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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니콜라스 케이지.jpg
니콜라스 케이지
1. 개요2. 연기 특징3. 코폴라 가문의 이단아4. 활동
4.1. 데뷔 초기4.2. 버디에서 보여준 자학적 메소드 연기4.3. 페기 수 결혼하다문스트럭의 대성공4.4. 컬트의 제왕4.5. 허니문 인 베가스당신에게 일어날 수 있는 일4.6. 연기 인생의 정점4.7. 전성기4.8. 이후4.9. 슈퍼히어로를 향한 열망4.10. 서서히 드리우는 그림자4.11. 파산과 재정 위기4.12. 그럼에도 빛나는 수작4.13. 성우로서의 활약4.14. 재평가의 신호탄4.15. 현재
5. 사생활6. 한국과의 인연7. 기행8. 인터넷 밈
8.1. ''You Don't Say?"8.2. Laugh8.3. "Not the Bees!"8.4. 모든 곳에 존재하는 케이지(Nicolas Cage Everywhere)
9. 동료 배우 및 감독들의 평가10. 출연작11. 주요 수상 및 후보12. 여담

1. 개요[편집]

미국배우이자 영화 감독, 영화 제작자.

1980년대 할리우드에 혜성처럼 등장하여 90년대 전 세계적인 액션 스타로 군림했고, 2000년대 이후에는 기행과 파산, 그리고 B급 영화를 전전하는 등 그야말로 인간의 삶이 보여줄 수 있는 모든 굴곡을 다 보여주고 있는 할리우드의 전설적인 인물이다. 본명은 니콜라스 킴 코폴라(Nicolas Kim Coppola)로, 그 유명한 거장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의 조카이기도 하다. 그러나 가문의 후광을 거부하고 스스로의 힘으로 일어서기 위해 '케이지'라는 예명을 사용하며 독자적인 연기 세계를 구축했다.

그는 단순히 '유명한 배우'라는 수식어만으로는 설명이 불가능한 존재다. 아카데미 시상식 남우주연상을 거머쥐며 연기력의 정점을 찍은 '대배우'인 동시에, 인터넷 상에서는 온갖 기이한 표정과 짤방으로 소비되는 '(Meme)의 제왕'이기도 하며, 한때는 한국인 아내와 결혼하여 한국 팬들로부터 '케서방'이라는 친근한 별명을 얻기도 했던, 한국인들에게는 유독 내적 친밀감이 높은 배우 중 한 명이다.

현대 영화사에서 니콜라스 케이지라는 이름은 하나의 '현상'에 가깝다. 그는 완벽한 정극 연기부터 형용할 수 없는 광기가 서린 과잉 연기까지 극과 극을 오가며, 자신만의 독특한 연기 철학인 '누보 샤머니즘'을 전파하고 있다. 대중과 평단은 그를 두고 "할리우드 최고의 천재"와 "돈만 주면 다 찍는 다작 배우"라는 극단적인 평가를 동시에 내리지만, 그가 출연한 영화가 100여 편을 넘어가는 현재에 이르러서는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할리우드의 독보적인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했다.

2. 연기 특징[편집]

니콜라스 케이지를 단순히 '연기파 배우' 혹은 '액션 스타'라는 평범한 단어로 정의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그는 할리우드 시스템 안에서 가장 독자적인 연기 철학을 구축한 인물로 평가받는데, 본인 스스로 자신의 연기 스타일을 '누보 샤머니즘(Nouveau Shamanic)'이라 명명한 바 있다. 이는 고대 부족의 주술사가 접신(接神) 상태에서 공동체의 고통을 대신 짊어지고 표출하듯, 배우 역시 캐릭터의 내면에 잠재된 원초적인 감정을 끌어올려 관객에게 전달해야 한다는 믿음에서 기인한다.[1]

그의 연기는 사실주의(Realism)에 기반을 둔 전형적인 할리우드 메소드 연기와는 궤를 달리한다. 20세기 중반 이후 할리우드를 지배한 액터즈 스튜디오 스타일이 '최대한 실제처럼 행동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면, 케이지는 독일 표현주의 영화나 일본의 가부키, 혹은 무성 영화 시대의 과장된 몸짓에서 영감을 얻는다. 그에게 스크린은 현실을 복제하는 거울이 아니라, 인간의 뒤틀린 무의식을 투사하는 캔버스와 같다. 이러한 철학 때문에 대중에게는 이른바 '발광 연기'로 각인되어 있다.

니콜라스 케이지의 연기 중 가장 인상적인 지점은 평온함에서 광기로 넘어가는 그 찰나의 임계점이다. 인터넷 상에서 'Cage Rage'라는 용어로 통용되는 이 스타일은, 억눌려 있던 캐릭터의 감정이 한순간에 폭발하며 눈알이 튀어나올 듯 확장되고, 핏대를 세우며 고함을 지르는 파괴적인 에너지를 보여준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뱀파이어의 키스다. 영화 속에서 자신이 뱀파이어로 변하고 있다고 믿는 주인공 피터 로를 연기하며, 그는 알파벳 'ABC'를 외우는 지극히 일상적인 행위조차 기괴한 몸짓과 표정으로 승화시켰다. "I'm a vampire!"라고 울부짖는 그의 표정은 훗날 'You Don't Say?'라는 이름의 전설적인 짤방(Meme)이 되어 전 세계 커뮤니티를 지배하게 된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러한 과장된 연기가 단순히 웃기기 위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는 캐릭터가 느끼는 공포와 소외감을 극대화하기 위해 일부러 기괴한 리듬을 선택한다.

그렇다고 그가 오로지 '지르는' 연기만 잘하는 배우인가 하면 전혀 그렇지 않다. 그는 사실 누구보다 정교한 테크니션이다.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안겨준 라스베가스를 떠나며에서 그가 보여준 알코올 중독자 벤 샌더슨의 모습은 처절할 정도로 사실적이다. 술에 취해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면서도, 죽음을 향해 걸어가는 남자의 공허한 눈빛은 보는 이의 가슴을 먹먹하게 만든다. 특히 마트에서 술병들이 부딪히는 소리에 맞춰 춤을 추듯 비틀거리는 장면은 그가 캐릭터의 고통을 얼마나 깊게 체화했는지를 증명한다.

또한 어댑테이션에서는 소심하고 자의식 과잉인 시나리오 작가 '찰리 코프먼'과 자유분방한 쌍둥이 동생 '도널드'를 1인 2역으로 완벽하게 소화했다. 외형적으로는 거의 차이가 없는 두 인물을 오로지 어깨의 굽은 정도, 시선 처리, 목소리의 떨림만으로 완벽히 분리해 내는 모습은 그가 기본기가 얼마나 탄탄한 배우인지를 실감케 한다. 즉, 그는 '할 수 있는데 안 하는 것'이지, '못해서 오버하는 것'이 아니라는 소리다.

케이지는 캐릭터에 몰입하기 위해 자신의 육체를 혹사시키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초창기 작품인 버디에서는 전쟁의 상처를 입은 병사 역할을 위해 마취 없이 생니 두 개를 뽑는 기행을 저질렀고, 뱀파이어의 키스 촬영 당시에는 각본에도 없던 생바퀴벌레를 실제로 먹어 치우며 현장 스태프들을 경악하게 만들었다.[2]

이러한 육체적 헌신은 2010년대 이후 출연한 수많은 B급 영화들에서도 이어진다. 작품의 질이 낮을지언정 니콜라스 케이지의 연기 에너지는 결코 낮아지지 않는다. 맨디에서 보여준 피칠갑된 복수귀의 모습이나, 피그에서 보여준 상실감에 젖은 요리사의 연기는 그가 장르와 제작비를 불문하고 항상 캐릭터의 영혼을 붙잡기 위해 사투를 벌이고 있음을 보여준다.

에단 호크는 니콜라스 케이지를 두고 "말론 브란도 이후 연기라는 예술에서 이토록 새로운 시도를 한 배우는 없다"고 극찬했다. 그는 할리우드의 전형적인 미남 배우로 남기를 거부하고, 스스로를 기괴한 예술적 도구로 내던졌다. 누군가에게는 '과한 연기'로 보일 수 있지만, 그 '과함'이야말로 니콜라스 케이지라는 배우를 구성하는 본질이자, 그가 전 세계 수많은 시네필들에게 '성자(Saint)' 혹은 '신'으로 추앙받는 이유다.

그의 연기는 때때로 오페라 같고, 때때로 록 콘서트 같으며, 때때로 기괴한 현대 미술 같다. 확실한 것은 그가 화면에 등장하는 순간, 관객은 결코 지루할 틈이 없다는 점이다. 그것이 걸작이든 괴작이든, 케이지는 그 안에서 자신만의 '샤머니즘'을 완성해 낸다.

3. 코폴라 가문의 이단아[편집]

할리우드에는 수많은 세습 배우들이 존재하지만, 니콜라스 케이지처럼 자신의 혈통이 가진 거대한 그림자를 지우기 위해 필사적으로 발버둥 친 인물도 드물다. 그의 본명은 니콜라스 킴 코폴라(Nicolas Kim Coppola). 이름 뒤에 붙은 '코폴라'라는 성씨는 할리우드에서 단순한 성씨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그것은 마치 르네상스 시대의 메디치 가문처럼, 영화계의 정점에 군림하는 절대적인 '왕가'의 증표와도 같았기 때문이다.

그의 숙부는 설명이 필요 없는 거장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다. 대부 시리즈와 지옥의 묵시록으로 영화사를 다시 쓴 인물이 숙부라는 사실은, 신인 배우 니콜라스에게 축복이자 동시에 거대한 감옥이었다. 아버지는 문학 교수이자 비평가였던 어거스트 코폴라, 할아버지는 대부 2의 음악을 담당했던 카르민 코폴라였다. 사촌 형제들인 로만 코폴라, 소피아 코폴라, 제이슨 슈왈츠먼 등 가문 구성원 전체가 할리우드의 핵심 중추를 형성하고 있었으니, 그가 배우의 길을 걷기로 결심한 순간 '낙하산'이라는 비판은 피할 수 없는 숙명이었다.

실제로 니콜라스는 1982년 데뷔작인 리치몬드 연애 소동 촬영 당시, 본명인 '니콜라스 코폴라'를 사용했다. 하지만 현장의 분위기는 냉혹했다. 동료 배우들과 스태프들은 그가 대사를 실수하거나 조금만 서툰 모습을 보여도 "코폴라의 조카라서 저 모양이냐", "삼촌 덕에 배역 딴 거 아니냐"라며 대놓고 수군거렸다.[3] 가문의 이름이 주는 무게감은 10대 소년이었던 그가 감당하기엔 너무나 무거웠고, 이는 곧 그의 연기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결단 중 하나로 이어진다.
"내 연기가 아닌 내 성씨를 보러 오는 사람들을 견딜 수 없다."

결국 그는 데뷔 이듬해인 1983년, 과감하게 성을 '케이지(Cage)'로 개명한다. 이는 당시 그가 심취해 있던 두 명의 영웅으로부터 따온 것이다. 첫 번째는 마블 코믹스의 흑인 슈퍼히어로인 루크 케이지다. 사회의 하층민에서 영웅으로 거듭나는 루크 케이지의 강인함과 독립적인 이미지는 젊은 니콜라스에게 큰 영감을 주었다.[4] 두 번째는 전위 예술 음악가인 존 케이지였다. 정형화된 틀을 깨고 침묵조차 음악이 될 수 있음을 증명한 존 케이지의 실험 정신은, 훗날 니콜라스가 보여줄 파격적인 '누보 샤머니즘' 연기법의 사상적 토대가 되었다.

성을 바꾼 직후 그는 숙부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가 연출하는 럼블 피쉬 오디션에 참여했다. 재미있는 점은 숙부인 프란시스조차 조카가 성을 바꾼 사실을 처음엔 탐탁지 않게 여겼다는 것이다. 숙부는 "코폴라라는 이름이 부끄럽냐"고 물었으나, 니콜라스는 "아니요, 내 이름으로 서고 싶을 뿐입니다"라고 단호하게 답했다. 결국 그는 친척이라는 특혜 없이 오디션을 통해 배역을 따냈고, 촬영장에서도 감독의 조카가 아닌 '배우 니콜라스 케이지'로서 존재하기 위해 남들보다 두세 배는 더 치열하게 임했다.

이러한 독립 선언은 결과적으로 신의 한 수가 되었다. 만약 그가 코폴라라는 성을 유지했다면, 그는 아마도 숙부의 영화에 자주 얼굴을 비추는 '조연급 친척 배우'에 머물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가문의 후광을 스스로 걷어차고 나옴으로써, 할리우드 시스템 외부에서 자신만의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할 수 있었다. 그가 90년대에 거머쥔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은 코폴라 가문의 영광이 아닌, 오로지 '케이지'라는 이름의 광기와 노력이 만들어낸 결실이었다.

물론 그가 가문을 완전히 등진 것은 아니다. 그는 여전히 코폴라 가문의 일원으로서 가족 행사에 참여하며 숙부와 사촌들을 존경하지만, 스크린 위에서만큼은 철저하게 고독한 '케이지'로 남기를 원했다. 이러한 배경은 그에게 독특한 이중성을 부여했다. 할리우드 최상류층의 세련된 감각을 태생적으로 갖추고 있으면서도, 동시에 밑바닥 정서와 비주류의 광기를 완벽하게 이해하는 배우가 된 것이다. 이는 그가 라스베가스를 떠나며의 알코올 중독자부터 내셔널 트레져의 지적인 역사학자까지 극단적인 스펙트럼을 오갈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

결론적으로 '코폴라'를 버리고 '케이지'를 선택한 사건은 단순한 개명이 아니라, 한 예술가가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해 벌인 일종의 성인식이었다. 그는 금수저라는 안락한 의자를 차버리고 가시밭길을 택했으며, 그 결과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자신만의 '케이지 스타일'을 완성했다. 그리고 현재, 그는 가문의 그늘에서 벗어난 정도가 아니라 오히려 가문의 이름 없이도 할리우드를 상징하는 고유 명사가 되었다.

4. 활동[편집]

4.1. 데뷔 초기[편집]

케이지의 커리어 서막은 화려한 금수저의 레드카펫과는 거리가 멀었다. 비록 아버지가 비교문학 교수인 어거스트 코폴라이고 숙부가 거장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였지만, 그는 자신의 정체성을 스스로 확립하기 위해 가문의 성을 버리기 전부터 처절한 무명 시절을 견뎌냈다. 이 시기의 케이지는 우리가 아는 '광기 어린 배우'라기보다는, 어떻게든 할리우드라는 거대한 시스템에 발을 들이기 위해 발버둥 치던 열정 넘치는 청년 지망생에 가까웠다.

그의 공식적인 영화 데뷔작은 1982년작인 리치몬드 연애 소동(Fast Times at Ridgemont High)이다. 이 영화는 80년대 하이틴 영화의 고전이자, 훗날 할리우드를 이끌어갈 수많은 스타들(숀 펜, 제니퍼 제이슨 리, 포레스트 휘태커, 저지 라인홀드 등)을 배출한 전설적인 작품이기도 하다. 하지만 당시 '니콜라스 코폴라'라는 본명으로 출연했던 그는 주연급은커녕 대사 한 줄 제대로 받기 힘든 단역에 불과했다. 극 중 그가 맡은 역할은 주인공 브래드(저지 라인홀드 분)의 직장인 햄버거 가게 동료 '브래드의 친구 1' 정도였다.

재미있는 점은 이 단역 시절에도 케이지 특유의 '남다른 에너지'가 포착되었다는 것인데, 정작 본인에게 이 영화는 꽤나 고통스러운 기억으로 남아 있다. 당시 촬영장에서 동료 배우들은 그가 코폴라 감독의 조카라는 사실을 알고 "아침 식사로 대부의 대사를 외우느냐"는 식의 조롱을 일삼았기 때문이다.[5] 그는 훗날 인터뷰에서 이 시절을 회상하며, 촬영장에서 받은 차별과 시샘 때문에 점심시간에 혼자 차 안에서 눈물을 흘린 적도 있었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리치몬드 연애 소동 이후 그는 TV 영화인 베스트 오브 타임즈(Best of Times, 1981) 등에 출연하며 경력을 이어가려 애썼다. 이 시기의 니콜라스는 전형적인 '할리우드 미남'과는 거리가 먼, 어딘가 우울해 보이면서도 불완전한 소년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다. 그는 당시 유행하던 '랫 팩(Rat Pack)'[6]의 전형적인 일원이 되기보다는, 좀 더 실험적이고 내면적인 연기에 갈증을 느끼고 있었다.

특히 그는 오디션장에서조차 비범했는데, 배역을 따내기 위해 캐릭터에 완전히 몰입한 채로 나타나 심사위원들을 당황하게 만들기 일쑤였다. 예를 들어, 한 오디션에서는 거친 반항아 역할을 소화하기 위해 가죽 자켓을 입고 실제로 화를 내며 들어오는 바람에 감독이 겁을 먹었다는 일화도 전해진다. 이러한 과격한 몰입 방식은 훗날 그가 정립할 '누보 샤머니즘' 연기론의 맹아(萌芽)가 이 시기부터 이미 싹트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그는 단순히 배역을 기다리는 것에 그치지 않고, 영화라는 매체 자체를 공부하기 위해 수천 편의 고전 영화를 탐독했다. 무성 영화 시대 배우들의 과장된 몸짓부터 독일 표현주의 영화의 기괴한 미장센까지, 그는 주류 할리우드 배우들이 따르던 사실주의 연기법과는 궤를 달리하는 독특한 자양분을 스스로 섭취하고 있었다.

케이지의 초창기는 '코폴라'라는 거대한 성벽을 허물고 '케이지'라는 자신만의 성을 쌓기 위해 기초 공사를 하던 시기라고 할 수 있다. 비록 리치몬드 연애 소동의 크레딧에서는 그를 찾기 힘들 정도로 비중이 작았지만, 그 작은 틈바구니에서 느꼈던 소외감과 열등감은 훗날 그를 할리우드 역사상 가장 독창적인 에너지를 뿜어내는 배우로 성장시키는 원동력이 되었다.

케이지는 앞서 언급했듯 가문의 후광을 거부하고 성까지 바꿨지만, 역설적으로 그의 초기 연기 세계를 가장 격렬하게 단련시킨 장소는 다름 아닌 숙부의 촬영 현장이었다. 1983년작 럼블 피쉬와 1984년작 코튼 클럽은 니콜라스 케이지라는 원석이 거장의 엄격한 통제 아래서 어떻게 자신의 광기를 정제하고, 동시에 '코폴라'라는 거대한 성벽 안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 고뇌했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시기다.

아웃사이더와 함께 S.E. 힌턴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럼블 피쉬에서 케이지는 주인공 '러스티 제임스'(맷 딜런 扮)의 친구인 '스모키' 역을 맡았다. 이 영화는 코폴라 감독이 자신의 예술적 야심을 투영해 만든 탐미적인 흑백 영화였는데, 케이지에게 이 현장은 배움의 장인 동시에 지옥이나 다름없었다.

당시 케이지는 숙부에게 인정받고 싶다는 욕구와, 조카라는 이유로 특혜를 받는다는 시선을 견뎌야 하는 이중고에 시달렸다. 숙부 프란시스는 현장에서 그를 '니콜라스'라고 부르는 대신 "코폴라"라고 부르며 더욱 엄격하게 몰아붙였고, 이는 케이지의 내면에 잠재되어 있던 반항적인 에너지를 끌어내는 기폭제가 되었다. 스모키라는 캐릭터 자체는 비중이 아주 크지는 않았지만, 케이지는 특유의 날카로운 눈빛과 어딘가 불안정한 제스처를 통해 단순한 '친구 A' 이상의 존재감을 뿜어냈다.

특히 이 영화의 촬영 경험은 케이지에게 '영화는 시각적 시(Visual Poetry)가 될 수 있다'는 깨달음을 주었다. 그는 흑백 화면 속에서 자신의 얼굴이 어떻게 조명을 받고 그림자가 지는지에 대해 병적으로 집착하기 시작했는데, 이는 훗날 그가 보여주는 표현주의적 연기의 기틀이 되었다.[ 실제로 그는 촬영 쉬는 시간에도 거울을 보며 조명에 따른 근육의 움직임을 연구했다고 전해진다.]

