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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
없음
출생
사망
상훈
건국훈장 애족장 추서
1. 개요2. 생애
2.1. 독립운동

1. 개요[편집]

대한민국독립유공자. 2017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았다.

2. 생애[편집]

2.1. 독립운동[편집]

1929년 함경남도 정평군 지역에서 정평농민동맹에 가입하며 활동을 시작했다. 이 단체는 조선농민총동맹의 하부 조직이었으나, 1930년 6월 8일 정평농민조합으로 재편되면서 정평 일대의 농민운동을 이끌어갔다. 당시 농민운동 기조가 비합법적인 혁명적 노선으로 바뀜에 따라, 해당 조합 역시 소작쟁의 등을 주도하며 정평적색농민조합 으로도 불렸다.1931년부터 1933년 사이 일제 경찰의 대대적인 탄압으로 대다수 조합원이 체포되어 조직이 붕괴될 위기에 처했다. 그러자 한영윤, 한승겸, 전정현, 이재필 등 감시를 피한 간부들이 중심이 되어 1932년 6월 비밀결사 형태의 '정평농민조합재건위원회'를 결성했다. 이 위원회는 정평군 내부 9개 면에 지부를 두고 847명의 조합원을 모았으며, 출판부를 통해 《재건뉴스》와 《빈농》 같은 기관지를 발행하며 교세를 확장했다. 한태임은 1933년 2월 초순 함남 정평군 문산면 풍성리의 자택에서 유영환의 권유를 받아 정평농민조합재건위원회에 투신했다. 같은 해 6월 하순에는 유영환, 이학출 등과 연대하여 하부 조직인 '풍성반위원회'를 조직하였고, 10월 하순까지 지속적으로 회합을 가지며 산하 청년부 및 노농부 책임자로서 왕성하게 활동했다. 그러나 1934년경 조직이 일제 경찰에 포착되면서 약 400여 명이 검거되었고 한태임 역시 이때 체포되었다. 이 중 65명이 그해 12월 28일 함흥지방법원 검사국으로 넘겨져 10개월간의 예심을 거쳤으며, 1935년 10월 30일 치안유지법 및 출판법 위반 혐의로 전원 공판에 회부되었다. 한태임은 재판을 대기하던 중 건강 악화로 1936년 1월경 병보석 석방되었으나, 자택에서 요양을 이어가던 중 같은 해 3월 17일 끝내 순국하였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