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1. 개요[편집]
티토-스탈린 결렬(Tito-Stalin split) 또는 소련-유고슬라비아 결렬(Soviet-Yugoslav)은 냉전 초기 요시프 브로즈 티토의 유고슬라비아와 이오시프 스탈린의 소련이 갈등을 겪다가, 1948년 소련이 주도하는 코민포름(Cominform)에서 유고슬라비아가 제명당하면서 양국의 외교 관계가 단절된 사건이다.
1945년 2차 대전 종전 직후 유고슬라비아가 공산화될 당시까지만 해도 양국은 티토가 스탈린을 공산진영의 맹주로 인정하고 스탈린이 티토를 공산 유고슬라비아의 지도자로 승인하면서 우호관계를 유지했으나, 소련군의 직접 개입 없이 자력으로 공산화를 달성한 티토가 그리스 내전 개입 등의 이슈에서 소련과 다른 목소리를 내면서 틀어지기 시작했고, 결국 1948년 코민포름에서 소련과 그 위성국들이 유고슬라비아를 제명하면서 양국의 국교가 단절되기에 이르렀다.
이후 스탈린은 1953년 사망할 때까지 끝내 티토와 화해하지 않았고, 흐루쇼프가 스탈린 사후의 권력투쟁에서 승리하여 소련의 정권을 확실히 장악한 1955년에 이르러서야 양국의 외교 관계가 복원되었는데, 이후에도 티토의 유고슬라비아는 다른 동구권 국가들과 달리 소련식이 아닌 독자적인 공산주의 노선을 고수했기에 '티토주의'라는 용어가 널리 쓰이게 되었다.
1945년 2차 대전 종전 직후 유고슬라비아가 공산화될 당시까지만 해도 양국은 티토가 스탈린을 공산진영의 맹주로 인정하고 스탈린이 티토를 공산 유고슬라비아의 지도자로 승인하면서 우호관계를 유지했으나, 소련군의 직접 개입 없이 자력으로 공산화를 달성한 티토가 그리스 내전 개입 등의 이슈에서 소련과 다른 목소리를 내면서 틀어지기 시작했고, 결국 1948년 코민포름에서 소련과 그 위성국들이 유고슬라비아를 제명하면서 양국의 국교가 단절되기에 이르렀다.
이후 스탈린은 1953년 사망할 때까지 끝내 티토와 화해하지 않았고, 흐루쇼프가 스탈린 사후의 권력투쟁에서 승리하여 소련의 정권을 확실히 장악한 1955년에 이르러서야 양국의 외교 관계가 복원되었는데, 이후에도 티토의 유고슬라비아는 다른 동구권 국가들과 달리 소련식이 아닌 독자적인 공산주의 노선을 고수했기에 '티토주의'라는 용어가 널리 쓰이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