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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1. 개요[편집]
2. 특정 군주에서 유래한 유사 표현[편집]
[1] 실존 여부가 의심되는 하나라보다도 이전이라 오늘날에는 역사가 아니라 신화로 여겨지지만, 오랫동안 모범적인 태평성대로 여겨졌다.[2] 제요(요 임금)의 치세.[3] 제순(순 임금)의 치세.[4] 한 문제와 경제의 치세. 유교적 태평성대의 모범으로 손꼽힌다.[5] 한 무제의 치세로, 흉노, 고조선, 남월 등 주요 적성국들을 정벌하며 국력이 절정에 달했음을 과시했다. 그러나 막중한 세금 부담으로 민생이 악화되고 재정 역시 취약해져서 후폭풍이 있었기에 태평성대라기엔 논란이 있었다.[6] 당 태종의 치세.[7] 당 현종 재위 전반기의 전성기. 그러나 연호를 천보로 바꾼 이후의 이른바 '천보난치'라 불리는 무능하고 부패한 정치로 안사의 난이 일어나면서 빛이 바랬다.[8] 요 성종 치세.[9] 금 세종의 치세.[10] 금 장종의 치세.[11] 세조 쿠빌라이 칸의 치세.[12] 성종 올제이투 칸의 치세.[13] 태조 홍무제의 치세.[14] 성조 영락제의 치세.[15] 인종 홍희제와 선종 선덕제의 치세.[16] 성조 강희제와 고종 건륭제의 치세. 중간에 짧게 재위했지만 명군이었던 세종 옹정제를 끼워넣어 강옹건성세라고도 한다. 이들 중에서 강희제는 예수회 선교사들에게도 이교도지만 명군이라고 극찬을 받은 군주였고, 현대 중국에서도 수많은 명군들을 제치고 대중적으로 대제라 칭송받는 유일한 군주지만, 건륭제는 영토 면에서나 국력이 절정에 달했음을 보여줬지 국가 재정은 잦은 대외 원정으로 크게 악화된데다 중국이 산업 혁명을 시작한 서구 열강에게 본격적으로 뒤쳐지기 시작한 시대였기에 논란의 여지가 있다. 실제 서구 열강에게 역전당했음을 체감한 게 그로부터 50여년 이후인 아편전쟁이라 본인 살아생전에는 크게 부각되지 않았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