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  
  •  
  •  
  •  
  •  
모하마드 레자 샤에서 넘어옴
팔라비 왕조 제2대 샤한샤
모하마드 레자 팔라비
محمّدرضا پهلوی | Mohammad Reza Pahlavi
파일:팔라비 2세.jpg
출생
사망
1980년 7월 27일 (향년 60세)
묘소
카이로 알 리파이 모스크
재위기간
팔라비 왕조 샤한샤
[ 펼치기 · 접기 ]
제호
모하마드 레자 샤 (محمدرضا شاه)
존호
샤한샤 아리아메르 (شاهنشاه آریامهر)
가문
부황
모후
타즈 올 몰루크 아이로믈루
형제자매
누나 샴스
여동생 아슈라프[2]
남동생 알리 레자
이복누나 함담알살타네
이복여동생 파테메
이복남동생 골람 레자
압돌 레자
아흐마드 레자
마흐무드 레자
하미드 레자
배우자
파우지아 빈트 푸아드 (1939년 결혼, 1948년 이혼)
소라야 에스판디아리-바흐티아리 (1951년 결혼, 1958년 이혼)
파라 디바 (1959년 결혼)
자녀
슬하 2남 3녀
장녀 샤나즈 (1940 ~)
장남 레자 팔라비 (1960 ~)
차녀 파라나즈 (1963년 ~)
차남 알리 레자(1966 ~ 2011)
삼녀 레일라 (1970 ~ 2001)
종교
신장
178cm[3]
정당
1. 개요2. 생애
2.1. 즉위 이전2.2. 재위2.3. 퇴위와 사망

1. 개요[편집]

이란의 마지막 황제(샤한샤)로, 팔라비 왕조의 제2대 군주였다. 그는 제2차 세계대전 중 즉위하여 냉전기 동안 친서방 노선을 유지했으며, 급속한 산업화와 근대화를 추진했다. 그러나 권위주의적 통치와 정치적 탄압으로 비판을 받았고, 결국 이란 혁명으로 인해 왕정이 붕괴되었다.

2. 생애[편집]

2.1. 즉위 이전[편집]

1919년 이란 숭고국(카자르 왕조)의 수도 테헤란에서 당시 이란의 실권자였던 레자 칸 팔라비의 아들로 태어났고, 1925년에 부친 레자 칸이 역성혁명으로 카자르 왕조를 멸망시키고 팔라비 왕존를 개창하여 레자 샤 팔라비로 즉위하자 왕세자가 되었으며, 1935년에 레자 샤가 황제(샤한샤)로 즉위하자 황태자가 되었다.

2.2. 재위[편집]

1941년에 부황 레자 샤가 영국군소련군의 침공으로 인해 강제 퇴위당하자 즉위했는데, 점령군의 눈치를 보느라 황제(샤한샤) 칭호를 그대로 계승하지 않고 국왕(샤)로서 즉위했다.

재위 초반에는 점령군인 영국군과 소련군의 허수아비였고, 1945년에 영국군과 소련군이 철군한 이후에도 실권 없는 입헌군주였으나, 석유 국유화를 추진하며 미국영국과 대립하던 모사데크 총리를 1953년에 실각시키는 친위 쿠데타를 단행하면서 실권을 가진 전제군주가 되었다.

1960년대에는 백색 혁명을 통해 토지 개혁과 여성 권리 확대를 추진하고, 산업화를 통한 경제 성장을 도모했으나, 빈부 격차가 심화되고 1967년에 자신을 국왕(샤)에서 황제(샤한샤)로 격상시키는 대관식과 1971년 이란 건국 2,500주년 기념식[4] 등 사치스러운 행사로 권위를 과시하는 행보로 민심 이반을 불러왔다.

2.3. 퇴위와 사망[편집]

1979년 이란 혁명이 발생하자 국외로 망명했으며, 이후 여러 국가를 전전하다 1980년 사망했다.
[1] 실질적으로는 1월 16일까지.[2] 쌍둥이.[3] #[4] 키루스 대제가 아케메네스 제국을 건국한 해인 기원전 550년을 이란 건국 연도로 비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