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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image/mk/2009/10/23/0090002172903_0.jpg
남송(南宋, 1127~1279) 양해(梁楷, 12~13세기)의
이백음행도(李白吟行图),
도쿄국립박물관(東京國立博物館) 소장
이름
이백(李白)[1]
출생
당나라 면주[2](전통적 견해)
당나라 안서도호부 쇄엽성[3](수정주의적 견해)
사망
762년 (향년 61세)
본관
농서 이씨
부친
이객(李客)
태백(太白)
청련거사(靑蓮居士)
별칭
이적선(李謫仙), 시선(詩仙)
1. 개요2. 생애3. 평가4. 기타5. 대중매체에서

1. 개요[편집]

李白斗酒詩百篇,長安市上酒家眠。天子呼来不上船,自稱臣是酒中仙。
이백은 술 한 말을 마시고 시 100편을 짓고, 장안성 저자의 술집에서 잤다. 천자가 오라하여도 배에도 오르지 않은 채, 스스로 칭하기를 '신은 술의 신선입니다' 하였다.

당나라의 시인이자 문학가. 이태백(李太白)이라는 이름으로도 유명하나, 태백(太白)은 본명이 아니라 그의 다.

2. 생애[편집]

전통적 견해로는 당나라 쓰촨성 면주 태생이라고 알려져 있으나 최근 수정주의적 견해로는 당시 당나라 안서도호부가 통제하던 키르기스스탄토크모크(Tokmok) 일대 쇄엽성(碎葉城)[5]에서 태어났다고 보고 있다.# 역사학자인 곽말약에 의하면, 어린 시절을 감숙성 천수에서 보냈다고 하며, 미국의 만화가인 래리 고닉에 의하면 이백은 페르시아어에 능했다고 한다. 쇄엽성 출생이라는 견해의 학자들에 따르면 혈통도 순수 한족이 아니라 페르시아 혼혈이며 그래서 같은 페르시아 출신 무희에 관한 시를 여러편 창작한 것이 설명이 된다고 한다. # 젊었을 때는 검술을 배워 혈기를 주체하지 못해 사람을 여럿 살해하고 다녔다가 19살 때에 당시 은거하던 동엄자(東嚴子)라는 은자(隱者)[6]를 만나서 개과천선했다고 하며 그의 신선과 밀접한 관련을 맺은 것도 이때부터다. 24살 때는 쓰촨성을 떠나 강남 일대를 유람하면서 살다가 여기저기를 떠돌며 27살 때 운몽호에서 당 고종(高宗) 때의 조상인 허어자의 손녀를 만나 결혼하고 10년 동안을 거기서 데릴사위로 살았다.

야사에 따르면 이백은 스승에게 글을 배우다가 그만 공부가 싫어져서 멋대로 방랑길에 올랐다고 한다. 그러다가 상이산(象耳山) 아래 시냇가에서 한 노파를 만났는데, 노파는 쇠공이[7]를 열심히 갈아 바늘을 만들고 있었다. 그 노파의 모습에서 이백은 포기하지 않으면 마침내 뜻을 이룰 수 있음을 깨우쳤고, 다시 마음을 돌이켜 공부했다는 일화가 있다. 여기서 마부작침(磨斧作針)이라는 고사성어가 유래했다.

34살 때는 잠시 낙양을 거쳐 태원까지 유람했고, 이때 우연히 명장 곽자의와의 안면을 텄다고도 한다. 야사에서는 곽자의가 무고하게 죄를 뒤집어쓰자 이백이 구명 활동을 벌이고 무죄를 호소하여 풀려났다고 한다. 만일 사실이라면 훗날 곽자의가 이백을 살려주려고 한 것은 은혜를 갚은 게 된다. 또한 도술도 이래저래 배우고 다녔다고 한다. 36살 때는 5명의 시인과 같이[8] 죽림에 은거하여 조용히 살려고 했으나 가 너무 유명해져서 도피 겸 여행을 다니다가 장안까지 입성하게 되었다고. 시험도 쳤으나 당시 시험관이었던 양국충환관 고역사의 의견이 충돌하는 바람에 낙방했다.

