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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 [[분류:베트남의 역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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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 [include(틀:상위 문서, top1=베트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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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 [include(틀:베트남의 역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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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 [목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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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 == 개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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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 [[베트남]]의 역사에 대해 다루는 문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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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 베트남은 일찍이 [[중국]]으로부터 [[한자]]를 받아들였기에 [[동남아시아]]에서 가장 먼저 자체적인 기록을 남긴 나라이며, 따라서 역사 기록 역시 동남아시아에서 독보적으로 풍부하게 남아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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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 == 전근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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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 베트남의 주류 민족은 비엣족(월족) 또는 킨족(경족)이라 하는데, 전근대 베트남의 역사는 북쪽으로는 [[중국]]으로부터 스스로를 방어하고, 남쪽으로는 오스트로네시아계 민족인 참족의 나라 참파를 밀어내고 영토를 확장하면서[* 참파라는 국가는 이미 멸망했지만, 참족은 지금도 베트남의 소수민족으로서 명맥을 잇고 있다.] 전개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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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 | === 고대 베트남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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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 | ==== 반랑(문랑)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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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 | 문헌에 등장하는 베트남 최초의 국가로, 홍브엉(홍왕)이라는 칭호를 사용하는 [[왕]]들이 다스렸다고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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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 | 베트남 북부 지역에서 출토된 청동북 등의 유물을 통해 해당 시기에 문명이 발달했다는 것 자체는 고고학적으로 인정박고 있지만, 어디까지가 신화고 어디까지가 실제 역사인지는 아직 확실히 밝혀진 바가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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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 | ==== 어우락(구낙)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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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 | 기원전 3세기경 안즈엉브엉(안양왕) 툭판(촉반)이라는 인물이 반랑을 정복하고 세운 나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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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 | 툭판은 그 이름 때문에 전근대 역사서에는 [[중국]]의 촉 지방[* 지금의 쓰촨성(사천성) 및 윈난성(운남성).] 출신으로 기록되었지만, 오늘날에는 중국 역사학계를 제외하면 단순 음차 표기일 뿐 실제 촉 지방과는 상관 없다는 설이 유력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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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 | 툭판 본인이 살아있을 때 후술할 남월에 정복당했기에 1대만에 끝난 단명 국가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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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2 | ==== 남비엣(남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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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3 | [[진(영성)|진나라]] 무관 출신 찌에우다(조타)가 세운 나라로, 중심지는 [[중국]] [[광둥성]]([[광동성]]) 광저우시 일대였으나 어우락을 정복하고 베트남 북부 일대까지 지배하여 베트남이라는 국호의 어원이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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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5 | 남월은 조타 본인의 치세에는 [[황제]]를 칭했으나, 이후에는 [[한나라]]의 눈치를 보며 [[왕]]으로 칭호를 낮추었는데, 마지막 군주 조건덕의 치세에 한무제가 파견한 한나라 군대에 정복당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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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6 | ==== 북속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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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7 | [[한나라]] 이래 중원 왕조들이 베트남을 지배한 시대를 베트남에서는 북방 국가에 속했던 시기라 하여 '북속기'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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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9 | 이 시대에도 쯩 자매, 전 리 왕조 등이 사실상의 독립 정권을 세운 시대가 있긴 했으나, 오래 버티지 못해어 10세기 오대십국시대 중반까지 중국의 지배가 장기간 이어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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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0 | === 응오 왕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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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1 | 응오꾸옌(오권)이 중국 오대십국 중 하나인 남한(南漢)[* 현대 [[대한민국]]의 별명인 남한(南韓)과는 다르다.] 