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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궐 제19대 가한
당 제7대 황제
숙종 | 肅宗
파일:external/image.wangchao.net.cn/1326556889658.jpg

1. 개요

1. 개요[편집]

성은 이(李), 휘는 형(亨)이며, 당나라 제7대 황제이다. 초기 생전 존호는 광천문무대성효감황제(光天文武大聖孝感皇帝)였으며, 이후 여러 차례의 추가와 개칭을 거쳐 최종적으로는 건원대성광천문무효감황제(乾元大聖光天文武孝感皇帝)라는 존호를 받았다. 정식 시호는 문명무덕대성대선효황제(文明武德大聖大宣孝皇帝)이며, 묘호는 숙종(肅宗), 능호는 건릉(建陵)이다.

이형은 당 현종 이융기와 언한황후 양씨(懿安皇后 楊氏) 사이에서 태어난 적장자이다. 황실의 정통 후계자로 성장하여 일찍부터 황태자로 책봉되었으며, 즉위 후에는 여러 황후를 두었다. 정실 황후로는 폐후 장씨(張氏)와 장경황후 오씨(章敬皇后 吳氏)가 있다. 폐후 장씨는 궁정 내 권력 다툼으로 인해 폐위되었으며, 오씨는 황태자 이휴를 낳고 뒤에 장경황후로 추존되었다.

755년 절도사 안녹산이 반란을 일으켜 장안이 함락되자, 조정은 촉 지방으로 피신하였다. 이형은 군신들의 추대를 받아 즉위를 선포하였고, 부친 현종이 태상황으로 물러나면서 그의 즉위는 정통성을 확보하게 되었다.

숙종의 통치는 안사의 난으로 무너진 제국의 질서를 회복하는 데 집중되었다. 그는 절도사 이광필과 장간지 등에게 군사권을 위임하여 반란 진압에 총력을 기울였으며, 757년 장안과 동평부를 수복하고 반란군 수장 안경서를 제거하였다. 그러나 전쟁의 후유증으로 절도사들의 권한이 강화되었고, 지방 분권 체제는 더욱 고착화되었다.

정치적으로는 조정의 안정과 황실 권위의 복원이 주요 과제였으나, 환관 고력사 등 내관 세력이 군사와 인사권을 장악하면서 황제의 권한은 제약되었다. 과거제를 통한 문관 등용은 계속되었지만, 문치 행정의 실효성은 감소하였다.

경제적으로는 황폐해진 농지의 복구와 조세 제도의 정비, 화폐 유통 안정화를 위한 조치가 시행되었다. 그러나 지방 군벌에 의존하는 구조에서 벗어나기 어려웠으며, 중앙 재정의 자립은 제한적이었다.

문화적으로는 유교적 예제와 제왕 의례의 회복, 그리고 시문과 음악 등 당나라 고유 전통의 계승이 시도되었다. 불교와 도교는 국가 제의와 정신적 기반으로 병행되며 유지되었다.

숙종은 762년 병세 악화로 붕어하였으며, 건릉에 묻혔다. 그의 아들 이휴는 뒤를 이어 당 대종으로 즉위하였다. 숙종의 재위는 당 제국이 대혼란 속에서도 명맥을 잇고 통치 질서를 복구해 나가는 전환기의 시기로 평가된다. 비록 중앙권력의 전면 회복에는 이르지 못하였으나, 제왕 권위를 지키고 후속 세대의 통치 기반을 마련한 군주로 역사적 의미를 지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