • 히타이트
  • 아시리아
3.1.2.2. 중세 이후[편집]
3.1.2.2.1. 유럽[편집]
3.1.2.2.2. 대중동 문화권[편집]
  • 셀주크 제국
  • 룸 술탄국
3.1.2.2.3. 인도 문화권[편집]

3.2. 가문[편집]

3.2.1. 현존 가문[편집]

    • 독일어권
      • 합스부르크 왕조
    • 슬라브권
      • 남슬라브권
        • 카라조르제비치 왕조[11]
        • 페트로비치-네고시 왕조[12]
      • 러시아
        • 로마노프 왕조[13]
    • 알바니아
  • 남아시아
    • 워디야르 왕조[16]

3.2.2. 단절된 가문[편집]

3.3. 기타[편집]

[1] 실제로는 전체 역사에 비하면 극히 일부인 중세 로마(동로마 제국) 콤니노스 왕조팔레올로고스 왕조 시기에만 사용되었다.[2] 정교회 전체를 가리키는 표현으로도 쓰이는 그리스 정교회(Greek Orthodoxy)와는 다르다.[3] 이쪽은 아예 제국 자체를 극도로 혐오하는 공산주의 국가라 쌍두수리는 물론이고 단두수리의 사용마저 거부하고, 낫과 망치로 대체했다.[4] 서독과 현재 독일.[5] 파시즘이긴 하지만 독일 나치즘이 아니라 독자적인 파시즘(오스트로파시즘)을 추구하며 나치와 대립했고, 국내 나치 세력(오스트리아 나치당)의 쿠데타와 나치 독일의 침공으로 무너졌다.[6] 세르비아인과 몬테네그로인은 같은 언어(세르보크로아트어)를 사용하는 건 물론이고 종교까지 같은 정교회라 세르보크로아트어권 내에서도 동질감이 강한 편이었는데, 세르비아 제국 해체 이후 장기간 서로 다른 국가에 속해서 각자의 길을 가게 되었다.[7] 6개 구성국 중 4개 구성국이 탈퇴하여 세르비아와 몬테네그로만이 잔류했고, 세르비아 몬테네그로로 국호를 변경했다가 해체되었다.[8] 튀르키예 쉬페르리그 소속 축구 클럽.[9] 대부분 힌두교를 믿는 워디야르 왕조가 통치했으나, 무슬림 군벌 하이다르 알리 역성혁명으로 이슬람 국가가 되기도 했는데 이때 영국이 개입해서 일어난 전쟁이 마이소르 전쟁이다.[10] 콤니노스 왕조, 팔레올로고스 왕조 시기 한정.[11] 근대 세르비아 왕국과 유고슬라비아 왕국의 왕가.[12] 몬테네그로 왕가.[13] 러시아 제국이 혁명으로 멸망한 이후 망명지에서 방계 황족들이 대를 이었다.[14] 근대 알바니아 왕국을 다스린 조구 1세의 가문. 왕정이 폐지된 지금도 가문 자체는 남아있다.[15] 조구 1세는 무슬림이었지만 쿠란과 성경에 동시에 손을 올리고 즉위 선서를 했으며 가톨릭 국가 헝가리의 귀족 여성과 결혼식을 올렸는데, 그 뒤를 이어 가문 수장이 된 아들, 손자도 무슬림인지는 불분명하다.[16] 마이소르 왕국을 지배한 힌두 왕조.[17] 테오도로 공국의 통치 가문.[18] 세르비아 제국의 왕조.[19] 근대 세르비아 왕국의 왕조로, 카라조르제비치 왕조와 경쟁하다가 마지막 왕이 후사가 없는 상태에서 살해당하며 단절되었다.[20] 가문 자체의 역사는 훨씬 이전인 노브고로드 루스, 키이우(키예프) 루스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가지만, 쌍두수리 사용은 제3의 로마를 표방한 이반 3세 이후부터다.[21] 표도르 1세가 사망하면서 단절되었다.[22] 독립영웅 스컨데르베우(제르지 카스트리오티)의 가문.[23] 셀주크 제국과 룸 술탄국의 왕조.[24] 남인도 마이소르 왕국을 지배했던 무슬림 왕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