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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항로 李恒老 |
1. 개요[편집]
2. 생애[편집]
1792년 경기도 양근군 서종면 벽계리(현 양평군 서종면 노문리 벽계마을)에서 아버지 이회장(李晦章)과 어머니 전의 이씨 이의집(李義集)의 딸 사이의 아들로 태어났다. 천재로서 3세 때 천자문을 떼고 6세 때 십구사략을 배웠다고 한다.
1840년(헌종 6) 6월 경사(經史)에 밝은 선비로 천거되어 종9품 휘경원 참봉에 임명되었으나, 그 해 7월 벼슬을 단념하고 고향에 내려가 후진 양성에 전념했다.
1864년(고종 원년) 3월 좌의정 조두순의 추천으로 종6품 장원서 별제(掌苑署別提)에 제수되었고, 종5품 전라도 도사(都事)를 거쳐 그 해 6월에는 정5품 사헌부지평(持平), 11월 정4품 사헌부 장령(掌令)에 제수되었다.
1866년 9월 병인양요가 일어나자 정3품 동부승지로 궁궐에 들어가서 흥선대원군에게 주전론을 건의했다. 이어 종2품 공조 참판에 제수되었으며, 다음달인 10월에 # 종2품 동지의금부사(同知義禁府事)에 제수되었다.
위정척사파의 일원으로 서양과의 개화를 반대하였다.
최익현, 양헌수, 유인석 등이 그의 제자이다.
1840년(헌종 6) 6월 경사(經史)에 밝은 선비로 천거되어 종9품 휘경원 참봉에 임명되었으나, 그 해 7월 벼슬을 단념하고 고향에 내려가 후진 양성에 전념했다.
1864년(고종 원년) 3월 좌의정 조두순의 추천으로 종6품 장원서 별제(掌苑署別提)에 제수되었고, 종5품 전라도 도사(都事)를 거쳐 그 해 6월에는 정5품 사헌부지평(持平), 11월 정4품 사헌부 장령(掌令)에 제수되었다.
1866년 9월 병인양요가 일어나자 정3품 동부승지로 궁궐에 들어가서 흥선대원군에게 주전론을 건의했다. 이어 종2품 공조 참판에 제수되었으며, 다음달인 10월에 # 종2품 동지의금부사(同知義禁府事)에 제수되었다.
위정척사파의 일원으로 서양과의 개화를 반대하였다.
최익현, 양헌수, 유인석 등이 그의 제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