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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 튜더에서 넘어옴
1. 개요2. 생애3. 평가

1. 개요[편집]

메리 1세(Mary I of England, 1516년 2월 18일 ~ 1558년 11월 17일)

잉글랜드 왕국아일랜드의 여왕으로, 튜더 왕조 출신이다. 헨리 8세와 첫 왕비 캐서린 오브 아라곤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잉글랜드 최초의 실질적 여왕으로 즉위하였다. 재위 기간 동안 가톨릭 신앙의 회복을 국정의 핵심 목표로 삼았고, 종교 정책으로 인해 후대에 ‘블러디 메리’라는 별칭으로도 알려졌다.

2. 생애[편집]

어린 시절 부모의 이혼과 종교 개혁으로 정치적·종교적 불안 속에서 성장하였다. 헨리 8세가 잉글랜드 국교회를 수립하면서 메리는 서자 취급을 받았으나, 이복동생 에드워드 6세 사후 왕위 계승 투쟁 끝에 즉위하였다.

즉위 후 가톨릭 복원을 추진하며 메리안 박해라 불리는 개신교 탄압을 단행했는데, 이로 인해 '개신교=개혁, 가톨릭=수구'라는 이분법으로 보는 휘그 사관(Whig History)에서 '블러디 메리'라고 폄하되기도 했으나, 개신교 박해 이외에는 딱히 폭정이라 불릴만한 행위를 저지른 적이 없고, 박해의 규모로 따지면 이복여동생 엘리자베스 1세 즉위 후에 개신교 측이 자행한 가톨릭 학살 및 말살 정책이 더 규모가 크고 철저하게 실시되었기에, 현대에 들어서 휘그 사관이 비주류로 밀려난 이후에는 적어도 종교 박해로는 엘리자베스 1세에 비해 과도하게 욕을 먹은 부분이 있다는 재평가를 받았다.

가톨릭 복고 정책의 일환으로 독실한 가톨릭 신자인 스페인 국왕 펠리페 2세와 결혼했는데, 서로 다른 나라의 왕과 여왕이 결혼으로 맺어지는 건 당시 유럽에서는 흔한 일인데다, 아직 잉글랜드에서 가톨릭 교세가 상당했기에 결혼 자체로는 큰 논란이 되지 않았으나, 펠리페 2세의 아이를 낳지 못하면서 부부 관계가 악화되고 재위 말기에는 건강 악화와 정치적 고립 속에 사망하였다.

3. 평가[편집]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메리 1세(잉글랜드)/평가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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