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하마드 레자 샤에서 넘어옴
모하마드 레자 팔라비 Mohammad Reza Pahlavi | |
제호 | 모하마드 레자 샤 |
별명 | 팔라비 2세 |
출생 | 1919년 10월 26일 |
사망 | 1980년 7월 27일 |
재위 | |
1941년 9월 16일 ~ 1967년 10월 26일 | |
1967년 10월 26일 ~ 1979년 2월 11일 | |
1967년 10월 26일 | |
가문 | |
아버지 | |
1. 개요[편집]
2. 생애[편집]
2.1. 즉위 이전[편집]
2.2. 재위[편집]
1941년에 부황 레자 샤가 영국군과 소련군의 침공으로 인해 강제 퇴위당하자 즉위했는데, 점령군의 눈치를 보느라 황제(샤한샤) 칭호를 그대로 계승하지 않고 국왕(샤)로서 즉위했다.
재위 초반에는 점령군인 영국군과 소련군의 허수아비였고, 1945년에 영국군과 소련군이 철군한 이후에도 실권 없는 입헌군주였으나, 석유 국유화를 추진하며 미국 및 영국과 대립하던 모사데크 총리를 1953년에 실각시키는 친위 쿠데타를 단행하면서 실권을 가진 전제군주가 되었다.
1960년대에는 백색 혁명을 통해 토지 개혁과 여성 권리 확대를 추진하고, 산업화를 통한 경제 성장을 도모했으나, 빈부 격차가 심화되고 1967년에 자신을 국왕(샤)에서 황제(샤한샤)로 격상시키는 대관식과 1971년 이란 건국 2,500주년 기념식[2] 등 사치스러운 행사로 권위를 과시하는 행보로 민심 이반을 불러왔다.
재위 초반에는 점령군인 영국군과 소련군의 허수아비였고, 1945년에 영국군과 소련군이 철군한 이후에도 실권 없는 입헌군주였으나, 석유 국유화를 추진하며 미국 및 영국과 대립하던 모사데크 총리를 1953년에 실각시키는 친위 쿠데타를 단행하면서 실권을 가진 전제군주가 되었다.
1960년대에는 백색 혁명을 통해 토지 개혁과 여성 권리 확대를 추진하고, 산업화를 통한 경제 성장을 도모했으나, 빈부 격차가 심화되고 1967년에 자신을 국왕(샤)에서 황제(샤한샤)로 격상시키는 대관식과 1971년 이란 건국 2,500주년 기념식[2] 등 사치스러운 행사로 권위를 과시하는 행보로 민심 이반을 불러왔다.
2.3. 퇴위와 사망[편집]
1979년 이란 혁명이 발생하자 국외로 망명했으며, 이후 여러 국가를 전전하다 1980년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