유교적 도덕을 바탕으로 시를 쓴 두보와 달리, 그야말로 풍류를 벗하고 풍류를 노래한 인물이다. 그런 삶을 살았기에 역대 중국 왕조를 보면 국가적 차원에서 이백보다 두보를 더 높이 쳐줬다. 반대로 생각해보면 중국 왕조에서 대대로 푸시를 받은 두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백의 시가 그와 대등하게 평가받고 있으니 그만큼 시의 천재가 아닐 수 없다.

한국에선 예로부터 마시고 노래하는 풍류인(風流人) 이백 쪽이 인기가 더 높다. 유교 문화권에 속하기는 해도 풍류를 노래하는 정취가 수많은 선비들을 사로잡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옛날 이야기에서 달을 좋아하는 사람으로 반드시 이백을 이야기하곤 하지만, 두보에게는 천재적인 시인이라는 것 외에 이렇다 할 컨셉이나 이미지가 없다. 이렇게 된 이유는 이백의 시는 자연의 아름다움과 강산의 정취를 노래하기 때문에 놀고 즐길 때 딱이지만, 두보의 시는 시사(詩史)라고 불릴 정도로 당대 사회에 대한 현실적인 비판과 풍자를 담고 중국의 고사 비유가 많기 때문에 학구적인 관점에서 접근할 때에 알맞기 때문이다. 두보는 당시 중국사회의 여러 가지 면면을 살피고, 민초들의 생활고에 슬퍼하고 고뇌하며, 다양한 중국의 고사를 예로 들며 진지한 주제를 제시하는 시가 많다.

하지만 두보의 시의 완성도는 훌륭했고,[9] 이백에게 인기가 밀리건 어쨌건 간에, 조선 왕조에서는 중국 왕조와 마찬가지 이유로 두보의 시를 널리 알리고 크게 권장했다. 당장 훈민정음 창제 이후 훈민정음으로 발간된 대표적인 책 중의 하나가 두시언해였다. 이렇듯 교훈적인 이유로 두보의 시가 장려되었으니, 충분히 조정의 의도를 짐작할 수 있다. 참고로 이백과 쌍벽을 이룬다는 사실 때문에 두보의 이미지는 아주 꼿꼿한 기상을 지닌 선비로 곧잘 표현되곤 한다. 그러니까 술도 잘 안 마시고 별로 놀지도 않으며 그야말로 청렴검소의 모범이 되는 인물이었을 거라는 이미지 말이다. 하지만 두보 본인도 이백에 지지 않을 정도로 술과 풍류를 좋아하였다고 한다. 애당초 둘이 여행도 같이 다닐 정도로 친한 사이였다.

그는 발해 사신의 문서를 해독한 걸로 유명하다. 구체적으로는 당나라 현종발해의 선전포고 서신을 받았는데, 조정의 대신들 중에서 아무도 그것을 해석할 줄 아는 사람이 없었다.[10] 그래서 대신 하지장(賀知章)이 과거시험에서 낙방한 이백을 입궁하게 했다. 이백은 과거 시험에 낙방한 자신이 그 과제를 할 자격이 없다며 거절하자 황제는 그에게 한림학사의 직함과 관직을 주었고, 이백은 대신들 중에서 자신의 시험관을 찾아 그들에게 자신의 신발을 벗기게 하고 그 문서를 번역했다.

시를 잘 지어 당현종양귀비의 총애를 받았으나 술김에 현종의 총애를 받고 있던 고역사에게 "내 신발 좀 벗겨봐라. 이 고자놈아!"라며 술주정을 부릴 정도로 호방하게 굴었으며 훗날 이 일을 잊지 않은 고역사의 미움을 사서 파면당했고, 그 해 여름 낙양에서 두보를 만나 1년 동안 같이 지내면서 여행도 다녔다. 두보가 한 말에 의하면 둘은 밤에는 같은 이불에서 잤고, 날이 새자마자 손 잡고 떠났다고 한다. 참고로 이백은 두보보다 11살 연상이었는데, 두보가 이백의 재능에 크게 탄복하면서 그와 더불어 하남, 산동 일대를 유람하면서 친구 사이로 발전했다고 한다.

