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편집]
2. 생애[편집]
2.1. 독립운동[편집]
1920년 만주 관전현을 중심으로 활동하던 독립단 소속의 민양기 등 수십 명이 군자금 확보를 목적으로 6월 26일 압록강을 건너 국내로 진입하였다. 같은 해 7월 13일 황해도 은율군 장연면에 거점을 마련한 이들은 이영식 등의 적극적인 지원을 받으며 활동을 이어갔다. 이 과정에서 독립단은 대표적인 친일 관리였던 은율군수 최병혁과 군참사 고학륜을 처단하기로 계획하고, 8월 15일 거사를 실행에 옮겨 최병혁을 처단하였다. 거사 이후 상하이로 몸을 피했던 독립단원들이 다시 국내로 잠입하자, 최준혁은 이들의 뜻에 공감하며 본격적으로 독립운동을 돕기 시작했다. 그는 단원들에게 숙식을 제공하고 독립운동 자금을 모집하는 등 든든한 조력자 역할을 수행하였다. 그러나 1921년 9월 1일 독립단원 2명이 일제 경찰에 체포되면서 은율, 송화, 해주 등 황해도 전역으로 검거 선풍이吹き 거칠게 일기 시작했다. 결국 최준혁 역시 황해 지역에서 자금 조달과 친일파 숙청을 지원한 혐의로 일경에 체포되었다. 그는 1921년 11월 22일 해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대정 8년 제령 제7호(정치에 관한 저작물 단속 규정 등) 위반’ 혐의로 징역 1년형을 선고받았다. 평양형무소에서 수감 생활을 하며 옥고를 치르던 중, 형기를 얼마 남겨두지 않은 1922년 9월 15일 가출옥하였다.[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