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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내각부수상
박헌영
朴憲永 | Pak Hon Yong | Пак Хон Ён
파일:박헌영-4.jpg
출생
충청남도 대흥군 거변면 신양동 빗돌마을
(現 충청남도 예산군 신양면 청신로 379)
사망
(추정)
1956년 7월 19일 (향년 56세)[2]
재임기간
초대 외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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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
덕영(德永)
이정(而丁)[5], 이춘(而春)
종교
학력
대흥공립보통학교 (졸업)
경성고등보통학교 (졸업)
국제레닌학교
직업
정치가, 사상가, 언론인
최종 당적
(숙청 과정에서 제명)
신장
161cm
부모
아버지 박현주(朴鉉柱)[6]
생모 이학규(李學圭)
적모 탐진 최씨(耽津崔氏)
서모
배우자
주세죽(朱世竹)
정순년(鄭順年)
윤레나(Лена Юн 본명: 윤옥)
자녀
슬하 2남 2녀
딸 박비비안나(Вивиана Пак 본명 : 박영(朴影))
아들 박병삼(朴秉三, (법명: 원경(圓鏡))
딸 박나타샤(Наташа Пак)
아들 박세르게이(Сергей Пак)

1. 개요

1. 개요[편집]

북한대한민국공산주의 계열 정치인이자 독립운동가.

일제강점기에는 고려공산당조선공산당 초창기부터 활동하던 사회주의 독립운동가 중 한 사람이었으나, 해방 이후에는 김일성과 함께 6.25 남침 및 학살을 주도한 전범이 되었고, 같은 전범인 김일성에 의해 숙청당한 인물이다.
[1] 음력 1900년 5월 1일[2] 1955년 12월 5일, 1956년, 1957년이라는 설도 있다. 사망일이 확실히 밝혀지지 않음. 박헌영 평전의 저자 안재성 씨의 경우 7월 19일에 사망한 것으로 보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승만여운형이 사망한 날도 7월 19일이다.[3] 박제상(朴堤上, 363년~419년)의 55세손으로, 태사공파 예산문중 56세 ◯영(永) 항렬.(족보)[4] 오랫동안 밀양 박씨로 잘못 알려져 있었으나 박헌영의 아들 원경스님이 1997년 인터뷰를 통해 바로잡았다.[5] 의미는 '인민의 고무래', 즉 하층 농민 계급을 대변한다는 의미에서 지은 것인데 1929년 소련에서 유학 생활 중 썼던 호이자 필명이었다.[6] 태사공파 예산문중 55세 현(鉉)◯ 항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