이듬해 제작된 코튼 클럽은 케이지에게 더 큰 시련이자 기회였다. 1930년대 할렘의 전설적인 클럽을 배경으로 한 이 대작 뮤지컬/범죄 영화에서 케이지는 주인공 '딕시 드와이어'(리처드 기어 扮)의 동생인 '빈센트 드와이어' 역을 맡았다. 빈센트는 형의 그늘에서 벗어나 암흑가의 거물이 되고 싶어 하는, 야망에 눈먼 폭력적인 인물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실제 생활에서도 리처드 기어라는 대스타의 동생 역을 수행하면서 숙부 프란시스의 지휘를 받아야 했던 케이지의 상황이 극 중 빈센트의 처지와 묘하게 닮아 있었다는 점이다. 케이지는 이 역할을 위해 소위 말하는 '미친놈 연기'의 프로토타입을 선보인다. 총을 휘두르며 폭주하는 그의 모습은 당시 정형화된 할리우드의 연기 톤과는 궤를 달리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촬영 현장은 순탄치 않았다. 제작비 폭등과 시나리오 수정이 반복되는 혼돈 속에서 숙부 프란시스와 조카 니콜라스의 갈등은 극에 달했다. 일설에 따르면, 케이지의 연기가 너무 과하다고 판단한 숙부가 그를 강하게 질책하자, 케이지는 자신의 트레일러를 때려 부수는 등 실제 영화 속 캐릭터와 혼동될 정도의 격렬한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7]

이 시기를 거치며 케이지는 숙부에게 "나는 당신의 도구가 아니라, 나만의 예술을 하는 배우다"라는 메시지를 연기로 증명해 보였다. 실제로 코튼 클럽 이후 그는 한동안 숙부와의 작업을 자제하며 자신만의 독자적인 필모그래피를 쌓는 데 주력한다.

숙부의 품을 떠나 야생으로 나갈 준비를 마친 이 청년 배우는, 이제 80년대 할리우드에서 가장 기이하고도 매력적인 '문제아'로 불릴 준비를 마친 셈이었다.

4.2. 버디에서 보여준 자학적 메소드 연기[편집]

1984년작 버디는 케이지의 필모그래피에서 단순한 출연작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이 영화는 그가 단순한 '코폴라 가문의 조카'나 '흔한 청춘 스타'가 아니라, 배역을 위해서라면 자신의 육체와 정신을 극한까지 몰아붙일 준비가 된 무서운 신인임을 할리우드 각인시킨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앨런 파커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이 작품에서 케이지는 월남전의 참화 속에서 신체적, 정신적 외상을 입은 '알 콜롬보' 역을 맡아, 조준점 없는 광기와 처절한 우정의 경계를 넘나드는 연기를 선보였다.

이 시기 케이지에 대해 가장 널리 알려진, 그리고 그를 '기행을 일삼는 메소드 배우'의 반열에 올리게 된 전설적인 일화가 바로 이 작품에서 탄생한다. 극 중 알은 월남전에서 폭발 사고를 당해 얼굴에 큰 부상을 입고 붕대를 감고 생활하는 설정이었는데, 케이지는 부상당한 군인의 고통과 불편함을 사실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마취도 하지 않은 채 생니 두 개를 뽑아버렸다.[8]

당시 그의 나이는 불과 20세였다. 주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그는 "붕대를 감았을 때 얼굴의 비대칭적인 느낌과 실제 통증이 주는 예민함이 캐릭터를 완성할 것"이라며 고집을 꺾지 않았다. 실제로 영화 속에서 붕대를 칭칭 감고 고통스러워하는 그의 모습은 단순한 분장의 힘이 아니라, 실제 생니를 뽑아낸 뒤 잇몸이 아물지 않은 상태에서 오는 실시간의 통증이 투영된 결과물이었다. 이러한 자학에 가까운 몰입은 훗날 크리스찬 베일이나 샤이아 라보프 같은 후배 배우들이 보여준 극한의 신체 변화 연기의 선구자 격인 행보였다고 볼 수 있다.

버디에서 케이지가 맡은 '알'은 새가 되고 싶어 하는 친구 버디(매튜 모딘 분)를 현실 세계로 끌어내려 애쓰는 인물이다. 전쟁으로 인해 외모가 망가진 알은, 정신이 망가져버린 친구를 보며 자신의 상처보다 더 큰 비극을 마주한다. 여기서 케이지는 자칫 평면적일 수 있는 '의리 있는 친구' 캐릭터에 특유의 불안정함을 덧입혔다.

그는 5주 동안 얼굴에 붕대를 감고 생활하며 타인과 소통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과정을 몸소 체험했다. 이 과정에서 피부가 짓무르고 염증이 생기는 부작용까지 겪었으나, 그는 오히려 이를 반겼다. 붕대 때문에 표정을 마음껏 쓸 수 없는 제약 속에서도, 그는 오직 눈빛과 목소리의 떨림만으로 전쟁터에서 돌아온 청년의 상실감을 완벽하게 구현해냈다. 특히 병동에서 버디를 붙잡고 오열하며 "너마저 이러면 안 된다"라고 절규하는 장면은, 그가 가진 폭발적인 감정선의 원형을 보여준다.

이 작품을 통해 평단은 니콜라스 케이지를 다시 보기 시작했다. 숙부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의 그늘에서 벗어나기 위해 이름을 바꿨던 그가, 이제는 이름이 아닌 연기 그 자체로 자신의 존재 가치를 증명해낸 것이다. 칸 영화제 심사위원 특별상을 수상한 이 영화의 성취에는 매튜 모딘의 정적인 연기와 완벽한 대비를 이룬 케이지의 동적인 에너지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하지만 동시에 이 작품은 케이지에게 일종의 '낙인'이 되기도 했다. 배역에 과도하게 몰입하여 자신을 학대하는 그의 스타일은 제작자들에게 "통제하기 어려운 배우"라는 인상을 심어주기도 했고, 이후 그가 선택하게 되는 수많은 기괴한 캐릭터들의 시발점이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버디에서의 열연은 그가 훗날 라스베가스를 떠나며로 정점에 오르기 전까지, 그가 가진 연기 스펙트럼의 깊이가 어디까지인지를 가늠하게 해준 소중한 지표로 남았다.

4.3. 페기 수 결혼하다문스트럭의 대성공[편집]

80년대 중반까지 니콜라스 케이지의 행보는 다분히 실험적이고 자학적이었다. 하지만 1986년과 1987년, 그는 대중문화 역사에 남을 두 편의 영화를 통해 할리우드의 주류 '로맨틱 리드(Romantic Lead)'로 급부상하게 된다. 재미있는 점은 이 시기에도 그는 평범한 로맨틱 연기를 거부하고, 자신만의 독특한 캐릭터 해석을 덧입혀 관객들에게 기묘한 매력을 선사했다는 점이다.

페기 수 결혼하다는 숙부인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과 재회한 작품이라는 점에서 큰 화제를 모았다. 40대의 여인이 고교 시절로 타임슬립한다는 이 로맨틱 판타지에서 케이지는 여주인공 페기 수(캐슬린 터너 분)의 철없는 남편이자 첫사랑인 '찰리 보델' 역을 맡았다.

이 영화에서 케이지가 보여준 연기는 당시 제작진과 동료 배우들에게 엄청난 충격을 안겨주었다. 그는 찰리 보델이라는 인물을 표현하기 위해 만화 캐릭터 구피를 연상시키는 비정상적으로 높은 톤의 코맹맹이 소리(Nasal Voice)를 설정해 왔기 때문이다.[ 실제 주연 배우였던 캐슬린 터너는 케이지의 이 목소리 설정을 끔찍하게 싫어했고, 촬영 내내 그와 불화가 있었다는 후문이 유명하다. 터너는 훗날 자서전에서 "그의 연기는 재앙이었다"고 회고하기도 했으나, 정작 영화가 개봉한 뒤 평단은 케이지의 그 기묘한 목소리가 10대의 불안정함과 순수함을 동시에 보여줬다며 호평했다.]

숙부인 코폴라 감독조차 촬영 초반에 목소리를 바꿀 것을 권유했으나, 케이지는 "이것이 찰리 보델의 영혼"이라며 고집을 꺾지 않았다. 결국 이 고집은 적중했다. 영화는 흥행에 크게 성공했고, 케이지는 단순히 '잘생긴 반항아' 이미지에 갇혀있던 청춘 스타들과는 궤를 달리하는, '캐릭터를 창조하는 배우'로서의 입지를 굳히게 된다.

케이지의 80년대 커리어에서 단 하나의 정점을 꼽으라면 단연 문스트럭이다. 거장 노만 주이슨이 연출하고 당대 최고의 팝 스타 셰어가 주연을 맡은 이 영화에서, 케이지는 형의 약혼녀와 사랑에 빠지는 외팔이 제빵사 '로니 카마레리' 역을 맡았다.

이 영화에서 케이지는 말 그대로 '광기 어린 로맨티시즘'이 무엇인지 온몸으로 증명한다. 사고로 손을 잃은 뒤 비관론에 빠져 살던 로니가 셰어(로레타 역)를 향해 쏟아내는 고백 장면은 지금도 로맨틱 코미디 장르의 전설적인 명장면으로 회자된다.
"로레타, 사랑은 모든 것을 부수고 마음을 갈기갈기 찢어놓는 거야! 사랑은 우리를 망가뜨리지만, 그래도 우린 사랑을 해야 해!"

이 대사를 뱉을 때 케이지의 눈빛은 로맨스 영화의 주인공이라기보다 흡사 셰익스피어 비극의 주인공 같은 장엄함마저 느껴진다. 셰어는 처음 캐스팅 단계에서 케이지를 탐탁지 않아 했으나[9], 케이지의 오디션 테이프를 본 뒤 "이 남자와 연기하지 않으면 나도 안 하겠다"고 선언할 정도로 그의 잠재력에 매료되었다고 한다.

문스트럭은 평단과 흥행 모두에서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으며,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주요 부문을 휩쓸었다. 비록 케이지 본인은 남우주연상 후보에 그쳤지만(셰어는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이 작품을 통해 그는 할리우드에서 '섹시하면서도 위태롭고, 폭발적인 에너지를 가진 주연급 배우'로 완전히 인정받게 된다.

이 시기의 케이지가 특별했던 이유는, 당시 유행하던 브랫 팩(Brat Pack) 스타일의 매끈한 청춘 스타들과는 전혀 다른 길을 걸었기 때문이다. 그는 잘생긴 얼굴을 망가뜨리는 표정을 짓는 데 주저함이 없었고, 감정의 과잉을 오히려 예술적 도구로 활용했다.

페기 수 결혼하다에서의 기괴한 목소리와 문스트럭에서의 거친 야수성은 대중들에게 "저 배우는 예측 불가능하다"는 인상을 강하게 심어주었다. 이는 훗날 그가 90년대에 액션 영화와 작가주의 영화를 종횡무진하며 활약할 수 있는 자양분이 되었으며, 여성 관객들에게는 '보호본능을 자극하면서도 언제 터질지 모르는 위험한 남자'라는 독보적인 섹시 심벌로서의 이미지를 각인시켰다.

80년대 후반의 이 로맨틱한 행보들은 케이지가 단순히 가문의 배경으로 데뷔한 낙하산이 아니라, 자신만의 확고한 연기 철학(훗날의 누보 샤머니즘으로 이어지는)을 가진 완성형 배우임을 증명한 과정이었다. 그는 사랑을 노래하면서도 그 안에 숨겨진 고통과 뒤틀린 욕망을 포착해냈고, 이는 할리우드 로맨틱 코미디 역사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독특한 캐릭터들의 탄생으로 이어졌다.

4.4. 컬트의 제왕[편집]

1990년에 접어들며 니콜라스 케이지는 단순한 '라이징 스타'를 넘어, 할리우드에서 가장 예측 불가능한 '컬트적 아이콘'으로 변화하기 시작한다. 그 결정적인 계기가 된 작품이 바로 포스트모더니즘 영화의 거장 데이비드 린치 감독과 함께한 광란의 사랑(Wild at Heart)이다. 이 시기의 케이지는 자신의 내면에 잠재되어 있던 파괴적인 에너지를 예술적 광기로 승화시키며, 평단과 대중 모두에게 강렬한 충격을 안겨주었다.

당시 데이비드 린치는 블루 벨벳의 성공으로 전 세계적인 주목을 받고 있었고, 니콜라스 케이지는 자신만의 독특한 연기 세계를 구축할 수 있는 돌파구를 찾고 있었다. 린치는 케이지의 눈빛에서 나오는 불안정한 에너지와 폭발적인 잠재력을 간파했고, 그에게 주인공 '세일러 리플리' 역을 맡긴다.

세일러는 린치 특유의 기괴하고 환상적인 세계관 속에서 유일하게 뜨겁게 살아 숨 쉬는 인물이었다. 케이지는 이 역할을 위해 본인이 소장하고 있던 뱀피 재킷을 직접 의상으로 제안했는데, 극 중 세일러는 이 재킷을 두고 "이것은 나의 개성과 개인적 자유의 상징이다(This is a snakeskin jacket! And for me it's a symbol of my individuality, and my belief in personal freedom.)"라는 대사를 반복하며 캐릭터의 정체성을 공고히 한다.[ 이 대사는 훗날 케이지의 필모그래피 전체를 관통하는 철학적인 문구로 남게 된다.]

이 영화에서 케이지의 연기는 마치 잘 조율되지 않은 악기가 내는 가장 높은 음역대의 소음과도 같았다. 그는 연인 룰라(로라 던 분)를 향한 지독한 사랑과 자신을 압박하는 세상에 대한 폭력성을 동시에 표출하며, 기존 할리우드 남성 배우들이 보여주지 못한 '연약하면서도 위험한' 마초상을 제시했다. 결과적으로 광란의 사랑은 제43회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하며 케이지를 세계적인 시네아스트들이 주목하는 배우의 반열에 올려놓는다.

여기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지점은 니콜라스 케이지의 엘비스 프레슬리에 대한 집착에 가까운 경외심이다. 광란의 사랑에서 케이지가 연기한 세일러는 외형부터 말투, 행동 거지 하나하나가 엘비스를 오마주하고 있다. 극 중 세일러가 룰라를 위해 'Love Me Tender'를 부르는 장면은 케이지의 필모그래피 중 가장 로맨틱하면서도 기이한 명장면으로 꼽힌다.

케이지에게 엘비스는 단순한 롤모델 그 이상이었다. 그는 엘비스의 무대 위 퍼포먼스에서 '샤머니즘적 에너지'를 발견했고, 이를 자신의 연기론인 '누보 샤머니즘'에 적극적으로 도입했다. 실제로 그는 훗날 엘비스 프레슬리의 딸인 리사 마리 프레슬리와 결혼하며 성덕(...)의 끝판왕을 보여주기도 했으나, 이 결혼 생활은 엘비스라는 거대한 우상 아래서 길게 이어지지 못했다.

흥미로운 점은 케이지가 엘비스를 흉내 내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가 가진 '아이콘으로서의 무게'를 자신의 연기에 흡수했다는 점이다. 그는 대중문화의 상징이 된 인물이 느끼는 고립감과 그 속에서 터져 나오는 과잉된 감정들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는 배우였다. 이러한 이해도는 훗날 그가 수많은 밈(Meme)의 주인공이 되었을 때, 그것을 단순히 조롱으로 여기지 않고 예술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유연한 태도의 밑바탕이 되기도 했다.

광란의 사랑 이후 케이지는 상업적인 성공이 보장된 길보다는 자신의 연기 실험을 이어갈 수 있는 작품들을 선택했다. 이 시기 그는 단순히 멋있게 보이는 배우가 되기를 거부했다. 오히려 그는 망가지고, 일그러지며, 관객들을 불편하게 만드는 연기에 희열을 느끼는 듯 보였다.

그의 이러한 성향은 90년대 초반 필모그래피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그는 정극과 코미디, 그리고 장르를 규정하기 힘든 괴작들 사이를 자유롭게 유영하며 자신의 연기 스펙트럼을 무한히 확장했다. 린치와의 작업은 케이지에게 "영화는 현실의 모사가 아니라, 꿈과 무의식의 발현"이라는 확신을 주었고, 이는 훗날 그가 페이스 오프어댑테이션 같은 작품에서 보여줄 다층적인 연기의 자양분이 되었다.

당시 평론가들은 그를 두고 "할리우드에서 가장 위험한 도박을 즐기는 배우"라고 평했다. 정형화된 연기 문법을 파괴하고, 현장에서 즉흥적으로 튀어나오는 본능적인 감각을 믿었던 그는 이 시기를 거치며 자신만의 독보적인 영역, 즉 '케이지 스타일'을 완성하게 된다.

4.5. 허니문 인 베가스당신에게 일어날 수 있는 일[편집]

케이지의 커리어를 논할 때 흔히 '광기'나 '액션'에만 집중하는 경향이 있으나, 사실 90년대 초반 그는 할리우드에서 가장 각광받는 로맨틱 코미디의 주연 배우 중 한 명이었다. 이 시기의 케이지는 특유의 억울해 보이는 눈매와 비음이 섞인 말투를 활용해, 상황에 휘말리는 평범한 남자의 당혹감을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는다. 특히 이 섹션에서 다룰 두 작품은 그가 아카데미 시상식의 중압감이나 블록버스터의 화력에 몸을 던지기 전, 가장 대중적이고 친근한 매력을 뽐내던 시절의 정수라 할 수 있다.

1992년 개봉한 허니문 인 베가스(Honeymoon in Vegas)는 케이지의 코미디 감각이 최고조에 달했던 작품이다. 극 중 그는 결혼 공포증이 있는 주인공 '잭 싱어' 역을 맡았는데, 도박판에서 예비 신부(사라 제시카 파커 분)를 담보로 내걸었다가 잃게 되는 황당한 상황을 연기한다. 여기서 케이지는 단순히 웃기는 것을 넘어, 자신이 저지른 실수 때문에 자아붕괴 직전까지 몰린 인간의 처절한 심리 상태를 '코믹한 신경질'로 승화시킨다.

이 영화는 케이지의 개인적인 취향이 강하게 투영된 작품이기도 하다. 주지하다시피 그는 엘비스 프레슬리의 광팬인데[10], 영화 후반부 수십 명의 엘비스 대역들이 스카이다이빙을 하는 '플라잉 엘비스(Flying Elvises)' 시퀀스는 영화사에서 손꼽히는 기괴하고도 유쾌한 명장면이다. 케이지 본인 역시 엘비스 복장을 하고 베가스 시내를 누비는데, 이때 보여주는 특유의 엉거주춤한 자세와 경악하는 표정은 그가 왜 코미디 영화 감독들이 사랑하는 배우였는지를 여실히 증명한다.

이 영화로 그는 골든 글로브 뮤지컬/코미디 부문 남우주연상 후보에 오르며, 그가 단순히 '이상한 연기를 잘하는 배우'가 아니라 '상업적인 로맨틱 코미디를 이끌어갈 수 있는 스타'임을 전 세계에 각인시켰다.

1994년작인 당신에게 일어날 수 있는 일(It Could Happen to You)은 케이지가 보여준 가장 순수하고 따뜻한 면모를 담고 있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 영화에서 그는 정직한 경찰관 '찰리 랭' 역을 맡았다. 팁을 줄 돈이 없어 식당 종업원(브리짓 폰다 분)에게 "복권이 당첨되면 당첨금의 절반을 주겠다"라고 약속하고, 실제로 400만 달러에 당첨되자 그 약속을 지키는 바보 같을 정도로 착한 인물이다.

이전까지의 케이지가 '미친자'나 '광기에 찬 인물'을 연기했다면, 이 작품에서는 세상 어디에도 없을 법한 '선한 이웃'의 얼굴을 보여준다. 탐욕스러운 아내와 대비되는 그의 소박한 미소는 관객들에게 깊은 위로를 주었으며, 니콜라스 케이지라는 배우가 가진 스펙트럼이 얼마나 넓은지를 보여주는 사례가 되었다. 극 중 복권 당첨 사실을 알고 당황하면서도 기뻐하는 리액션은, 이후 그가 보여줄 폭발적인 연기들과는 정반대 지점에 있는 '억제된 생활 연기'의 정점이라 할 수 있다.

브리짓 폰다와의 케미는 역대 할리우드 로코 중에서도 상당히 담백하고 아름다운 편에 속한다. 대중은 이 영화를 통해 케이지를 '결혼하고 싶은 다정한 남자'로 인식하기 시작했고, 이는 그가 훗날 더 록 같은 액션 영화에서 '가족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평범한 지식인' 캐릭터를 맡았을 때 관객들이 쉽게 몰입할 수 있게 만드는 기초 자산이 되었다.

이 시기 니콜라스 케이지가 보여준 코미디적 재능은 훗날 그의 '발광 연기'가 단순한 소음으로 치부되지 않게 만드는 중요한 완충제 역할을 했다. 그는 유머러스한 상황 속에서도 캐릭터의 진심을 담아내는 법을 알고 있었고, 관객들은 그가 아무리 비상식적인 행동을 해도 그 캐릭터의 '인간적인 허당기' 때문에 그를 미워할 수 없게 되었다.

그의 코미디 행보는 그를 '연기 잘하는 괴짜'에서 '누구나 좋아하는 대중 스타'로 탈바꿈시킨 결정적인 전환점이었다. 만약 그가 이 시기에 로맨틱 코미디로 대중성을 확보하지 못했다면, 이후의 아카데미 수상이나 액션 블록버스터로의 성공적인 진입은 훨씬 더 험난했을지도 모른다. 이 당시의 필모그래피는 현재의 '밈 제조기'로서의 케이지 이전에, 할리우드가 가장 사랑했던 '스윗한 니콜라스'가 존재했음을 상기시켜 주는 기록들이다.

