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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6 쿠데타에서 넘어옴
5.16 군사정변
May 16 coup
五一六軍事政變
파일:162E353F500F564225C039.jpg
1961년 5월 17일, 쿠데타의 성공을 알리는 조선일보 기사
1. 개요2. 배경3. 전개4. 결과5. 평가
5.1. 군사정권 시기5.2. 현재
6. 여담

1. 개요[편집]

5.16 군사정변은 1961년 5월 16일 장면 내각의 무능과 사회 혼란을 구실로 일어난 군사 쿠데타이다.

2. 배경[편집]

4.19 혁명 이후 이승만 대통령이 대통령직에서 물러나자, 외무부장관 허정이 이끄는 과도내각이 구성되었고, 이승만 정부의 주요 각료와 자유당 간부들이 구속되었다.

국회3.15 부정선거 무효와 재선거 실시를 결정하였고, 내각 책임제와 국회 양원제를 주요 내용으로 하는 개헌안을 통과시켰다.

헌법에 따라 민의원과 참의원을 선출하는 총선이 실시되었고, 장면이 이끄는 민주당이 집권하면서 장면 내각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장면 내각 출범 초기부터 민주당 내부에는 심각한 내분이 있었다. 이는 장면을 중심으로 한 신파와 윤보선을 중심으로 한 구파 간의 대립으로 나타났고, 결국 윤보선 중심의 구파가 민주당에서 분리하여 신민당을 창당함으로써 대립은 더욱 심화되었다.

결국 4.19 혁명 이후 성립된 장면 내각은 정치적 불안정과 경제적 어려움 속에서 효과적인 정책 집행에 실패하였다. 이러한 가운데, 정부가 경제 발전을 위한 자금 마련을 목적으로 국방 예산을 축소하려 하자 군부 내 불만이 커졌고, 이에 박정희를 비롯한 일부 군인 세력은 1961년 5월 16일, 5.16 군사정변을 일으킨다.

3. 전개[편집]

4. 결과[편집]

1. 반공을 국시의 제일의로 삼고, 지금까지 형식적이고 구호에만 그친 반공 태세를 재정비 강화한다.
2. 유엔 헌장을 준수하고 국제협약을 충실히 이행할 것이며 미국을 위시한 자유 우방과의 유대를 더욱 공고히 한다.
3. 이 나라 사회의 모든 부패와 구악을 일소하고 퇴폐한 국민도의와 민족정기를 다시 바로잡기 위하여 청신한 기풍을 진작시킨다.
4. 절망과 기아선상에서 허덕이는 민생고를 시급히 해결하고 국가 자주 경제 재건에 총력을 경주한다.
5. 민족적 숙원인 국토 통일을 위하여 공산주의와 대결할 수 있는 실력 배양에 전력을 집중한다.
6. 이와 같은 우리의 과업이 성취되면 참신하고도 양심적인 정치인들에게 언제든지 정권을 이양하고 우리들 본연의 임무에 복귀할 준비를 갖춘다.

혁명 공약 전문
5.16 군사정변 이후, 박정희 세력은 군사혁명위원회를 조직하여 국가의 실질적인 운영을 맡았고, 반공을 국시로 경제 발전을 추진한다는 위와 같은 혁명 공약을 발표하였다.

5. 평가[편집]

5.1. 군사정권 시기[편집]

현재는 이 쿠데타를 5.16 군사정변이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으나, 박정희 정부부터 전두환 정부 이전까지는 5.16 군사혁명이라는 명칭으로 불렀고, 7차 개헌헌법(유신헌법)에서는 4.19 혁명과 같이 5.16 혁명이라고 언급하고 있었다.

5.2. 현재[편집]

6. 여담[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