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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2. 역사[편집]
2.1. 고대[편집]
2.2. 중세 이후[편집]
2.2.1. 유럽[편집]
아르메니아나 알바니아를 제외하면 대부분 로마 제국의 계승을 표방한 나라들이 사용했다.
2.2.1.1. 로마 제국과 그리스[편집]
2.2.1.1.1. 로마 제국(동로마 제국)[편집]
2.2.1.1.2. 근현대 그리스[편집]
2.2.1.2. 독일어권[편집]
독일어권에서는 합스부르크 왕조 시기 신성 로마 제국의 상징인 이른바 국가수리(Reichsadler)로 쓰였고, 이후의 오스트리아 제국,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에서도 사용되었다.
그러나 독일 제국은 신성 로마 제국의 계승을 표방하면서도 쌍두수리가 아닌 단두수리를 사용했고 이후의 바이마르 공화국, 나치 독일, 독일 민주 공화국(동독)[3], 독일 연방 공화국[4] 등에서도 쌍두수리가 부활하지 못했다.
오스트리아에서는 제정 폐지와 함께 쌍두수리 역시 폐지되어 파시스트 정권인 오스트리아 연방국(1934년~1938년)[5] 시기를 제외하면 쌍두수리가 더이상 쓰이지 않았다.
그러나 독일 제국은 신성 로마 제국의 계승을 표방하면서도 쌍두수리가 아닌 단두수리를 사용했고 이후의 바이마르 공화국, 나치 독일, 독일 민주 공화국(동독)[3], 독일 연방 공화국[4] 등에서도 쌍두수리가 부활하지 못했다.
오스트리아에서는 제정 폐지와 함께 쌍두수리 역시 폐지되어 파시스트 정권인 오스트리아 연방국(1934년~1938년)[5] 시기를 제외하면 쌍두수리가 더이상 쓰이지 않았다.
2.2.1.3. 슬라브권[편집]
2.2.1.3.1. 남슬라브권[편집]
2.2.1.3.2. 러시아[편집]
2.2.1.4. 알바니아[편집]
알바니아에서는 15세기 오스만 제국에 맞서 싸운 독립영웅 스컨데르베우(제르지 카스트리오티)의 가문 상징에서 쓰인 붉은 바탕에 검은 검독수리가 민족 자체의 상징이 되었고, 공산주의 정권 시절에도 사용이 중단되지 않았으며, 현재 알바니아 국기에도 사용되고 있다.
2.2.1.5. 아르메니아[편집]
2.2.2. 대중동 문화권 [편집]
중근동에서는 셀주크 제국과 룸 술탄국의 상징으로 쓰였고, 이후의 오스만 제국 등에서는 딱히 국가의 상징으로 쓴 사례가 없지만, 오늘날 튀르키예에서 튀르키예 경찰 등의 국가기관이나 및 콘야스포르[8] 등 단체의 상징으로 쓰이고 있다.
2.2.3. 인도 문화권[편집]
인도 문화권에서는 남인도의 힌두 또는 이슬람 왕국이었던 마이소르 왕국[9]의 상징으로 사용되었다.
3. 사용 국가, 가문, 단체 목록[편집]
3.1. 국가[편집]
3.1.1. 현존 국가[편집]
- 러시아
- 몬테네그로
- 세르비아
- 아르메니아
- 알바니아
3.1.2. 역사적 국가[편집]
3.1.2.1. 고대[편집]
- 히타이트
- 아시리아
3.1.2.2. 중세 이후[편집]
3.1.2.2.1. 유럽[편집]
- 독일어권 국가
- 오스트리아 제국
-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 오스트리아 연방국
- 슬라브계 국가
- 남슬라브계 국가
- 세르비아 제국
- 러시아계 국가
- 루스 차르국
- 러시아 제국
- 알바니아계 국가
- 알바니아 왕국
- 알바니아 인민 공화국
- 알바니아 인민 사회주의 공화국
- 아르메니아계 국가
3.1.2.2.2. 대중동 문화권[편집]
- 셀주크 제국
3.1.2.2.3. 인도 문화권[편집]
3.2. 가문[편집]
3.2.1. 현존 가문[편집]
3.2.2. 단절된 가문[편집]
3.3. 기타[편집]
[1] 실제로는 전체 역사에 비하면 극히 일부인 중세 로마(동로마 제국) 콤니노스 왕조 및 팔레올로고스 왕조 시기에만 사용되었다.[2] 정교회 전체를 가리키는 표현으로도 쓰이는 그리스 정교회(Greek Orthodoxy)와는 다르다.[3] 이쪽은 아예 제국 자체를 극도로 혐오하는 공산주의 국가라 쌍두수리는 물론이고 단두수리의 사용마저 거부하고, 낫과 망치로 대체했다.[4] 서독과 현재 독일.[5] 파시즘이긴 하지만 독일 나치즘이 아니라 독자적인 파시즘(오스트로파시즘)을 추구하며 나치와 대립했고, 국내 나치 세력(오스트리아 나치당)의 쿠데타와 나치 독일의 침공으로 무너졌다.[6] 세르비아인과 몬테네그로인은 같은 언어(세르보크로아트어)를 사용하는 건 물론이고 종교까지 같은 정교회라 세르보크로아트어권 내에서도 동질감이 강한 편이었는데, 세르비아 제국 해체 이후 장기간 서로 다른 국가에 속해서 각자의 길을 가게 되었다.[7] 6개 구성국 중 4개 구성국이 탈퇴하여 세르비아와 몬테네그로만이 잔류했고, 세르비아 몬테네그로로 국호를 변경했다가 해체되었다.[8] 튀르키예 쉬페르리그 소속 축구 클럽.[9] 대부분 힌두교를 믿는 워디야르 왕조가 통치했으나, 무슬림 군벌 하이다르 알리 역성혁명으로 이슬람 국가가 되기도 했는데 이때 영국이 개입해서 일어난 전쟁이 마이소르 전쟁이다.[10] 콤니노스 왕조, 팔레올로고스 왕조 시기 한정.[11] 근대 세르비아 왕국과 유고슬라비아 왕국의 왕가.[12] 몬테네그로 왕가.[13] 러시아 제국이 혁명으로 멸망한 이후 망명지에서 방계 황족들이 대를 이었다.[14] 근대 알바니아 왕국을 다스린 조구 1세의 가문. 왕정이 폐지된 지금도 가문 자체는 남아있다.[15] 조구 1세는 무슬림이었지만 쿠란과 성경에 동시에 손을 올리고 즉위 선서를 했으며 가톨릭 국가 헝가리의 귀족 여성과 결혼식을 올렸는데, 그 뒤를 이어 가문 수장이 된 아들, 손자도 무슬림인지는 불분명하다.[16] 마이소르 왕국을 지배한 힌두 왕조.[17] 테오도로 공국의 통치 가문.[18] 세르비아 제국의 왕조.[19] 근대 세르비아 왕국의 왕조로, 카라조르제비치 왕조와 경쟁하다가 마지막 왕이 후사가 없는 상태에서 살해당하며 단절되었다.[20] 가문 자체의 역사는 훨씬 이전인 노브고로드 루스, 키이우(키예프) 루스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가지만, 쌍두수리 사용은 제3의 로마를 표방한 이반 3세 이후부터다.[21] 표도르 1세가 사망하면서 단절되었다.[22] 독립영웅 스컨데르베우(제르지 카스트리오티)의 가문.[23] 셀주크 제국과 룸 술탄국의 왕조.[24] 남인도 마이소르 왕국을 지배했던 무슬림 왕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