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  
  •  
  •  
  •  
  •  
타이타닉호 침몰 사건
파일:타이타닉호.jpg
발생 날짜
1912년 4월 14일~1912년 4월 15일
발생 위치
북대서양
유형
운항 중인 배의 침몰
선종
여객선
좌표
41° 43′ 55″ N, 49° 56′ 45″ W
탑승인원
2,224명
생존자
710명
사망자
1,514명

1. 개요2. 배경3. 사고 당일
3.1. 빙산과의 충돌3.2. 충돌 직후
4. 침몰 당일
4.1. 탈출 준비
4.1.1. 구조 요청
4.2. 혼란 가중4.3. 타이타닉이 어떻게 두동강 났는가?

1. 개요[편집]

타이타닉호 침몰 사건은 1912년 4월 14일 타이타닉호가 빙산과 충돌한 후 같은 해 4월 15일 침몰한 사건이다.

2. 배경[편집]

여객선 RMS 타이타닉은 1912년 4월 10일 영국의 사우샘프턴 44부두에서 출항해 미국 뉴욕항으로 향하고 있었다.

3. 사고 당일[편집]

출항 당시 쌍안경 보관함의 열쇠가 인계되지 않아서 배 안에 있는 쌍안경들을 꺼낼 수 없었다. 때문에 견시들이 쌍안경을 사용하지 못했고 육안으로 위험요소를 확인해야 했는데 사고 초기에는 이게 큰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되었으나 나중에 사상 최악의 참사에서 실제로 동일한 환경 속에서 당시 쌍안경을 사용하여 실험한 결과 이것조차도 무용지물이었다. 실험 결과 그냥 검은 원만 보였다고 한다.

그러다가 화물선 캘리포니안 호가 무전을 보낼 때에는 더 이상 참지 못한 통신사 필립스가 "닥쳐요! 지금 그쪽이 통신을 방해하고 있다고요!" 라고 역정을 냈다. 문제는 타이타닉호가 침몰할 당시 가장 가까이 있었던 배가 캘리포니안 호였는데, 1명뿐인 통신사가 취침중이라 무전 수신을 못 해 구조하러 오지 못했다. 이 설에 따르자면 겨우 통신사의 불친절함 때문에 1,500여명이 사망한 참사가 일어난 것이 되는데 사실 이 주장에 대해서 사건 직후 청문회에 증인으로 출두한 에반스는 '그런 정도 문제 가지고 화를 낸 건 아니다' 고 증언한 바가 있다. 애초에 통신장비를 갖춘 선박의 통신사는 24시간 근무를 하도록 되어있었고, 당연히 혼자서 24시간 근무가 가능할 리가 없었기 때문에 통신사를 1인만 탑승시킨 캘리포니안 호가 규정을 위반하고 있었던 것이다. 다만 당시의 해운 관행상 이런 경우는 흔했기 때문에 캘리포니안 호만 특별한 것도 아니었다. 이때문에 캘리포니안 호의 선장이 비난받기도 한 적이 있다. 당시 에반스는 빡쳐서 무전을 끄고 잔 게 아니라 그냥 고된 근무로 피곤해서 자러 갔던 것이었다. 1인만 탑승한 경우는 통신사 개인이 알아서 무선실을 지키다 적당할 때 자러 가고 다시 근무하러 가고 했다. 타이타닉 호의 통신사들도 24시간 근무했지만, 둘이 12시간씩 교대로 항해 내내 근무하느라 피로가 심했다고 한다.

3.1. 빙산과의 충돌[편집]

1912년 4월 14일 오후 11시 39분, 레지놀드 리와 함께 견시를 보던 판 선원 프레드릭 플리트가 전방 450m에 높이 20m미만의 빙산을 육안으로 발견했다.[1]

플리트가 빙산을 발견하고 종을 몇번 울린 후 급히 선교에 전화로 보고했고 당직 항해사인 6등 항해사 제임스 무디가 조타실에서 접수하고 선임 당직자인 1등 항해사 윌리엄 맥매스터 머독에게 보고했다.

그러나 11시 40분, 빙산이 타이타닉호와 충돌 했다. 우현 측면이 빙산과 충돌 하였다.

그리고 타이타닉호 선체에 사용된 강철판도 문제였다. 이것은 물론 그때 기준으로는 가장 최고급이었지만, 100년도 더 전 일이라는 걸 기억하자. 당대의 제강 기술 수준은 현대와는 비교할 수 없이 낮았고 이 근본적 한계로 인해 강철에 불순물인 황과 인이 많이 섞여있었다.

3.2. 충돌 직후[편집]

빙산으로부터 얼마 떨어지지 않아 타이타닉은 멈춰섰다. 아래쪽 승객들은 큰 충격을 느끼고 잠에서 깨어났고, 위쪽 승객들은 약간의 흔들림을 느꼈으나 잠에서 깨어날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몇몇은 흔들림을 느끼고 깨어났다. 선장실에서 쉬고 있던 에드워드 스미스 선장 역시 흔들림을 느끼고 곧바로 조타실로 향했다.

당시 대부분의 승객들과 선원들은 빙산 충돌에 대해서 그렇게 심각하게 여기지 않았는데 갑판에 흩어진 얼음조각을 가지고 3등실 승객들은 축구를 하고, 1등실 승객들은 위스키에 쓸 기념품으로 가져갔다고 한다.

