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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이슬람 혁명에서 넘어옴
이란 혁명
Iranian Revolution
별칭
이슬람 혁명
(Islamic Revolution)
기간
원인
- 모하마드 레자 팔라비의 전제 정치와 국가 폭력
- 경제적, 사회적 불평등 심화
-미국영국을 비롯한 서방 국가들에 대한 이란 국민들의 반감
-세속화[1] 및 토지 개혁에 대한 시아파 성직자 세력의 불만
결과
혁명 성공
-이란 제국(팔라비 왕조) 체제 전복
-이란 이슬람 공화국 수립
영향
-이슬람 성직자 세력의 신정 독재 및 새로운 국가 폭력 발생
-이란의 여성 인권 후퇴
-이슬람 독재정권에 대한 국제사회의 제재와 이란의 경제난
-이란과 미국, 이스라엘의 관계 악화
-이란-이라크 전쟁 발발
1. 개요2. 역사

1. 개요[편집]

팔라비 왕조전제군주제[2]를 무너뜨리고, 루홀라 호메이니를 최고 지도자로 하는 정교일치 체제의 이란 이슬람 공화국을 수립한 사건이다. 20세기 세계사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혁명 중 하나로 꼽히며, 서구화와 세속화를 추진하던 친미 성향의 왕정을 종교적 근본주의와 반서방주의를 내세운 신권 통치로 교체했다. 이 사건으로 인해 중동의 지정학적 구도가 급격히 변했으며,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미국과 이란의 적대 관계가 시작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2. 역사[편집]

1978년 1월 7일 쿰에서 시작된 반정부 시위는 강압적인 통치와 경제적 불평등에 분노한 민중들의 지지를 얻으며 전국으로 확산되었다. 1978년 9월 8일 '검은 금요일' 학살 사건 이후 시위는 걷잡을 수 없이 커졌고, 결국 1979년 1월 16일 황제(샤한샤) 모하마드 레자 팔라비가 해외로 망명을 떠나며 왕조는 사실상 붕괴했다. 이어 1979년 2월 1일 망명 중이던 호메이니테헤란으로 귀국하여 혁명의 주도권을 잡았고, 1979년 2월 11일 군부가 중립을 선언하면서 혁명 세력이 완전히 승리했다. 같은 해 4월 1일 국민투표를 통해 이슬람 공화국이 공식 선포되었으며, 이후 11월 4일 발생한 주이란 미국 대사관 인질 사건을 거치며 이란의 반미 기조는 더욱 공고해졌다.
[1] 백색 혁명.[2] 명목상으로는 입헌군주제였으나 1953년 모하마드 레자 팔라비친위 쿠데타로 모사데크 내각이 전복된 이래 사실상 전제군주국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