4.6. 연기 인생의 정점[편집]

1995년작 라스베가스를 떠나며(Leaving Las Vegas)는 단순한 '성공작' 그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이는 그가 80년대부터 쌓아온 '광기 어린 연기'와 '샤머니즘적 접근법'이 가장 정제되고 처절한 형태로 폭발한 순간이었으며, 할리우드 역사상 가장 완벽한 알코올 중독자 연기로 손꼽히는 기록이다.[11]

영화에서 케이지가 맡은 역할인 '벤 샌더슨'은 모든 것을 잃고 알코올 중독에 빠져, 문자 그대로 '술을 마셔 죽기 위해' 라스베가스로 떠나는 할리우드 시나리오 작가다. 케이지는 이 역할을 단순히 술에 취한 척하는 연기가 아니라, 영혼 자체가 에탄올에 절여진 인간의 형상으로 구현해냈다. 그는 촬영 전 실제로 아일랜드의 한 술집에서 지인과 함께 폭음을 하며 자신의 행동을 비디오로 녹화해 연구했다. 술에 취했을 때 나타나는 특유의 느릿한 발음, 초점 없는 눈빛, 그리고 예기치 않게 터져 나오는 공격성과 비굴함을 철저하게 해부한 것이다.

특히 영화 초반부 마트에서 술 카트를 밀며 춤을 추듯 노래하는 장면이나, 바들바들 떨리는 손으로 술잔을 입에 가져다 대는 장면은 관객들에게 불쾌감을 넘어선 경외감을 불러일으킨다. 케이지는 벤 샌더슨이라는 인물이 가진 '자기 파괴적 낭만주의'를 포착했다. 그는 단순히 알코올에 중독된 것이 아니라, 삶의 의지를 상실한 인간이 선택할 수 있는 가장 탐미적인 자살 방식을 연기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보여준 그의 눈빛은 이전의 '발광 연기'와는 결이 다른, 공허함과 슬픔이 깊게 배어 있는 것이었다.

케이지는 이 역할을 위해 실제 알코올 중독자들을 만나 그들의 경험담을 들었을 뿐만 아니라, 촬영 기간 내내 극단적인 신체 조절을 감행했다. 그는 술에 절어 푸석해진 피부와 충혈된 눈을 유지하기 위해 수면을 조절했고, 촬영장에서조차 벤 샌더슨의 우울한 정서를 유지하기 위해 고립된 상태를 자처했다. 상대역인 '세라'를 연기한 엘리자베스 슈와의 호흡 또한 환상적인데, 케이지의 통제 불능에 가까운 에너지를 슈가 포용하듯 받아내면서 영화의 정서적 깊이가 완성되었다.

그는 벤이 술에 취해 길바닥에 쓰러지거나 성매매 여성들과 엮이는 장면들에서 자존감이 완전히 무너진 인간의 민낯을 가감 없이 보여주었다. 특히 병을 따지 못해 오열하거나, 술기운에 정신을 잃어가면서도 끝내 술을 놓지 못하는 장면들은 니콜라스 케이지라는 배우가 얼마나 넓은 스펙트럼의 감정을 소화할 수 있는지를 증명했다. 이는 훗날 그가 보여줄 '밈'화 된 광기와는 차원이 다른, 진정성 있는 '메소드 연기'의 정수였다.

이러한 노력은 평단과 대중의 만장일치에 가까운 찬사를 이끌어냈다. 1996년 제68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니콜라스 케이지는 숀 펜(데드 맨 워킹), 안소니 홉킨스, 리차드 드레이퓨스(홀랜드 오퍼스), 마시모 트로이시(일 포스티노)라는 쟁쟁한 후보들을 제치고 당당히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수상 소감에서 그는 "이 트로피를 통해 제가 연기하는 방식이 틀리지 않았음을 인정받은 것 같다"며 감격스러운 소회를 밝히기도 했다.

이 수상은 니콜라스 케이지 인생의 가장 빛나는 정점이었다. 30대 초반의 젊은 나이에 연기자로서 최고의 영예를 안은 그는, 더 이상 '코폴라의 조카'가 아닌 '대배우 니콜라스 케이지'로 확고히 자리매김하게 된다. 또한 이 시기에 받은 골든 글로브, 미국 배우 조합상(SAG), 전미 비평가 협회상 등 주요 시상식의 남우주연상 싹쓸이는 그가 당대 할리우드에서 연기력으로는 적수가 없음을 확인시켜 주었다.[12]

역설적이게도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수상은 그의 커리어를 전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틀어버리는 계기가 되었다. 최고의 연기파 배우라는 타이틀을 얻자마자, 그는 마치 세상을 조롱하듯 다음 행보로 블록버스터 액션 영화인 더 록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대중은 "오스카를 받은 배우가 왜 갑자기 근육질 액션 영화에 나오는가?"라며 의구심을 표했지만, 케이지는 보란 듯이 액션 장르에서도 자신만의 '정서적 깊이가 있는 영웅상'을 만들어내며 90년대 후반 액션 전성기를 열게 된다.

라스베가스를 떠나며의 성공은 니콜라스 케이지에게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권력'을 주었다. 그는 이 영화를 통해 얻은 신뢰를 바탕으로 실험적인 예술 영화와 거대 자본이 투입된 상업 영화 사이를 자유자재로 오가는 할리우드 유일무이한 포지션을 구축하게 된다. 만약 벤 샌더슨이라는 캐릭터가 없었다면, 오늘날 우리가 아는 변화무쌍하고 종잡을 수 없는 케이지의 예술 세계도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전까지의 그가 라스베가스를 떠나며로 대표되는 '고뇌하는 예술가' 혹은 광란의 사랑 같은 '컬트적인 반항아' 이미지에 머물렀다면, 1996년작 더 록은 그를 명실상부한 할리우드 A급 블록버스터 스타로 급부상시킨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특히 이 영화는 당대 최고의 마이더스의 손으로 불리던 제작자 제리 브룩하이머와 '파괴의 미학' 마이클 베이 감독, 그리고 영국 연기파의 자존심 숀 코너리가 만난 기념비적인 프로젝트였다.

사실 캐스팅 단계에서 니콜라스 케이지의 기용은 상당한 도박으로 여겨졌다. 당시만 해도 액션 영화의 주인공은 아놀드 슈워제네거실베스터 스태틀론처럼 근육질의 외형을 가졌거나, 혹은 브루스 윌리스처럼 거친 마초미를 풍기는 인물들이 독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브룩하이머는 기존의 정형화된 액션 영웅 대신, 사건에 휘말린 '평범한(?) 전문직 종사자'가 겪는 당혹감과 긴장감을 표현할 배우를 원했고, 그 적임자로 케이지를 낙점했다.

케이지가 연기한 '스탠리 굿스피드'는 FBI의 화학무기 전문가로, 총보다는 시험관이 익숙한 인물이다. 케이지는 이 캐릭터에 특유의 신경질적이면서도 지적인 에너지를 불어넣었다. 영화 초반, 비틀즈의 희귀 LP를 배송받으며 즐거워하다가 갑작스럽게 테러 진압 작전에 투입되는 그의 모습은 관객들에게 신선한 몰입감을 선사했다. 특히 작중에서 굿스피드가 "나는 지하실에서 일하는 공무원일 뿐이라고!"라며 절규하는 장면들은, 당시 액션 영화에서 보기 드문 '인간적인 유머'와 '현실적인 공포'를 동시에 보여주었다는 찬사를 받았다.

연기적인 측면에서 흥미로운 지점은 숀 코네리와의 케미스트리다. 노련하고 카리스마 넘치는 전직 SAS 대원 '존 메이슨' 역의 숀 코네리와, 그 옆에서 쩔쩔매며 화학탄을 해체하는 케이지의 조합은 전형적인 '버디 무비'의 공식을 따르면서도 두 배우의 압도적인 연기력 덕분에 클래식한 품격을 유지했다. 실제로 케이지는 대선배인 숀 코네리 앞에서도 전혀 기죽지 않는 존재감을 과시했는데, 이는 그가 단순히 몸을 쓰는 액션 배우가 아니라 캐릭터의 심리를 액션 시퀀스 안에 녹여낼 줄 아는 영리한 배우임을 증명한 사례였다.

마이클 베이 특유의 화려한 연출과 만나 시너지를 일으킨 장면들도 빼놓을 수 없다. 알카트라즈 감옥 내부에서 초록색 가스 구슬(VX 가스)을 들고 사투를 벌이는 장면이나, 영화 종반부에서 두 개의 신호탄을 양손에 들고 무릎을 꿇은 채 전투기의 폭격을 막아내는 장면은 할리우드 액션 영화사를 상징하는 명장면 중 하나로 남았다.[13]

이 영화의 대성공으로 니콜라스 케이지는 단숨에 출연료 2,000만 달러 시대를 열었으며, 이후 콘 에어페이스 오프로 이어지는 이른바 '케이지 액션 3부작'의 화려한 서막을 알리게 된다. 평단은 "아카데미 상을 받은 배우가 팝콘 무비에서도 이토록 완벽하게 녹아들 수 있다니 놀랍다"는 반응을 보였고, 대중은 그의 독특한 헤어스타일과 억울해 보이면서도 섹시한(?) 눈빛에 열광했다.

4.7. 전성기[편집]

더 록의 기록적인 흥행 이후, 할리우드는 니콜라스 케이지라는 이 독특한 배우가 단순한 연기파를 넘어 '돈이 되는' 액션 스타라는 사실을 완전히 각인하게 된다. 그 흐름을 이어받아 1997년 여름 극장가를 강타한 작품이 바로 제리 브룩하이머 제작, 사이먼 웨스트 감독의 콘 에어다. 이 영화는 케이지의 커리어에서 가장 상업적으로 완성된 시기이자, 그가 구축한 '지적이면서도 강인한, 그러나 어딘가 결핍된 영웅상'이 대중문화의 아이콘으로 등극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였다.

이 영화에서 니콜라스 케이지가 맡은 역할은 전직 특수부대 출신이자, 우발적인 살인으로 복역 후 출소를 앞둔 '카메론 포우'다. 흥미로운 점은 케이지가 이 전형적인 액션 히어로 캐릭터에 본인 특유의 '기묘한 감성'을 불어넣었다는 것이다. 그는 남부 억양을 극단적으로 강조하며[14], 전형적인 할리우드 마초와는 결이 다른, 지극히 가족지향적이고 순애보적인 인물을 창조해냈다. 특히 영화 초반과 후반, 수송기에서 내리는 그를 비출 때 바람에 흩날리는 긴 머리카락과 그 사이로 보이는 우수에 찬 눈빛은 90년대 영화계의 전설적인 슬로우 모션 장면 중 하나로 남았다.

카메론 포우라는 캐릭터가 주는 매력은 그의 '부조화'에서 온다. 근육질 몸매에 민소매 셔츠를 입고 흉악범들을 때려잡으면서도, 그의 품 안에는 딸에게 줄 분홍색 토끼 인형이 소중하게 들려 있다. "토끼를 다시 상자 안에 넣어(Put the bunny back in the box)"라는 대사는 당시로서는 진지한 협박이었으나, 케이지 특유의 서늘하면서도 묘하게 엇나간 연기톤 덕분에 훗날 수많은 인터넷 밈으로 소비되기도 했다. 하지만 영화 개봉 당시에는 이 진지함이야말로 관객들이 그에게 열광하게 만든 핵심 요소였다. 그는 영화 속에서 발생하는 말도 안 되는 물리 법칙과 과장된 폭발 속에서도, 오직 '딸을 만나러 가야 한다'는 감정적 실체를 놓지 않음으로써 극의 개연성을 홀로 지탱해냈다.

콘 에어는 조연진의 면면도 화려했다. 존 말코비치가 연기한 지능형 범죄자 '사이러스 더 바이러스'와 존 쿠삭이 연기한 지적인 연방 보안관 빈스 라킨 사이에서, 케이지는 중심을 잃지 않고 극의 에너지를 조율한다. 특히 사이러스와의 심리전에서 보여주는 케이지의 연기는, 그가 단순히 몸만 쓰는 액션 배우가 아니라 캐릭터 간의 텐션을 유지할 줄 아는 베테랑임을 증명했다. 영화는 전 세계적으로 약 2억 2,400만 달러 이상의 수익을 거두며 대성공을 기록했다.

비평적으로도 콘 에어는 '팝콘 무비의 정석'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평론가들은 "니콜라스 케이지의 헤어스타일은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그의 존재감만큼은 이 육중한 수송기를 이륙시키기에 충분하다"는 식의 평을 내놓았다. 실제로 이 시기의 케이지는 출연료 역시 천문학적으로 치솟았으며, 할리우드 내에서의 위상은 그야말로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진 톱스타였다. 그는 본인이 원한다면 어떤 장르의 영화든 제작할 수 있는 영향력을 갖게 되었고, 이는 이후 그가 자신의 덕후적 취향을 반영한 블록버스터들에 적극적으로 뛰어드는 발판이 된다.

무엇보다 이 작품이 중요한 이유는, 케이지라는 배우가 가진 '고결한 광기'가 대중적 상업 영화와 완벽한 합일점을 찾은 순간이기 때문이다. 그는 폭력적인 상황 속에서도 도덕적 결벽증에 가까운 정의감을 발휘하며, 관객들로 하여금 "저렇게 이상한 사람이 하는 말은 믿음이 간다"는 기묘한 신뢰감을 심어주었다. 이는 90년대 중반을 관통하던 '안티 히어로'적 트렌드와 맞물려, 그를 독보적인 액션 브랜드로 성장시켰다. 카메론 포우가 딸을 안아주며 영화가 끝날 때 흐르던 리앤 라임즈의 'How Do I Live'는, 그해 라디오와 길거리를 점령하며 니콜라스 케이지의 전성기를 상징하는 테마곡이 되었다.

결과적으로 콘 에어는 니콜라스 케이지에게 부와 명예, 그리고 '액션 스타'라는 확고한 타이틀을 동시에 선사했다. 하지만 동시에, 너무나 강렬했던 이 시기의 이미지와 급격히 불어난 자산은 훗날 그가 겪게 될 재정적 위기와 커리어의 변곡점을 암시하는 '빛나는 전조'이기도 했다. 당시의 그는 자신이 산 가구보다 더 비싼 성을 사들였고, 만화책 초판본을 수집하는 데 수백만 달러를 쏟아붓기 시작했으니까. 하지만 1997년의 여름, 극장에 앉아 있던 그 누구도 니콜라스 케이지가 추락할 것이라 생각지 않았다. 그는 그저 하늘 위 수송기에서 머릿결을 휘날리며 우리를 향해 구원의 손길을 내미는, 할리우드에서 가장 힙한 영웅이었다.[15][16]

1997년, 할리우드 액션 영화사의 한 획을 그은 기념비적인 작품이자, 니콜라스 케이지라는 배우의 '광기'와 '섬세함'이 가장 완벽한 대칭을 이룬 작품이 바로 오우삼 감독의 페이스 오프이다. 이 영화는 단순히 얼굴이 바뀐다는 파격적인 설정을 넘어, 케이지와 존 트라볼타라는 두 당대 최고의 스타가 서로의 연기 스타일을 완벽하게 복제해내는 '연기 서커스'의 정점을 보여주었다.

영화의 초반부, 니콜라스 케이지는 순수악에 가까운 테러리스트 캐스터 트로이로 등장한다. 여기서 그는 자신의 전매특허인 '발광 연기'를 유감없이 발휘한다. 금색으로 도금된 커스텀 M1911 쌍권총을 휘두르며 성가대 지휘를 하거나, 신부 복장을 하고 춤을 추는 장면은 오직 케이지만이 소화할 수 있는 기괴하면서도 매혹적인 악당의 모습을 완성했다.

특히 활주로에서 벌어지는 오프닝 액션 시퀀스에서 그가 보여준 광기 어린 미소와 몸짓은 시청자들에게 압도적인 위압감을 선사했다. [17] 단순히 나쁜 놈이 아니라, 파괴 자체를 즐기는 '즐거운 악마'의 형상화는 이후 수많은 영화 속 빌런들의 전형이 되었다.

하지만 이 영화의 진정한 백미는 수술 이후, 선량한 형사인 숀 아처(존 트라볼타 분)의 영혼이 캐스터 트로이의 몸에 들어갔을 때부터 시작된다. 케이지는 여기서 본인의 색깔을 완전히 지우고 '존 트라볼타가 연기하는 숀 아처'를 완벽하게 모사하기 시작한다.

가족을 잃은 슬픔과 적의 몸에 갇혔다는 절망감을 표현할 때, 케이지는 특유의 과장된 연기를 억제하고 눈물 어린 눈망울과 미세하게 떨리는 입술을 통해 숀 아처의 고뇌를 그려낸다. 거울을 보며 자신의 바뀐 얼굴을 만지다 오열하는 장면은 액션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관객들에게 깊은 감정적 전이를 일으켰다. 숀 아처의 시그니처 포즈인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리는 동작'[18]을 케이지가 수행할 때, 관객들은 이질감 없이 그를 숀 아처로 받아들이게 된다. 케이지는 트라볼타의 평소 걸음걸이와 특유의 비음 섞인 목소리 톤까지 연구하여 연기에 녹여냈다.

극 후반부, 두 배우가 거울을 사이에 두고 서로에게 총을 겨누는 장면은 영화사상 가장 아이코닉한 장면 중 하나다. 여기서 케이지는 다시 캐스터 트로이의 영혼을 가진 숀 아처(트라볼타)와 대치하며, 껍데기와 알맹이가 뒤바뀐 복잡한 층위의 연기를 선보인다.

트라볼타 역시 케이지 특유의 경박하면서도 리드미컬한 몸짓을 완벽하게 따라했기에, 관객들은 누가 누구인지 혼란을 겪으면서도 두 배우의 연기 차력쇼에 매료될 수밖에 없었다. 당시 평단에서는 "니콜라스 케이지는 이제 액션 스타를 넘어, 어떤 배우의 영혼이라도 복제할 수 있는 '연기 복제기'가 되었다"는 극찬이 쏟아졌다.

이 작품의 대성공으로 니콜라스 케이지는 더 록, 콘 에어에 이어 액션 3연타석 홈런을 치게 되었으며, 할리우드에서 가장 비싼 몸값을 자랑하는 배우 반열에 오르게 된다. 또한, 오우삼 감독은 케이지를 가리켜 "그는 서양 배우의 외모를 가졌지만, 동양적인 비장미와 깊은 감수성을 표현할 줄 아는 드문 천재"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90년대 후반 니콜라스 케이지의 행보는 그야말로 '광폭 행보'라는 단어로도 부족할 만큼 가공할 위력을 떨쳤다. 더 록콘 에어, 페이스 오프라는 이른바 '액션 3부작'이 연달아 메가 히트를 기록하면서 그는 할리우드에서 가장 몸값이 비싼 배우 중 한 명으로 등극했다. 하지만 케이지는 단순히 근육을 뽐내는 액션 스타에 머물기를 거부했다. 그는 자신의 전매특허인 '신경질적이고 고뇌에 찬' 내면 연기를 액션 장르와 결합하며, 이른바 '케이지표 서스펜스'라는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하기 시작한다. 이 시기를 상징하는 두 줄기가 바로 브라이언 드 팔마 감독과의 협업인 스네이크 아이즈과 본격 심리 스릴러인 8미리이다.

1998년 개봉한 스네이크 아이즈는 '할리우드의 히치콕'이라 불리는 브라이언 드 팔마 감독과 니콜라스 케이지의 만남만으로도 엄청난 화제를 모았다. 케이지가 맡은 역할인 '릭 산토로'는 부패한 경찰이자 도박꾼이며, 동시에 화려한 언변으로 대중을 휘어잡는 쇼맨십의 화신이다. 영화의 도입부, 약 12분간 이어지는 압도적인 오프닝 시퀀스[19]는 케이지의 폭발적인 에너지를 가감 없이 보여준다.

그는 노란색 체크무늬 재킷을 입고 경기장 복도를 휘저으며 전화기에 대고 소리를 지르고, 지인들과 농담을 주고받으며, 복싱 경기장의 긴박한 분위기를 온몸으로 받아낸다. 이 장면에서 케이지는 마치 무대 위의 광대처럼 날뛰는데, 이는 그의 연기 철학인 '누보 샤머니즘'이 상업 영화의 문법 안에서 어떻게 발현되는지를 보여주는 완벽한 예시다. 드 팔마 특유의 화려한 카메라 워킹과 케이지의 과잉된 에너지는 기묘한 시너지를 내며 관객을 단숨에 영화 속 음모의 소용돌이로 몰아넣는다. 비록 후반부 전개에 대해서는 호불호가 갈리지만, 적어도 '배우 니콜라스 케이지'의 퍼포먼스 측면에서는 그의 필모그래피 중 가장 역동적인 순간 중 하나로 꼽힌다.

스네이크 아이즈가 화려한 쇼였다면, 이듬해 개봉한 조엘 슈마허 감독의 8미리는 케이지의 커리어 중 가장 어둡고 처절한 지점에 위치한다. 그는 의뢰를 받고 '스너프 필름'의 실체를 추적하는 사설 탐정 '톰 웰즈' 역을 맡았다. 영화는 초반부의 평범한 수사물 분위기에서 후반부로 갈수록 인간의 추악한 본성과 마주하는 지옥도로 변모하는데, 케이지는 이 과정에서 서서히 파멸해가는 인간의 내면을 소름 끼치게 묘사한다.

