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편집]
2. 역사[편집]
1911년 신해혁명을 거쳐 1912년 중화민국이 건국되자 혁명을 주도한 중국동맹회는 공식적인 정당으로 개편하려 했고, 이에 따라 쑹자오런을 이사장으로 하는 국민당이 창당되었다.
그러나 중화민국은 청조를 군사적으로 압도하며 완전한 승리를 거둔 게 아니라, 청조의 군권을 장악하고 있던 위안스카이에게 대총통직을 넘긴다는 타협을 통해 청조를 멸망시켰기에, 혁명 직후의 집권 세력은 위안스카이를 비롯한 청조 북양군 출신 군벌이었고 이에 따라 국민당은 야당에 머물렀다.
위안스카이는 집권 초기에는 국민당의 선거 참여를 인정했으나 곧 독재자가 되려는 야욕을 드러내며 1913년 3월 22일 쑹자오런을 암살해버렸고, 얼마 지나지 않아 국민당 자체를 강제 해산시켜버렸다.
이후 쑹자오런의 동지였던 쑨원을 비롯한 혁명가들은 일본으로 망명하여 1914년에 중화혁명당을 창당했고, 1919년에 중국국민당을 창당함으로써 국민당은 다시 역사에 등장하게 되었다.
그러나 중화민국은 청조를 군사적으로 압도하며 완전한 승리를 거둔 게 아니라, 청조의 군권을 장악하고 있던 위안스카이에게 대총통직을 넘긴다는 타협을 통해 청조를 멸망시켰기에, 혁명 직후의 집권 세력은 위안스카이를 비롯한 청조 북양군 출신 군벌이었고 이에 따라 국민당은 야당에 머물렀다.
위안스카이는 집권 초기에는 국민당의 선거 참여를 인정했으나 곧 독재자가 되려는 야욕을 드러내며 1913년 3월 22일 쑹자오런을 암살해버렸고, 얼마 지나지 않아 국민당 자체를 강제 해산시켜버렸다.
이후 쑹자오런의 동지였던 쑨원을 비롯한 혁명가들은 일본으로 망명하여 1914년에 중화혁명당을 창당했고, 1919년에 중국국민당을 창당함으로써 국민당은 다시 역사에 등장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