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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 개요[편집]
[1] 요사 본기 목종본기 서문을 보면 천록 5년 9월 계해일에 세종이 시해당하고 정묘일에 목종이 즉위했다고 되어있다. 60간지에서 계해일과 정묘일은 4일 차이다. 요사 권112, 열전 제42 역신전 야율찰할조를 보면 야율찰할이 요 세종을 시해한 (정황상) 그 다음날 바로 수안왕(야율술률)과 야율옥질의 병력들이 야율찰할을 포위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거란국지에 보면 야율찰할이 세종을 죽이자 술률이 남산으로 도망갔는데 거기서 대신들이 술률을 받들어 찰할을 공격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역신전에서는 이미 7월부터 찰할이 반란을 도모했다가 포기했다는 기록과 함께 거사 직전 찰할이 술률에게 같이 거사를 거행하자고 했지만 술률은 이를 거부했다고 하는 기록이 등장하는 바 거란국지와 요사를 종합해보면 야율술률은 모반을 이미 알았고 때에 맞춰 군사를 준비해놓고 있었다는 추정을 해볼 수 있다.[2] 사실 야율찰할이 세종을 시해하지 않았더라도 야율술률이 기어이 황위를 차지했을 것이라는 추정을 해볼 수 있는데 찰할과 술률이 대치하고 있을 때 술률측에 야율적랍이라는 인물이 술률에게 不有所廢,壽安王何以興?라고 한다. 즉 야율찰할이 세종을 폐하지(죽이지) 않았다면 수안왕 당신이 어찌 일어날 수 있었겠나란 말인데 이 말을 미뤄보면 야율술률 역시 이전부터 황위를 탐내고 있었다는 정황증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