하지만 잠시 간의 예상을 깨고 타이타닉의 보수를 담당하는 목수 존 홀 허친슨이 배의 누수현상이 심각하다고 조타실로 긴급하게 보고했다. 11시 52분경, 박스홀 역시 배가 빙산과 충돌하고 화부들이 대피한 뒤 10분만에 충돌 구역인 보일러실 2호, 6호와 최하 갑판의 수하물 취급소가 침수되는 것을 확인했다. 잠시 뒤 타이타닉의 설계자 토머스 앤드루스와 브루스 이즈메이 화이트스타 라인 사장이 조타실로 도착했다. 이즈메이는 배의 피해가 어느정도인지 물었고, 갑자기 불안감을 느낀 스미스 선장은 그저 걱정된다고만 답한 후 선원들에게 만일을 대비하여 승객들을 깨우라고 명령하였다. 동시에 엔진도 정지시켰다. 스미스 선장은 즉시 토머스 앤드루스 등과 함께 직접 피해상황을 점검했는데, 11시 55분에는 최하 갑판이 완전히 잠기고 수선 바로 위 층인 G 갑판의 우편원들이 우편실에서 필사적으로 우편물을 구하려고 하는 것이 목격되었다. G 갑판의 승객들과 승무원들 또한 물이 복도로 천천히 차오르기 시작하는 것을 목격하고 빠져나왔다.

4. 침몰 당일[편집]

4.1. 탈출 준비[편집]

스미스 선장은 12시 5분에 탈출 명령을 내리되, 혼란 방지를 위해 대놓고 승객들에게 침몰이 임박하다고는 알리지 않았다. 우선 승무원들을 시켜 잠들어 있던 모든 승객들과 선원들을 갑판에 집결시키기 위해 깨우고 구명조끼를 나누어주기 시작했다. 이 시각 충돌부위의 F 갑판이 침수되기 시작했다.

2등 항해사 라이톨러는 선장에게 여성과 어린이를 먼저 태울 것을 건의하고 선장은 승인했다. 이건 당시 사회 통념상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이었고, 실제로 통계상으로 혼란스러우면 여자와 아이들이 생존할 가능성이 더 적은 점도 있었다.[2]

4.1.1. 구조 요청[편집]

타이타닉호가 주변 선박, 통신소들과 주고받은 무전을 정리 기록한 영상.

[무전 내용(일부 생략)]
CQD DE MCY
SOS 여기는 타이타닉
CQD DE MCY
SOS[3] 여기는 타이타닉
HERE MY POSITION 41.46N 50.24W COME AT ONCE.
HAVE STRUCK A BERG.
현 위치 북위 41.46 서경 50.24 즉시 와주기 바람.
빙산과 충돌했음.
(중략)
CQD CQD SOS SOS SOS CQD CQD THIS IS TITANIC 41.
SOS SOS SOS SOS SOS SOS SOS 여기는 타이타닉
(중략)
CQD TITANIC
SOS 여기는 타이타닉
WE ARE SINKING FAST
타이타닉호는 빠르게 침몰하고 있다
CQD THIS IS TITANIC
SOS 여기는 타이타닉
CQD THIS IS
SOS 여기는...


2시 10분, 상황이 악화되어 신호가 미약해진 상황에서 타이타닉호는 계속해서 구조신호를 보냈다. 이에 주변 선박들은 신호가 잘 들리지 않는다는 말을 보냈으나 타이타닉호는 2시 17분, 'CQD DE MGY CQD DE(도움이 필요하다 여기는 타이타닉, 도움이 필요하다 여기는...)' 메세지를 끝으로 무선 신호가 사라졌다. 통신실이 침수되기 시작해 필립스와 브라이트가 송신을 중단하고 탈출했기 때문이다.

4.2. 혼란 가중[편집]

여러 구명보트가 진수되는 과정에서, 몰래 구명보트에 타는 남성들도 있었고, 구명보트가 진수되는 과정에서 밑에 있는 구명보트가 깔리는 사고가 발생할뻔 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 혼란을 막기 위해 2시 10분에는 체육관 바깥쪽 휴식터에서 월리스 하틀리가 지휘를 맡은 악단이 마지막 음악을 연주했다. 어떤 곡이 연주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유력한 곡은 'Nearer, My God, to Thee'(한국에 번역된 곡으로는 개신교 찬송가 '내 주를 가까이 하려함은' / 가톨릭 성가 '주여 임하소서'가 된다.)와 'Autoume' 이다. 선장은 확성기를 쥔 채로 선교에 들어가 그대로 그곳에 남았다.

2시 18분, 깊은곳에 있는 선실로부터 굉음이 네번 발생한 뒤 침몰속도가 가속되었다. 배가 더 기울어지자 잡을 것을 찾지 못한 많은 사람들 또한 혼란 속에서 균형을 잡지 못하고 넘어졌다. 그리고 정전이 발생해 사방이 어두워지는데, 곧바로 무게를 견디지 못한 선체는 2번째와 3번째 굴뚝 사이의 신축 이음을 중심으로 금이 가면서 폭음과 함께 두 동강으로 쪼개졌다. 또한 동시에 굴뚝 3과 환기구인 4가 부러졌다. 다만 정전으로 인한 어둠 때문에 이는 소수만 목격했고 보트에 탄 대부분의 생존자들은 목격하지 못했다.

4.3. 타이타닉이 어떻게 두동강 났는가?[편집]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타이타닉호 침몰 사건/침몰 가설 문서
번 문단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1] 하지만 빙산은 10만분의 1만 육안으로 보이기 때문에 이미 늦은 상황이였다.[2] 남성 사망자가 많은 이유가 이것도 있긴 하다. 자세한 내용은 후술.[3] SOS로 대체되기 전에는 CQD를 사용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