그리고 53세가 되던 해 강남으로 돌아와서 2년 뒤 영왕(永王) 이린(李璘)[11]의 군대에 참여하나 영왕이 반란군으로 지목되어 패배하고 처형되었다. 이백도 이에 연루되었으나 곽자의의 도움으로 사형은 면하고 귀양을 가다 삼협도에서 사면받고 다시 방랑길에 오르고 61세가 되던 해, 종숙이던 이양빙의 집에서 61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난다.

2남 1녀를 두었으나, 집안을 돌보지 않고 떠돌기만 한 인생이라 자손들은 가난해져 소식을 모르게 되었고, 이백이 죽은 지 60년쯤 지난 후에 어느 관리가 이백의 무덤을 찾은 후 자손을 알아보았는데, 농민에게 시집간 손녀 2명만 파악되었다고 한다.

3. 평가[편집]

두보와 함께 한시 문학의 양대 거장으로 손꼽힌다.

다만 양측의 시를 짓는 스타일은 딴판이었는데, 초고를 몇 번에 걸쳐 퇴고하여 한 편의 시를 완성하는 두보와 달리 마음 가는 대로 몇 줄 써내리면 그것이 곧 당대의 명시(名詩)가 되는 천부적 재능을 발휘하곤 했다. 이 때문에 시의 성인(聖人), 즉 '시성(詩聖)'으로 불린 두보처럼 시선(詩仙)으로 불렸다. 그 뜻은 시의 신선(神仙).

두보와 함께 이두(李杜)[12]로 불리며, 둘 사이의 우열을 가리는 건 바보짓이라고 이미 중국 고전문학계에서 논쟁을 끝냈을 정도로 두 사람은 동격으로 대우받는다.

4. 기타[편집]

  • 특이하게도 고구려에 관련한 시가 존재한다. 이백이 장안에 들어가 과거시험에 합격한 후, 한림학사가 된 41살(742년)에 지은 시로, 무용수의 고구려 춤을 보고 지은 시로 보여진다. 고구려가 멸망한 년도가 668년임을 감안하면, 멸망 이후에도 고구려 문화가 당나라에서도 유행하고 있었음을 짐작케 한다. 여기서 절풍모는 고구려인들이 자주 썼던 조우관을 말한다.
    金花折風帽[금화절풍모]
    노란 꽃 절풍모를 쓰고

    白馬小遲回[백마소지회]
    백마를 탄채 잠시 멈추었다 돌며,

    翩翩舞廣袖[편편무광수]
    펄럭펄럭 넓은 소매로 춤을 추니

    似鳥海東來[사조해동래]
    바다 동쪽에서 새가 날아온 듯 하구나.