특히 스너프 필름의 진실을 목격한 뒤, 평범한 가장이었던 그가 분노와 혐오에 휩싸여 복수의 화신으로 변해가는 과정은 보는 이로 하여금 심리적 압박감을 느끼게 한다. "괴물과 싸우는 사람은 스스로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는 니체의 경구를 영화적으로 구현한 셈이다. 이 영화에서 케이지는 특유의 '발광 연기'를 억제하면서도, 눈빛만으로 깊은 수렁에 빠진 남자의 절망을 표현해냈다. 당시 평단은 지나치게 자극적인 소재를 비판하기도 했으나, 케이지의 연기력만큼은 이견이 없을 정도로 압도적이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이 시기 케이지는 액션과 스릴러를 넘어 판타지 로맨스 장르에서도 족적을 남겼다. 시티 오브 엔젤에서 그는 사랑을 위해 영생을 포기하는 천사 '세스'로 분해, 이전의 광기 어린 모습과는 180도 다른 순수하고 애절한 눈빛을 보여주었다. 구구 돌스의 명곡 'Iris'와 함께 기억되는 이 영화는 케이지가 단순한 액션 스타를 넘어 여성 관객들에게도 강력한 소구력을 가진 '멜로 배우'임을 입증한 사례였다.

또한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과 협업한 비상 근무(Bringing Out the Dead)에서는 뉴욕의 밤거리를 누비는 지친 구급대원 '프랭크'를 연기하며, 수면 부족과 환각에 시달리는 현대인의 신경증을 극한까지 밀어붙였다. 90년대 말의 니콜라스 케이지는 그야말로 '모든 장르가 가능한 할리우드의 전천후 치트키'와 같았다. 그는 거대 자본이 투입된 블록버스터의 주인공이면서도, 거장 감독들의 예술적 야심을 채워줄 수 있는 유일무이한 배우였다.

이후 2000년, 그는 식스티 세컨즈를 통해 다시 한번 상업적 흥행 파워를 과시하며 90년대라는 자신의 '황금기'를 화려하게 마무리한다. 이 시기의 케이지는 관객들에게 '니콜라스 케이지가 나온다면 일단 믿고 본다'는 강력한 신뢰를 심어주었으며, 이는 훗날 그가 겪게 될 재정적 몰락과 커리어의 부침 속에서도 팬들이 끝까지 그를 놓지 못하게 만든 원동력이 되었다.

4.8. 이후[편집]

2000년대 초반, 케이지의 커리어는 기묘한 전환점을 맞이한다. 90년대 후반을 휩쓸었던 '액션 히어로'의 이미지가 대중에게 각인되어 갈 무렵, 그는 돌연 할리우드 역사상 가장 난해하고 지적인 시나리오 작가로 꼽히는 찰리 카우프만의 세계관에 발을 들이게 된다. 바로 2002년작 어댑테이션이다. 이 작품은 케이지가 단순한 흥행 스타를 넘어, 예술적 경지에 오른 연기자임을 다시 한번 전 세계에 증명한 기념비적인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이 영화에서 케이지는 실존 인물인 시나리오 작가 '찰리 카우프만'과 그의 가상 쌍둥이 형제인 '도널드 카우프만'이라는, 외모는 같지만 성격은 극과 극인 두 인물을 동시에 연기하는 1인 2역의 과업을 맡았다. 사실 1인 2역 자체는 할리우드에서 흔한 설정이지만, 케이지가 보여준 방식은 차원이 달랐다. 그는 단순히 가발을 바꾸거나 목소리 톤을 변주하는 수준을 넘어, 두 인물의 '불안의 질감' 자체를 다르게 표현해냈다.

주인공 찰리는 자의식 과잉에 빠져 창작의 고통으로 몸부림치며, 스스로를 혐오하고 탈모와 비만에 시달리는 내성적인 인물이다. 반면 도널드는 형의 재능을 동경하면서도 할리우드의 전형적인 상업 영화 공식을 천진난만하게 따르는, 근거 없는 자신감으로 똘똘 뭉친 인물이다. 케이지는 찰리를 연기할 때는 눈동자의 흔들림과 구부정한 자세, 땀에 젖은 듯한 불쾌한 공기를 뿜어냈고, 도널드를 연기할 때는 같은 얼굴임에도 불구하고 훨씬 이완되고 생기 넘치는 에너지를 보여주었다. 스크린 위에서 두 인물이 대화를 나눌 때, 관객들은 그것이 한 명의 배우가 연기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잊어버릴 정도로 완벽한 분리감을 느꼈다.

이 영화의 백미는 찰리 카우프만의 메타픽션적 구조를 케이지가 자신의 '샤머니즘적 연기'로 체화했다는 점에 있다. 시나리오가 현실과 허구를 오가며 붕괴될 때, 케이지의 연기 또한 그 혼란의 소용돌이를 그대로 반영한다. 특히 극 후반부, 도널드가 쓴 뻔한 액션 영화의 클리셰들이 실제 영화의 플롯으로 침범해 들어오는 지점에서 케이지는 90년대 본인이 연기했던 액션 스타의 자아와 찌질한 예술가의 자아를 충돌시키며 기묘한 카타르시스를 선사한다.

비평가들은 이 연기를 두고 "니콜라스 케이지의 커리어에서 라스베가스를 떠나며에 필적하는, 혹은 그 이상의 섬세함을 보여준 연기"라고 극찬했다. 실제로 그는 이 작품으로 제75회 아카데미 시상식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랐으며, 골든 글로브와 BAFTA 등 주요 시상식을 휩쓸었다. [20]

재미있는 점은, 영화 속 도널드 카우프만 역시 시나리오 작가로 크레딧에 이름을 올렸는데, 이는 가상의 인물이 아카데미 시상식 후보에 오른 최초이자 유일한 사례로 기록되었다는 것이다. 니콜라스 케이지는 이 가상의 인물에게 생명력을 불어넣음으로써 현실과 영화의 경계를 허무는 찰리 카우프만의 실험에 가장 완벽한 도구가 되어주었다. 어댑테이션은 케이지에게 '블록버스터 스타가 된 이후에도 여전히 작가주의 영화를 지탱할 수 있는 힘이 있음'을 보여준 보증수표와 같았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 시기 이후부터 그는 천문학적인 출연료를 보장하는 상업 영화와, 자신의 재정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다작의 길 사이에서 위태로운 줄타기를 시작하게 된다.

이 시기 케이지는 그야말로 '장르의 대가'였다. 블록버스터 액션 스타로서의 입지를 굳건히 다지는 동시에, 그는 자신이 본래 추구하던 '기묘하고 섬세한 캐릭터'로의 회귀를 끊임없이 시도했다. 그 정점에 서 있는 작품 중 하나가 바로 거장 리들리 스콧 감독과 손을 잡은 2003년작 매치스틱 맨이다. 이 작품에서 케이지는 단순한 사기꾼을 넘어, 정신질환과 부성애 사이에서 줄타기하는 복합적인 인물 '로이 월러'를 맡아 그만이 할 수 있는 전무후무한 캐릭터 해석을 선보였다.

이 영화에서 케이지가 연기한 로이 월러는 심각한 강박장애광장공포증을 앓고 있는 전문 사기꾼이다. 문을 세 번씩 확인하고, 집안의 티끌 하나에도 발작을 일으키는 이 캐릭터는 자칫하면 희화화될 위험이 컸다. 하지만 케이지는 이를 자신만의 '누보 샤머니즘'적 연기법으로 승화시켰다. 그는 단순히 눈을 깜빡이거나 손을 떠는 수준을 넘어, 캐릭터의 불안이 한계치에 다다랐을 때 터져 나오는 특유의 '틱' 현상을 거의 안무에 가까운 리듬감으로 표현해냈다.

특히 약이 떨어져 공황 상태에 빠진 채 약국에서 줄을 서서 기다리는 장면은 니콜라스 케이지의 광기 어린 연기가 폭발하는 백미로 꼽힌다. "I'm a p-p-p-pro! (난 전문가라고!)"를 외치며 주변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고 발작적인 행동을 보이는 모습은 관객들에게 웃음과 동시에 애처로움이라는 양가적인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리들리 스콧 감독은 인터뷰에서 "케이지는 매 테이크마다 새로운 디테일을 가져왔으며, 그는 마치 정밀하게 튜닝된 악기 같았다"고 극찬한 바 있다.[21]

에이리언, 글래디에이터 등으로 비주얼의 정점을 보여줬던 리들리 스콧과, 캐릭터 내면의 파편화를 몸소 연기하는 니콜라스 케이지의 만남은 제작 단계부터 화제였다. 스콧 감독은 평소의 웅장한 스케일을 내려놓고, 로이의 폐쇄적인 내면을 반영하듯 차갑고도 정교한 연출을 선보였다. 케이지는 이러한 감독의 연출 의도를 정확히 파악하여, 집안이라는 좁은 공간 내에서의 동선을 매우 기하학적이고 강박적으로 배치하며 극의 몰입도를 높였다.

영화는 중반부, 존재조차 몰랐던 딸 '안젤라'(샘 록웰과 함께 호흡을 맞춘 안젤라 역의 알리슨 로먼)가 등장하면서 대전환을 맞이한다. 케이지는 결벽증에 시달리던 남자가 딸이라는 변수를 통해 삶의 균열을 받아들이고, 서서히 변화해가는 과정을 놀라울 정도로 부드럽게 그려냈다. 이는 그가 90년대에 보여주었던 직선적인 액션 영웅의 모습과는 완전히 궤를 달리하는, 성숙한 중견 배우로서의 깊이를 증명한 대목이었다.

매치스틱 맨의 진정한 묘미는 후반부의 뒤통수를 치는 반전에 있다. 자신이 믿었던 파트너와 딸이 모두 가짜였으며, 자신의 모든 재산을 털어가기 위한 정교한 연극이었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케이지의 연기는 '분노'가 아닌 '허탈함'으로 침잠한다. 모든 것을 잃고 병실에서 깨어나 텅 빈 눈으로 허공을 응시하는 그의 표정은, 영화 전체를 관통하던 그 수많은 틱 장애와 강박적 행동들이 사실은 '외로움'이라는 근원적 공포에서 기인했음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22]

결국 영화의 마지막, 평범한 카펫 가게 점원이 되어 안젤라와 재회하는 장면에서 케이지는 더 이상 눈을 깜빡이지도, 문을 세 번 확인하지도 않는다. 강박이라는 갑옷을 벗어던진 그의 온화한 미소는 니콜라스 케이지라는 배우가 단순히 '미친 연기'만 잘하는 배우가 아니라, 인간의 가장 밑바닥에 있는 보편적인 감정을 건드릴 줄 아는 거장임을 다시금 각인시켰다.

당시 평단은 어댑테이션에 이어 다시 한번 케이지의 연기력에 찬사를 보냈다. 비록 흥행 면에서 대박을 터뜨린 것은 아니었으나, "니콜라스 케이지가 아니면 누구도 이 역할을 이토록 사랑스럽고 괴상하게 소화할 수 없었을 것"이라는 공통된 의견이 주를 이뤘다. 또한 이 작품은 이후 케이지가 겪게 되는 수많은 하이 컨셉 영화들 사이에서, 그가 가진 '정극 배우'로서의 순수한 역량을 보여주는 귀중한 포트폴리오로 남게 되었다.

2000년대 중반, 케이지는 연기파 배우라는 명성을 넘어 할리우드에서 가장 거대한 상업적 가치를 지닌 '흥행 보증 수표'로서의 정점을 찍게 된다. 그 중심에 있는 작품이 바로 2004년 개봉한 내셔널 트레져다. 이 영화는 제리 브룩하이머 제작, 디즈니 배급이라는 거대 자본의 결합체였으며, 케이지는 여기서 역사학자이자 보물 사냥꾼인 '벤자민 프랭클린 게이츠' 역을 맡아 전 세계적인 흥행 돌풍을 일으켰다.

이 시기의 케이지는 90년대의 거친 액션 스타 이미지에서 탈피하여, 지적이면서도 집요한 매력을 가진 캐릭터를 구축했다. 인디애나 존스 시리즈의 뒤를 잇는 고고학 어드벤처 장르의 부활을 알린 이 작품에서, 그는 "미국 독립선언서를 훔치겠다"는 황당무계한 대사를 특유의 진지함과 절박함으로 승화시키며 관객들을 설득해냈다.[23] 본작은 전 세계적으로 3억 4,000만 달러 이상의 수익을 올리며 케이지 커리어 사상 가장 대중적인 성공작 중 하나로 기록되었다.

내셔널 트레져의 성공은 단순히 흥행 성적에만 그치지 않았다. 니콜라스 케이지라는 배우의 스펙트럼이 '광기 어린 캐릭터'에만 국한되지 않고, 가족 단위 관객을 극장으로 불러모을 수 있는 '블록버스터의 얼굴'이 될 수 있음을 증명한 사례였다. 특히 영화 속에서 역사적 단서를 추적하며 보여주는 해박한 지식과 열정은 실제 역사 덕후이기도 한 케이지 본인의 모습과 겹쳐지며 묘한 몰입감을 선사했다.

이어 2007년에 개봉한 속편 내셔널 트레져: 비밀의 책은 전편을 상회하는 4억 5,000만 달러의 수익을 거두며 시리즈의 위상을 확고히 했다. 케이지는 이 영화를 통해 디즈니 테마파크의 한 축을 담당할 정도의 상징성을 획득했으며, 당시 할리우드에서 가장 높은 출연료를 받는 배우 중 한 명으로 등극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거대 상업 영화의 연이은 성공은, 이후 그가 겪게 될 재정적 위기와 다작 행보 속에서 팬들이 가장 그리워하는 '황금기'의 모습으로 남게 되었다.

이 시리즈는 현재까지도 3편 제작에 대한 루머와 요청이 끊이지 않을 정도로 케이지의 필모그래피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한다. 2020년대 들어 그가 다시 평단의 찬사를 받으며 부활하자, 많은 팬들은 "이제야말로 벤 게이츠가 세 번째 보물을 찾으러 나설 때"라며 열광하고 있다. 2000년대 중반의 니콜라스 케이지는 그 자체로 하나의 거대한 산업이었으며, 내셔널 트레져는 그 영광의 시대를 상징하는 금자탑과 같은 작품이라 할 수 있다.

4.9. 슈퍼히어로를 향한 열망[편집]

케이지를 논할 때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요소가 바로 코믹스 덕질이다. 그는 단순한 수집가를 넘어, 자신의 성(姓)을 루크 케이지에서 따올 정도로 코믹스 세계관에 진심인 인물이었다. 실제로 그는 전 세계에 단 몇 권 남지 않은 '액션 코믹스 #1'[24]을 소유했던 '성덕(성공한 덕후)'의 정점이다. 그런 그에게 슈퍼히어로 영화 출연은 단순한 커리어 확장이 아니라 인생의 숙원 사업과도 같았다.

많은 이들이 니콜라스 케이지의 히어로 연기라고 하면 고스트 라이더를 먼저 떠올리지만, 사실 그는 90년대 후반 할리우드 역사상 가장 거대하고 기괴한 프로젝트의 중심에 서 있었다. 바로 팀 버튼이 연출하고 케빈 스미스가 각본을 쓴 '슈퍼맨 리브스'다.

당시 케이지는 장발에 파란색 빛이 나는 특수 슈트를 입고 카메라 테스트까지 마친 상태였다. 우리가 아는 단정한 클라크 켄트가 아니라, 외계인으로서의 이질감과 고뇌가 가득한 '팀 버튼표' 잔혹 동화 속 슈퍼맨을 연기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제작비 폭증과 워너 브라더스의 경영난, 각본에 대한 이견 등이 겹치며 프로젝트는 크랭크인 직전에 엎어지고 만다.[25]

이 사건은 케이지에게 큰 상처를 남겼으나,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비록 실사 영화는 무산되었지만, 수십 년 뒤인 2018년 애니메이션 틴 타이탄 GO! 투 더 무비에서 슈퍼맨의 목소리 역을 맡으며 한을 풀었고, 결정적으로 2023년 영화 플래시에서 멀티버스의 슈퍼맨으로 깜짝 등장하며 마침내 파란 슈트를 입은 모습을 전 세계에 공개했다. 비록 CG의 힘을 빌린 짧은 등장이었으나, 올드 팬들에게는 "드디어 케이지의 슈퍼맨을 봤다"는 감동을 선사하기에 충분했다.

슈퍼맨의 좌절 이후 그가 눈을 돌린 곳은 마블의 안티 히어로, 조니 블레이즈였다. 케이지는 실제로 팔에 고스트 라이더 문신이 있을 정도로 이 캐릭터의 광팬이었으며, 영화화 소식이 들리자마자 배역을 따내기 위해 필사적으로 움직였다.

2007년 개봉한 1편은 평론가들의 혹평에도 불구하고 전 세계적으로 2억 3천만 달러가 넘는 수익을 올리며 상업적 성공을 거두었다. 케이지 특유의 "눈이 뒤집히는" 광기 어린 연기가 불타는 해골로 변신하는 고뇌와 묘하게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팬들 사이에서는 "케이지의 나이가 너무 많다", "가발이 너무 어색하다"는 지적도 끊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케이지는 멈추지 않고 2012년 속편인 고스트 라이더: 복수의 화신에 출연한다. 이 작품에서는 아예 감독들에게 "변신한 상태의 고스트 라이더 연기도 직접 하겠다"고 선언하며, 얼굴에 아프리카 샤먼의 분장을 하고 촬영장에 나타나 동료 배우들을 공포에 떨게 했다는 후문이 전해진다. 그는 CG로 덮일 해골의 움직임조차 자신의 '누보 샤머니즘' 연기 철학을 담아 표현하려 애썼다.

그가 히어로물에 집착했던 이유는 단순히 유명해지고 싶어서가 아니었다. 니콜라스 케이지는 "인간이 아닌 존재, 혹은 신화적인 존재가 겪는 실존적 고통"을 연기하는 것에 깊은 흥미를 느꼈다. 슈퍼맨의 외계인적 고독, 고스트 라이더의 저주받은 영혼은 그가 추구하는 표현주의적 연기를 마음껏 펼칠 수 있는 캔버스였던 셈이다.

이후 그는 킥애스: 영웅의 탄생에서 '빅 대디' 역을 맡아, 60년대 배트맨(드라마)아담 웨스트를 오마주한 독특한 말투로 조연임에도 주연을 압도하는 존재감을 과시했다. 이는 그가 대형 프랜차이즈의 주연 자리에 연연하지 않고, 히어로 장르 자체를 얼마나 깊이 이해하고 사랑하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4.10. 서서히 드리우는 그림자[편집]

2000년대 중반까지 니콜라스 케이지는 내셔널 트레져의 대성공으로 상업적 정점을 찍고 있었으나, 평단과 관객들 사이에서는 미묘한 균열의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 균열이 거대한 폭발로 이어진 결정적인 계기가 바로 2006년작 리메이크 영화 위커 맨이다. 이 작품은 케이지의 커리어에서 단순한 실패작을 넘어, 그의 연기 스타일이 대중에게 어떻게 '희화화'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 기념비적인(?) 사례로 남게 되었다.

1973년작 동명의 영국 공포 영화는 '포크 호러(Folk Horror)'의 걸작으로 칭송받는 작품이다. 기독교인 경찰관이 실종된 소녀를 찾기 위해 고립된 섬에 들어갔다가 이교도들의 기괴한 풍습과 마주하며 파멸해가는 과정을 다룬 원작은 서늘한 공포와 사회적 함의를 담고 있었다. 하지만 닐 라뷰트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니콜라스 케이지가 주연을 맡은 리메이크 버전은 원작의 심리적 압박감을 완전히 거세한 채, 오로지 케이지의 '폭주하는 연기'에만 초점을 맞추는 실책을 범했다.

케이지는 이 영화에서 실종된 딸을 찾는 형사 '에드워드 메일러스' 역을 맡았는데, 영화의 전개 과정에서 보여주는 그의 행동들은 관객들을 공포에 떨게 하기보다는 실소를 자아내게 만들었다. 특히 여성들만 사는 섬이라는 설정 속에서 케이지가 곰 인형 복장을 하고 여성을 주먹으로 때리거나, 자전거를 훔쳐 타는 장면 등은 도저히 진지한 호러 영화라고 보기 힘든 수준의 황당함을 선사했다.

이 영화를 상징하는 가장 유명한 장면은 단연 후반부의 고문 씬이다. 이교도들에게 붙잡힌 케이지의 머리에 벌이 가득 든 철망 투구가 씌워지는데, 이때 그가 울부짖는 대사는 인터넷 역사에 길이 남을 명대사가 되었다.
"Oh, no! Not the bees! Not the bees! Aaaaaah! Oh, they're in my eyes! My eyes! AAAAH!"[26]

이 장면에서 케이지의 연기는 그 특유의 '누보 샤머니즘'이 통제 불능 상태로 치달았을 때 어떤 결과가 나오는지 보여주는 극단적인 예시였다. 진지하게 고통스러워하는 그의 표정과 절규는 오히려 슬랩스틱 코미디와 같은 효과를 냈고, 이는 훗날 YouTube와 각종 커뮤니티에서 니콜라스 케이지의 광기를 조롱하거나 찬양하는 용도로 무한 복제되었다.

