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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인 | 찰스 고든 장군의 복수. | |
교전 세력 | 이집트 연합군 | 마흐디 수단국 |
지휘관 | 호레이쇼 허버트 키치너 | 칼리파 압둘라히 타아이시 |
병력 | 약 25,800명 | 52,000명 |
'무기 | 총 | 창, 칼, 방패 |
부상자 | 380명 | 13,000명[2] |
사망자 | 47명 | 10,000명 이상 |
결과 | 대승 | 대패 |
1. 개요[편집]
2. 전투[편집]
마흐디군은 곧바로 돌격했으나, 분당 수백 발을 퍼붓는 영국의 기관총의 포격 앞에서는 접근조차 하지 못하고 추풍낙엽처럼 쓰러졌다. 이 전투는 서구 열강이 아프리카를 식민지화 할 때 도덕적 우월성이 아닌 압도적인 과학 기술과 화력의 격차를 무기로 삼았음을 증명하는 대표적 사례이다. 당시 영국 원정군에는 훗날 제1차 세계대전을 지휘하게 되는 더글러스 헤이그 장군뿐만 아니라, 종군기자 겸 장교로 참전했던 20대의 윈스턴 처칠도 포함되어 있었다. 처칠은 저서 강의 전쟁을 통해 이 전투의 참상을 기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