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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 [[분류:동로마 제국]][[분류:이스탄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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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 [목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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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 == 개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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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 콘스탄티노폴리스는 [[유럽]]과 [[아시아]]의 경계에 자리한 전략적 요충지로, 고대 [[로마 제국]]의 동방 수도이자 중세 [[동로마 제국]]([[비잔티움 제국]])의 중심지였으며, 이후 오스만 제국의 수도로 기능한 도시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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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 이후 시간이 흐르며 도시는 '[[이스탄불]]'이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으나, 콘스탄티노폴리스라는 이름은 여전히 동로마 제국의 영광과 몰락을 상징하는 역사적 용어로 남아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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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 == 명칭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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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 === 언어별 주요 명칭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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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 ==== 콘스탄티누스의 도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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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 * 라틴어: 콘스탄티노폴리스(Constantinopoli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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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 | * 그리스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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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 | * 코이네 그리스어: 콘스탄티누폴리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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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 | * 중세 ~ 현대 그리스어: 콘스탄티누폴리(콘스탄디누폴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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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 | * 아랍어: 알-쿠스탄티니야(al-Qustantiniyah)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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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 | * 튀르키예어: 코스탄티니예(Kostantiniyy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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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 | * 영어: [[콘스탄티노플]](Constantinople)[* 실제 영어 발음과는 차이가 있지만 [[한국]]에서는 관용적으로 해당 표기가 쓰이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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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 | ==== 새로운 로마(새 로마)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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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 | * 라틴어: [[노바 로마]](Nova Rom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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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 | * 그리스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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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 | * 코이네 그리스어: 네아 로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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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 | * 중세 ~ 현대 그리스어: 네아 로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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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2 | * 영어: New Rom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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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3 | ==== (위대한)도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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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4 | * 코이네 그리스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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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5 | * 메갈레 폴리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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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6 | * 폴리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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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7 | * 중세 ~ 현대 그리스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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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8 | * 메갈리 폴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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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9 | * 이 폴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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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0 | === 상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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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1 | 콘스탄티노폴리스(Constantinopolis)는 로마 제국의 황제 콘스탄티누스 1세가 비잔티움(Byzantion)을 재건하여 330년에 제국의 새로운 수도로 선포한 도시이다. 