    이백
  • 자연과 술 그리고 시 문학이라는 세 가지 요소를 모두 갖춘 덕에, 낭만에 젖은 애주가들의 표본으로 꼽히기도 한다. 을 뜻하는 한자(주)자를 앞에 넣어 주태백(酒太白)이라고 하면 술꾼인 사람들, 특히 자주 고주망태가 될 정도로 술을 많이 마시는 술고래들을 일컫는 말로 많이 쓰인다. 주태배기라고도 하며 "이백은 과 술을 주고 받았다."는 전설도 있었다.
  • 을 굉장히 사랑했다. 달과 술을 주고받았다는 이야기도 전설처럼 전해 내려오며, '월하독작' 등 을 소재로 읊은 시가 수없이 많은데 그 내용들이 하나같이 자연 속 풍류의 낭만과 정취가 대단히 빼어날 정도. 심지어 야사에 전하길 강에서 뱃놀이를 하다 물에 비친 달을 보고 그 모습이 한없이 아름다워, 술김에 홀리듯이 물속의 달을 향해 뛰어들어 죽음을 맞았다고 한다.[13] 낭만 끝판왕 물론 이 이야기는 역사적 근거가 없어 사실로 받아들일 수 없지만, 그가 자연 풍류를 술과 함께 즐기면서도 달에 대한 애착이 특히 강했음을 시사한다.
  • 다만 그의 죽음에 대해서는 이나 자연 풍류가 아닌, 그가 안사의 난을 일으킨 수괴인 안녹산과 절친했기 때문에 모종의 음모가 있었을 수 있다는 해석도 있다. 하지만 이 당시 이태백은 황족[14]이 주동이 되어 일으킨 반란에 연루되어 체포되었다가 곽자의의 도움으로 살아난 신세라 그리 신빙성이 있는 건 아닐 듯하다. 그 후 유배에서 풀려나 몇 년간 장강 중하류를 떠돌다가 762년 외숙부의 집에 몇 달 동안 의탁하다 61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민간 전승에서는 이때 강에 뛰어든 이백이 고래를 타고 하늘을 날아 고향인 선계로 돌아갔다고 한다.
  • 한국 민요와 가요 중 <달타령>에도 "달아 달아 밝은 달아 이태백이 놀던 달아"라는 대목이 나온다. 이 역시 그가 을 사랑한 것에서 유래했다.
  •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이백은 젊어서부터 유협 생활을 했던 인물로 무예가 뛰어났다. 특히 검술에 능했는데 일류 고수에 부끄럽지 않은 수준이었다 한다. 보검제작으로 유명한 용천 지방을 지날 때에는 차고 있던 용천검을 뽑아 검무를 추고 싶다는 싯구를 썼을 정도로 검에 대한 애착이 깊었다.
  • 서양에도 그의 시가 전해졌는데 음악가 구스타프 말러도 그의 시에 반한 듯하다. 중국의 시들을 바탕으로 작곡된 대지의 노래에서 이백의 시가 절반 넘게 비중을 차지하는 것을 볼 때 그렇다. 물론 원문과 대지의 노래의 가사 사이에는 좀 갭이 있긴 하지만.
  • 외국어에도 능통했는지 위에 언급한 대로 발해의 말을 알아서 당시 발해에서 온 외교문서를 처리하는 업무를 담당하기도 했다고 한다.[15]
  • 전술하듯이 두보와 관계가 깊었는데, 일화로 두보가 그에게 많은 시를 선물했으나, 그는 이를 감사히 받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한 편의 시만을 써주었다고 한다. 이러한 일화를 두고, 2017년 중국의 한 네티즌은 "이백, 양심에 안 찔려?(李白, 你的良心不会痛吗?)"라고 쓴 게시물을 자신의 SNS에 올렸다. 이 게시물은 이후, 일본 NTT 도코모의 앵무새 형제 캐릭터 포인코(poinko)와 결합되어 중국에서 [16]로 사용되었고, 이 짤이 화제가 되면서 2017년 중국의 유행어가 되었다.
  • 이백의 시와 이름을 모르는 중국인이 드물 정도로 중국에서 인지도가 상당히 높으며, 심지어 모르면 외계인 취급 받는다. 중국 교육과정에서 소학교에서 7개[17], 중학교에서 2개[18], 고등학교에서 3개[19]를 배우기에 모를 수가 없기 때문이다.
  • 안후이성의 무덤은 문물보호단위로 지정되어 있어서 지방정부가 관리하고 있다. 쓰촨성의 이백의 집은 4A급 여유경구로 지정되어 있다. 쓰촨성의 이백기념관 역시 4A급 여유경구로 지정되어 있다. 후베이성의 이백기념관 역시 4A급 여유경구이다.

5. 대중매체에서[편집]

당 황제나 고관만큼은 아니지만, 유명인이라서 관련 드라마나 영화가 많고 조연으로 잠깐이라도 등장하는 일이 많다. 특히 이백의 시는 당나라 이후를 배경으로 작품에서 언급되는 일이 많다.

주인공으로 나온 첫 드라마는 1983년 홍콩 ATV에서 제작한《검선이백(劍仙李白)》.[20] 정사와 야사의 기록을 추리고 무협 요소를 더한 드라마이다. 이후 2010년 중국드라마 이백이 방영되었다.

2006년 중국 드라마 《대당시성》에서 조연으로 등장했다. 두보가 주인공이다.