위커 맨은 비단 연기력 논란뿐만 아니라, 영화 자체의 완성도 면에서도 처참한 패배를 맛보았다. 로튼 토마토 신선도 지수는 한 자릿수를 기록할 정도로 평단의 뭇매를 맞았고, 제27회 골든 라즈베리 시상식에서 최악의 작품상, 최악의 남우주연상 등 주요 부문에 후보로 오르는 굴욕을 당했다.

이 시기를 기점으로 니콜라스 케이지라는 배우에 대한 대중의 인식은 '믿고 보는 배우'에서 '무슨 짓을 할지 모르는 불안한 배우'로 변하기 시작했다. 물론 이후에도 고스트 라이더 같은 상업적 성공작이 나오긴 했으나, 넥스트, 노잉, 방콕 데인저러스 등 내놓는 작품마다 평단과의 괴리가 커지면서 그가 쌓아온 '아카데미 위너'로서의 권위는 서서히 침식되어 갔다.

무엇보다 큰 문제는 이 시기부터 본격화된 그의 재정적 몰락이었다. 엄청난 출연료를 받으면서도 무분별한 부동산 투자와 희귀 수집품 구입으로 빚더미에 앉게 된 그는, 세금을 갚기 위해 시나리오를 가리지 않고 다작(多作)하는 소위 '생계형 배우'의 길로 접어들게 된다. 위커 맨의 실패는 단순한 한 편의 부진이 아니라, 화려했던 90년대의 영광이 저물고 기나긴 B급 영화의 터널로 진입하는 입구와도 같았던 셈이다.

4.11. 파산과 재정 위기[편집]

파일:Cage_Financial_Meme.jpg

한때 할리우드에서 편당 출연료로만 2,000만 달러(한화 약 260억 원) 이상을 거뜬히 받아내던 초특급 A급 스타가 어떻게 수천만 달러의 빚더미에 앉아 VOD 시장의 공무원이 되었는가에 대한 이야기는, 그 자체로 한 편의 영화와도 같다. 니콜라스 케이지의 재정 몰락은 단순히 '운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의 연기만큼이나 비현실적이고 방대한 '기행적 소비 습관'과 '부동산 투자 실패', 그리고 믿었던 이에 대한 '배신'이 복합적으로 얽힌 결과물이다.

케이지의 소비는 일반적인 부유층의 사치와는 궤를 달리했다. 그는 단순히 명품을 사고 파티를 즐기는 수준을 넘어, 자신의 기괴한 취향을 만족시키기 위해 전 지구적인 쇼핑을 즐겼다. 그중 가장 유명한 사례들을 꼽자면 다음과 같다.
  • 공룡 두개골 경매 사건: 2007년, 그는 6,700만 년 전의 티라노사우루스 바타르(Tarbosaurus bataar) 두개골을 경매에서 27만 6,000달러에 낙찰받았다.[27]
  • 전 세계의 고성(古城) 매입: 그는 독특한 건축물에 집착했는데, 독일의 나이드슈타인 성(Schloss Neidstein)을 비롯해 영국 잉글랜드의 미드포드 성 등 전 세계에 15채 이상의 저택과 고성을 사들였다.
  • 피라미드 묘지: 뉴올리언스의 유서 깊은 공동묘지에 자신의 사후 안식처로 높이 2.7m의 거대한 흰색 피라미드형 묘를 미리 세워두기도 했다.
  • 기타 기행적 수집품: 희귀 만화책(액션 코믹스 1호 등), 알비노 킹코브라 두 마리[28], 축소된 인간의 머리(Shrunken heads), 심지어는 문어까지 사들였다.

이러한 수집벽은 단순한 과시욕이라기보다는, 그가 가진 예술가적 기질과 '독특한 세계관'을 현실에 구현하려는 강박에 가까웠다. 하지만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가 닥치면서, 그가 사들인 수십 채의 부동산 가치는 폭락했고 유지비는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났다.

2009년경, 케이지의 재정 상태는 임계점에 도달했다. 미국 국세청(IRS)은 그에게 약 670만 달러에 달하는 미납 세금을 청구했으며, 이를 갚지 못할 경우 실형까지 살 수 있는 위기에 처했다. 당시 그의 자산 관리인이었던 새뮤얼 레빈은 "케이지의 무분별한 지출이 파국을 불렀다"고 주장했으나, 케이지 측은 "레빈이 제대로 된 조언을 하지 않고 수수료만 챙기며 나를 파멸로 이끌었다"며 2,000만 달러 규모의 소송을 제기했다.

결국 그는 빚을 갚기 위해 자신이 아끼던 애장품들을 하나둘씩 경매에 내놓기 시작했다. 210만 달러에 낙찰된 슈퍼맨 데뷔작 '액션 코믹스 1호'를 포함해 수많은 수집품이 그의 손을 떠났다. 하지만 빚의 규모는 상상을 초월했고, 이때부터 그는 '빚을 갚기 위해 들어오는 모든 배역을 수락하는' 이른바 다작 모드에 돌입하게 된다.

실제로 그는 훗날 인터뷰에서 이 시기를 회상하며 다음과 같이 밝혔다.
"나는 빚을 갚기 위해 끊임없이 일해야 했다. 하지만 나는 결코 연기를 대충(Phone it in) 하지 않았다. 비록 영화 자체가 좋지 않을지라도, 나는 매 순간 진심을 다했다."

이러한 고백은 그를 조롱하던 대중의 시선을 조금씩 경외심으로 바꾸어 놓았다. 그는 자신에게 닥친 비극을 회피하거나 은퇴하는 대신, 가장 배우다운 방식인 '연기'를 통해 정면 돌파를 선택한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수많은 언론이 그를 '파산한 스타'로 묘사했음에도 불구하고 케이지 본인은 단 한 번도 법적인 파산 신청(Bankruptcy)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그는 2022년 인터뷰에서 "당시 나는 빚이 600만 달러가 넘었지만, 파산 신청을 통해 빚을 탕감받는 쉬운 길을 택하지 않았다. 대신 나는 일을 해서 모든 빚을 직접 갚기로 결심했다"고 회고했다.

이 시기(2010년대)에 그가 찍은 영화들은 매년 4~6편에 달했다. 그중 상당수가 극장 개봉조차 하지 못하는 저질 B급 액션물이었기에 팬들의 안타까움을 샀으나, 결과적으로 그는 약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쉬지 않고 일한 끝에 모든 세금과 빚을 청산하는 데 성공했다. 비록 커리어의 질적인 하락은 피할 수 없었으나, 자신의 과오를 끝까지 책임지려 했던 그의 태도는 할리우드 내에서도 꽤나 이례적인 사례로 평가받는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암흑기'의 다작 활동은 케이지의 스펙트럼을 기괴할 정도로 넓혀놓았다. 아무리 대본이 엉망이라도 케이지 본인만큼은 현장에서 미친 듯한 몰입도를 보여주었기에, B급 영화계에서 그는 일종의 '보증 수표'가 되었다. 또한 이 시기에 쌓인 '돈 때문에 무엇이든 하는 처량한 스타'의 이미지는 훗날 그가 재기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영화 미친 능력의 모티프가 되기도 했다.

이 시기 케이지가 출연한 영화들은 드라이브 앵그리, 트레스패스, 스톨른, 레프트 비하인드, 페이 더 고스트 등으로 이어진다. 냉정하게 말해 이 영화들의 평론가 점수(로튼 토마토 등)는 처참한 수준이었고, 서사는 진부하기 짝이 없었다. 그러나 팬들은 이 영화들 속에서 '보물 찾기'를 하듯 케이지의 광기를 찾아내기 시작했다.

그는 평범한 대사를 읊을 때도 특유의 스타카토 호흡을 섞거나, 갑자기 눈을 부릅뜨며 괴성을 지르는 등 관객이 예상치 못한 연기적 선택을 감행했다. 이는 영화의 전체적인 톤과는 어긋날지언정, 배우 니콜라스 케이지라는 존재감만큼은 화면 밖으로 튀어나오게 만들었다. 밈(Meme) 문화가 발달한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이러한 그의 연기를 '케이지 레이지(Cage Rage)'라고 부르며 열광했고, 이는 결과적으로 그가 대중의 기억 속에서 잊히지 않고 독특한 '컬트 아이콘'으로 생존하게 된 원동력이 되었다.

다작의 시기는 역설적으로 그에게 다양한 실험의 장이 되기도 했다. 대형 스튜디오의 간섭이 적은 저예산 영화들에서 그는 더욱 과감한 시도를 할 수 있었다. 예를 들어 [배드 루테넌트][29]에서 베르너 헤어초크 감독과 만나 보여준 환각적인 부패 경찰 연기는 그가 여전히 세계 최고의 연기력을 보유하고 있음을 증명했다.

또한 그는 애니메이션 성우로서도 활발히 활동하며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의 '스파이더 누아르' 같은 매력적인 캐릭터를 탄생시켰다. VOD 시장에서의 다작은 그에게 '실패할 자유'를 주었고, 이는 훗날 2020년대에 펼쳐질 '케이지의 부활(Cage-naissance)'을 위한 밑거름이 되었다. 비록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B급 배우'라는 비아냥을 들어야 했지만, 그는 그 진흙탕 속에서도 자신의 연기혼이라는 진주를 결코 포기하지 않았던 것이다.

4.12. 그럼에도 빛나는 수작[편집]

케이지의 2010년대는 흔히 '커리어의 암흑기' 혹은 'VOD 시장으로의 추락'이라는 자극적인 헤드라인으로 요약되곤 한다. 실제로 이 시기 그는 재정적인 압박을 해결하기 위해 한 해에도 서너 편씩, 질적 수준이 담보되지 않은 저예산 장르 영화에 무차별적으로 출연했다. 하지만 이 척박한 토양 속에서도 케이지는 특유의 '누보 샤머니즘' 연기론을 잃지 않았으며, 때때로 거장이나 재능 있는 신예 감독들과 만나 본인의 연기력이 결코 녹슬지 않았음을 증명하는 수작들을 남겼다. 그 암흑기 속에서 보석처럼 빛났던 두 작품, 악질경찰가 있다.

2009년 말 개봉하여 2010년대 초반 케이지의 행보에 큰 이정표를 제시한 작품이 바로 베르너 헤어조크 감독의 악질경찰이다.[30] 이 영화에서 케이지는 허리 부상으로 인해 마약성 진통제에 중독되어 타락해가는 뉴올리언스의 형사 '테렌스 맥도나'를 연기했다.

이 작품은 케이지의 '통제된 광기'가 무엇인지 보여주는 정점이라 할 수 있다. 영화 속에서 그는 구부정한 자세로 절뚝거리며, 끊임없이 코카인을 흡입하고 환각에 시달린다. 특히 전설적인 장면으로 꼽히는 '이구아나 환각 장면'이나 죽은 자의 영혼이 춤을 추는 것을 바라보는 장면에서 케이지가 보여주는 표정 연기는, 단순한 약쟁이 연기를 넘어선 영성(Spirituality)마저 느껴진다는 평을 받았다. 헤어조크 감독은 케이지의 과잉된 에너지를 억제하기보다 오히려 그 에너지가 영화의 초현실적인 분위기와 어우러지도록 방치했는데, 이것이 신의 한 수가 되었다. 평단은 "니콜라스 케이지가 드디어 자신을 이해해 주는 진정한 괴짜 감독을 만났다"며 찬사를 보냈다. 이 영화는 그가 단순한 상업 스타가 아니라, 여전히 예술 영화의 중심에서 극을 이끌 수 있는 파워를 가졌음을 입증한 사례였다.

악질경찰이 폭발하는 광기를 다뤘다면, 2013년작 [31]는 케이지가 얼마나 정적인 연기에 능숙한지를 보여준 반전의 수작이다. 여기서 그는 과거의 상처를 안고 독을 뿌려 나무를 죽이는 일을 하며 살아가는 전과자 '조' 역을 맡았다.

이 영화에서 케이지는 우리가 흔히 아는 '소리 지르는 케이지'의 모습을 완전히 지워버린다. 대신 덥수룩한 수염과 깊게 패인 주름, 그리고 고독이 뚝뚝 묻어나는 눈빛으로 화면을 채운다. 가정폭력에 시달리는 소년 게리(타이 셰리던 분)를 만나며 겪는 심리적 변화와, 자신의 파괴적인 본능을 억누르며 소년을 지키려는 부성애에 가까운 감정선은 관객들에게 묵직한 울림을 주었다.

많은 비평가들은 이 작품을 보고 "니콜라스 케이지의 진정한 복귀작"이라 평했다. 비록 흥행 면에서는 큰 성공을 거두지 못했으나, 베네치아 영화제 등 주요 영화제에서 호평을 받으며 그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라스베가스를 떠나며 시절의 깊이를 재현할 수 있다는 것을 똑똑히 보여주었다. 특히 극 중 조가 보여주는 '폭발하기 직전의 고요함'은 훗날 그가 피그에서 보여줄 절정의 내면 연기를 예고하는 전초전과도 같았다.

물론 이 두 작품 사이사이에는 제목조차 기억나지 않는 수많은 양산형 액션 영화들이 포진해 있다. 하지만 중요하게 짚고 넘어가야 할 지점은, 니콜라스 케이지는 결코 연기를 '대충'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아무리 대본이 엉망이고 예산이 부족한 영화일지라도, 그는 현장에서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임했으며 본인만의 독특한 캐릭터 해석을 덧입혔다.

4.13. 성우로서의 활약[편집]

케이지의 2010년대 후반은 단순한 실사 영화 출연을 넘어, 자신의 독보적인 목소리 톤과 캐릭터 해석력을 애니메이션 영역으로 확장하며 제2의 전성기를 맞이한 시기로 평가받는다. 특히 2018년 개봉한 소니 애니메이션의 역작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에서 그가 맡은 '스파이더맨 누아르' 역은, 케이지 본인의 '덕후' 기질과 하드보일드한 연기색이 완벽하게 결합된 사례로 꼽힌다.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에 등장하는 '스파이더맨 누아르(Spider-Man Noir)'는 1933년 경제 대공황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평행 세계의 피터 파커다. 이 캐릭터는 기존의 발랄하고 친숙한 스파이더맨 이미지와는 정반대로, 험프리 보가트나 제임스 캐그니가 출연했던 고전 필름 누아르 영화 속의 냉소적인 탐정 이미지를 차용하고 있다.

제작진이 이 배역에 니콜라스 케이지를 캐스팅한 것은 그야말로 '신의 한 수'였다. 케이지는 이 배역을 위해 자신의 목소리 톤을 한층 더 낮추고, 1930~40년대 할리우드 고전 배우들의 독특한 억양과 문법을 가져왔다. 그는 단순히 대사를 읽는 것에 그치지 않고, "나는 바람이 부는 곳 어디든 간다. 그리고 바람은... 비를 몰고 오지"와 같은 중2병스러운(...) 대사들을 특유의 진지하고도 처절한 톤으로 소화해내며 캐릭터에 생명력을 불어넣었다.

실제로 케이지는 녹음 과정에서 흑백 영화 시대의 명배우인 험프리 보가트의 연기 스타일을 적극적으로 오마주했다고 밝혔다. 그는 "이 캐릭터는 나치가 존재하는 세상에서 온 사람이다. 그는 매일같이 악과 싸우며, 그 과정에서 닳고 닳은 영혼을 가지고 있다"고 분석하며, 자칫 우스꽝스러워질 수 있는 과장된 대사들에 실존적인 무게감을 더했다. 이러한 그의 노력 덕분에 스파이더맨 누아르는 극 중 여러 스파이더맨 중에서도 가장 강력한 존재감과 코믹함을 동시에 챙긴 신 스틸러로 등극했다.[32]

케이지의 목소리 연기는 비단 스파이더 누아르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같은 해, 그는 DC 코믹스의 애니메이션 틴 타이탄 GO! 투 더 무비에서 그토록 염원하던 슈퍼맨의 목소리를 맡게 된다. 이는 영화 팬들에게 매우 감동적인 사건이었는데, 90년대 중반 팀 버튼 감독이 연출하려다 엎어진 영화 '슈퍼맨 리브스(Superman Lives)'에서 케이지가 주연을 맡을 예정이었기 때문이다. 비록 실사 영화는 무산되었지만, 수십 년이 지난 후 애니메이션을 통해서나마 '케이지표 슈퍼맨'이 공식적으로 성립된 셈이다.[ 케이지는 이 배역을 맡았을 때 "마침내 정의가 구현되었다"며 매우 기뻐했다는 후문이 있다.]

또한 그는 드림웍스의 애니메이션 크루즈 패밀리 시리즈에서 가장인 '그루그' 역을 맡아, 투박하지만 가족을 끔찍이 아끼는 원시인 아버지의 모습을 완벽하게 연기해냈다. 실사 영화에서의 광기 어린 모습과는 대조적으로, 애니메이션에서는 따뜻하고 인간미 넘치는(비록 몸은 원시인이지만) 목소리를 선보이며 폭넓은 연기 스펙트럼을 증명했다. 특히 크루즈 패밀리에서의 목소리 연기는 그가 고액 출연료를 받는 대형 스튜디오 영화에서도 여전히 티켓 파워와 연기력을 동시에 갖춘 배우임을 입증하는 계기가 되었다.

니콜라스 케이지의 성우 연기가 특별한 이유는 그가 앞서 언급한 '누보 샤머니즘' 연기법을 마이크 앞에서도 그대로 실천하기 때문이다. 그는 성우 녹음을 할 때도 가만히 서서 대본을 읽지 않는다. 온몸을 흔들고 표정을 일그러뜨리며, 마치 카메라 앞에서 직접 연기하듯 캐릭터의 감정 상태를 신체적으로 구현한다.

이러한 에너지는 결과물에 고스란히 투영된다. 애니메이션 캐릭터는 실사 배우에 비해 표정의 변화가 제한적일 수밖에 없는데, 케이지의 목소리는 그 빈틈을 넘치는 정보량과 감정 과잉으로 꽉 채워버린다. 관객들은 화면 속 캐릭터를 보면서도 그 이면에 있는 니콜라스 케이지라는 배우의 열정적인 형상을 떠올리게 되는 것이다.

성우 활동은 니콜라스 케이지에게 두 가지 큰 이득을 가져다주었다. 첫째는 재정적인 안정이다. 거대 자본이 투입된 애니메이션 영화의 흥행 수입은 그가 겪고 있던 채무 문제를 해결하는 데 큰 도움을 주었다. 둘째는 젊은 세대와의 접점이다. 그의 왕년 전성기를 모르는 Z세대 관객들에게 '스파이더 누아르 형님' 혹은 '크루즈 아빠'로 다가가며, 다시 한번 대중적인 인지도를 공고히 다지는 발판이 되었다.

현재 그는 스파이더맨 누아르를 주인공으로 하는 실사 드라마 시리즈의 주연으로도 확정된 상태다. 이는 애니메이션에서의 성공이 다시 실사로 이어지는 기막힌 사례로, 니콜라스 케이지가 구축한 흑백의 하드보일드 세계관이 얼마나 대중에게 매력적으로 다가갔는지를 보여주는 증거라 할 수 있다.

4.14. 재평가의 신호탄[편집]

매달 쏟아져 나오는 직행 VOD(Video On Demand) 영화들 사이에서 관객들은 "이 영화는 과연 볼 만한 케이지인가, 아니면 거를 케이지인가"를 두고 도박을 해야 했다. 하지만 2018년, 파노스 코스마토스 감독의 영화 맨디가 선댄스 영화제에서 공개되는 순간, 전 세계 평단과 시네필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이 영화는 단순히 '복수극'이라는 카테고리에 묶기에는 너무나도 기괴하고, 아름다우며, 동시에 니콜라스 케이지라는 배우의 잠재된 광기를 가장 예술적인 방식으로 폭발시킨 작품이었기 때문이다.

맨디는 1983년을 배경으로, 숲속에서 조용히 살아가던 벌목꾼 '레드 밀러'가 광신도 집단과 초자연적인 존재들에게 사랑하는 아내 '맨디'를 잃고 처절한 복수에 나서는 과정을 그린다. 영화의 전반부는 몽환적이고 느릿한 호흡으로 진행되지만, 아내를 잃은 직후인 후반부는 그야말로 지옥도가 펼쳐진다.

여기서 케이지는 본인이 80년대부터 갈고닦아온 '누보 샤머니즘' 연기의 정수를 보여준다. 특히 아내의 죽음을 목격한 직후, 화장실에서 팬티 바람으로 보드카를 들이키며 짐승처럼 울부짖는 장면은 이 영화의 백미다. 이 장면은 대사 한 마디 없이 오로지 케이지의 얼굴 근육과 비명소리만으로 슬픔, 분노, 허망함, 그리고 완전히 망가져 버린 인간의 내면을 완벽하게 전달한다.[33]

많은 이들이 이 영화를 통해 케이지가 단순히 돈 때문에 아무 영화나 찍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광기를 온전히 이해해 줄 감독을 만나면 어떤 괴물이 되는가"를 확인했다. 영화 속에서 직접 제련한 기괴한 형상의 도끼를 휘두르고, 전기톱으로 결투를 벌이며, 온몸에 피칠갑을 한 채 미친 듯이 웃는 그의 모습은 '밈(Meme)'으로서의 케이지가 아닌 '예술가'로서의 케이지를 다시금 각인시켰다.