군대를 물리치면서, 길었던 북속기가 종식되고 베트남 독립 왕조가 형성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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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3 | 응오 왕조(오가)는 안남이라는 국호를 채택하고 [[왕]]을 칭하며 다스렸는데, 응오꾸옌 사후에 십이사군시대라 불리는 군벌 난립 시대로 돌입하며 왕권이 급속도로 약화되어, 딘보린(정부령)의 [[역성혁명]]으로 무너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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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4 | === 다이꼬비엣(대구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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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5 | 응오 왕조(오가)를 멸망시키고 세워진 딘 왕조(정가)는 대구월이라는 국호를 채택했는데, 이는 후대 왕조인 전 레 왕조(전여가) 및 리 왕조(이가) 초기까지 이어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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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6 | ==== 딘 왕조(정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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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7 | 딘보린(정부령)이 응오 왕조(오가)를 멸망시키고 세운 왕조로, 본격적으로 [[황제]] 칭호를 사용하며 외왕내제 체제를 구축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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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8 | ==== 전 레 왕조(전여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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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9 | 레호안(여환)이 딘 왕조(정가)를 멸하고 세운 왕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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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0 | === 다이비엣(대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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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1 | 베트남은 리 왕조(이가) 시대에 이르러 다이비엣(대월)이라는 국호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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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2 | ==== 리 왕조(이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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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3 | 리꽁우언(이공운)이 전 레 왕조(전여가)를 멸망시키고 세운 왕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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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5 | 내부적으로는 베트남 역사상 최초로 과거제를 실시하고, 대외적으로는 [[송나라]]의 침공을 저지하는 업적을 세웠는데, 수십년짜리 단기 왕조에 그친 이전 왕조들과 달리 200여년을 존속한 장기 왕조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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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6 | ==== 쩐 왕조(진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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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7 | 리 왕조(이가) 말기의 외척 쩐투도(진수도)가 자신의 조카 쩐까인(진경)을 황제로 옹립하면서 성립된 왕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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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9 | 13세기에는 [[몽골 제국]]의 베트남 침공을 저지했고, 14세기에는 참파의 명군 포 비나수오르의 침공을 막아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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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0 | ==== 다이응우(호 왕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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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1 | 호꾸이리(호계리)가 쩐 왕조를 멸하고 세운 호 왕조는 대월 대신 다이응우(대우)라는 새로운 국호를 사용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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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3 | 호꾸이리는 초대 황제로서 통치하다가 아들 호한트엉(호한창)에게 양위하고 태상황이 되었는데, 호한트엉이 재위기에 쩐 왕조의 황족과 유신들을 앞세운 [[명나라]] 군대에 의해 멸망하여 호씨 부자는 [[베이징]]으로 압송된 후 처형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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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4 | ==== 후 쩐 왕조(후진가)와 [[명나라]]의 지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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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5 | 명나라는 초기에는 쩐 왕조(진가) 황족을 [[왕]]으로 책봉하는 듯 했으나, 곧 쩐씨 황족들을 제거하고 교지라는 행정구역을 설치하여 직접 지배를 시도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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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7 | 그러자 레러이(여리)라는 인물이 쩐씨 황족이라 주장하는 쩐까오(진고)를 황제로 옹립하며 람썬 기의를 일으켰고, 람썬 기의군이 명나라 군대를 축출함으로써 대월은 다시 독립을 쟁취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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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9 | 이후 레레이는 이용가치가 없어진 쩐까오를 제거한 후 스스로 황제가 되어 후 레 왕조(후여가)를 세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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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0 | ==== 후 레 왕조(후여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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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1 | 후 레 왕조(후여가) 시대에 이르러 과거제가 정기화되었고, 오랫동안 대월의 숙적이었던 참파 역시 굴복시켜 속국으로 삼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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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2 | ==== 남북조시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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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3 | 막당중(막등용)이 후 레 왕조(후여가)로부터 제위를 찬탈하여 막 왕조(막가)를 세우자, 이에 반대하는 레씨의 신하들이 봉기하여 남북조시대가 열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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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4 | ===== 북조: 막 왕조(막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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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5 | 막당중(막등용)과 