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문서의 이전 버전(에 수정)을 보고 있습니다. 최신 버전으로 이동
[알림] 알파위키를 이용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알파위키는 여러분의 많은 기여가 필요합니다. 신규 이용자이신 경우 우선 알파위키:도움말 문서를 확인해 주시기 바랍니다.
[공지] 봇 관리용 디스코드 관련 공지
[공지] the seed engine v5 preview 버전 적용 안내
[이벤트] 2026년 7월 포인트 이벤트가 진행 중입니다.
[이벤트] 글의 알파가 진행 중입니다.
[공지] Cocoa 개발자가 2026-07-31 까지 휴가를 사용 중입니다.
[공지] 봇 관리용 디스코드 관련 공지
[공지] the seed engine v5 preview 버전 적용 안내
[이벤트] 2026년 7월 포인트 이벤트가 진행 중입니다.
[이벤트] 글의 알파가 진행 중입니다.
[공지] Cocoa 개발자가 2026-07-31 까지 휴가를 사용 중입니다.
1. 개요[편집]
2. 생애[편집]
전한 시기 한성제 휘하에서 태자의 하인으로 일했으며, 엄숙하고 위엄이 있음과 동시에 학문에 전념하여 방봉(房鳳)을 스승으로 모셔 곡량춘추(穀梁春秋)를 학습하였다. 신나라 초년 후패는 회평대윤(淮平大尹)이 되었다.
28년, 광무제가 유한을 재건한 이후 상서령에 책봉되어 전한 시기의 문서들을 참조하여 많은 법령 문서를 작성하였다. 후패가 작성한 문서들은 광무제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
29년 , 복담(伏湛)을 이어 대사도, 관내후(關內侯)에 봉해졌다. 37년 병사하자 광무제는 후패의 시호를 칙향애후(則鄕哀侯)라 한 뒤, 식읍 2천 6백호를 내렸으며 그의 아들인 후욱(侯昱)에게 뒤를 잇게 하였다.
551년, 후경이 소동을 축출하고 한나라의 황제로 즉위하자 후패의 후손임을 자처함과 동시에 그를 시조황제로 추존하였다.
28년, 광무제가 유한을 재건한 이후 상서령에 책봉되어 전한 시기의 문서들을 참조하여 많은 법령 문서를 작성하였다. 후패가 작성한 문서들은 광무제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
29년 , 복담(伏湛)을 이어 대사도, 관내후(關內侯)에 봉해졌다. 37년 병사하자 광무제는 후패의 시호를 칙향애후(則鄕哀侯)라 한 뒤, 식읍 2천 6백호를 내렸으며 그의 아들인 후욱(侯昱)에게 뒤를 잇게 하였다.
551년, 후경이 소동을 축출하고 한나라의 황제로 즉위하자 후패의 후손임을 자처함과 동시에 그를 시조황제로 추존하였다.
3. 가족[편집]
- 부친: 후씨(侯氏)
- 족부(族父): 후연(侯淵)
- 아들: 후욱(侯昱)
- 손자: 후건(侯建)
- 증손: 후창(侯昌)
4. 참고 항목[편집]
[1] 《梁書·列傳第50 侯景》:“以漢司徒侯霸為始祖,(東)漢征士侯瑾為七世祖。於是追尊其祖周為大丞相,父標為元皇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