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r2 vs r3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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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6 | 66 | ===== 남조: 중흥 레 왕조(중흥여가) ===== |
| 67 | 67 | 찐씨(정씨)와 꽝남 응우옌씨(광남 완씨)가 연합하여 레씨 황제를 옹립함으로써 중흥 레 왕조(중흥여가)가 성립되었는데, 본래 중흥여가 조정은 응우옌씨가 주도했으나 찐씨에게 주도권을 빼앗겼고, 찐씨 정권(정주)는 북벌을 단행하여 막 왕조(막가)를 타도하는데 성공함으로써 권력 뿐만 아니라 명분에 있어서도 우위에 서게 되었다. |
| 68 | 68 | ==== 남북국시대 ==== |
| 69 | 막 왕조 멸망 이후 대월은 명목상 중흥 레 왕조(중흥여가)에 의해 통일되었으나, 중앙정부를 장악한 찐씨 정권(정주)와 남부에서 사실상의 독립정권을 수립한 응우옌씨 정권(완주)로 다시 분열되었다. | |
| 69 | 70 | ===== 북부 ===== |
| 70 | 71 | ====== 중앙: 찐씨 정권(정주) ====== |
| 72 | 찐씨 정권은 명목상 레씨 [[황제]]를 옹립하고 [[왕]]을 칭하며 중앙정부를 장악했는데, 남쪽의 꽝남 응우옌씨(광남 완씨) 세력을 완전히 제압할 수 없었기에 제위를 찬탈하지는 않고 [[일본]] 막부 시대의 쇼군 같은 사실상의 군주로 군림하는데 만족해야 했다. | |
| 71 | 73 | ====== 막 왕조 잔당(까오방 정권) ====== |
| 74 | 찐씨 정권(정주) 초기까지는 까오방(고평) 일대에서 막 왕조 잔존 세력이 [[청나라]]의 지원을 받아 연명하고 있었으나, 결국 찐씨의 북벌에 무너졌다. | |
| 72 | 75 | ====== 부씨 정권(무주) ====== |
| 76 | 부씨(무씨) 가문은 남부에서 일어나 막씨를 타도한 찐씨와 달리 처음부터 북부에서 막 왕조에 맞서 항쟁을 벌이던 레씨 충성파 가문이었는데, 이들은 찐씨에 의해 옹립된 레씨 황제들에게 칭신했으나, 말기에는 찐씨 정권과 대립하다가 멸망했다. | |
| 73 | 77 | ===== 남부: 응우옌씨 정권(완주) ===== |
| 78 | 중흥 레 왕조(중흥여가) 조정의 권력투쟁에 밀려난 꽝남 응우옌씨(광남 완씨) 일가는 참파와 가까운 남부 지방을 근거지로 삼아 꽝남국(광남국)이라는 사실상의 독립정권을 형성했는데, 이들은 찐씨와 대립했지만 레씨 황제들에게는 계속 충성을 맹세했기에 황제가 아닌 [[왕]]을 칭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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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0 | 응우옌씨는 자신들이 상대하기 버거운 찐씨와는 교착상태를 유지하면서, ~~강약약강~~만만한 참파를 두들겨패며(...) 영토를 남쪽으로 확장하여 베트남의 현재 영토를 완성하는데 기여했다. | |
| 74 | 81 | ==== 떠이선 왕조(서산가) ==== |
| 82 | 응우옌씨가 지배하던 남부에서 일어난 농민 반란군인 떠이선당(서산당)은 응우옌씨 정권은 물론이고 북부의 중흥 레 왕조와 찐씨 정권마저 갈아버리며 대월을 재통일하고 떠이선 왕조(서산가)를 개창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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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4 | 떠이선 왕조는 마지막 레씨 황제였던 레 민제를 앞세우며 쳐들어온 [[청나라]] 군대까지 격파하는 위업을 세웠으나, 내분으로 인해 약화되어 응우옌씨 왕족인 응우옌푹아인(완복영)의 반격에 무너지고 말았다. | |
| 75 | 85 | == 근대 == |
| 76 | 86 | === 응우옌 왕조(완가)의 대남국 === |
| 77 | 87 | === 프랑스령 인도차이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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