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옴두르만 전투
영어: Battle of Omdurman
시기
장소
수단 옴두르만 북쪽 약 10km 지점[1]
원인
찰스 고든 장군의 복수.
교전 세력
이집트 연합군
마흐디 수단국
지휘관
호레이쇼 허버트 키치너
칼리파 압둘라히 타아이시
병력
약 25,800명
52,000명
'무기
창, 칼, 방패
부상자
380명
13,000명[2]
사망자
47명
10,000명 이상
결과
대승
대패
1. 개요2. 전투

1. 개요[편집]

1887년 9월 2일 수단옴두르만에서 호레이쇼 키치너 경이 이끄는 영국-이집트 연합군과 칼리파 압둘라히의 수단 마흐디국 군대 사이에 벌어진 제국주의 침략 전쟁이다. 이 전투는 근대신 화약 무기의 압도적인 파괴력으로 인해 역사상 가장 불균형하고 일방적인 학살극 중 하나로 기록되어 있다. 전투는 약 5시간 만에 완전히 끝났으며, 양측의 무기 성능 차이로 인해 인류 전쟁사에서 보기 드문 참혹한 사상자 비율이 발생했다.

2. 전투[편집]

마흐디군은 곧바로 돌격했으나, 분당 수백 발을 퍼붓는 영국의 기관총의 포격 앞에서는 접근조차 하지 못하고 추풍낙엽처럼 쓰러졌다. 이 전투는 서구 열강이 아프리카를 식민지화 할 때 도덕적 우월성이 아닌 압도적인 과학 기술과 화력의 격차를 무기로 삼았음을 증명하는 대표적 사례이다. 당시 영국 원정군에는 훗날 제1차 세계대전을 지휘하게 되는 더글러스 헤이그 장군뿐만 아니라, 종군기자 겸 장교로 참전했던 20대의 윈스턴 처칠도 포함되어 있었다. 처칠은 저서 강의 전쟁을 통해 이 전투의 참상을 기록했다.
[1] 케레리[2] 포로 5,000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