평론가들은 이 영화를 두고 "니콜라스 케이지가 드디어 자신의 영혼을 담을 수 있는 그릇을 찾았다"며 찬사를 보냈다. 로튼 토마토 신선도 지수는 고공행진을 기록했고, 대중 매체들은 그를 'B급 영화의 수렁에서 건져 올려진 거장'으로 묘사하기 시작했다. 특히 조한 조한슨의 장엄한 음악과 붉은색 톤의 강렬한 색감은 케이지의 발광 연기와 결합하여 마치 한 편의 헤비메탈 앨범 커버가 살아 움직이는 듯한 시각적 경험을 선사했다.

맨디의 성공은 니콜라스 케이지에게 단순한 흥행 이상의 의미를 가졌다. 이 작품 이후 그는 단순히 빚을 갚기 위한 다작 행보 속에서도 컬러 아웃 오브 스페이스 같은 개성 넘치는 호러 장르나, 독창적인 독립 영화들에 적극적으로 출연하며 자신만의 '케이지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구축하기 시작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대중이 그를 '조롱의 대상'에서 '장르적 권위자'로 다시 보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그는 인터뷰에서 "나는 더 이상 할리우드의 대형 스튜디오 시스템에 목매지 않는다. 맨디 같은 영화야말로 내가 진정으로 원하던 작업 방식이다"라고 밝히며, 주류에서 벗어난 자신만의 독자적인 길을 걷겠다는 의지를 확고히 했다.

2021년 개봉한 영화 피그는 케이지의 커리어에서 단순한 '수작'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2010년대 내내 소위 'B급 비디오 영화'에 출연하며 스스로의 몸값을 깎아먹고 있다는 비판을 받던 그가, 자신이 왜 여전히 할리우드 최고의 배우인지를 전 세계에 증명하며 화려한 '케이지네상스(Caginessance)'의 서막을 알린 작품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대중이 니콜라스 케이지에게 기대하던 이미지는 명확했다. 눈을 뒤집으며 고함을 지르거나, 온몸에 불을 붙이고 질주하거나, 혹은 기괴한 표정으로 관객을 당혹스럽게 만드는 '폭발적 광기'였다. 하지만 마이클 사노스키 감독의 데뷔작인 이 영화에서 케이지는 정반대의 길을 걷는다. 그는 오리건주의 깊은 숲속에서 이름도 버린 채 '로브'라는 이름으로 살아가는 은둔자를 연기하며, 러닝타임 내내 극도로 절제된 '침묵의 미학'을 선보인다.

영화의 줄거리는 겉보기에 존 윅 시리즈와 흡사해 보인다. 은둔하던 주인공이 아끼던 돼지(트러플 피그)를 납치당하고, 이를 찾기 위해 다시 도시로 내려와 과거의 인연들과 마주한다는 설정은 전형적인 복수극의 문법을 따르는 듯하다. 하지만 로브는 칼이나 총을 드는 대신, 요리와 대화, 그리고 상실에 대한 깊은 통찰을 무기로 사용한다. 케이지는 덥수룩한 수염과 피떡이 된 얼굴을 한 채로, 분노가 아닌 깊은 슬픔과 상실감을 눈빛 하나에 담아낸다.

극 중 로브가 과거 포틀랜드 최고의 셰프였다는 설정은 니콜라스 케이지 본인의 삶과 묘하게 겹쳐 보인다. 한때 정점에 섰으나 스스로를 고립시킨 인물이라는 점, 그리고 겉치레와 허영으로 가득 찬 세상(작중에서는 파인 다이닝 업계)을 향해 "너희는 정말 소중한 것을 하고 있느냐"고 묻는 대목은 마치 할리우드 시스템에 환멸을 느꼈던 케이지의 진심처럼 들리기도 한다.[34]

이 영화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케이지가 보여준 '정중한 슬픔'이다. 그는 돼지를 되찾기 위해 폭력을 쓰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이들을 묵묵히 받아내며, 그들이 잊고 살았던 인간적인 감정을 건드린다. 이는 니콜라스 케이지가 90년대 후반부터 천착해온 '누보 샤머니즘' 연기법이 단순히 소리를 지르는 것이 아니라, 캐릭터의 영혼과 합일되어 관객에게 카타르시스를 전달하는 행위임을 다시금 일깨워준 사례였다.

피그는 로튼 토마토 신선도 지수 97%를 기록하며 그해 최고의 영화 중 하나로 등극했다. 수많은 평론가는 "우리가 잊고 있었던 니콜라스 케이지의 진면목", "그의 커리어 사상 최고의 연기"라며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특히 오직 '돼지를 찾고 싶어 하는 마음' 하나로 움직이는 그의 연기는 관객들로 하여금 주인공의 고통에 깊이 공감하게 만들었다.[35][36]

이 영화의 성공으로 인해 "니콜라스 케이지가 드디어 빚을 다 갚고 연기를 즐기기 시작했다"는 농담 반 진담 반의 분석이 팬들 사이에서 정설로 받아들여지기 시작했다.

이 작품을 기점으로 케이지는 단순히 '밈의 주인공'이 아닌, 다시금 '예술가'로서 대접받기 시작한다. 그는 인터뷰에서 "이 영화는 내 영혼의 안식처 같았다"고 회상하며, 거대 자본이 투입된 블록버스터보다 훨씬 더 큰 만족감을 얻었음을 시사했다. 실제로 피그 이후 그는 미친 능력, 드림 시나리오 등 독창적이고 예술성이 짙은 작품들에 연이어 캐스팅되며 완전한 부활을 알리게 된다.

2022년 개봉한 영화 미친 능력은 니콜라스 케이지의 커리어에서 단순한 코미디 영화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이 작품은 배우 본인이 본인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대중이 소비하는 '밈(Meme)으로서의 니콜라스 케이지'를 정면으로 마주하고 해체하며 다시 재조립한, 그야말로 '니콜라스 케이지에 의한, 니콜라스 케이지를 위한 메타 시네마'의 정점이라 할 수 있다.

처음 이 영화의 시나리오가 케이지에게 전달되었을 때, 그는 단칼에 거절했다고 한다. 이유는 명확했다. "나는 나 자신을 조롱하는 것에 관심이 없다"는 것이었다. 극 중 '닉 케이지'는 빚에 허덕이고, 가족과의 관계는 파탄 직전이며, 오로지 과거의 영광에 매몰되어 환각 속의 젊은 자신('니키')과 대화하는 지질한 인물로 그려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감독 톰 고미칸은 끈질기게 그를 설득했다. 이 영화는 케이지를 조롱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가진 예술적 광기와 인간적인 면모를 향한 '헌사(Homage)'라는 점을 강조했다. 결국 케이지는 "이것이 내 커리어를 끝장낼 수도 있지만, 반대로 가장 진실한 기록이 될 수도 있다"는 판단하에 출연을 결심한다.

이 영화의 백미는 현재의 '닉 케이지'와 환상 속의 젊은 시절 '니키 케이지'가 대립하는 장면들이다. 여기서 니키는 광란의 사랑 시절의 가죽 자켓을 입고, 당시의 에너지 넘치다 못해 폭발하기 직전인 케이지의 모습을 형상화했다. 케이지는 1인 2역을 수행하며 과거의 자신을 향해 "너는 배우지, 연예인이 아니야!"라고 외치는 자아비판적 서사를 완벽하게 소화해 낸다. 특히 CG와 특수 분장을 통해 구현된 젊은 시절의 모습과 현재의 노련한 연기가 충돌할 때 발생하는 에너지는 케이지 팬들에게는 전율을, 일반 관객들에게는 기묘한 유머를 선사한다.

작중 케이지의 열혈 팬인 억만장자 '하비' 역을 맡은 페드로 파스칼과의 호흡은 영화의 감정적 줄기를 담당한다. 하비는 대중이 케이지를 '밈'으로 소비하며 비웃을 때, 그가 출연한 소수 영화들의 예술적 가치를 설파하며 그를 진심으로 존경하는 인물이다. 두 사람이 칼리가리 박사의 밀실을 함께 보며 감동하거나, 환각 상태에서 추격전을 벌이는 장면 등은 케이지의 필모그래피가 단순히 상업적 실패와 성공으로만 나뉘지 않음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실제로]

미친 능력은 케이지가 2010년대 내내 겪었던 'VOD 시장의 제왕'이라는 꼬리표를 스스로 떼어내는 과정이다. 영화 후반부로 갈수록 극은 전형적인 할리우드 액션물로 변주되는데, 이는 케이지가 90년대에 군림했던 더 록이나 콘 에어 같은 블록버스터에 대한 자의적인 오마주다. 그는 이 영화를 통해 "나는 여전히 블록버스터를 이끌 수 있는 스타이며, 동시에 나 자신을 객관화할 수 있는 지적인 배우"임을 증명했다. 평단 역시 "니콜라스 케이지가 아니면 불가능했을 기획"이라며 극찬했고, 로튼 토마토 신선도 지수는 한때 100%를 기록하기도 했다.

이 작품은 니콜라스 케이지의 제2의 전성기를 알리는 신호탄이 되었다. 단순히 웃기는 코미디 영화를 넘어, 한 예술가가 대중의 시선과 자신의 자아 사이에서 겪는 갈등을 이토록 유쾌하고도 진솔하게 담아낸 사례는 드물다. [38]

2023년, 그는 마침내 자신의 연기 인생에서 숙명과도 같았던 배역인 렌필드 역을 맡아 렌필드로 귀환한다.

사실 케이지에게 흡혈귀 연기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그는 이미 1988년작 뱀파이어의 키스에서 서서히 미쳐가는 남자를 연기하며 전설적인 '발광 연기'를 선보인 바 있다. 하지만 당시의 역할은 스스로 흡혈귀라고 믿는 정신질환자에 가까웠다면, 《렌필드》에서의 그는 명실상부한 '밤의 제왕' 드라큘라 그 자체였다.

케이지는 인터뷰를 통해 본인이 이 역할을 위해 벨라 루고시의 고전적인 드라큘라뿐만 아니라, 크리스토퍼 리의 위압적인 모습, 심지어 자신의 숙부인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가 연출했던 드라큘라게리 올드만의 연기까지 모두 흡수하여 자신만의 방식으로 재해석했음을 밝혔다. 그는 드라큘라를 단순히 무서운 괴물이 아니라, '나르시시즘에 빠진 최악의 직장 상사'로 설정하는 파격을 선보였다.

영화 《렌필드》는 드라큘라와 그의 하수인 렌필드(니콜라스 홀트 분)의 관계를 현대적인 '가스라이팅'과 '독성 관계(Toxic Relationship)'로 치환하여 풀어낸다. 여기서 케이지의 연기는 빛을 발한다. 그는 부하 직원을 정서적으로 학대하면서도 교묘하게 조종하는 소시오패스적인 면모를 드라큘라의 초자연적인 위엄 속에 녹여냈다.

특히 주목할 점은 그의 비주얼 구현이다. 케이지는 매 촬영마다 3시간 이상의 특수 분장을 견뎌냈는데, 초기 단계의 흉측한 모습부터 회복 후의 화려한 귀족적 모습까지 각 단계에 맞춰 목소리 톤과 몸짓을 미세하게 조정했다. [39] 그가 붉은 벨벳 슈트를 입고 렌필드의 상담 모임에 난입하여 깽판을 치는 장면은 2010년대 이후 케이지가 보여준 '정제된 광기'의 정점이라 할 수 있다.

이 영화는 기본적으로 호러 코미디를 표방하지만, 그 수위는 결코 낮지 않다. 팔다리가 잘려 나가고 피가 낭자한 고어 액션이 난무하는 가운데, 케이지는 그 피비린내 나는 현장 속에서 혼자만 고전 연극 무대 위에 서 있는 듯한 이질적인 연기를 펼친다. 이러한 '톤앤매너의 불일치'는 오히려 영화의 유머 감각을 극대화하는 요소가 된다.

비평가들은 《렌필드》가 비록 흥행 면에서는 폭발적인 성공을 거두지 못했을지라도, 니콜라스 케이지라는 배우가 가진 '캐릭터 장악력'만큼은 여전히 현역 최정상급임을 증명했다고 입을 모았다.

2020년대 들어 니콜라스 케이지가 피그미친 능력을 통해 본인의 커리어를 자성(自省)하고 예술적 복귀를 선언했다면, 2023년 개봉한 드림 시나리오(Dream Scenario)는 그가 왜 여전히 '현재진행형 거장'인지를 증명한 결정타였다. 이 영화는 단순히 그가 출연한 수많은 작품 중 하나가 아니라, 할리우드의 가장 트렌디한 제작사인 A24와 '광기의 아이콘' 니콜라스 케이지가 만나 일궈낸 기묘하고도 서글픈 현대적 우화라고 할 수 있다.

이 영화에서 케이지는 '폴 매튜스'라는 이름의 대머리 중년 교수를 연기한다. 그는 지루할 정도로 평범하고, 학문적 성취에 목말라 있으며, 가족들에게조차 은근히 무시당하는, 그야말로 '니콜라스 케이지답지 않은' 인물이다. 케이지는 이 역할을 위해 특유의 강렬한 카리스마를 완전히 지워버리고, 구부정한 자세와 어수룩한 말투, 그리고 사회성이 결여된 찌질한 중년 남성의 모습을 완벽하게 구현해냈다.

재미있는 점은, 이 '평범한' 인물이 전 세계 사람들의 꿈속에 나타나기 시작한다는 설정이다. 처음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꿈의 배경처럼 서 있는 것만으로도 그는 전 지구적인 유명 인사가 된다. 케이지는 여기서 유명세가 주는 달콤함과 그것이 가져오는 공포를 동시에 연기하는데, 이는 실제 그가 겪었던 '밈(Meme)화 된 삶'과 묘하게 겹쳐 보이며 관객들에게 기묘한 메타적 재미를 선사한다.

영화의 중반부, 사람들의 꿈속에서 방관자였던 폴 매튜스가 끔찍한 가해자로 변하기 시작하면서 영화는 급격하게 어두워진다. 어떠한 잘못도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단지 '꿈에 나왔다'는 이유만으로 사회에서 매장당하는 폴의 모습은, 현대 사회의 캔슬 컬처(Cancel Culture)와 소셜 미디어의 집단 광기를 날카롭게 풍자한다.

케이지는 억울함에 몸부림치다가 결국 스스로 무너져 내리는 폴 매튜스의 심리를 처절하게 묘사한다. 특히 식당에서 쫓겨나거나 가족들에게 외면당할 때 보여주는 그의 표정은, 과거 라스베가스를 떠나며에서 보여주었던 절망의 변주곡과 같다. 하지만 이번에는 술 때문이 아니라, 통제할 수 없는 타인의 시선 때문에 파멸한다는 점에서 더욱 현대적인 공포를 자극한다.

제작사 A24는 언제나 독창적인 소재와 감각적인 연출로 정평이 나 있는데, 드림 시나리오의 크리스토퍼 보글리 감독은 니콜라스 케이지라는 거대한 에너지를 영화의 메시지를 위해 영리하게 통제했다. 감독은 케이지에게 "이번에는 절대로 발광하지 말아달라"고 주문했고, 케이지는 그 억눌린 에너지를 내면으로 폭발시키며 역설적으로 가장 강렬한 필모그래피를 추가했다.

비평가들은 이 영화를 두고 "니콜라스 케이지의 커리어 중 가장 섬세한 연기"라고 극찬했다. 그는 이 작품으로 제81회 골든 글로브 시상식 뮤지컬/코미디 부문 남우주연상 후보에 오르며, 단순히 왕년의 스타가 아닌 현재 할리우드에서 가장 유연하고 도전적인 배우임을 다시 한번 입증했다.[40][41]

4.15. 현재[편집]

케이지는 환갑을 넘긴 나이에도 불구하고 할리우드에서 가장 바쁜 배우 중 한 명으로 꼽힌다. 보통 이 정도 경력을 가진 대배우들이 1년에 한 편, 혹은 몇 년에 한 편씩 신중하게 작품을 고르며 소위 '전설'로서의 무게감을 관리하는 것과는 정반대의 행보를 걷고 있다. 그는 여전히 1년에 적게는 2편, 많게는 4~5편까지도 스크린에 얼굴을 비추는데, 이는 단순히 재정적 이유[42] 때문이 아니라, 본인 스스로가 연기라는 행위 자체를 '정신적 치유'이자 '삶의 원동력'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2020년대 중반에 들어서면서 그는 단순한 다작을 넘어, 자신의 이미지를 영리하게 활용하거나 혹은 완전히 파괴하는 실험적인 프로젝트에 거침없이 몸을 던지고 있다.

롱레그스는 2024년 개봉하여 평단과 관객을 경악하게 만든 작품이다. 케이지는 이 영화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연쇄살인마 '롱레그스' 역을 맡았는데, 영화의 마케팅 단계에서부터 그의 얼굴을 철저히 숨기는 전략을 취했다. 실제 영화 속 그의 모습은 특수분장과 기괴한 목소리 톤이 결합되어, 관객들로 하여금 "내가 알던 니콜라스 케이지가 맞나?" 하는 공포 섞인 의구심을 자아내게 했다. 이 영화는 박스오피스에서도 대박을 터뜨리며 그가 여전히 상업적 파괴력을 지닌 '티켓 파워'의 소유자임을 입증했다.

스파이더 느와르는 소니 픽처스가 제작하는 실사 드라마 시리즈로,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에서 목소리 연기로 극찬을 받았던 '스파이더맨 누아르'의 실사판이다. 1930년대 뉴욕을 배경으로 한 하드보일드 탐정물 스타일이 될 것으로 보이며, 케이지는 직접 주연을 맡아 중후하면서도 냉소적인 히어로의 모습을 보여줄 예정이다. 팬들은 그의 실제 외모와 누아르 장르의 결합이 어떤 시너지를 낼지 벌써부터 기대를 모으고 있다.

(Lords of War)은 2005년작 로드 오브 워의 속편이다. 20년 만에 돌아오는 이 작품에서 케이지는 다시 한번 무기 밀매상 유리 오를로프를 연기한다. 이번에는 그의 아들(빌 스카스가드 분)과의 갈등과 협력을 다룰 예정인데, 전편이 냉전 이후의 무기 암시장을 냉소적으로 그렸다면 이번 속편은 현대의 복잡한 국제 정세와 드론 전쟁 등을 어떻게 녹여낼지가 관전 포인트다.

그는 거대 자본이 투입된 블록버스터뿐만 아니라, 참신한 아이디어로 무장한 독립 영화계의 러브콜도 마다하지 않는다. 드림 시나리오의 성공 이후 A24와 같은 힙한 제작사들이 가장 사랑하는 중견 배우가 되었으며, 이는 그가 단순히 '과거의 스타'가 아니라 '현재 가장 트렌디한 감각을 지닌 배우'로 소비되고 있다.

그의 차기작 리스트에는 제목만 들어도 기묘한 영화들이 즐비하다. 성경 속 이야기를 기괴하게 재해석한 호러물부터, 인간의 실존적 고민을 담은 저예산 드라마까지 그 폭이 매우 넓다. 케이지는 인터뷰에서 "나는 이제 내가 하고 싶은 것만 한다. 그게 대중의 기대와 다르더라도 상관없다"라고 밝히며, 커리어의 종착역이 아닌 '새로운 시작점'에 서 있음을 강조했다.

케이지가 이토록 많은 작품을 소화할 수 있는 비결은 그의 독특한 작업 방식에 있다. 그는 현장에서 결코 까다로운 배우가 아닌 것으로 유명하다. 감독의 의도를 정확히 파악하면서도 그 위에 자신만의 '케이지스러운' 디테일을 얹는 데 능숙하며, 촬영 스케줄이 빡빡하더라도 불평 없이 임하는 성실함을 보여준다.

5. 사생활[편집]

케이지의 사생활은 그의 필모그래피만큼이나 드라마틱하고 파란만장하다. 할리우드의 전형적인 바람둥이 이미지와는 또 결이 다른데, 그는 한 번 사랑에 빠지면 물불 가리지 않고 돌진하는 '열정파'에 가깝다. 특히 그의 결혼 생활은 당대 최고의 톱스타부터 전설적인 뮤지션의 딸, 그리고 일반인에 이르기까지 그 스펙트럼이 매우 넓으며, 각 결혼마다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에피소드들을 남겼다.

케이지의 첫 번째 부인은 연기파 배우 가문 출신의 패트리샤 아퀘트였다. 두 사람의 만남부터가 범상치 않은데, 1980년대 후반 한 식당에서 패트리샤를 처음 본 케이지는 그 자리에서 "당신과 결혼하겠다"고 선언했다. 당연히 패트리샤는 그를 미친 사람 취급하며 장난삼아 '불가능한 미션'들을 던졌다. "검은 연꽃을 가져오고,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의 사인을 받아오며, 티베트 승려의 옷을 가져오라"는 식이었다.

