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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앙사촌
Tadrona cristata(Kuroda, 1917)
파일:원앙사촌.jpg

원앙사촌 암컷
분류 정보
Animalia(동물계)
Chordata(척삭동물문)
Aves(조강)
Anseriformes(기러기목)
Anatidae(오리과)
Tadorna(혹부리오리속)
cristata(원앙사촌)
절멸
EX
야생절멸
EW
위급
CR
위기
EN
취약
VU
취약근접
NT
최소관심
LC
평가불가
NE
기타 지정 정보
유럽연합
EU Wildlife Trade Regulations Annexes A(유럽연합)
한국
포획ㆍ채취 등의 금지 야생생물
수출·수입등 허가대상 야생생물

1. 개요2. 생김새3. 생태4. 관측 기록5. 현황6. 보전 노력 및 멸종 원인7. 출처

1. 개요[편집]

동아시아에 분포한 조류로 멸종 위기 동물이다. 1964년 연해주에서 마지막으로 관측된 후 발견되었거나 채집되었다는 기록이 없다.

2. 생김새[편집]

몸길이는 약 64cm로 친척종인 혹부리오리와 유사하다. 수컷은 머리가 흰색이며, 머리꼭대기에는 검은색의 긴 댕기가 있다. 윗가슴은 암녹색, 배는 회색이고 아래꽁지덮깃 부근은 오렌지색이다. 얼굴옆, 목옆, 앞목은 그을은 회색이며 불명확한 암갈색의 작은 황색 얼룩무늬가 있는데 뒷목 가까운 쪽에서는 명확해진다. 눈 아랫부분에는 흰색을 띤 작은 부분이 있으며 어두운 색의 작고 흐린 점무늬가 산재한다. 턱밑에는 약간 큰 암녹색의 무늬가 있다. 뒷목 아랫부분과 어깨사이는 암녹색의 금속광택이 있는 검은색이며 윗가슴까지 폭 넓게 띠 모양으로 계속된다. 가슴깃 기부에는 아주 작은 흰색의 얼룩점이 있으나 외관상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한편 암컷은 이마가 흰색이며, 머리꼭대기와 뒷목이 검은색이다. 눈 주위는 가늘고 긴 흰색 부분으로 둘러 싸여 있고, 그 바깥쪽으로 검은색으로 테두리가 있다. 등, 가슴, 몸의 아랫면은 어두운 회갈색 바탕에 흰색의 가는 파도 모양의 무늬가 많다. 허리는 어두운 색이고 회백색의 가는 파도 모양의 가로무늬가 있다. 아래꼬리덮깃은 등황색이고 위꼬리덮깃과 꼬리는 검은색이다.

3. 생태[편집]

이 종의 생태에 대해선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 체계적인 연구가 이루어지기도 전에 자취를 감춘 탓이다. 다만 과거 채집 기록 등으로 볼 때 다른 오리류와 마찬가지로 한반도에 월동하는 겨울 철새로 보고 있다.

4. 관측 기록[편집]

가장 오래된 기록은 1700년대 일본 고화집 『관문금보(觀文禽譜)』이다. 이 책의 저자는 조선에서 보내온 매우 진귀한 조류라는 설명과 함께 "조선원앙"이라는 이름으로 원앙사촌 암수 한 쌍을 정확하게 묘사하였다. 당시에는 조선시대 후기 조선통신사가 새를 산 채로 보내 일본 귀족들이 사육하곤 했었는데, 이 과정에서 원앙사촌이 전해진 것으로 보고 있다. 1820년대 일본 홋카이도 하코다테의 고서에서도 이 종을 묘사한 그림이 남아있던 걸로 볼 때 당시에는 홋카이도에서도 흔치는 않지만 서식은 했던 걸로 보고 있다.

이후 1877년 4월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암컷 한 마리가 박제로 잡힌 후 1894년 런던동물학회에서 전시되었다. 당시 이 박제를 검토한 조류학자는 이 새를 별개의 종으로 보지 않고 황오리(Tadorna ferruginea)와 청머리오리(Anas falcata)의 잡종으로 보았다. 현재 이 표본은 코펜하겐 대학교에 보관되어 있다.

