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편집]
오스카 핑걸 오플래허티 윌스 와일드(Oscar Fingal O'Flahertie Wills Wilde, 1854년 10월 16일 ~ 1900년 11월 30일)
아일랜드 출신의 극작가, 소설가, 시인이자 비평가이다. "예술을 위한 예술"을 표방한 탐미주의 운동의 선두주자로, 화려한 입담과 파격적인 패션, 날카로운 기지로 런던 사교계의 중심에 있었다. 유일한 장편 소설인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과 희극 《진지함의 중요성》 등을 통해 인간의 가식과 위선을 유머러스하면서도 냉철하게 비판했다. 당대 최고의 명성을 누렸으나, 동성애 혐의로 인한 몰락과 비극적인 말년을 맞이한 시대의 풍운아이기도 하다.
아일랜드 출신의 극작가, 소설가, 시인이자 비평가이다. "예술을 위한 예술"을 표방한 탐미주의 운동의 선두주자로, 화려한 입담과 파격적인 패션, 날카로운 기지로 런던 사교계의 중심에 있었다. 유일한 장편 소설인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과 희극 《진지함의 중요성》 등을 통해 인간의 가식과 위선을 유머러스하면서도 냉철하게 비판했다. 당대 최고의 명성을 누렸으나, 동성애 혐의로 인한 몰락과 비극적인 말년을 맞이한 시대의 풍운아이기도 하다.
2. 생애[편집]
1854년 10월 16일 더블린의 지성인 가정에서 태어난 와일드는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고전 문학을 전공하며 두각을 나타냈다. 1880년대 미국 강연 여행을 통해 국제적인 유명인사가 되었고, 1890년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을 발표하며 문학적 입지를 굳혔다. 그러나 1895년 연인 앨프리드 더글러스의 아버지인 퀸즈버리 후작과 법정 공방을 벌이다 '외설 죄'로 기소되어 2년의 강제 노동형을 선고받았다. 1897년 출소 후 본명을 숨긴 채 프랑스로 망명했으나, 건강 악화와 생활고에 시달리다 1900년 11월 30일 파리의 한 호텔에서 46세의 나이로 쓸쓸히 생을 마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