그런데 케이지는 이를 실제로 수행하기 시작했다. 검은 페인트를 칠한 연꽃을 들고 나타나는가 하면, 온갖 수단을 동원해 수집품을 모아 그녀의 집 앞에 나타난 것. 이 기괴하면서도 지독한 로맨티시즘에 감복한 패트리샤는 결국 마음을 열었고, 두 사람은 1995년 결혼에 골인한다. 하지만 개성이 너무나 강했던 두 사람의 결합은 오래가지 못했다. 결혼 직후부터 별거설이 돌았고, 실제로는 혼인 기간의 상당 부분을 따로 지내다가 2000년에 이혼 소송을 제기, 2001년에 공식적으로 갈라섰다. [43]

패트리샤와 이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케이지는 전 세계를 놀라게 한 결혼 발표를 한다. 상대는 바로 '황제' 엘비스 프레슬리의 외동딸인 리사 마리 프레슬리였다. 평소 엘비스 프레슬리의 광팬으로 유명했던 케이지였기에, 팬들 사이에서는 "성공한 덕후의 끝판왕"이라는 농담이 나오기도 했다.

두 사람은 2002년 하와이에서 호화로운 결혼식을 올렸다. 하지만 이들의 결합은 그야말로 '기름에 불을 붙인 격'이었다. 두 사람 모두 불 같은 성격을 소유하고 있었고, 사소한 말다툼이 큰 싸움으로 번지기 일쑤였다. 결정적인 사건은 요트 위에서 벌어진 부부싸움이었는데, 화가 난 리사 마리가 케이지가 선물한 6캐럿짜리 다이아몬드 반지를 바다에 던져버리자, 케이지 역시 화를 참지 못하고 자신의 무언가를 바다로 던져버렸다는 일화가 유명하다. 결국 이들은 결혼 108일 만에 이혼 서류를 접수하며 할리우드 역사상 가장 짧은 결혼 생활 중 하나로 기록되었다. [ 리사 마리는 훗날 인터뷰에서 "우리는 결혼하지 말았어야 했다. 우리는 너무 닮아서 서로를 파괴했다"라고 회고했다.]

앞선 두 번의 결혼이 할리우드 로열 패밀리나 톱스타와의 '불꽃 같은 충돌'이었다면, 이후의 행보는 좀 더 개인적이고 취향 중심적인 방향으로 흐르게 된다. 특히 한국계 여성과의 결혼은 그에게 '케서방'이라는 친숙한 별명을 선사하며 한국 대중과의 거리를 좁히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2004년, 니콜라스 케이지는 전 세계를 다시 한번 깜짝 놀라게 한다. 상대는 로스앤젤레스의 한 식당에서 웨이트리스로 일하던 20살 연하의 한국계 미국인 앨리스 킴(한국명 김용경)이었다. 당시 케이지는 식당 손님으로 방문했다가 그녀에게 첫눈에 반해 적극적인 구애를 펼쳤고, 만난 지 불과 몇 달 만에 결혼에 골인했다.

이 결혼은 한국 내에서 엄청난 화제가 되었다. 할리우드의 대스타가 한국인 사위가 되었다는 사실에 대중은 열광했고, 케이지 역시 한국을 방문할 때마다 "나는 한국의 사위다"라며 친근감을 표시했다. 특히 그는 한국 음식에 깊은 관심을 보였으며, 공식 석상에 아내와 함께 한복을 입고 나타나는 등 한국 문화에 대한 애정을 숨기지 않았다. [44]

두 사람 사이에서는 아들인 칼 엘 케이지(Kal-El Cage)가 태어났다. 아들의 이름인 '칼 엘'은 주지하다시피 슈퍼맨의 본명에서 따온 것인데, 이는 케이지의 지독한 코믹스 덕후 기질이 아들의 이름에까지 투영된 사례다. 앨리스 킴과의 결혼 생활은 약 12년 동안 이어지며 케이지의 역대 결혼 중 가장 긴 기간을 기록했다. 비록 2016년 이혼에 합의하며 종지부를 찍었으나, 이혼 후에도 두 사람은 아들 양육을 위해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앨리스 킴과의 긴 여정이 끝난 후, 케이지의 연애사는 다시 한번 요동치기 시작한다. 2019년 3월, 그는 라스베이거스에서 일본계 메이크업 아티스트 에리카 코이케와 네 번째 혼인신고를 마쳤다. 하지만 이 결혼은 할리우드 역사에 남을 '초단기 결혼'으로 기록된다.

신고를 마친 지 불과 4일 만에 케이지가 법원에 혼인 무효 소송을 제기했기 때문이다. 당시 목격담에 따르면 두 사람은 혼인신고 당시 만취 상태였으며, 케이지는 "그녀가 내 돈을 다 가져가려 한다"라고 소리를 지르는 등 정상적인 판단이 불가능한 상황이었다고 한다. 결국 이 소동은 6월에 공식적인 이혼으로 마무리되었으며, 케이지의 흑역사 중 하나로 남게 되었다.

짧은 소동 이후 케이지는 다시 일본인 여성인 시바타 리코와 사랑에 빠진다. 30살 이상의 나이 차이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1년 이상의 열애 끝에 2021년 라스베이거스에서 소규모 결혼식을 올렸다. 케이지는 리코에게 검은 다이아몬드가 박힌 반지를 선물하며 청혼했는데, 이는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색이 검은색이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2022년에는 두 사람 사이에서 딸인 어거스트 프란체스카 코폴라 케이지가 태어났다. 케이지는 환갑에 가까운 나이에 늦둥이 딸을 얻으며 매우 기뻐했으며, 인터뷰를 통해 "드디어 완벽한 가정을 찾은 것 같다"라고 만족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리코와의 결혼 이후 케이지의 삶은 과거의 불안정함에서 벗어나 다소 평온해진 듯한 인상을 주며, 현재까지도 각종 레드카펫에 동행하며 잉꼬부부의 면모를 과시하고 있다.

그의 결혼 상대를 보면 유독 동양인(한국계, 일본계) 여성이 많다는 점이 눈에 띈다. 이에 대해 일각에서는 케이지가 서구적인 미의 기준보다는 좀 더 신비스럽고 이국적인 동양의 미학에 매료된 것이 아니냐는 분석을 내놓기도 한다. 실제로 그는 동양 철학과 문화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자신의 연기론인 '누보 샤머니즘' 역시 동양적인 명상이나 무속 신앙과 궤를 같이하는 부분이 있다.

그는 계산적인 연애보다는 순간의 감정에 충실하며, 그 감정이 식었을 때조차 비겁하게 숨기지 않고 정면으로 마주하는 방식을 택해왔다. 이러한 그의 사생활은 때로 조롱의 대상이 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거침없이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니콜라스 케이지다운' 행보로 평가받기도 한다.

6. 한국과의 인연[편집]

대한민국 대중문화사에서 케이지만큼 친숙하면서도 기묘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할리우드 스타는 드물다. 대개 해외 스타들이 방한 행사나 인터뷰를 통해 일시적인 친밀감을 쌓는 것과 달리, 케이지는 실제 '한국의 사위'가 되어 가족 공동체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졌던 독특한 이력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 팬들은 그를 단순히 먼 나라의 배우가 아닌, 명절이면 처가댁을 방문할 것 같은 친근한 '케서방'으로 부르며 각별한 애정을 보냈다.

그가 '케서방'이라는 국민적 별명을 얻게 된 계기는 2004년 한국계 여성 앨리스 킴과의 결혼이었다. 당시 한국 사회는 할리우드 톱스타가 한국인 여성을 배우자로 맞이했다는 사실에 유례없는 관심을 보였다. 특히 그가 단순히 결혼만 한 것이 아니라, 한국의 예절을 존중하고 한국 문화를 진심으로 즐기는 모습이 포착되면서 대중적인 호감도가 급상승했다.

그는 사석에서도 한국 음식을 즐겨 먹는 것으로 유명했다. 앨리스 킴의 가족들과 함께 고깃집에서 불고기를 먹거나 김치를 즐기는 모습이 파파라치 샷으로 찍힐 때마다 한국 네티즌들은 "우리 사위 고기 많이 먹여라", "영락없는 한국 아저씨다"라며 환호했다. 이러한 유대감은 그가 출연한 영화들의 한국 흥행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는데, 당시 그가 주연한 내셔널 트레져 등의 작품은 북미 못지않은 뜨거운 반응을 한국에서 이끌어내기도 했다.

케이지는 자신의 정체성에 '한국'이라는 키워드를 넣는 데 주저함이 없었다. 2000년대 중반 영화 홍보차 방한했을 때, 그는 수많은 취재진 앞에서 스스로를 "한국의 사위"라고 지칭하며 한국 팬들의 마음을 저격했다.[ 2004년 내한 당시 기자회견에서 "한국은 나의 제2의 고향과 같다"고 발언하여 큰 박수를 받았다.]

단순히 립서비스에 그치지 않고, 그는 공식 레드카펫 행사나 시상식 파티 등에 아내와 함께 개량 한복을 입고 등장하는 파격을 선보이기도 했다. 할리우드의 전형적인 턱시도 부대 사이에서 은은한 광택의 한복을 입고 인자한 미소를 짓는 케이지의 모습은 한국인들에게 자부심과 동시에 묘한 동질감을 선사했다. 또한 그는 아들 '칼 엘'에게 한국식 교육을 시키거나 한국어를 배우게 하려는 노력을 기울였다는 일화가 전해지며 '참된 사위'의 표상으로 등극했다.

2016년, 12년간의 결혼 생활 끝에 앨리스 킴과 이혼했다는 소식이 전해졌을 때 한국 팬들의 반응은 마치 '집안 어른의 파경'을 본 듯 진심 어린 안타까움이 주를 이뤘다. "케서방이 드디어 한국 처가와 인연이 끊기는 것인가"라며 아쉬워하는 여론이 많았으나, 이후에도 그가 앨리스 킴 및 아들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며 함께 식사하는 모습이 공개되자 "이혼해도 의리는 지키는 케서방"이라며 여전한 응원을 보냈다.

흥미로운 점은 그가 다섯 번째 아내인 시바타 리코(일본인)와 결혼했을 때의 반응이다. 일부 한국 네티즌들은 "이제 케서방이 아니라 일서방(일본 사위)이 된 것이냐"라며 농담 섞인 배신감(?)을 토로하기도 했으나, 이 역시 그가 한국 대중에게 얼마나 친숙한 존재인지를 반증하는 해프닝이었다.

한국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니콜라스 케이지는 일종의 '친근한 아저씨' 밈으로 소비된다. 그의 특유의 억울해 보이는 표정이나 발광하는 연기 장면들은 한국식 유머 코드와 결합하여 수많은 짤방을 양산했다. 특히 그가 파산 위기를 겪으며 다작을 할 때, 한국 팬들은 "처가댁 용돈 드리려고 저렇게 열심히 일하는 것 아니냐"는 식의 'K-패치'된 해석을 덧붙이며 그를 희화화하기보다는 인간적으로 이해하려는 태도를 보였다.

7. 기행[편집]

할리우드에는 수많은 괴짜 배우들이 존재하지만, 케이지의 기행은 단순히 관심을 끌기 위한 퍼포먼스가 아니라 그의 예술 철학, 수집욕, 그리고 독특한 세계관이 결합된 '진심'에서 우러나온다는 점이 차별화된다. 그를 아는 동료들은 "그는 연기하지 않을 때도 니콜라스 케이지 그 자체다"라고 입을 모은다. 본 챕터에서는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혹은 전설처럼 내려오는 그의 기상천외한 에피소드들을 상세히 다룬다.

가장 유명한 일화 중 하나는 그의 '동물적 식단'이다. 케이지는 과거 인터뷰에서 자신이 먹는 고기를 고를 때 동물의 성관계 방식(Mating Habits)을 기준으로 삼는다고 밝혀 세상을 경악케 했다.[45] 그의 주장에 따르면, 돼지나 소 같은 동물들은 성관계를 맺는 방식이 "우아하지 못하기(Unignoble)" 때문에 먹지 않는다고 한다.

반면 닭이나 물고기는 그 과정이 매우 "품격 있고 우아하기(Dignified)" 때문에 주저 없이 식단에 포함시킨다고. 이 발언은 당시 '케이지다운 헛소리'라는 비웃음과 '철학적인 채식주의의 변종'이라는 호기심 섞인 분석을 동시에 낳았다. 물론 현재까지도 이 식단을 엄격히 고수하는지는 알 수 없으나, 먹는 것 하나에도 자신만의 괴상한 미학적 잣대를 들이대는 그의 면모를 잘 보여주는 사례다.

한때 할리우드에서 가장 돈을 많이 버는 배우 중 한 명이었던 그가 파산 직전까지 몰렸던 이유는 단순히 낭비벽 때문이 아니라, '현실 세계의 수집품'이 지나치게 거대했기 때문이다. 그는 전 세계에 걸쳐 15채가 넘는 저택을 소유했는데, 여기에는 독일의 11세기 고성(Schloss Neidstein)과 영국의 성곽이 포함되어 있었다.

가장 압권은 뉴올리언스에 위치한 자신의 묘지다. 그는 자신이 죽은 뒤 묻힐 장소로 약 3미터 높이의 거대한 흰색 피라미드형 묘지를 미리 구입해 두었다. 묘비명에는 라틴어로 'Omnia Ab Uno(모든 것은 하나로부터)'라고 적혀 있는데, 살아서는 고성에 살고 죽어서는 피라미드에 묻히겠다는 그의 스케일은 과연 할리우드에서도 독보적이다.

그의 기행은 촬영 현장에서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되기도 한다. 1984년 영화 버디 촬영 당시, 부상당한 군인의 고통을 실감 나게 표현하기 위해 마취 없이 생니 두 개를 뽑아버린 일화는 전설적이다. 또한 1988년 뱀파이어의 키스에서는 대본에 적힌 소품용 가짜 알 대신 살아있는 바퀴벌레를 실제로 씹어 먹어 현 스태프들을 경악하게 만들었다. 당시 감독은 한 번이면 충분하다고 했으나, 케이지 본인이 만족스럽지 않다며 재촬영을 요구해 바퀴벌레를 두 번이나 먹었다는 후문이다.

대중은 그를 '미친놈'이라 부르며 웃어넘기곤 하지만, 심리학자들과 평론가들은 그의 이런 기행이 극심한 중압감과 가문의 무게감에서 벗어나기 위한 일종의 탈출구라고 분석하기도 한다. 코폴라라는 거대한 성씨를 버리고 케이지라는 성을 택했을 때부터, 그는 이미 평범한 삶을 거부하고 스스로를 하나의 '캐릭터'로 박제시킨 것일지도 모른다.

8. 인터넷 밈[편집]

8.1. ''You Don't Say?"[편집]

1988년작 블랙 코미디 호러 영화인 뱀파이어의 키스는 흥행 성적이나 평단에서의 초기 반응은 그저 그런 '괴작' 수준에 머물렀으나, 이 영화는 훗날 21세기 인터넷 문화의 역사에서 성서와도 같은 지위를 차지하게 된다. 특히 이 챕터에서 다룰 그의 연기는 훗날 '케이지 정수(Cage-ness)'라 불리는 광기 어린 연기 스타일의 원형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이 영화에서 케이지가 맡은 역할은 뉴욕의 오만한 문학 에이전트 '피터 로'다. 그는 어느 날 밤 만난 여성에게 목을 물린 뒤, 자신이 뱀파이어로 변해가고 있다는 망상에 사로잡힌다. 케이지는 이 캐릭터의 점진적인 붕괴를 묘사하기 위해 할리우드 역사상 가장 파격적인 연기를 선보였다.

가장 유명한 일화는 영화 속에서 실제로 살아있는 바퀴벌레를 먹은 것이다. 제작진은 식용 소품이나 가짜를 제안했으나, 케이지는 극 중 캐릭터의 혐오감과 현실감을 극대화해야 한다며 이를 거절하고 카메라 앞에서 진짜 바퀴벌레를 씹어 삼켰다.[46] 또한, 극 중에서 뱀파이어처럼 보이기 위해 플라스틱 가짜 송곳니를 끼고 거리를 활보하며 실제로 시민들을 놀라게 하거나, 알파벳 전체를 괴성을 지르며 외치는 장면 등은 당시 기준으로도 "지나치게 과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 영화가 개봉한 지 20년이 훨씬 지난 시점, 4chanReddit을 중심으로 니콜라스 케이지의 표정 하나가 박제되어 전 세계로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극 중 피터 로가 자신의 비서인 알바(마리아 콘치타 알론소 분)를 구석에 몰아넣고 겁을 주며 짓는 특유의 눈을 부릅뜨고 입을 비죽거리는 경멸 섞인 표정이 바로 그것이다.

이 표정은 "You Don't Say?"[47]라는 문구와 결합하여, 상대방이 너무나 당연한 소리를 할 때 비웃어주는 용도의 '레이지 페이스(Rage Face)' 벡터 이미지로 재탄생했다. 니콜라스 케이지 본인은 이 밈의 존재를 한동안 모르고 지내다가, 나중에 자신의 얼굴이 인터넷에서 우스꽝스럽게 소비되는 것을 보고 처음에는 당황했으나, 결국 "내 연기가 젊은 세대와 소통하는 방식"이라며 대인배적인 면모를 보였다.

사실 뱀파이어의 키스에서의 연기는 단순히 웃기기 위해 기획된 것이 아니다. 케이지는 이 영화를 통해 독일 표현주의 영화인 노스페라투맥스 슈렉 같은 기괴한 신체 연기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고자 했다. 그는 눈을 깜빡이지 않거나, 비정상적으로 몸을 꼬는 행위를 통해 캐릭터의 내면적 공포를 외부로 표출했다.

이러한 시도는 훗날 그가 명명한 '누보 샤머니즘' 연기법의 기틀이 되었다. 대중은 이를 보고 "약을 한 것이 아니냐" 혹은 "연기력이 형편없다"고 비난하기도 했으나, 평론가 로저 이버트는 시간이 흐른 뒤 이 영화를 재평가하며 "케이지는 이 영화에서 순수한 에너지를 폭발시켰으며, 이는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그만의 영역"이라고 극찬했다. 결국 이 '광기'는 90년대 그를 아카데미 시상식으로 인도하는 자양분이 되었으며, 2023년작 렌필드에서 실제로 드라큘라 역할을 맡게 됨으로써 약 35년 만에 기묘한 수미상관을 이루게 된다.

8.2. Laugh[편집]

이 장면은 페이스 오프의 극 중 자신의 동료인 디트리히(닉 카사베츠 분)[48]와 재회했을 때 발생하는 상호 확증 파괴적 광기의 정점이다.

서로를 마주 본 두 사람이 별다른 대사도 없이 갑자기 서로를 향해 "으하하하하!!"하며 미친 듯이 웃어젖히는 장면이다. 단순히 하하 호호 웃는 수준이 아니라, 목에 핏대를 세우고 눈을 희번덕거리며 온몸을 흔드는 그 모습은 보는 이로 하여금 "둘 다 약을 한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자아낼 정도로 파괴적이다.

이 밈은 주로 '어처구니없는 상황에서 실성했을 때' 혹은 '두 명의 빌런이나 바보들이 만나 시너지를 낼 때' 사용된다. 특히 니콜라스 케이지가 웃다가 갑자기 정색하거나, 다시 웃음의 피치를 올리는 특유의 완급 조절은 짤방(GIF)으로 만들었을 때 그 효과가 배가 된다.

이 장면에서 케이지의 웃음소리는 거의 고주파에 가까운 "아하하하핰!!" 하는 소리를 내는데, 이는 훗날 수많은 유튜버들이 케이지의 목소리를 리믹스할 때 필수적으로 사용하는 소스(Source)가 되었다. 실제로 현장에서는 두 배우의 에너지가 너무 강렬해서 스태프들이 웃음을 참느라 고생했다는 후문이 있다.

서구권에서는 이 장면을 'The Greatest Laugh in Cinema History(영화 역사상 가장 위대한 웃음)'라는 제목으로 박제해 두었으며, 누군가 말도 안 되는 농담을 했을 때 댓글로 이 장면의 움짤을 올리는 것이 일종의 관례가 되었다.

8.3. "Not the Bees!"[편집]

두 번째로 유명한 소스는 2006년 리메이크된 위커 맨이다. 영화 자체는 평단과 관객 모두에게 혹평을 받았지만, 밈의 관점에서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였다.

케이지가 머리에 벌통이 씌워진 채 "No, not the bees! My eyes! Ahhh!"라고 절규하는 장면은 공포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과장된 연기 톤 때문에 코미디로 승화되었다. 그가 곰 인형 옷을 입고 여성을 주먹으로 때리는 장면 등, 영화 전반에 깔린 개연성 없는 광기는 수많은 리믹스 영상과 움짤(GIF)을 탄생시켰다.

인터넷 유저들은 케이지가 극도로 고통스러워하거나 분노할 때 느껴지는 기묘한 카타르시스를 즐겼으며, 이는 'Cage Rage(케이지의 분노)'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냈다.