이는 ‘콘스탄티누스의 도시’를 의미하는 명칭으로, 이후 동로마 제국(비잔티움 제국)의 수도로서 천 년 이상 유지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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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3 | 이 도시는 다양한 시대와 문화권에서 여러 명칭으로 불렸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비잔티움]](Byzantion)’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졌으며, 이는 기원전 7세기경 메가라인들이 세운 식민 도시에서 유래한 것이다. 로마 시대 이후 콘스탄티누스 1세가 이곳을 재건하면서 ‘노바 로마(Nova Roma)’, 즉 ‘새로운 로마’라는 이름도 공식적으로 사용되었으나, 이는 일반적으로 널리 정착하지 않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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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5 | 동로마 제국 시기에는 ‘메갈레 폴리스(Megale Polis, 위대한 도시)’ 또는 단순히 ‘폴리스(Polis, 도시)’로 불리기도 했으며, 이는 당시 이곳이 지중해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도시였음을 반영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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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7 | 이슬람 세계에서는 ‘알-쿠스탄티니야(al-Qustantiniyah)’라는 명칭으로 불렸으며, 이는 아랍어식 표현이다. 오스만 제국이 1453년에 이 도시를 정복한 이후에도 ‘코스탄티니예(Kostantiniyye)’라는 명칭이 공식 문서에서 사용되었다. 그러나 오스만 시대에는 점차 ‘이스탄불(İstanbul)’이라는 명칭이 일반적으로 정착하였으며, 이는 ‘도시로 향하다’를 의미하는 그리스어 표현 ‘εἰς τὴν Πόλιν(이스 틴 폴린)’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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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9 | 공식적으로 ‘이스탄불’이라는 명칭이 확정된 것은 1930년이며, 오늘날까지 이 이름이 사용되고 있다. 콘스탄티노폴리스는 오랜 역사 속에서 다양한 이름으로 불렸지만, 그 중심에는 언제나 동서양을 잇는 중요한 교차로이자 제국의 심장으로서의 역할이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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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0 | == 주요 기관 및 시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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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1 | === 궁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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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2 | * 콘스탄티노폴리스 대궁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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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3 | * 블라케르나에 궁전(블라헤르네 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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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4 | === 원로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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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5 | [include(틀:상세 내용, 문서명=동로마 원로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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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6 | === 성당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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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7 | * 하기아 소피아(아야 소피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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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8 | === 테오도시우스 성벽(삼중성벽)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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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9 | 테오도시우스 성벽은 테오도시우스 2세 [[로마 황제|황제]] 치세에 건설되었으며 '삼중성벽'이라고도 불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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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1 | 콘스탄티노폴리스는 [[로마 제국]]의 수도라는 그 정치적, 역사적 상징성에 더해 보스포루스 해협이라는 경제적, 군사적 요충지라서 수많은 제국 내부와 외부를 막론하고 수많은 세력이 노리는 도시였는데, 천년이 넘는 긴 시간 동안 이를 굳건하게 지켜온 것이 바로 테오도시우스 성벽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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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3 | [[동로마 제국]] 내부의 지방 반란 세력의 경우 성내 협력자들을 이용하여 문을 열거나 수비군의 쿠데타, 시민 봉기 등을 유도함으로써 별다른 교전 없이 입성하는 것도 가능했으나, [[동로마인|제국민]]들과 이질적인 정체성을 가진 이민족, 외국 세력은 삼중성벽을 넘기 위해 치열한 공방전을 펼쳐야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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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5 | 역사적으로 훈족, 사산조 페르시아, 아랍, 불가리아, 키이우 루스(키예프 루스)[* 현 동슬라브 3국([[우크라이나]], [[러시아]], 벨라루스의 공통 조상.], 4차 십자군, [[오스만 제국]] 등이 직접적인 콘스탄티노폴리스 공략을 시도한 외세였으며, 그 중 실제로 성공한 것은 1204년의 4차 십자군[* 1203년부터 1204년까지 1년 동안 황제가 2명이나 교체되던 혼란기에 성벽의 취약지점인 금각만을 공략하여 성공했다.], 1453년의 오스만 제국[* 성내 수비 병력보다 20배 이상 많은 병력을 동원하고도 2개월간 고전하다가, 성 밖에 유격전을 펼치다 성 안으로 돌아가던 수비군이 미처 잠그지 못한 비밀 쪽문 '케르타포르타'를 통해 진입하여 가까스로 성공했다.] 둘 뿐이었고, 동로마 유민 국가 [[니케아 제국]]이 [[십자군 국가]] [[라틴 제국]]으로부터 도시를 되찾아 제국 재건에 성공한 1261년의 공방전[* 당시 방어군의 주축이던 베네치아 공화국군이 타지 원정을 떠나느라 성을 비운 사이, 알렉시오스 스트라티고풀로스가 이끄는 소수 정예 병력이 잠입하여 시민 봉기를 유도함으로써 함락시켰다.]