그 후손들의 막 왕조는 중앙정부 장악에는 성공했으나, 지방의 레씨 충성파들을 제압하는데는 실패했고, 결국 레씨 황제를 옹립한 찐씨 정권(정주)의 북벌에 의해 멸망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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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6 | ===== 남조: 중흥 레 왕조(중흥여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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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7 | 찐씨(정씨)와 꽝남 응우옌씨(광남 완씨)가 연합하여 레씨 황제를 옹립함으로써 중흥 레 왕조(중흥여가)가 성립되었는데, 본래 중흥여가 조정은 응우옌씨가 주도했으나 찐씨에게 주도권을 빼앗겼고, 찐씨 정권(정주)는 북벌을 단행하여 막 왕조(막가)를 타도하는데 성공함으로써 권력 뿐만 아니라 명분에 있어서도 우위에 서게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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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8 | ==== 남북국시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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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9 | 막 왕조 멸망 이후 대월은 명목상 중흥 레 왕조(중흥여가)에 의해 통일되었으나, 중앙정부를 장악한 찐씨 정권(정주)와 남부에서 사실상의 독립정권을 수립한 응우옌씨 정권(완주)로 다시 분열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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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0 | ===== 북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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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1 | ====== 중앙: 찐씨 정권(정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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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2 | 찐씨 정권은 명목상 레씨 [[황제]]를 옹립하고 [[왕]]을 칭하며 중앙정부를 장악했는데, 남쪽의 꽝남 응우옌씨(광남 완씨) 세력을 완전히 제압할 수 없었기에 제위를 찬탈하지는 않고 [[일본]] 막부 시대의 쇼군 같은 사실상의 군주로 군림하는데 만족해야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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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3 | ====== 막 왕조 잔당(까오방 정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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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4 | 찐씨 정권(정주) 초기까지는 까오방(고평) 일대에서 막 왕조 잔존 세력이 [[청나라]]의 지원을 받아 연명하고 있었으나, 결국 찐씨의 북벌에 무너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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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5 | ====== 부씨 정권(무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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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6 | 부씨(무씨) 가문은 남부에서 일어나 막씨를 타도한 찐씨와 달리 처음부터 북부에서 막 왕조에 맞서 항쟁을 벌이던 레씨 충성파 가문이었는데, 이들은 찐씨에 의해 옹립된 레씨 황제들에게 칭신했으나, 말기에는 찐씨 정권과 대립하다가 멸망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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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7 | ===== 남부: 응우옌씨 정권(완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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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8 | 중흥 레 왕조(중흥여가) 조정의 권력투쟁에 밀려난 꽝남 응우옌씨(광남 완씨) 일가는 참파와 가까운 남부 지방을 근거지로 삼아 꽝남국(광남국)이라는 사실상의 독립정권을 형성했는데, 이들은 찐씨와 대립했지만 레씨 황제들에게는 계속 충성을 맹세했기에 황제가 아닌 [[왕]]을 칭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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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0 | 응우옌씨는 자신들이 상대하기 버거운 찐씨와는 교착상태를 유지하면서, ~~강약약강~~만만한 참파를 두들겨패며(...) 영토를 남쪽으로 확장하여 베트남의 현재 영토를 완성하는데 기여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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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1 | ==== 떠이선 왕조(서산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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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2 | 응우옌씨가 지배하던 남부에서 일어난 농민 반란군인 떠이선당(서산당)은 응우옌씨 정권은 물론이고 북부의 중흥 레 왕조와 찐씨 정권마저 갈아버리며 대월을 재통일하고 떠이선 왕조(서산가)를 개창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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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4 | 떠이선 왕조는 마지막 레씨 황제였던 레 민제를 앞세우며 쳐들어온 [[청나라]] 군대까지 격파하는 위업을 세웠으나, 내분으로 인해 약화되어 응우옌씨 왕족인 응우옌푹아인(완복영)의 반격에 무너지고 말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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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5 | == 근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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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6 | === 응우옌 왕조(완가)의 대남국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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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7 | === 프랑스령 인도차이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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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8 | === 베트남 제국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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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9 | == 현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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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0 | === 제1차 인도차이나 전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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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1 | === 분단시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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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2 | === [[베트남 사회주의 공화국]]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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