8.4. 모든 곳에 존재하는 케이지(Nicolas Cage Everywhere)[편집]

그의 얼굴은 일종의 합성 필수 요소가 되었다.
  • 모나리자 케이지: 명화 속 인물의 얼굴을 케이지로 바꾸는 것은 고전적인 놀이가 되었다.
  • 디즈니 공주 케이지: 백설공주부터 엘사까지, 모든 디즈니 여주인공의 얼굴에 케이지의 수염 난 얼굴을 합성해도 묘하게 어울린다는 사실이 증명(?)되었다.
  • 필로우 커버와 굿즈: 그의 얼굴이 대문짝만하게 박힌 베개, 티셔츠, 심지어는 보는 각도에 따라 얼굴이 변하는 시퀸(Sequin) 쿠션은 전 세계 인싸들의 필수 아이템으로 등극했다.

9. 동료 배우 및 감독들의 평가[편집]

케이지는 동료 영화인들 사이에서도 극과 극의 평가를 받는 동시에, 가장 연구 대상이 되는 배우이기도 하다. 그의 연기 스타일이 워낙 독특하다 보니 어떤 이는 그를 '천재'라 부르고, 어떤 이는 '통제 불가능한 괴물'이라 부른다. 하지만 공통된 의견은 "그와 같은 배우는 이전에도 없었고, 이후에도 없을 것"이라는 점이다.

에단 호크는 인터뷰에서 니콜라스 케이지를 가리켜 "말론 브란도 이후 연기라는 예술에서 새로운 지평을 연 유일한 배우"라고 극찬했다. 많은 배우가 사실주의(Realism)에 갇혀 있을 때, 케이지는 기꺼이 조롱받을 위험을 감수하면서도 연기를 초현실적인 영역으로 끌어올렸다는 것이다.

쿠엔틴 타란티노는 케이지의 열렬한 팬으로 유명하다. 특히 배드 루테넌트에서의 연기를 보고 "최근 몇 년간 본 연기 중 가장 대담하다"라고 평했다. 타란티노는 케이지가 가진 특유의 'B급 정서와 A급 연기력의 결합'을 할리우드에서 가장 유니크한 자산으로 꼽는다.

오우삼 감도은 페이스 오프 촬영 당시 케이지에 대해 "그는 자신의 캐릭터를 위해 100가지의 다른 버전을 준비해 오는 배우다. 내가 '조금만 줄여달라'고 부탁해야 할 정도로 에너지가 넘친다"라고 회고했다.

베르너 헤어조크악질경찰을 연출할 당시 케이지의 '광기'를 있는 그대로 사랑했다. 그는 촬영장에서 케이지에게 어떠한 제한도 두지 않았으며, 케이지가 약에 취한 형사 연기를 하며 이구아나를 보고 헛것을 보는 장면에서 "이것이 바로 내가 원하던 영화적 진실"이라며 감탄했다고 한다.

동료 배우들에게 케이지는 '배우들의 배우'이기도 하다. 페드로 파스칼미친 능력을 함께 촬영하며 "내 우상과 함께 연기하는 것은 꿈만 같은 일이었으며, 그는 현장에서 누구보다 겸손하고 프로페셔널했다"라고 밝혔다. 반면, 그의 과한 열정에 당황하는 경우도 적지 않은데, 촬영 전날 밤새도록 캐릭터 연구를 한 뒤 현장에 나타나 갑자기 소리를 지르거나 대본에도 없는 기행을 벌이면 상대 배우들이 실제 공포를 느끼는 경우도 종종 있다고 전해진다.

10. 출연작[편집]

연도
작품
배역
비고
1982
리치몬드 연애 소동 (Fast Times at Ridgemont High)
브래드의 친구
데뷔작
1983
밸리 걸 (Valley Girl)
랜디
첫 주연작
1983
럼블 피쉬 (Rumble Fish)
스모키
1984
레이싱 위드 문 (Racing with the Moon)
니키
1984
코튼 클럽 (The Cotton Club)
빈센트 드와이어
1984
버디 (Birdy)
알 콜롬보
1986
더 블루 이구아나 (The Blue Iguana)
제작 참여
1986
페기 수 결혼하다 (Peggy Sue Got Married)
찰리 보델
1987
아리조나 유괴사건 (Raising Arizona)
H.I. 맥더노
1987
문스트럭 (Moonstruck)
로니 카마레리
1988
네버 온 튜즈데이 (Never on Tuesday)
빨간 스포츠카 운전자
카메오
1988
뱀파이어의 키스 (Vampire's Kiss)
피터 로
인터넷 밈의 시초
1989
전쟁의 화원 (Time to Kill)
에리코 실베스트리
1990
아파치 (Fire Birds)
제이크 프레스턴
1990
광란의 사랑 (Wild at Heart)
세일러 리플리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
1991
조니 콜린스
1992
허니문 인 베가스 (Honeymoon in Vegas)
잭 싱어
1993
아모스 & 앤드류 (Amos & Andrew)
사무엘 길런
1993
레드 락 서쪽 (Red Rock West)
마이클 윌리엄스
1993
데들리 폴 (Deadfall)
에디
1994
더그 체스닉
1994
당신에게 일어날 수 있는 일 (It Could Happen to You)
찰리 랭
1994
트랩트 (Trapped in Paradise)
빌 피포
1995
이중 노출 (Kiss of Death)
리틀 주니어 브라운
1995
라스베가스를 떠나며 (Leaving Las Vegas)
벤 샌더슨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수상
1996
더 록 (The Rock)
스탠리 굿스피드 박사
1997
콘 에어 (Con Air)
카메론 포우
1997
페이스 오프 (Face/Off)
카스토르 트로이 / 숀 아처
1998
시티 오브 엔젤 (City of Angels)
세스
1998
릭 산토로
1999
8미리(8mm)
톰 웰스
1999
비상 근무 (Bringing Out the Dead)
프랭크 피어스
마틴 스코세이지 연출
2000
식스티 세컨즈 (Gone in 60 Seconds)
랜달 "멤피스" 레인즈
2000
패밀리 맨 (The Family Man)
잭 캠벨
2001
코렐리의 만돌린 (Captain Corelli's Mandolin)
안토니오 코렐리 대위
2001
크리스마스 캐롤 (Christmas Carol: The Movie)
제이콥 말리
목소리 출연
2002
윈드토커 (Windtalkers)
조 엔더스 중사
2002
어댑테이션 (Adaptation)
찰리 카우프만 / 도널드 카우프만
1인 2역, 아카데미 노미네이트
2002
소니 (Sonny)
애시드 옐로
감독 데뷔작 및 단역 출연
2003
매치스틱 맨 (Matchstick Men)
로이 월러
2004
내셔널 트레져 (National Treasure)
벤자민 프랭클린 게이츠
2005
로드 오브 워 (Lord of War)
유리 오를로프
제작 겸직
2005
웨더 맨 (The Weather Man)
데이비드 스피리츠
2006
앤트 불리 (The Ant Bully)
조크
목소리 출연
2006
월드 트레이드 센터 (World Trade Center)
존 맥로린
2006
위커 맨 (The Wicker Man)
에드워드 말러스
제작 겸직, 벌 고문 밈 탄생
2007
고스트 라이더 (Ghost Rider)
쟈니 블레이즈 / 고스트 라이더
2007
푸 만추
세그먼트 'Werewolf Women of the SS' 카메오
2007
넥스트 (Next)
크리스 존슨
제작 겸직
2007
벤자민 프랭클린 게이츠
2008
방콕 데인저러스 (Bangkok Dangerous)
제작 겸직
2009
노잉 (Knowing)
존 코스틀러
2009
스펙클즈
목소리 출연
2009
배드 루테넌트 (Bad Lieutenant)
테렌스 맥도너
2009
텐마 박사
목소리 출연
2010
데이먼 맥리디 / 빅 대디
2010
마법사의 제자 (The Sorcerer's Apprentice)
발타자 블레이크
제작 겸직
2011
시즌 오브 더 위치 (Season of the Witch)
베이먼
2011
밀턴
2011
저스티스 (Seeking Justice)
윌 제라드
2011
트레스패스 (Trespass)
카일 밀러
2012
쟈니 블레이즈 / 고스트 라이더
2012
스톨른 (Stolen)
윌 몽고메리
2013
크루즈 패밀리 (The Croods)
그루그
목소리 출연
2013
프로즌 그라운드 (The Frozen Ground)
잭 할콤
2013
(Joe)
조 랜섬
2014
레이지 (Rage / Tokarev)
폴 맥과이어
2014
갤런
2014
레이포드 스틸
2014
다잉 오브 라이트 (Dying of the Light)
에반 레이크
2015
더 러너 (The Runner)
콜린 프라이스
2015
페이 더 고스트 (Pay the Ghost)
마이크 로포드
2016
트러스트 (The Trust)
짐 스톤
2016
독 이트 독 (Dog Eat Dog)
트로이
2016
스노든 (Snowden)
행크 포레스터
2016
찰스 맥베이 선장
2016
어썰트 뷰티 (Inconceivable)
브라이언
2016
아미 오브 원 (Army of One)
게리 팔크너
2017
에디 킹
2017
벤전스 (Vengeance: A Love Story)
존 드로모어
2017
인컨시버블 (Inconceivable)
브라이언
2017
더 부스 (Looking Glass)
레이
2017
맘 앤 대드 (Mom and Dad)
브렌트 라이언
2018
맨디 (Mandy)
레드 밀러
2018
룩 어웨이 (Looking Glass)
2018
마이크 챈들러
2018
슈퍼맨
목소리 출연
2018
스파이더맨 누아르
목소리 출연
2019
어카운트 렌더드 (A Score to Settle)
프랭크
2019
프라이멀 (Primal)
프랭크 월시
2019
킬러맨 (Kill Chain)
쿠엔틴
2019
그랜드 아일 (Grand Isle)
월터
2019
우주에서 온 색채 (Color Out of Space)
네이선 가드너
2020
지짓수 (Ji Jitsu)
와일리
2021
히어로
2021
윌리스 원더랜드 (Willy's Wonderland)
청소부
대사가 한 마디도 없음
2021
피그 (Pig)
비평가 협회 남우주연상 다수 수상
2022
닉 케이지
자전적 메타 영화
2023
올드 웨이 (The Old Way)
콜튼 브릭스
2023
렌필드 (Renfield)
드라큘라
2023
플래시 (The Flash)
슈퍼맨
카메오 출연
2023
승객
2023
더 리타이어드 (The Retirement Plan)
2023
드림 시나리오 (Dream Scenario)
폴 매튜스
A24 제작, 골든 글로브 노미네이트
2024
아카디아 (Arcadian)
2024
롱레그스 (Longlegs)
롱레그스
제작 겸직
2024
더 서퍼 (The Surfer)
더 서퍼
칸 영화제 비경쟁 부문 초청
미정
군주들 (Lords of War)
유리 오를로프
미정
더 가드 (The Carpenter's Son)
목수

11. 주요 수상 및 후보[편집]

시상식
연도
부문
작품
결과
1996
남우주연상
수상
2003
남우주연상
후보
1988
남우주연상
후보
1993
남우주연상
후보
1996
남우주연상(드라마)
수상
2003
남우주연상
후보
2024
남우주연상
후보
1990
황금종려상
수상[49]
2019
TIFF 공로상
수상

12. 여담[편집]

  • 원래 더 록의 스탠리 굿스피드 역은 아놀드 슈워제네거에게 먼저 제안이 갔으나, 시나리오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거절했다고 한다. 훗날 아놀드는 이 결정을 자신의 커리어 중 가장 큰 실수 중 하나로 꼽았다. 영화 속 굿스피드의 대사 중 상당 부분은 니콜라스 케이지의 애드리브나 아이디어였다고 전해진다. 특히 캐릭터를 더 '너드(Nerd)'스럽게 만들기 위해 욕설을 줄이고 독특한 감탄사를 사용하는 등의 디테일을 직접 제안했다.
[1] 실제로 그는 이 개념을 설명하기 위해 인류학 서적을 탐독하고, 연기 수업에서도 이를 전파하려 노력했다.[2] 당시 제작진은 식용 바퀴벌레를 제안했으나, 케이지는 '진짜'여야 한다며 거부하고 길거리의 바퀴벌레를 먹었다는 루머가 있을 정도로 독종이었다.[3] 실제로 그는 훗날 인터뷰에서 당시 촬영장에서 받은 스트레스로 인해 거의 매일 밤을 울며 지냈다고 회고하기도 했다.[4] 훗날 그가 엄청난 만화책 수집가가 되고, 장남의 이름을 '칼 엘(슈퍼맨의 본명)'로 짓게 된 배경에는 이러한 히어로물에 대한 깊은 애정이 깔려 있다.[5] 이 경험은 그가 성을 '케이지'로 바꾸기로 결심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된다. 가문의 후광이 오히려 자신의 실력을 증명하는 데 방해가 된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낀 것이다.[6] 80년대 할리우드를 풍미했던 청춘 스타 군단.[7] 이는 케이지가 연기하는 캐릭터의 감정에 지나치게 몰입하는 '과몰입' 성향이 초기부터 발현되었음을 보여주는 증거다.[8] 정확히는 유치였으나 성인이 된 후에도 남아있던 치아였다고 한다. 하지만 멀쩡한 치아를 연기를 위해 제거한다는 것은 당시 기준으로도, 지금 기준으로도 경악할 만한 일이었다.[9] 당시 제작진은 좀 더 전형적인 미남 배우를 원했다.[10] 나중에 리사 마리 프레슬리와 결혼까지 하게 되는 행보의 복선이라 볼 수도 있다.[11] 사실 이 영화는 제작비가 고작 400만 달러에 불과한 저예산 독립 영화였다. 케이지는 이 영화를 위해 자신의 개런티를 대폭 삭감하면서까지 출연을 자처했다.[12] 흥미롭게도 이 영화의 감독 마이크 피기스는 예산 부족으로 인해 케이지의 출연료를 제대로 지급하지 못했으나, 케이지는 수상 이후 "이 영화는 내 인생 최고의 선물이었다"며 전혀 개의치 않았다고 한다.[13] 이 장면에서 케이지의 포효는 그의 커리어 전체를 관통하는 '발광 연기'의 상업적 변용이라 볼 수 있다.[14] 케이지는 이 역할을 위해 앨라배마주 곳곳을 돌아다니며 현지인들의 억양을 채집했다고 한다. 실제로 영화를 보면 그가 평소 쓰는 말투와는 완전히 다른, 눅눅하고 끈적한 남부 특유의 악센트를 완벽하게 구사하는 것을 볼 수 있다.[15] 이 장면은 후에 수많은 예능과 영화에서 패러디되었으며, 케이지 본인도 자신의 커리어에서 가장 인상적인 비주얼 포인트 중 하나로 꼽는다.[16] 당시 브룩하이머는 케이지를 두고 "그는 액션 영화에 영혼을 불어넣는 드문 배우"라고 극찬했다.[17] 이 장면에서 케이지는 오우삼 감독 특유의 슬로 모션 미학에 맞춰 거의 무용에 가까운 움직임을 선보였는데, 이는 그가 평소 추구하던 '누보 샤머니즘' 연기론이 상업 영화의 극치와 만난 지점이라 평가받는다.[18] 극 중 아처 가족의 애정 표현이자 슬픔의 공유 방식이다.[19] 사실 교묘하게 편집된 컷들이 숨어있지만, 관객에게는 하나의 호흡으로 느껴지도록 설계되었다.[20] 비록 수상은 피아니스트에이드리언 브로디에게 돌아갔으나, 당시 케이지의 수상을 점치는 전문가들이 압도적으로 많았을 만큼 대단한 임팩트였다.[21] 실제로 리들리 스콧은 완벽주의자로 유명하여 배우의 자율성을 완벽히 보장하는 스타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케이지의 해석에는 전적인 신뢰를 보냈다고 한다.[22] 이 영화의 결말은 원작 소설과 달리 다소 희망적인 톤으로 각색되었는데, 케이지의 연기 덕분에 그 희망조차도 어딘가 쓸쓸한 뒷맛을 남긴다는 평이 많다.[23] 실제로 이 대사는 개봉 당시 상당한 화제가 되었으며, 케이지가 아니었다면 실소만 자아냈을 것이라는 평이 지배적이었다.[24] 슈퍼맨이 처음 등장한 전설적인 회차로, 케이지는 이 책을 소유했다가 도난당한 뒤 되찾아 경매에 내놓아 약 216만 달러(한화 약 24억 원)에 낙찰시키는 기염을 토했다.[25] 훗날 이 제작 과정은 'The Death of "Superman Lives": What Happened?'라는 다큐멘터리로 제작될 만큼 할리우드의 전설적인 비사로 남았다.[26] 사실 이 장면은 극장 개봉판에는 편집되었으나, 무삭제판(Unrated)에 포함되면서 전설이 되었다.[27] 이때 경합을 벌였던 상대가 다름 아닌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였다. 승리한 케이지는 기뻐했으나, 훗날 이 화석이 몽골에서 밀수된 장물임이 밝혀지면서 아무런 보상 없이 몽골 정부에 반납해야 했다.[28] 키우던 중 코브라가 자신을 공격하려 하자 오히려 그 모습에 영감을 받아 연기에 활용했다는 일화가 있다.[29] 엄밀히는 이 시기의 시작점에 있는 작품이다.[30] 하비 케이틀 주연의 1992년작 '나쁜 경찰'의 리메이크 격이지만, 헤어조크 감독 본인은 리메이크가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원제는 'Bad Lieutenant: Port of Call New Orleans'.[31] '파인애플 익스프레스' 등으로 알려진 데이빗 고든 그린 감독이 연출했다.[32] 특히 큐브 장난감을 보며 "색깔이 뭐야? 내 세상은 흑백이라 이건 본 적이 없어"라고 말하며 경탄하는 장면은 전 세계 관객들을 폭소케 했다.[33] 실제로 이 장면은 촬영 당시 현장 스태프들조차 숨을 죽일 정도로 압도적인 에너지를 뿜어냈다고 하며, 훗날 케이지의 필모그래피를 통틀어 가장 강렬한 시퀀스 중 하나로 꼽히게 된다.[34] 특히 과거 부하 직원이었던 셰프에게 "너는 원래 펍을 차리고 싶어 했잖아. 그런데 왜 지금은 남의 비위나 맞추는 요리를 하고 있지?"라고 묻는 장면은 영화의 백미로 꼽힌다.[35] 극 중 등장하는 돼지는 실제로 훈련받지 않은 돼지였는데, 케이지는 이 돼지와 교감하기 위해 촬영 내내 지극정성을 다했다고 한다. 정작 돼지는 케이지를 여러 번 물어서 촬영에 애를 먹었다는 후문이 있다.[36] 영화 속 로브가 만드는 요리들은 실제 셰프들의 자문을 거쳐 완성되었으며, 케이지 본인도 요리 과정을 완벽히 익히기 위해 상당한 시간을 할애했다.[실제로] 페드로 파스칼은 촬영 현장에서도 케이지의 엄청난 팬임을 자처하며, 그의 연기 지도에 감명받았다는 후문을 남기기도 했다.[38] 유사한 메타 영화로 존 말코비치의 존 말코비치 되기가 언급되곤 하지만, 본인이 본인의 커리어 전체를 이토록 전면적으로 내세운 점에서는 본작이 더 파격적이다.[39] 케이지는 드라큘라의 틀니를 낀 상태에서도 발음을 완벽하게 하기 위해 사적으로도 그 틀니를 끼고 생활하는 기행(...)을 보였다고 한다.[40] 영화 속 폴 매튜스의 외형은 실제 감독의 아버지와 니콜라스 케이지의 외모를 적절히 섞어 디자인되었다고 한다. 특히 그 엉성한 대머리 가발과 수염은 케이지의 아이디어도 상당 부분 반영되었다.[41] 이 영화를 기점으로 케이지는 "이제 나는 연기에서 은퇴할 준비가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폭탄 발언을 하기도 했으나, 이내 "아직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다"며 번복하는 해프닝을 빚기도 했다.[42] 과거 파산 위기를 겪었을 당시 진 빚은 2022년경 이미 모두 청산했다고 본인이 직접 밝힌 바 있다. 즉, 현재의 다작은 순수한 일욕심이자 연기 열정이다.[43] 재미있는 점은 별거 중에도 공식 석상에는 다정한 부부처럼 나타나는 등 철저한 '쇼윈도 부부'의 모습도 보였다는 것이다.[44] 이 시기 한국 팬들은 그를 '케서방' 혹은 '나익구(니콜라스의 한국식 음차)'라는 애칭으로 부르며 친근하게 대했다.[45] 2010년 '더 선' 등 외신과의 인터뷰에서 밝힌 내용이다.[46] 이 장면은 무려 세 번의 테이크를 거쳐 촬영되었다. 즉, 그는 바퀴벌레를 세 마리나 먹은 셈이다. 훗날 인터뷰에서 그는 "다시는 하고 싶지 않은 경험"이라며 진저리를 쳤다.[47] 번역하자면 "어머, 정말?", "안 물어봤는데?", "누가 그걸 몰라?" 정도의 비꼬는 뉘앙스다.[48] 영화 노트북의 감독으로도 유명한 그 닉 카사베츠가 맞다. 이 영화에서는 조연으로 출연했다.[49] 케이지 개인 수상이 아닌 작품상이나, 그의 주연작으로서 큰 영예였다.