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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역사
2.1. 창당(2000년)2.2. 16대 대선(2002년)2.3. 17대 총선(2004년)2.4. 일심회 사건(2006년)2.5. 17대 대선(2007년)2.6. 분당과 18대 총선(2008년)2.7. 18대 국회(2008년 ~2012년)2.8. 통합진보당으로의 합당(2012년)
3. 여담

1. 개요[편집]

2000년부터 2012년까지 존재했던 대한민국진보주의, 사회주의 정당.

원외정당인 국민승리21의 확대 개편을 통해 창당되었고 2004년 17대 총선에서 10석을 확보하며 원내3당으로 약진하기도 했으나, 당내 민족해방(NL) 계파의 종북 논란과 민중민주(PD) 계파의 집단 탈당으로 인한 당세 약화를 겪은 후[1], 다른 진보정당들과 합당하여 통합진보당을 창당하면서 해체되었다.

2. 역사[편집]

2.1. 창당(2000년)[편집]

2000년 국민승리21의 확대개편을 통해 민주노동당이 창당되었다.

2.2. 16대 대선(2002년)[편집]

2002년 16대 대선에 민주노동당 후보로 출마한 권영길은 거대양당 후보인 한나라당 이회창과 새천년민주당 노무현의 양강 구도 속에서 한자릿수 득표율에 그쳤으나, TV 토론에서 인상적인 모습을 보이며 원내정당 후보인 하나로국민연합 이한동을 4위로 밀어내며 3위를 기록하고, 본인과 민주노동당의 이름을 확실히 각인시키는데는 성공했다.

2.3. 17대 총선(2004년)[편집]

2004년 17대 총선에서 탄핵 역풍으로 기존 원내정당들이 몰락하는 가운데 민주노동당이 돌풍을 일으켰다.

민주노동당은 지역구에서는 2석을 얻는데 그쳤으나, 비례대표에서는 8번까지 당선시키는데 성공하며 10석을 확보하여, 단숨에 원외정당에서 원내3당으로 올라섰다.

2.4. 일심회 사건(2006년)[편집]

2006년에 일심회 사건이라는 북한 간첩단 사건에 일부 민주노동당 당직자들이 연루되자, 이에 대한 징계를 논의하는 과정에서 해당 당직자들을 옹호하는 민족해방(NL)계와 적극적인 징계 절차를 통한 쇄신을 요구하는 민중민주(PD)계 사이에 내분이 벌어졌는데, 이는 훗날 민주노동당 분당의 원인이 되었다.

2.5. 17대 대선(2007년)[편집]

17대 대선을 앞두고 열린 대선후보 경선에서는 권영길 후보가 다시 민주노동당 후보로서 대권에 도전하게 되었으나, 본선 5위에 그쳤다.

2.6. 분당과 18대 총선(2008년)[편집]

2008년 18대 총선을 앞두고 민중민주(PD)계가 대거 탈당하여 진보신당을 창당하면서 민주노동당은 민족해방(NL)계 일색인 정당이 되었다.

18대 총선에서 민주노동당은 5석을 확보하는데 그쳐 17대 총선의 10석보다 의석이 반토막난 성적표를 받아들여야 했다.

2.7. 18대 국회(2008년 ~2012년)[편집]

2.8. 통합진보당으로의 합당(2012년)[편집]

3. 여담[편집]

2025년에 민주노동당이라는 진보정당이 다시 등장했지만, 본문의 민주노동당과 직접 이어지는 후신은 아니다.
[1] 해당 계파는 진보신당(현 노동당의 전신)을 창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