2010년 중국 드라마《양귀비비사》에서 부모를 잃은 양귀비의 후견인으로 등장한다. 조연이지만 주연의 후견인 역할이라 분량이 상당한 편이다. 두보도 등장한다.

2015년 게임 아너 오브 킹즈에서 암살자 영웅으로 등장한다.

2018년 중국 드라마 《신풍도》에서도 조연으로 잠깐 등장한다.

2023년 중국 애니메이션 《장안삼만리》에서 서브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Fate 시리즈》에선 양귀비의 대사에서 언급되는데 주인공인 리츠카가 일본인이라서 이백의 친구였던 아베노 나카마로를 언급하면서 술친구였다고 하고 자길보고 먹을 갈며 따라 붙은 호쿠사이를 보고 이백처럼 예술을 위해서라면 뭐든지 해도 좋다고 생각하는 인물이라고 말하는데 예술가였던만큼 성격이 괴팍했던 듯싶다.

5.1. 아너 오브 킹즈의 영웅 이백[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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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병음: Lǐ Bái (리 바이)[2] 지금의 쓰촨성 몐양시 장유시이다.[3] 지금의 키르기스스탄 수야브이다.[4] 두보의 시, 음중팔선가 중 이백에 대해 평가한 부분.[5] 실크로드에 위치한 키르기스스탄의 도시 수야브(페르시아어: سوی آب)를 음차한 지역명이 쇄엽.[6] 산야에 묻혀 숨어 사는 사람. 또는 벼슬을 하지 아니하고 숨어 사는 사람.[7] 철저(鐵杵)[8] 공소보(孔巢父), 배정(裵政), 한준(韓準), 장숙명(張叔明), 도면(陶沔)[9] 애당초 창작 스타일이 전혀 달랐다. 이백이 술 한잔 걸치고 일필휘지식으로 시를 줄줄 지었던 반면 두보는 시 한구절에서조차 퇴고에 퇴고를 거듭했다.[10] 옛날부터 동아시아에서는 한문이 국제 공용어나 다름없었기 때문에 해석이 안 되었다는 게 이상하게 생각될 수 있는데, 고구려의 인재풀이 무너진 뒤 기미주였던 영주에서 막 도망친 유민들을 중심으로 어렵게 새로 구성된 게 초창기의 발해였기 때문에 지식인이라는 사람이 쓴 외교문서마저도 한문이 아닌 고대 한국어말갈어를 적당히 한자로 번안한 글이었기 때문이다.[11] 현종의 아들.[12] 여기에 시불(詩佛) 왕유, 시귀(詩鬼) 이하를 더해서 당시사걸(唐詩四傑)이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다.[13] 그 빠져죽었다는 강의 이름이 채석강이라고 알려져 있고, 그 채석강을 닮았다하여 전라북도 부안에도 같은 이름의 강이 있다. 그만큼 이태백의 인기도 국내에서 높았고, 카더라 뉴스지만 이런 일화조차 지명에 쓰일 정도였다 볼 수 있다.[14] 영왕(永王) 이린(李璘)[15] 아마 이백은 문서 자체를 다르게 이해한 듯 싶다. 알다시피 한국어와 중국어는 문장 성분의 어순이 다르다. 즉 발해에서 한문 어순을 한국어(정확히는 당시의 고대 한국어 중 발해어) 순서를 따라 썼기에 중국에서 해석이 어려웠을 가능성이 있다. 교착어인 한국어에서는 어순이 바뀌어도 조사의 도움으로 해독이 가능하지만 중국어 같이 어순에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고립어의 경우, 어순이 바뀌었을 시 해독이 아주 어려워진다.[16] 짤의 캐릭터는 포인코 동생. 포인코 형제 중 옆으로 펑퍼짐한 형태의 캐릭터가 동생이다.[17] 정야사, 고랑월행, 망려산폭포, 증왕륜, 황학루송맹호연지광릉, 조발백제성, 망천문산[18] 문왕창령좌천룡표요유차기, 행로난[19] 촉도난, 몽유천모음유별, 장진주[20] Poetic Sword - Li Pa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