이를 새로운 종으로 보고한 것은 일본의 조류학자 구로다 나가미치였다. 구로다 나가미치는 부산의 박제가게에서 전에 본 적이 없는 오리가 있는 것을 보고 거금을 들어 그 박제를 구매했다. 1917년 구로다 박사는 이 새를 새로운 종으로서 학계에 보고했으나 이미 1877년 러시아 연해주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한 마리가 채집돼 황오리와 청머리오리의 자연교배 잡종으로 1890년 1월 런던동물학회에 보고된 적이 있다는 의외의 소식을 전해 받았다.

그러나 구로다 박사는 의문을 갖고 추가 조사를 진행하였다. 그러던 중 본인이 포획한 종이 원앙사촌이 『관문금보』에 조선원앙이란 이름으로 그려진 새와 같은 새임을 알게 되었다. 그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금강 하구와 낙동강 하구에서 원앙사촌 암수 한 쌍을 추가로 채집하였다. 즉, 원앙사촌이 자연 잡종이 아니라 별개의 종임을 밝혀낸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구로다 박사는 1924년 학계에 새로이 보고하였다.

구로다 박사가 채집한 박제 2체는 현재 일본 야마시나조류연구소에 보관되어 있다. 태평양 전쟁때 구로다 박사가 집에 있는 모든 것을 버려두고 이 박제 2체만 들고 피난길에 나섰다가 돌아오니 집이 불타 사라졌다는 이야기가 무용담처럼 내려온다.

5. 현황[편집]

그러나 1924년 구로다 박사의 논문을 마지막으로 원앙사촌의 학계 보고는 뚝 끊기고 만다. 공식적으로는 1916년 낙동강 하류에서 사냥한 것 이후로 채집 또는 발견 기록이 존재하지 않으나, 구로다 박사는 1920년대까지 사냥꾼이 원앙사촌을 사냥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고 주장했다.

한국에서 마지막으로 목격된 곳은 1943년 충청북도였다. 이후 한국에서는 목격했다는 주장조차 나오지 않아 지역절멸한 것으로 간주된다. 북한에서는 1971년 형산강 유역에서 7마리를 관측했다고 주장했으나 신빙성은 떨어진다.

러시아에서는 1964년,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림스키 코르사코프열도에서 수컷 2마리와 암컷 1마리를 목격했다는 보고가 올라왔고, 1985년 극동 지방에서 목격했다는 보고가 올라왔다.중국에서도 목격 주장은 심심찮게 올라왔다. 어느 중국인 노동자는 오리를 사냥해서 먹었는데 알고 보니 원앙사촌인 것 같았다고 보고했다. 남쪽으로 멀리 떨어진 윈난성에서도 목격했다는 주장이 올라왔는데, 이는 현지에 사는 다른 오리와 헷갈린 것으로 보고 있다.

ICUN에서도 사실상 멸종했으나 여러 비공식적인 관측 주장으로 볼 때 아직 소규모 개체가 살아있을 수는 있다며 CR(Critically Endangered, 위급) 등급으로 분류하였다. 만일 원앙사촌이 살아있다면 북한 - 중국 - 러시아 접경지대에 1~50마리 정도가 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6. 보전 노력 및 멸종 원인[편집]

현재 원앙사촌을 보전하고자 하는 학계의 노력은 어떻게든 야생 개체를 찾는 것에 집중되어있다. 1983년부터 2000년대까지 한국, 북한, 만주, 연해주 등지에 이 새를 목격한 사람에게 현상금 500달러를 주겠다며 그림 엽서 수백만장이 뿌려졌으나 목격했다는 보고는 수십건에 불과했으며 이마저도 확실한 것은 한 건도 없었다.

멸종 원인으로는 첫째, 원채 수가 적은 종이었다는 점, 둘째, 그 탓에 사냥해서 박제로 만들거나 키우려는 사람이 많았다는 점, 셋째로 서식지 파괴와 환경 오염으로 그 수도 계속 줄었다는 점이 제시되었다.

7. 출처[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