까지 포함하면 도시 외부의 국가가 함락에 성공한 사례는 20회 가량 되는[* 정확한 횟수는 기록에 따라 다르다.] 공방전 중 단 3회에 불과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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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7 | 이와 같은 공방전은 1453년, 콘스탄티노폴리스를 지배하는 제국이 오스만으로 바뀐 이후에는 더이상 벌어지지 않았는데, 이는 동로마 제국이 도시를 노리는 외부 세력을 견제할만한 배후지역인 트라키아[* 지금의 불가리아 남동부(북트라키아)와 그리스령 트라키아(서트라키), 튀르키예의 유럽 영토(루멜리).], 마케도니아[* 지금의 북마케도니아 공화국과 그리스령 마케도니아(남마케도니아), 불가리아령 마케도니아.], 아나톨리아(소아시아)[* 현재 튀르키예의 아시아 영토이자 튀르키예 국토 대부분을 차지하는 지역.], 에게 해[* 그리스와 아나톨리아 사이의 해역.], 흑해[* 남쪽으로는 튀르키예, 북쪽으로는 우크라이나와 크림 반도, 서쪽으로는 불가리아와 루마니아, 동쪽으로는 러시아와 조지아 등으로 둘러싸인 해역.] 등의 패권을 안정적으로 유지하지 못한 시기가 길었던 반면 오스만 제국은 적어도 18~19세기 이전까지는 해당 지역들을 확실히 장악하고 있었기에[* 트라키아, 마케도니아, 아나톨리아, 에게 해 등은 수백년간 오스만 제국이 직접 장악했고, 흑해의 경우 봉신국인 크림 칸국을 이용해 러시아 등 주변국들을 견제할 수 있었다.]에 가능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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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9 | 그나마 공방전에 근접했던 사례로는 20세기 초 1차 발칸 전쟁 시기에 불가리아군이 도시 근방인 차탈자 일대까지 남하해서 위협했던 일이 있으나, 당시 불가리아를 지원하던 러시아의 개입으로 인해 실제 성벽 일대까지 불가리아군이 도달하는 일은 없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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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0 | == 역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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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1 | === 전신: 비잔티움(비잔티온)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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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2 | [include(틀:상세 내용, 문서명=비잔티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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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3 | === [[로마 제국]]의 콘스탄티노폴리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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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4 | 330년 이후 콘스탄티노폴리스는 새로운 로마(Nova Roma)로서 제국의 동방 수도가 되어 번영하게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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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6 | 처음 건설될 당시부터 원본인 서방의 [[로마]]와 버금가는 위상을 확보한 것은 아니었으나, 351년 칼케돈 공의회에서 콘스탄티노폴리스 대주교를 서방의 로마 [[교황]] 다응의 서열 2위 총대주교로 격상시키고, [[콘스탄티노폴리스 원로원]]의 정원을 늘리고 권한을 확대하는 등의 절차를 거치며 지속적으로 위상을 강화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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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8 | 5세기 테오도시우스 2세 시대에는 난공불락으로 명성을 떨치게 되는 테오도시우스 삼중성벽이 건설되었으며, 이후 몇 차례의 정치적 혼란과 이민족의 포위 공격을 겪으면서도 번영을 거듭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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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0 | [[서로마]] 고토를 회복한 6세기 유스티니아누스 1세의 치세에는 지금까지 이스탄불을 대표하는 랜드마크인 하기아 소피아(아야 소피아)가 건설되었으며, 예상치 못한 역병으로 타격을 입기도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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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2 | 7세기 사산 제국(사산조 페르시아)와 8세기 우마이야 왕조의 포위 공격 등을 겪기도 했는데, 이후에도 콘스탄티노폴리스는 세계적인 대도시로서의 위상을 유지하여, 과거에 비하면 제국령이 크게 축소된 8~9세기 경에도 당나라 장안, 아바스 왕조 바그다드에 비견될 정도의 규모를 자랑했고, [[콤니노스]] 중흥기에는 경제적으로도 절정의 부를 과시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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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4 | 그러나 이러한 번영은 1185년 이후 [[앙겔로스 왕조]] 치하의 제국이 혼란을 거듭하며 퇴색됐고, 1204년에는 4차 [[십자군]]에 의해 약탈당하며 무수한 인적, 물적 피해를 입고 십자군의 괴뢰국인 [[라틴 제국]]이 세워지는 치욕을 당하기까지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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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6 | 수많은 노력 끝에 1261년 [[팔레올로고스 왕조]] 치하의 [[니케아 제국]]이 콘스탄티노폴리스를 수복함으로써 제국을 재건하는데 성공했으나, 이전과 같은 강대국의 위상까지 되찾는데는 실패했고 14세기의 내전과 [[오스만 제국]]의 발흥 등을 거치며, [[유럽]]과 [[아시아]] 양쪽에서 오스만에 포위된 상태로 버티다 1453년 콘스탄티노폴리스 함락으로 로마 제국의 수도로서의 역사를 마감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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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7 | === [[오스만 제국]] 이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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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8 | [include(틀:상세 내용, 문서명=이스탄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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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9 | 1453년 [[동로마 제국]]([[로마 제국]])믈 멸망시킨 오스만 제국은 콘스탄티노폴리스를 자국식으로 현지화한 코스탄티니예라 부르며 수도로 삼았고, 유럽 각국에서도 계속 [[라틴어]] 콘스탄티노폴리스와 그에 대응되는 이름으로 불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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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1 | 1922년 오스만 제국의 멸망 이후엔 수도 지위를 상실하긴 했으나, 코스탄티니예라는 이름만큼은 1930년에 이르러서야 이스탄불로 완전히 대체되었고[* 이스탄불 역시 오스만 제국 시절부터 공식 석상에서 자주 사용되긴 했다.], [[튀르키예]]의 최대도시라는 지위는 지금도 굳건히 유지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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